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우리말글 바로쓰기/잡탕말 ‘대홍수’ 물먹은 한글 -《한 겨 레》 2002-05-15 -

100년 전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며 한글 보급운동을 벌였다. 1세기가 지나는 동안 한글문화는 양적으로 꽤 성장한 반면 외국어 범람으로 우리말글살이가 어지러운 게 현실이다. 우리말글 쓰기 10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우리말글의 질을 높이고 세계화하는 데 힘을 쏟을 때이다.

한겨레》는 창간 14돌을 맞아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펴기 위해 특집기획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를 마련한다.

공문서를 비롯한 각 분야의 언어현실을 짚는 첫회에 이어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매주 월~금요일치 4면에 연재할 예정이다.

국민의 국어 실력 수준이 낙제점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민현식 교수(서울대·국어학)는 지난해 서울의 초중등생, 대학생, 일반인 869명을 대상으로 국어(맞춤법 등) 실력을 조사한 결과 가장 나은 경우가 대학생 그룹으로 34점(100점 만점)이 나왔으며, 전체 평균치가 30점이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후반 들어 나타난 학력저하, 인터넷 세대의 규범 파괴적 언어생활, 영어학습 열풍이 모국어 경시풍조로 이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터넷·통신언어 현실 =컴퓨터 보급은 글자생활의 기계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생활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는 글쓰기를 가까이하게 하면서도 수준 낮은 글, 어문규범을 무너뜨리는 글들을 양산시켜 계층간 위화감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통신언어를 보면, ‘안녕하세요’는 ‘아령하세여, 안냐때욤, 안냐샘, 아냐세요, 안뇽하떼욤, 안여하세요, 앙냥하세염, 앙눙하세효, 언늉하세염’처럼 멋대로 바꾸어 쓰고 있다. 최근 한말글연구학회에서는 <통신언어 어휘집>에서 통신언어 낱말 2352개를 내보인 바 있다.

10002(많이), n·앤(애인), G랄하면 SKY간다, 耀耔耀耔(감사감사), 걸구(그리고), 거럼(그럼), 고쓰리(고3), 궁물(국물), 냉무(내용 없음), 얼만(오랜만), 에뒤셀(에이디에스엘), 여좌(여자) ….

건국대 조오현 교수(국어학)는 통신언어의 실태를 분석하면서 “새말 생성, 의미 확장에다 화자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의사 불통에다 왜곡된 통신언어를 분별없이 쓰다 보면 가뜩이나 부족한 맞춤법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식을 더욱 떨어뜨린다”는 점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꼽았다.

전자우편, 필명, 주소(아이디)도 문제다. 한글 인터넷 주소나 이름을 만들어 쓸 수 있는데도 로마자나 영어 일색이다.

나쁜 사이트나 통신대화(채팅) 등으로 사회문제가 일어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살 사이트에 오른 유서도 통신언어로 쓰는 세상이 되었다. 통신언어는 규제보다는 ‘의식’ 차원에서 다잡아야 할 문제로 보인다.

정부 공문서 등 =아직도 상당수 정부 보고서 등에서는 한글, 한자, 영어를 뒤섞어 쓰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제목이 ‘東北亞 비즈니스 中心國家 實現方案’으로 되어 있으며, 목차는 ‘H/W 확충전략’, ‘S/W 발전전략’ 식이다. 반면, 금융감독원에서는 최근 낯설고 어려운 금융용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외국어나 일본식 말이 많은 까닭이다.

정부 문서에서 한글화가 제일 덜된 분야는 법률 부문이다. 다행히 국회에서는 2000년부터 ‘국회 법률문서 한글화 기준’을 만들어 쓰고 있다. 그러나 법률이름을 붙여 쓰기로 하는 등 규범에 어긋나는 예외가 많은 게 문제로 지적된다.

법제처에서도 최근 법률 한글화 추진위원회를 두어 법률 한글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여기서는 “한자의 한글화를 넘어 법문의 용어·어구 및 문장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순화해 표현하고, 권위적·비민주적 용어를 지양하며, 축약어·전문용어 사용도 지양한다”고 한글화의 수준을 한층 높여 적용하기로 했다. 한글전용법이 나온 지 55년 만에 이뤄지는 일이다. 하지만 제주도국제자유도시, 경제특구 입안 등을 통해 수시로 불거지는 영어 공용론이 큰 걸림돌로 꼽힌다.

신문·출판 언어 =언론·출판분야는 국민의 언어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각별한 경각심으로 말글을 다루어야 한다. 출판 분야의 한글화는 대체로 성공적인 편이나, 신문에서는 아직도 제호·제목·사람이름 등에서 한자를 고집하고 있고, 특히 심각한 것은 로마자나 영어 따위를 무분별하게 쓰는 점이다.

신문의 문패·제호를 살펴보면, △Money/Sports/Metro/Health/iT Chosun.com/petanews닷컴/e컬처/echosun닷컴/weekend/Biz in Korea/NK리포트(조선) △JMoney/Better Life/ON TV/Metro/Go판/joins.com/e-트렌드/e-CEO/IN Art(중앙) △Money & Life/Sports/Metro/Edu-Metro/Viva! Worldcup/Golf & Golfer/Arts/CEO/i-Sports/donga.com/e월드/e비즈&벤처(동아) 식이다.

대중문화 언어 =노래를 들어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대중문화가 다양하지 못하던 때 하던 말이나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S.E.S/Choose My Life-U, jtL/Enter The Dragon, 핑클/Fine Killing Liberty, H.O.T/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가수들의 그룹 이름과 앨범 이름들이다. 가수 이름도 왁스, 리치, 려원, 밀크, 토이, 조앤 등 다양하다. 노랫말도 이름 이상으로 잡탕이다. 대체로 이런 풍조는 관련 기획사에서 조장하는 면이 크고,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도 부추기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영화 이름이나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해피투게더, 리얼코리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주주클럽, 뉴논스톱, 레츠고, 아이언 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정글쥬스, 후아유, 오버 더 레인보우 …. 이런 프로그램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말들은 또 어떨까? 비속어, 신조어, 외국어에다 선정적인 말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낱말과 음운변화 현상까지 일으키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방송언어가 저질로 흐르는 원인으로 지나친 시청률 경쟁, 시청자 의식부재 등을 꼽고 △자체 심의기구 활성화 △방송위원회의 언어분야 심의기능 강화 △시청자 운동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은 기자

1. 한국어와 조선말...남북 언어통일 먼저 -《한 겨 레》 2002-05-16 -

지난해 여름 국외 한국어 교사 연수회에서 나온 얘기다. 중국에서 온 한 여교사의 말로, 그 곳 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울에서 보내준 동화집을 읽고는 그들이 보기에 틀리게 적힌 한글과 낯선 낱말들에 대해 자꾸 질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로 '조선말' 수업에까지 혼선을 빚게 되자 서울(남한) 책은 아예 읽지 말라고 했다 한다. 이런 일은 남한과 북한, 나라밖 어디에서고 부닥칠 혼란이다.

오늘날 우리 언어에는 남한의 '한국어'와 북한의 '조선말', 국외 동포들이 간직해 오는 모국어로 재중동포들의 '조선말', 옛 소련 지역 동포들이 쓰는 '고려말' 등이 있다. '한글'을 북한에서는 '조선글자'라 하고, 한글 자모를 조선어 자모라 한다. 남한에서는 표준어.한글 맞춤법이라 하고, 북쪽에서는 문화어.조선말 맞춤법이라 한다. 남에는 국민이, 북에는 인민이 있다. 남쪽의 아버지는 '이씨'고, 북쪽에 두고온 아들은 '리씨'가 되었다.

분단 시대의 달라진 언어의 기본을 하나로 닦는 일을 남북이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1930년대 선각자들이 우리 말글 규범을 통일한 노력과 지혜를 되돌아 보자. 통일이란 흐트러진 것을 하나로 정리하는 일이다. '남북 언어통일 위원회' 같은 정리기구가 필요하다.

조재수/사전편찬가

2. 영어식 표현 `갖다' -《한 겨 레》 2002-05-17 -

우리 겨레는 자신을 하늘이 낸 백성이라고 믿고, 삼라만상을 하늘의 창조물이라고 신성히 여겨, 함부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자기에게 속한 것까지도 '땅뙈기나 있다' '돈푼이나 있다' '자식 남매를 두었다'고 말하고, 예사로운 일상사는 모두 '한다'고 하며, 관혼상제나 마을의 큰 공동행사는 '치른다'고 하면서 분수껏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런데 좀 일찍 현대교육을 받은 이들이 물질주의가 만연한 서양문화를 배워 들이면서, 온갖 것을 탐내어 가지고 싶어 하는 속성을 드러내, 모든 것을 '가진다'(have)고 한다. 자연현상도 영어식(We have much rain 따위)을 흉내내, 제게 딸린 것은 물론, 생각과 집단행사도 '가진다'고 하는 말투를 퍼뜨려, '말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대로, 욕심껏 가지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천민(천한 무리)들이 득실거리는 판국이 되었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2조)->모든 국민에게 신체의 자유가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대와 유사한 구조의 발성기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드물다.(고등국어 상 84쪽)->발성기관의 구조가 인간의 성대와 비슷한 동물은 드물다.

*이 후보는 어떤 정책노선을 갖고 무엇을 하려나?(신문글)->정책노선으로.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갖고->의원회관에 모여.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3. 틀린 게 '좋은' 세상 -《한 겨 레》 2002-05-20 -

한 낚시꾼이 텔레비전에서 자기 낚싯대는 다른 사람 것과 '틀린다'고 자랑한다. 어떤 진행자는 한 인기인의 어린 시절을 말하면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틀렸다'고 강조한다. 한 디자이너는 옷에 따라 이미지가 '틀려지니' 옷차림에 신경을 쓰라고 권한다. 어떤 연예인은 "올해와 작년이 좀 '틀려진' 점이 있다면 올해 우리 귀여운 아들이 생겼다는 게 '틀려진' 점인데"라고 말한다. 진행자가 "느낌이 다르죠?"라고 묻자 이 연예인은 "틀리죠" 한다. 마치 '틀리는' 것이 좋다는 말투다.

왜 이렇게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즐겨 쓸까? '틀리다'는 '어긋나거나 맞지 않다', '사이가 벌어지다', '감정이나 심리가 나빠지다'란 뜻을 지닌 부정적인 말인데 왜 이를 자꾸 긍정적인 용도로 쓸까?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까닭은 다르면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가치 의식 때문일까? '그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놈이니 틀린 놈이야'라는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속에 자리잡은 결과일까? 그렇다면 '틀리다'를 틀리게 쓰지 않음으로써 이런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른 말이며, 이를 혼동하여 쓰는 것은 틀린 언행이 될 수 있다. 바른 말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4. 외래어와 외국어 -《한 겨 레》 2002-05-21 -

얼마 전 어떤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컴퓨터'를 '컴퓨러'라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또 흔히 국민의 표준말 선생님이라 일컫는 아나운서들의 말을 들을 때도 이따금 의아할 때가 있다. "야구팬 여러분 .", "팩스를 보내 주십시오"와 같은 말에서 '팬', '팩스'의 'P'을 [f]로 내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P'은 두 입술을 붙였다가 떼면서 내는 소리고, [f]는 아랫니를 윗입술에 마찰시키며 내는 소리다. 영어에는 [f] 발음이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다. 그렇다면 '팬', '팩스'는 영어인가?

외국어인 '영어'와 '영어에서 온 외래어'는 구별해야 한다. 'fan'은 영어고 '팬'은 외래어, 곧 한국어다. '애호가' 정도로 바꿔 쓰면 좋겠지만 굳이 '팬'을 써야 할 때 말이다. '팬'이 외래어라면 그것은 곧 한국어이고 '팬'의 'P'을 [f]로 발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외래어라도 이왕이면 영어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는 게 좋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f]만이 아니라 '바이올린'의 '耑'도 [v]로, '지퍼'의 '耗'도 [z]로 소리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소리 내지 않는다.

외래어를 쓰는 데도 일정한 규칙과 관행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5. '매립지'에 피는 꽃 -《한 겨 레》 2002-05-22 -

우리말글은 외래어밭 또는 쓰레기 무덤에 핀 꽃과 같다. 그 무덤은 곧 역사와 오늘을 사는 이의 마음과 제도들이다.

말을 담을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향찰.이두를 만들어 적고, 한자를 그대로 쓰기도 하면서 천년 넘게 지났지만 다행히도 말은 살아남아서,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15세기에 훈민정음이란 몸을 만나 온전한 꼴을 이룬다. 그러고도 수백년을 돌보지 않다가 주권 없는 시절로 절반을 보낸 20세기 들어 찬란한 꽃을 피운다.

쓰레기 중에는 쉽게 썩어 거름이 되는 것들이 있고, 비닐이나 합성수지처럼 오래 썩지 않고 독을 내뿜는 것들이 있다. 요즘 큰 문젯거리가 로마자와 영어 쓰레기들이다. 그런 것에 눌려 잘 쓰이던 말조차 낮은말이나 촌스런 말로 외면당하기도 한다. 한편, 외국어도 대부분 한글 옷을 입히고 자주 쓰면 약간은 친숙해진다. 여기에 쓸모없는 외래어가 늘어나는 함정이 있다. 말다듬기나 순화가 그래서 필요하다. 이로써 적으나마 마음속의 쓰레기를 삭히거나 씻어낼 수 있다.

글이 없던 베트남이 로마자로 자기 말을 적고, 중국도 한어병음자모나 로마자로 소리를 적는다. 일본은 `가나'를 만들어 쓰고 있으나 한자를 버릴 수 없는 한계 탓에 이중 언어생활을 한다. 이에 견줘 우리는 무척 행복한 족속이다. 제 말을 제 글로 오롯이 적고, 남의 말글도 제 글로 능히 적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최인호/한겨레 교열부장

6. 표준말과 문화어 -《한 겨 레》 2002-05-23 -

표준말이란 한 나라에서 일정한 지역과 사회 집단을 기준으로 정한 보편스런 현대말이다. 같은 말의 여러 사투리가 있을 때는 심의하여 가려잡기도 하고, 또한 독특한 뜻의 사투리를 거두어 표준말로 정할 수도 있다. 표준말의 대상은 주로 일반어라 하겠으나, 학술용어도 심의를 거쳐 표준화할 수 있고, 외국 사람 이름이나 땅이름 등의 고유명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남한의 표준말은 교양인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했다. 북한의 표준말인 문화어는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인민의 혁명적 지향과 생활 감정에 맞게 문화적으로 가꾸어진 말이라고 한다.(조선말대사전, 1992) 북한 문화어에는 평안, 함경 등지의 토박이 방언에서 거두어들인 말도 많다.

서울 표준말과 평양 문화어의 근본적 차이는 언어의 표준 지역이 다른 점이다. 이는 두 지역 표준말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두 표준 지역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우리말 통일문제는 여기서부터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언어의 표준 지역이 둘이라면 결국 지금처럼 남북 두 표준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장차 통일시대의 표준말 제정을 생각해 보면, 당장 표준언어 지역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은 "표준말은 우리 겨레가 두루 쓰는 현대말로 정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싶다.

조재수/사전편찬가

7. 나한테 주어진 길? -《한 겨 레》 2002-05-24 -

'받는다'는 타동사이지만 역시 타동사인 '준다'와 맞세워 놓으면 입음(피동)의 뜻을 지니므로, 어떤 경우에도 주는 것은 '준다' 받는 것은 '받는다'고 해야 하는데, 오래 전부터 영어 기브(give)의 수동태 'be given'을 직역한 '주어진'이 만연해서 준다는 것인지 받는다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게 표현하는 사례가 도처에 보인다.

*공직에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맡겨진 책무를~(신문 사설) -> 공직에 권력을 주는 것은 맡은 일을 ~.

*공격의 찬스가 주어지면 기민하게 행동해야 합니다.(축구 중계방송) -> 공격할 기회가 오면 ~.

*우리 선수에게 퇴장이 주어지는군요.(중계방송) -> 우리 선수를 퇴장시키는군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윤동주 '서시') -> 내 길, 내가 갈 길 ~.

윤동주의 서시는 숭고한 시정신과 주옥같은 시어로 빛나지만 '나한테 주어진 길'은 옥에 티다.

*그는 인생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억지로 주어진 것이라고 믿어 왔다.(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 '주어지다'의 예문)

작가 홍성원의 소설 (육이오)에서 따온 예문인데, 문장이 극도로 치졸해서 진의를 헤아리기가 심히 어려우나 '그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했다'는 뜻인 듯하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8. 좋은 하루 되세요? -《한 겨 레》 2002-05-27 -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한다. 많은 이들이 날마다 나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제법 고상한 권고를 해 주기 때문이다. 한 여성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나더러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한다. 백화점에 가면 나더러 "즐거운 쇼핑 되세요"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권고에 따라 '좋은 하루'도 '즐거운 쇼핑'도 되는 셈이다.

어제는 아무개한테서 특별한 인사를 받았다.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잘 듣고 있노라면서 "앞으로도 더욱 좋은 프로가 되세요" 했다. 시시한 프로가 아닌 훌륭한 프로가 되라는 뜻인지, 아니면 더욱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하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내 프로를 잘 듣고 있다고 했으니 프로그램을 뜻할 것 같은데 "좋은 프로가 되세요" 했으니 헷갈릴수밖에.

밤에 텔레비전을 끄려는 순간에 들려온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말을 들으면서 나는 순간 "좋은 프로 되세요"도 비슷한 인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온 국민은 '되세요'라는 인사 덕분에 요술쟁이처럼 날마다 '좋은 하루', '즐거운 쇼핑', '편안한 밤', '좋은 프로' 같은 것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였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제 인사를 바꾸어 보자. 말이 되는 말로 바른 인사를 하는 것이 우리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 대표

9. 변하는 말들 -《한 겨 레》 2002-05-28 -

말은 끊임없이 변한다. 새 말이 생겨나고 쓰이던 말이 어느새 사라진다. 요즘은 다방보다 커피숍이 더 많이 쓰인다. 천연색 사진은 '컬러사진'으로, 자동차 열쇠는 '키'라고 하는 때가 더 흔하다. 미장원이 미용실로 가더니 이젠 '헤어샵' 쪽이 더 많다. 예식장 간판보다는 '웨딩홀'이 더 많은 형편이다. 영어 우대 풍조 탓이다.

반대 현상도 적지 않다. 미용실 대신 머리방이 나타나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서클이란 말이 슬며시 사라지고 '동아리'가 자리잡았다. 데모보다 '시위'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1인 시위라고 하지 1인 데모라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 시위는 한자말이지만 우리말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핸드폰 대신 '휴대전화'라고 하는 사람도 꽤 있는 걸 본다. 핸드폰은 영어를 따서 새로 만든 말이고 휴대전화는 한자말이지만 우리에게 좀더 친근한 느낌이다. 영어에서는 셀룰러폰이나 모바일폰이라 하지 핸드폰이란 말은 없으니 이 말은 그야말로 국적 없는 말이다. 하다못해 휴대폰 정도라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예 휴대전화가 널리 쓰이는 걸 보니 무척 반갑다.

내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남 것이 더 좋아 보이는 마음이 외래어를 자꾸 늘어나게 한다. 외래어가 늘어나면 우리말은 튀기말이 되어 간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세중/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10. 소리와 형태 -《한 겨 레》 2002-05-29 -

로마자, 아랍글자, 가나처럼 한글은 소리글자다. 한글 24, 로마자 26, 아랍글자 28자 가운데 모음이 한글은 열, 로마자 다섯, 아랍글자 하나다. 한글이 과학적이라 하는 까닭은 이처럼 모음을 많이 갖추어 갖은 소리를 쉽게 나타낼 수 있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맞춤법 총칙 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한다'고 한 것도 소리를 우선한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 글을 적을 때는 소리보다 형태.원형을 중히 여긴다.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말의 최소단위(형태소)는 언제나 같게 적는다는 말이다. '빛나다, 빛살, 빛없다'는 '빈나다, Ꞩ쌀, 비덥따'로 나지만 언제나 '빛~'으로 적는다. 맞춤법에서 소리를 특히 우선하는 경우가 제5절 두음법칙, 소리와 형태를 두루 고려한 규정이 제30항 사이시옷 적기다. 두음법칙은 한자말 첫머리에 '耈, 考' 소리를 꺼리는 것을 반영한 것인데, 서양 외래어엔 적용하지 않는다. 사이시옷은 고유어과 한자말 등 둘 넘게 어울린 말들을 대상으로 한다. 꼴은 '내가, 나무잎, 수도물'이지만 '내까, 나문닙, 수돈물'처럼 소리대로 적으면 글꼴이 허물어지므로 시옷을 붙여 '냇가, 나뭇잎, 수돗물'로 적는다. 뉴스거리, 서비스율도 뉴스꺼리, 서비슨뉼로 소리 나 시옷을 받쳐 적을 법한데, 서양말과 어울려 된 말에 대한 규정은 아직 없다.

최인호/교열부장

11. 남북 다른 글자차례 -《한 겨 레》 2002-05-30 -

남북은 한글 자모의 일부 이름과 차례를 달리하고 있다. 북쪽에서는 남쪽에서 써 오던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자모 배열을 바꾸어, 된소리 글자 '老, 耇, 耒, 耕, 耘'을 '耝' 다음에 두고, 또 그 뒤에다 모음 글자 '葡 ,蒡,蓡,蕡,...,蝡,螡,蒁,蕁,...藡, 蛁' 들을 따로 몰아 배열한다. 자음과 모음을 따로 잡고, 또 자음과 모음에서도 홑글자 부류와 겹글자 부류를 따로 모아 놓는 방식이다. 북쪽에서는 받침 '耖'은 '耔' 다음에 두고, 초성 '耖'은 모음항을 따로 잡아 자음항 뒤에 배열한다. 북한 사전에서 '까다'는 '耝'항 다음에, '웽웽거리다'는 사전의 맨 뒤쪽에 실린다.

글자 차례란 수많은 언어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하고 찾아보는 데 필요한 기본 규정이다. 사전 편찬이나, 도서 분류, 갖가지 목록 작성을 두고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같은 언어체계에서 이런 기본 규정을 바꾼다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였다. 로마자권 나라들에서 저마다 알파벳 차례를 바꾼 예를 들어 보지 못했다.

달라진 남북의 글자 차례를 아우르는 한 방법으로, 지난날 최현배가 주장한 한글 차례잡기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분단 이전의 글자 차례잡기에서 자음항과 모음항만 따로 나누어 배열하는 방법이다. '가, 까 ... 하' 다음에 '아, 야 ... 으, 이' 차례로 나가는 방식이다.

조재수/사전편찬가

12. 어투 `이뤄지다' -《한 겨 레》 2002-05-31 -

'이루어진다'는 타동사 '이룬다'의 입음꼴(피동형)이므로 국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식인들이 한영사전에 실린 'be achieved'의 예문을 직역한 투로 표현한 문장을 퍼뜨려서 우리말글의 품위가 나날이 떨어져 간다.

*그이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한영사전, 시사영어사) -> 그이는 숙원을 이루었다.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성격이 이루어진다.(표준국어대사전, 국어연구원) -> 인간의 성격은 환경이 형성한다.

*이 책으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등국어 상 일러두기) -> 이 책으로 하는 교수.학습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활동은 대체로 설명과 설득의 범위에 든다.(고등국어 하 144쪽) -> 일상 생활에서 하는 언어 활동은 ~.

*언어 표현은 문장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고등문법 166쪽) -> 언어는 문장 단위로 표현한다.

*한국이 강대국들과 공존하면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사설) -> ~ 발상을 바꿔야 한다.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다.(신문 시론) -> 선거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어야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3. 영자신문은 없다 -《한 겨 레》 2002-06-04 -

우리가 습관적으로 써 온 말에는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이 꽤 있다. 영자지나 영자신문이란 말도 그 하나다. ‘뉴욕타임스’나 ‘코리아헤럴드’ 같은 신문을 흔히 영자신문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인 ‘르몽드’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영자신문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불자신문이라 해야 할까? 영자도 불자도 아니라면 ‘르몽드’는 무슨 신문일까?

잠시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르몽드’는 프랑스어(불어) 신문임을 알 수 있다. 불어를 써서 만든 신문이기 때문이다.

르몽드가 불어신문이라면 뉴욕타임스는 무슨 신문일까? 두 신문의 차이는, 르몽드는 불어로, 뉴욕타임스는 영어로 박은 신문이라는 점이다. 결국 르몽드가 불어신문이면 뉴욕타임스는 영어신문이다. 영어신문이라 할 것을 오래도록 영자지 또는 영자신문이라 불러 온 것이다.

어떤 미국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영자는 없다고. a, b, c, …를 보통 영자 또는 영문자라고 하지만 이 글자들은 영어에서만 쓰는 게 아니고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네덜란드어 등 많은 언어들이 같이 쓴다. 따라서 a, b, c, …를 영자 또는 영문자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이 문자는 2000년도 전에 로마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어서 로마자라 부른다. 영어에 매인, 우리의 좁은 시야를 보여주는 영자라는 말 대신 로마자라고 하자.

김세중/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14. 달라지는 한자말 쓰임 -《한 겨 레》 2002-06-05 -

흔히 부닥치는 말글에서, “통화를 나누다, 대화를 나누다, 담화를 나누다, 대담을 나누다” 따위는 “의견을 나누다, 얘기를 나누다, 인사를 나누다”들과는 쓰임새가 좀 다르다. 곧 통화, 대화, 담화, 대담은 ‘通 對 談’ 따위가 서술어 구실을 하여 ‘마주하다, 주고받다’는 뜻을 스스로 지닌 말들이다. 원체 ‘-하다’를 붙여 써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목적격 ‘을, 를’을 달아 ‘나누다’를 거듭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한자말의 쓰임이 점차 변해가는 사례로 봐야 할 듯싶다.

달리 보면, 한자말이란 외래어의 고유어화 현상이랄 수도 있겠다. 예컨대 “피해를 입다, 피랍을 당하다, 부상을 당하다, 부상을 입다”들이 습관적으로 쓰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입음’(피동)이 겹쳐쓰인 말들이다. 역전앞, 처갓집, 외갓집, 대갓집 역시 역앞, 처가, 대가로 충분한데도 사용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데, 이중적이긴 하나 한자말이 고유어화하는 흔적들로 보면 관용할 수 있는 경우다.

말이 이런 방식으로 쓰이는 것은 경제성에서나 됨됨이에서 달가운 것은 아니다. 역시 나은 방식은 간단히 ‘-하다’를 붙여쓰든지, 고유어투로 바꿔쓰는 것이다. ‘부상을 입다’는 ‘다치다’, ‘피해를 입다’는 ‘피해를 보다’, ‘대화 좀 나눕시다’는 ‘얘기 좀 합시다’ 따위로 말이다.

최인호/교열부장

15. 표준화의 걸림돌 -《한 겨 레》 2002-06-06 -

남북한 말이 처음으로 달라진 것은 1948년 북한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일부를 달리 바꾸면서였다. 다른 정부를 세우면서 말글 정책도 따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맞춤법 중 가장 큰 차이는 북한에서 한자말을 소리마디마다 해당 한자음대로 적기로 하여 ‘考, 耈’ 첫소리도 그대로 적는 데 있다.

남쪽에서 ‘여자, 노동’으로 적는 것을 북쪽에서는 ‘녀자, 로동’으로 적고, 소리도 그대로 낸다. 남쪽에서는 ‘분열’로 적고 [부녈]로 소리내는데, 북쪽에서는 ‘분렬’로 적고 발음도[분렬]로 한다. ‘考’과 ‘耈’ 소리를 그대로 이어서 발음하기란 쉽지 않다.

당시 북한 대중의 발음이 머리소리 법칙을 무시하고 ‘考, 耈’ 첫소리 발음을 표준으로 할 정도였는지는 의문스럽다. 남북한 말의 표준화를 생각할 때 이 문제는 큰 숙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발음과 말의 차례 잡기가 딸린 복잡한 문제다. 요즘처럼 글자생활이 기계화된 시대엔 정보처리를 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결국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당시 북쪽에서 말글 정책을 세운 학자들은 대부분 일제 때 우리말을 함께 지키면서 연구하고 정리했던 조선어학회 학자들이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의 개정 작업을 꾀하면서 민족언어의 앞날에 미칠 큰 파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조재수/사전편찬가

16. 영어투 '요구된다' -《한 겨 레》 2002-06-07 -

‘요구한다’는 ‘요구’에 뒷가지 ‘-하다’를 붙여 만든 타동사지만, ‘요구된다’는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하겠다’는 영어문장(I’ll do all that is required of me)에서 ‘is required of’ 부분을 ‘요구되는’이라 번역한 데서 온 기형이다.

우리말 본새를 모르고 색다른 것에 정신 팔린 지식인들이 이를 즐겨 써서 국어를 영어에 종속시키면서, 게으른 농사꾼의 논밭에 짙은 잡초가 작물의 성장을 막듯 제대로 된 국어를 죽인다.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은’(耀) 공명선거 의지입니다. 공명선거를 치르려면 흑색선전을 ‘근절할 집중적인 단속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考)(耝방송 뉴스)

(耀) →필요한 것은/ 요구하는 것은

(考) →철저히 단속해서 근절해야 합니다.

*새로운 경제팀에는 … 유연한 정책대응 자세가 ‘요구된다.’(耆신문 사설) →필요하다.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의 집행과 질서의 존중이 요구된다.’(耗신문 사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간단한 언어표현에 관한 문법성을 판단하는 데도 많은 사고과정이 ‘요구된다’.(고등국어 상 85쪽) →필요하다.

*‘무한 경쟁이 요구되는’ 국내외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등국어 상 393쪽)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7. 웃기는 사람? -《한 겨 레》 2002-06-10 -

1960년대 초만 해도 ‘웃긴다’는 좀처럼 쓰이지 않았다. 웃음은 자기가 우스워서 웃는 것이지 누가 억지로 만들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웃게 만드는 개그맨뿐이어서 그러는지 사람들은 이제 ‘웃긴다’를 더 자연스럽게 쓰는 것 같다. 얼굴이 좀 특이하게 생겨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에 그 사람을 ‘웃기게 생겼다’고 하고, 언행이 좀 특이한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상대를 참으로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구 웃으라고 얼굴이 그렇게 생긴 것도, 말투가 특이한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더러 웃긴다고 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 되겠는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서 은연중에 의식이 수동적으로 변하고, 말까지 수동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서양 언어의 피동 표현을 분별없이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잘못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 없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우스워서 웃으면서도 상대가 웃겨서 웃는 것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웃는 본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우스운’ 것을 ‘웃기는’ 것으로 말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18. 외래어에 쓰는 받침 -《한 겨 레》 2002-06-11 -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 외래어란 외국어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특징에 맞게 바뀌어 쓰인다.

우선 외래어는 로마자 등으로 적는 외국어와 달리 한글로 적는다. 그리고 발음도 달라진다. 예컨대 ‘바나나’라는 외래어를 보면 영어일 때는 둘째 음절에 유난히 강한 악센트가 있지만 일단 우리말에 들어오면 세 음절에 고르게 강세가 난다. 또 ‘버내너’처럼 발음되던 것이 ‘바나나’로 바뀐다.

외래어도 국어인 이상 받침을 적을 때 우리말글의 특징을 따라야 한다. 예컨대 ‘커피숍’은 영어(coffee shop)에서 들어온 말인데, 거리의 간판을 보면 ‘커피숍’이라 된 것도 있지만 ‘커피?’이라고 적은 것도 많다. 영어일 때 마지막 글자가 ‘p’이니까 ‘?’이라고 적은 모양이지만 이는 잘못이다. [커피쇼비], [커피쇼베서]라고 발음하는 이상 ‘커피숍’이라고 적어야 옳다.

외래어에서는 ‘耀, 考, 耈, 耐, 耑, 耔, 耖’ 일곱자만 받침으로 쓴다. ‘耚, 耛, 耜’과 같은 받침은 쓰지 않는다. 따라서 ‘케?, 디스?, 커피?’과 같은 표기는 옳지 않고 ‘케이크, 디스켓, 커피숍’으로 적어야 한다.

외래어가 비록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이기는 하지만, 국어 안에서 쓰이는 낱말인 이상 그 특징에 맞게 적는 것은 당연하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9. 준말과 지나친 생략 -《한 겨 레》 2002-06-12 -

갖추어 써야 할 말을 생략한 채 쓸 때가 잦다. 그 말을 자주 쓰는 환경에 기대어 대충 읽어 넘어가기는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될 때가 많다.

이는 통상의 준말과는 좀 다른데, 준말은 그것이 통사적인 말이든 아니든 ‘새, 왕따, 아무튼, 귀찮다, 전교조’처럼 줄여쓰기 전 원래 소리나 뿌리 등 최소 흔적은 살려 쓴다.

회사이름으로, 엘지(럭키·금성), 에스케이(선경), 케이티(한국통신) 등을 보자. 이는 원래 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로마자로 바꿔 적은 것이다. 이들은 준말 범주를 벗어나 상징적 글자상호로 쓰는 것들인데, 바람직한 이름짓기 방식은 못 된다.

한 부분을 뭉텅 생략한 채 일종의 대유형식으로 쓰는 말로, “월드컵(축구대회) 첫승에 도전하다,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다, 아이엠에프(관리체제, 구제금융) 위기극복, 프로축구(경기) 삼연승, 전축(소리)을 듣다, 텔레비전(방송)을 보다, 대입수능(시험)에 대비하다, 재벌(총수) 2세” 등을 보자. 거의 괄호 안의 말을 생략한 채 쓴다.

정도가 지나친 준말, 끊어먹거나 이어붙인 말은 뜻 전달이 안 되거나 문장을 기형으로 만들 때가 잦다. 관용상 생략한 채 쓰는 말도 말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갖춘 형태를 적어주어야 바른 자세라 할 것이다.

최인호/교열부장

20. 번역투 ‘필요로 한다’-《한 겨 레》 2002-06-13 -

‘필요하다’는 한자어 어근 ‘필요’에 말 만드는 뒷가지 ‘하다’를 붙여서 된 형용사지만, ‘필요로 한다’는 ‘이 일에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영어(It needs much skill for this work)를 ‘이 일에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엉터리로 번역한 데서 온 기형어다.

우리말의 본새를 모르는 지식인들이 즐겨 쓰는 바람에, 이것이 ‘요구된다’와 더불어 우리말글의 본새를 흐트러뜨리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작은 따옴표(‘’) 안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쓰는 게 마땅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고등국어 상 109쪽) →사회에 필요한.

*국어의 ‘음절은 반드시 모음을 필요로 한다.’(고등국어 문법 25쪽) →음절에는 모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서술어는 용언의 종류에 따라서 ‘주어 하나만을 필요로 하는 것’(耀), ‘주어와 또 다른 성분을 필요로 하는 것’(考), 그리고 ‘성분 셋을 필요로 하는 것’(耆)이 있다.(〃 71쪽) →(耀) 주어 하나만 필요한 것. (考) 주어 이외의 성분이 하나 더 필요한 것. (耆) 성분 셋이 필요한 것이 있다.

*법률상의 불이익을 과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조건.(민중서림 국어대사전 ‘규칙 사유’의 설명문) →법률에 따라 불리하게 대우하는 데 필요한 조건.

*한국 경제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외화다.(耐신문 사설) →한국 경제에 긴요한 것은 외화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21. ‘아 해 다르고…’-《한 겨 레》 2002-06-14 -

옛 어른들이 말다툼을 할 때면 으레 “말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법이다”라면서 상대를 윽박질렀다. 이는 상대가 말을 정확하게 하지 않아서 자신이 오해했거나 기분이 나빠졌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격언으로 굳어진 것을 보면 우리 겨레가 정확한 언어생활을 했고, 따라서 오늘날도 정확한 언어생활을 하고 있을 법한데, 실제로는 잘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라다’는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다’, ‘바래다’는 ‘옷감의 빛깔을 바람이나 약품을 사용하여 희게 하다, 물이 날다’ 등의 뜻이다. 그러므로 ‘바라다’를 ‘바래다’로 쓰면 안 된다. ‘네가 잘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라고 써야 하고, ‘다음 공정은 옷감을 바래는 일이다’처럼 쓰는 것이 옳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바람’을 ‘나의 바램’으로 쓴다.

‘놀라다’는 자신이 갑자기 무서움을 느낄 때 쓰는 말이고, ‘놀래다’는 남을 놀라게 할 때 쓰는 말이다. ‘네가 고함치는 바람에 아이가 놀랐다’처럼 쓰고, ‘네가 고함을 쳐서 아이를 놀랬다’처럼 쓴다. 만일 ‘그가 고함치는 통에 내가 무척 놀랬다’라고 쓰면 틀린다. 자기가 놀랐는지 상대를 놀랬는지 구별하여 써야 한다.

비슷한 말투로 ‘같아요’를 ‘같애요’로, ‘맡기다’를 ‘?기다’로, ‘만들다’를 ‘맨들다’로 잘못 발음하는 것을 방송에서도 자주 듣는데, 이런 경우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법이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22. 소리와 적기 -《한 겨 레》 2002-06-17 -

자주 틀리게 적는 말 중에 ‘색씨, 깍뚜기, 갑짜기, 몹씨, 덥썩, 법썩, 납짝, 껍떼기, 껍찔’ 들이 있다. 소리는 그렇게 나지만 적을 때는 ‘색시, 깍두기, 갑자기, 몹시, 덥석, 법석, 납작, 껍데기, 껍질’로 적어야 맞다.

그렇다면 ‘어깨, 오빠, 이따금, 잔뜩, 살짝, 담뿍, 몽땅’ 들은 왜 소리나는 대로 적는가?

또 ‘널따랗다, 좁다랗다, 기다랗다, 짤따랗다’는 무엇인가? 왜 ‘넓다랗다, 길따랗다, 짧다랗다’로는 안 쓰는가? 왠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약속 또는 맞춤법의 필요성이 생긴다.

맞춤법에서는 ‘한 단어 안에서 별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며, 그 조건을 ‘두 모음 사이’와 ‘考, 耈, 耐, 耖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로 한정하고 있다. ‘耀, 耑’ 받침 뒤에서는 자연스럽게 된소리가 나므로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고 했다.(제5항) ‘널따랗다, 좁다랗다, 짤따랗다’도 이 조건에서 해결된다. ‘넓다랗다, 짧다랗다’는 ‘넙따라타, 짭따라타’가 아니라 ‘널따라타, 짤따라타’로 소리내므로 소리 따라 적고, 좁다랗다의 ‘-다랗다’는 耑받침 뒤여서 된소리로 적지 않는 것이다. ‘길따랗다’는 耈받침 소리가 아예 없어진 채 소리나므로 ‘기다랗다’로 적는다.

이처럼 소리와 형태를 두루 갖추어 적으려다 보니 예외가 많아지고 맞춤법이 까다롭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눈·귀·입을 두루 만족시키는 언어는 우리말글만한 게 없다고 한다.

최인호/교열부장

23. ‘주스’와 ‘쥬스’ -《한 겨 레》 2002-06-18 -

시중에서 팔고 있는 오렌지 주스 제품에는 ‘쥬스’로 적은 것도, ‘주스’로 적은 것도 있다. 당연히 ‘주스’가 맞다. 언론사 인터넷에도 ‘레져’로 된 곳도, ‘레저’로 된 곳도 있다. ‘레저’가 맞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耗, 耙’ 다음에는 ‘蒡, 蕡, 虡, 蝁, 蓁, 薁 ’ 따위가 올 수 없고, ‘葡, 蓡, 薡, 蚁’ 등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에서 자음 ‘耗, 耙’은 이른바 입천장소리다. 다른 자음과 달리 ‘耗, 耙’ 다음에서는 ‘葡’와 ‘蒡’가 구별되지 않는다. ‘耀’이나 ‘考’의 경우는 ‘가’와 ‘갸’, ‘나’와 ‘냐’가 분명히 다른 소리지만 ‘자’와 ‘쟈’는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다. ‘자, 쟈’와 ‘차, 챠’가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국어에는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 등으로 시작되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耗, 耙’ 다음에는 오로지 ‘葡, 蓡, 薡, 蚁, 蒁, 蕁’ 등의 단모음만이 올 수 있다.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쥬스, 레져, 텔레비젼, 챨리, 쵸콜릿’ 같은 표기는 틀리고 ‘주스, 레저, 텔레비전, 찰리, 초콜릿’이라고 해야 맞다. ‘쥬스’ 같은 표기가 나타나는 까닭은 그렇게 적어야 원음을 제대로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영어에서 온 외래어이지 영어 단어 그 자체가 아니다.

외래어는 우리말에 동화된 말로서, 우리말의 질서와 특성에 맞게 적고 발음해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24. 낡은 말투 ‘~에 의하여’-《한 겨 레》 2002-06-20 -

‘~에 의하여’는 원래 ‘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밝힌다’ ‘형법 제 ○○조에 의하여 피고 아무개를 ○○형에 처한다’처럼 쓰는 낡은 한문투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지식인들이 영문(Mr. Kim was killed by robber. 김씨가 강도에게 피살했다, 강도가 김씨를 죽였다)을 ‘김씨가 강도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따위로 서투르게 번역한 형식을, 비슷한 모든 경우에 판에 박은 듯이 써서, 국어 본연의 글틀을 무너뜨리고, 언어생활의 이상인 언문일치를 파괴하여 국어를 말하기 어렵고 듣기 거북한 언어로 전락시킨다. 아래 보기들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 27조 1항) → 모든 국민에게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이 법률대로 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조의관에 의해 사당과 금고 계승자로 지명된 덕기.(고등문학 교과서) →조의관이 사당과 금고 계승자로 지명한 덕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 인민을 위해, 인민이 하는, 인민의 정치.

*이라크의 수송선이 미군에 의해 나포되었다.(신문기사) → 미군이 이라크 수송선을 나포했다.

*우수한 상감청자가 고려인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교육방송) → 고려사람들이 우수한 상감청자를 만들었습니다.

*삼당합당에 의해 탄생된(신문기사) → 삼당합당으로 생긴.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25. 토씨 ‘가·이, 는·은’-《한 겨 레》 2002-06-21 -

우리말은 첨가어이므로 체언에 토씨(조사)를 적절하게 붙여 써야 원하는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한국인이라면 특별히 토씨를 잘못 써서 낭패를 당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급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토씨의 미세한 차이를 감안하여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려 한다. 그러므로 두루 그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유정은 소설 ‘동백꽃’에서 주인공의 수탉이 점순이 수탉한테 쪼이어 대가리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을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라고 묘사했다. 여기에 쓰인 토씨 ‘은’은 ‘이’로 바꾸어야 한다.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라고 해야 그 장면을 제대로 나타낸 문장이 된다.

사람이 누워서 자는 것을 보고 ‘사람이 누워서 잔다’처럼 말하지 ‘사람은 누워서 잔다’처럼 말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조금 일찍 나가는 사람이 ‘저는 일찍 나가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제가 일찍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우습다.

‘가, 이’는 ‘누가 그러한지’에 대한 답의 성격으로 쓰는 토씨다. 곧, 서술어의 주체를 밝히는 때 쓴다. 그러나 ‘는, 은’은 ‘그가 어떠한지’를 밝힐 때 쓰인다. 곧, 주어의 서술어를 밝히는 경우에 쓰는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우리가 이미 이런 차이점을 알고 분별해서 이 두 토씨를 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구별을 무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르게 쓰는 것이 아름답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26. 소리와 글자 -《한 겨 레》 2002-06-24 -

소리와 글자가 달라 헷갈리는 말이 여럿 있지만, 잘 써놓고도 달리 발음하는 경우도 잦다. 글자(어원·형태)에 집착하여 소리 의식을 눌러서 생기는 현상 탓이다. 이는 글자 매체의 발달이 한몫을 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소리와 글자가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문로가 [신물로]였다가 [신문노]로, 논리(놀리)를 [논-리]로, 곤란(골란)을 [곤-난]으로 소리내는가 하면, 치다꺼리(치닥거리), 골칫거리(골치거리), 수돗물(수도물), 전셋값(전세값), 돋치다(돋히다), 며칠(몇일) 등도 괄호 안처럼 적는 이가 많다. ‘치닥거리’는 일감, 재료를 뜻하는 말 ‘거리’에 얽매여서, ‘골치거리·수도물·전세값’은 글자에만 집착하고 사이시옷 적기에 익지 않아서, ‘돋히다’는 입음꼴 뒷가지 ‘히’에 얽매여, ‘몇일’은 분명찮은 어원에 얽매여 잘못 적고 있다. 이는 형태표기 의식이 성하여 생기는 현상으로서, 소리와 글자가 달라지는 이중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뒷처리, 뒷쪽, 헛탕·일찌기, 꺽다, 늦깍이, 깍다’ 들은 반대현상을 보인다. ‘뒷처리·뒷쪽’은 뒷소리가 耙, 耘 곧, 거센소리·된소리로 된 까닭에 ‘뒤처리·뒤쪽’으로, 일찌기는 ‘일찍’이라는 말이 살아 쓰이므로 ‘일찍이’가, ‘깍다’는 원래 쌍받침 ‘老’을 썼으므로 ‘늦깎이·깎다’로 써야 맞다. ‘깍듯이, 깍두기, 깍쟁이’들은 원체 耀받침이다. 이 정도 혼란은 맞춤법 자체보다 학교에서 맞춤법 익히기를 소홀히한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최인호/교열부장

27. 외래어와 된소리 -《한 겨 레》 2002-06-25 -

외래어 표기법에는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을 따르면 ‘까스, 뻐스, 땐스’와 같은 표기는 틀리고, ‘가스, 버스, 댄스’가 맞다. 발음은 된소리로 하면서 적을 때는 왜 예사소리로 적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표기가 늘 발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를 [평까]로, ‘영희’를 [영히]로 소리내는 것이 그런 예다.

그리고 발음이라는 것은 유동적이어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골프]라고 발음하는 이도 있지만 [꼴프]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만일 발음대로 적는다면 ‘골프’, ‘꼴프’가 다 쓰여야 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표기는 발음보다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한편,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에서 온 말을 적을 때 된소리를 적으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떼제베, 빠리, 니꼴라이’ 같은 예가 그렇다. 그러나 이 역시 외래어 표기에는 된소리를 적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테제베, 파리, 니콜라이’라고 적어야 맞다. 된소리 표기를 허용한다면 ‘나폴레옹’, ‘피카소’와 같은 말도 ‘나뽈레옹’, ‘삐까소’라고 적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언어 생활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외래어는 원어인 외국어의 발음이 그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우리말 음운 체계에 맞게 바뀐다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따라서 원어 발음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국어 생활에 편하게 쓸 수 있으면 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28. 번역투 ‘으로부터’-《한 겨 레》 2002-06-26 -

우리말에서, 생긴 곳, 온 데, 행동 대상 등을 보일 때 쓰는 토씨는 ‘에서, 에게서, 한테서’ 등인데, 요즘 저마다 ‘from’이 들어간 영문을 분별없이 ‘으로부터’로 옮겨 써 버릇된 탓에 국어다운 말맛을 해친다. 이는 문장조차 영어 구문에 예속시키는 독소로 작용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 → ~ 국민에게서, 국민한테서.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청소년들은 거리에서 방황한다.(신문 사설) → 학교에서 ~.

*권력층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검찰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신문 칼럼) → 권력층에 얽매인 검찰에 ~.

*여당 총재인 대통령이 김 대표로부터 당무보고를 받았다.(신문 기사) → ~ 김 대표의, 김 대표한테서 ~.

*돈으로부터 깨끗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耗일보 칼럼) → 돈때가 묻지 않고 과거가 깨끗한 ~.

*‘보호’는 약한 자를 위험으로부터 지킨다는 뜻이다.(耝방송) → ~ 약한 자를 지킨다는 뜻이다.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지역감정을 자극한 비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耆일보 사설) → ~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

*최근 우리는, 우리가 더이상 북한의 테러와 사보타주 공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환멸했다.(耗일보 칼럼) → 여전히 북한의 테러와 사보타주 공작의 대상이라는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29. 따옴토씨 ‘라고’와 ‘고’-《한 겨 레》 2002-06-27 -

말이나 생각을 따올 때 토씨 ‘(이)라고’와 ‘고’를 쓴다. 남의 말을 그대로 따올 때 ‘(이)라고’를 쓰고, 간접으로 따올 때는 ‘고’를 쓴다. (그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라고 외쳤다.) 이처럼 바로 인용할 때는 반드시 따옴표를 써야 한다. 따옴표에는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가 있는데, 남의 말을 따올 때는 큰따옴표를 써야 한다. 그 뒤에는 따옴토씨 ‘(이)라고’를 붙인다. 때로는 읽거나 들은 대로가 아니라 자기 말로 바꾸어 인용하기도 한다. 이때는 씨끝 뒤에 ‘고’를 붙인다. (그는 자기에게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이것이 간접인용 문장이다. ‘나에게’가 ‘자기에게’로 바뀐 것에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신문글에는 이런 문장이 자주 나타난다. (그는 “한국 축구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며, “한국이 우승까지도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직접인용을 하면서도 간접인용에 쓰는 토씨를 붙인 것이다. 이는 다음의 두 경우로 고쳐 써야 한다. (그는 “한국 축구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 한국이 우승까지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는 (그는 한국 축구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며, 한국이 우승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올 내용이 문장이 아니라도 이 규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쉬지 않고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라고 외쳤다.) 또는 (그는 쉬지 않고 ‘대한민국’과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큰따옴표 뒤에는 꼭 토씨 ‘(이)라고’를 붙이자.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30. '남북 말골 메우기 -《한 겨 레》 2002-06-28 -

신약성서 요한 복음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성직자들은 이 ‘말’을 여러 뜻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못 배운 민중을 깨우치려는 예수의 속뜻은 민중의 상식 안에서 이해를 구하고자 ‘태초의 말’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나 성직자들은 제 논물 제 논에 대려고 논꼬 트는 듯한 풀이를 일삼아 말씀을 높이높이 추어올리기에만 힘써 오늘날 ‘말’은 하늘의 신으로 떠돌기에 이르렀다.

서울말과 평양말 사이에 팬 골을 얘기한다며 무슨 예수 타령이냐고 웃겠지만, 남쪽 또는 서울 사람들이 평양말에 대해 갖고 있는, 별나고 촌스러운 말 대하는 듯한 그릇된 생각이 예수의 쉬운 말씀에 분칠을 하고 연지곤지를 찍어 터울을 높이는 데 애쓰는 이들과 다름이 없지 싶어서다.

말은 겨레다. 성서에서 말한 ‘태초의 말’이란, 태초에는 하나의 말을 쓰는 하나의 겨레만 있었음을 가리킨 것이다. 예수 시대는 노아의 자손들이 방언의 징벌을 받은 뒤 오래어서 분열된 방언권이 다툼을 일삼아 이를 보다못한 예수가 태초의 말로 돌아가 화합하라는 뜻에서 행한 간곡한 말씀일 뿐 다른 뜻은 없다.

그는 그 구체적인 실행 방법으로 사랑을 들었다. 사랑만이 화합하는 길임을 명토박이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남북 말씨의 골을 어떤 마음새로 메워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죄는 겨레말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지 못하는 잘못이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31. 소리원칙과 현실 -《한 겨 레》 2002-07-01 -

우리말글이 지닌 중요한 소리 특징의 하나가 홀소리 어울림(모음조화)인데, 시늉말과 풀이말 씨끝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988년 맞춤법과 표준말 규정을 바꾸면서, ‘깡충깡충’ ‘오뚝이’ ‘싹둑싹둑’ 등을 굳어진 채 쓰인다 하여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예외일 뿐 모음조화 현상은 음·양에 따라 큰말·작은말의 느낌을 주면서 잘 지켜지고 있다. 다만 오순도순, 단출하다 등은 그 전부터 굳어진 말이다.

문제는 언중들이 모음조화 의식에 따라 ‘오손도손, 단촐하다’로 쓰는 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북쪽 문화어에서도 이렇게 쓴다.

표준말이나 맞춤법을 정하는 데서 조심할 것이 언어현실을 얼마나 인정하고 반영하느냐인데, 특히 기본원칙을 허무는 경우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똑·우뚝’ ‘싹독· 썩둑’ ‘깡총, 껑충’ 따위는 틀림없이 큰말 작은말로 맞서는 말인데, 현재 표준말에서는 ‘오뚝하다, 싹둑’ 따위만 쓰게 했다. 이렇게 쓰는 게 대세라면 덤으로 음·양이 어울린 말을 하나 더 인정하는 정도로 그치고, 잘 쓰지 않는다 해도 원래 조화롭게 양립된 말은 살려두어야 옳다.

耑불규칙 용언들도 그렇다. ‘아름답다, 고맙다’ 따위에서 실제 발음이 ‘아름다워, 고마워’로 난다 하여 이를 인정하고 ‘아름다와, 고마와’를 버렸는데, 역시 모음조화에 어긋나므로 오히려 ‘와’를 원칙으로, ‘워’는 예외로 허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경우에서 맞춤법에 맞지 않으니 틀렸다고 초들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긴다.

최인호/교열부장

32. 저희 나라? -《한 겨 레》 2002-07-02 -

많은 사람 앞에서 우리 나라를 가리켜 ‘저희 나라’라고 하는 것을 흔히 본다. 친근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면서는 그럴 일이 없지만 방송에 출연해서나 토론, 인터뷰를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그러나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어떤 경우에든 옳지 않다.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상황을 들여다보면 말하는 사람도 한국인이고, 듣는 사람도 한국인이다. 그런데 ‘저희’라는 표현은 ‘우리’를 낮춘 말로서 ‘내가’ 포함된 어떤 집단을 그 집단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면서 쓴다. 예를 들어 ‘저희 집’, ‘저희 회사’, ‘저희 학교’ 등과 같은 말을 쓸 때는 듣는 사람은 다른 집, 다른 회사, 다른 학교에 소속된 경우다. 아무리 신입 사원일지라도 자기 회사 사장에게 ‘저희 회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장이든 사원이든 같은 회사에 속하는 이상 ‘우리 회사’가 맞다. 또, 식구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저희 집’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옳지 않다.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과 한국말로 이야기할 경우에는 어떨까? 드문 일이겠지만 그럴 때도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사대’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오늘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저희 나라’라는 표현이나 말을 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요즘 경어법을 잘못 쓰는 사례를 흔히 본다. 공손이 지나치면 예가 아니란 말이 있는데 ‘저희 나라’라는 표현이 그렇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33. 일어투 주격 -《한 겨 레》 2002-07-03 -

일본말에도 주격조사(が)와 관형격조사(の)가 있는데, 많은 일본인들이 ‘내가 쓴 편지’(私がかた手紙)를 ‘나의 쓴 편지’(私のかた手紙)라고 쓰자, 좀 배웠다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흉내내어 주어 자리에 ‘가/이’ 대신 ‘의’를 쓴 기형 표현을 홍수처럼 쏟아 내 우리 말글을 일어에 딸려붙이는 추태를 부린다. 다음 예문들에서 따옴표(‘ ’) 부분을 화살표(→)대로 고쳐 써야 한다.

*‘그녀는 나의’ 존경하는 어머니(오페라 가사) → 그 여인은 내가 ~.

*‘재판관들의 형 심의를 위해서’ 법정은 잠시 휴게로 들어갔다.(이무영 소설 ‘죄와 벌’) → 재판관들이 형을 심의하기 위해서 ~.

*얼른 보기에도 ‘경선의’ 자기를 보는 눈에는 애연한 빛이 가득차 있었다.(현진건 소설 무영탑) → 경선이 ~.

*우리 배달말에도 암소, 계집, 황소, 사내 등 성을 드러내는 것이 있지만 그것들은 자연의 성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 말의 가진 말본에서의’ 성은 아니다.(최현배 ‘우리말본’) → ~ 말이 지닌 말본의 ~.

*우리는 큰 기대를 가지고 ‘군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耆신문 사설) → ~ 군이~.

*‘누대의 장려함과 경개의 기절함이’ 완연히 봉래선경이니.(고등국어 상 60쪽) → 누대가 장려하고 경개가 기절하여 ~.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기미독립선언문) → 조선이 ~ 조선인이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34. 표준말의 한계 -《한 겨 레》 2002-07-04 -

민족이란 한가지 말을 쓰는 언어 공동체여서 겨레붙이가 쓰는 말은 같지만, 고장에 따라 말씨가 조금씩 다른 것은 그 고장의 독특한 풍토가 새 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 안 여러 고장 중의 하나일 뿐인 서울 고장 말을 표준말로 삼은 현행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으로는 전체 말을 아우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남북이 한가지로 쓰는 말 가운데 ‘화톳불’이 있다. 그러나 북쪽 사전에 올려져 있는 ‘우등불’을 남쪽 사전은 사투리로 제쳐 표준말로 쓰지 못하게 해놨다.

화톳불: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으고 질러 놓은 불.

우등불:화톳불, 모닥불의 평안방언.(이상 남쪽 사전)

화토불:한데에 나무삭정이나 나무토막, 마른풀 같은 것을 모아 질러 놓은 불.

우등불:주로 한데서 추위를 막기 위해 나무토막이나 땔나무 같은 것을 모아놓고 피우는 불.(이상 북쪽사전)

이는, 산림지대인 평안도나 남만주에서는 아름드리 나무토막으로 우등불을 피울 수 있지만 기껏 서까랫감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서울 쪽에서는 화톳불보다 규모가 큰 불을 피울 수 없었던 탓에 아예 ‘우등불’이란 말이 생기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처럼 그 고장에서 쓰이지 않는다고 사투리로 내치면 나중엔 괜찮은 말 하나가 스러져 없어지게 된다. 이런 경우가 한 둘이 아닌데, 국어사전에서는 물론, 표준말 규정의 방언이나 복수표준어 조항을 확장하여 온전한 말로 거두어들여야 할 것이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35. ‘맞히다’와 ‘맞추다’-《한 겨 레》 2002-07-05 -

방송에서 퀴즈시간을 진행하는 사람이나 출연자들이 흔히 답을 맞춘다고 말한다. 이는 잘못이다. ‘맞추다’는 ‘맞게 하다’의 뜻을 지닌 타동사로서, 조건·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함(박자에 맞춰 행진한다), 서로 어울리게 함(보조를 맞춰라), 마주 댐(입을 맞춘다), 형편에 맞게 미리 주문함(옷을 맞추었다), 짝이나 차례에 맞게 만듦(키를 맞추어라) 등의 쓰임새를 지닌다. 그런데 ‘맞히다’는 맞는 답을 댐(답을 맞혔다), 목표에 맞게 함(과녁을 맞혔다)의 뜻을 지닌 타동사다.

일정한 틀이나 규범이 있는데 그것에 맞게 하는 것은 맞추는 일이고, 일정한 목표(또는 정답)가 있는데 거기에 맞게 하는 것은 맞히는 행위다. ‘맞추다’는 ‘짜 맞추다’와 통하고, ‘맞히다’는 ‘알아맞히다’ ‘들어맞히다’와 상통한다.

“화살이 과녁에 맞았다”는 “과녁을 화살로 맞혔다”와, “포탄이 지붕에 맞았다”는 “지붕을 포탄으로 맞혔다”와 같은 말이다. “내 답이 정답에 맞았다”는 “정답을 나의 답으로 맞혔다”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맞히다’를 쓰는 경우에는 꼭 표적으로 ‘정답’ ‘과녁’ 따위를 써야 한다. 반면, ‘맞추다’는 동급의 사물을 서로 꼭 맞게, 어긋나지 않게 하는 때 쓴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그 음악의 이름을 맞혀 보세요”, “사람의 미래를 맞히는 사람은 자기의 운명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한다”처럼 쓰면 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36. 일왕과 총리 -《한 겨 레》 2002-07-08 -

다른 나라 벼슬이름을 옮겨 쓰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 전날엔 대체로 그 나라 정부 체제에 따라 내각의 우두머리를 대통령제는 총리, 내각 책임제에서는 수상 등으로 구별해 썼으나 요즘은 두루 ‘총리’로 부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내각을 총괄하는 이를 총리로 부르고 있으므로 자연스런 통일이라 할 것이다. 미국에는 총리가 없고, 국무장관이 외무장관 몫을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중국이나 북한, 일본에서 (외교)부장, (외)상 등을 쓰는데, 굳이 이런 것까지 장관으로 통일하여 적지는 않는다. 대체로 알아볼 수 있기도 하고, 체제가 조금씩 달라 통일해 부르기 어려운 탓도 있다.

대통령, 주석, 총통 등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일본왕을 지칭할 때 논란이 많았다. 고유명사 중 사람·땅이름은 대체로 그 나라에서 부르는 말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천황’을 ‘덴노’로 적자는 이도 있으나 인명도 지명도 아니므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천황’이란 하늘을 우러르는 족속이라면 지극히 높은 존재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일본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왕을 이렇게 부르는 것도, 부르도록 강요하는 것도 무리다. 다만, 일본인들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일본국왕(일왕) 정도면 걸맞을 터인데, 외교에서 그를 꼭 대접하여 불러야 할 경우, 또 그때 쓴 말을 언론 등에서 그대로 인용할 필요가 있을 때로 ‘천황’의 씀씀이를 한정할 일이다.

말이란 사람들에게 쉽고 편하게 써서 통하면 되며, 관련자를 깎아내리거나 얕잡아보이게 쓰지만 않으면 된다.

최인호/교열부장

37. 서비스와 써비스 -《한 겨 레》 2002-07-09 -

외래어 표기법에는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 ‘빵, 껌’처럼 아주 굳어진 말이 아니고는 ‘老, 耇, 耒’을 적지 않는다. 파열음이란 ‘耀, 老, 耚’, ‘耆, 耇, 耛’, ‘耑, 耒, 耜’을 말하는데, 마찰음인 ‘耔, 耕’과 파찰음인 ‘耗, 耘, 耙’은 어떨까. 역시 ‘耕’과 ‘耘’은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요즘 흔히 보이는 ‘써비스’, ‘씨스템’이라는 표기는 어떻게 된 것인가. 당연히 ‘서비스’, ‘시스템’이라 적어야 옳다. 발음을 [써비쓰], [씨스템]이라고 하니 적을 때도 한가지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사이다’, ‘소다’, ‘시럽’처럼 예사소리로 나는 외래어도 적지 않고, [세트/ 쎄트]처럼 발음이 어느 한쪽으로 굳어지지 않고 다 쓰이는 경우도 있다. 결국 발음대로 적는다면 표기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표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발음에 관계없이 예사소리로 적는 것이 타당하다.

‘耘’도 ‘耕’과 마찬가지로 쓰지 않는다. 따라서 ‘째즈’는 ‘재즈’로, ‘쨈’은 ‘잼’으로 적는 것이 맞다.

다만 ‘耕, 耘’을 쓰는 경우는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온 말을 적을 때다. 일본의 ‘쓰시마’, 중국의 ‘양쯔강’ 같은 경우에는 된소리를 적는 것이 허용된다. 일본어, 중국어 아닌 서양 외래어에서는 ‘耕, 耘’은 쓰지 않는다. ‘모짜르트’가 아니라 ‘모차르트’, ‘쌩 떽쮜뻬리’가 아니라 ‘생 텍쥐페리’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38. '눈'에 관련된 말들 -《한 겨 레》 2002-07-10 -

전날, 표준말의 중심이라 할 서울의 중류층(교양 있는 사람들)이란 대체로 한글을 언문으로 허수히 여겨 버릇된 양반 계층이었다. 이들은 자기말 쓰기를 매우 부끄러이 여겨 문자(한문) 아니면 입에 올리기를 저어했으니, 이 쪽을 중심으로 한 고유어가 4만 정도에 그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답답해서 남북 사전을 견주어 봤더니 같은 말의 가짓말에서 남쪽보다 북쪽이 두세배 많은 것을 확인하고 되우 놀란 적이 있다.

사람 얼굴에 붙어 앞을 보는 ‘눈’이라는 낱말을 들어 얘기하면 이렇다. 남북 국어사전에 오른 이 말에 딸린 말은 대충 265개인데, 여기서 서울말(남쪽)은 90개, 평양말(북쪽)은 249개였다. 이를 더 살펴보니 남북 두루 쓰는 말은 고작 74개, 서울에서만 쓰는 말은 16개인 데 견주어 평양에서만 쓰는 말은 156개에 이르렀다.

가짓수가 많아 모두 보이기는 어렵지만, ‘눈가·눈길·눈곱·눈깔바구니’ 따위는 남북이 한가지로 쓰나, ‘눈깜작이·눈뜬장님·눈물샘’ 따위는 서울에서만 쓰고, ‘눈맛·눈모서리·눈물자국·눈부리·눈속말’ 따위는 북쪽 사전에만 올려놓았다.

눈썹(눈섭), 눈칫밥(눈치밥)처럼 표기가 달라 생긴 경우도 있지만, 서울말에서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꿔서 없어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다행히 몇 해 전 국어연구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북쪽말을 상당수 아우른 바 있으나 여전히 성긴 구석이 많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39. 일어투 목적격 -《한 겨 레》 2002-07-11 -

일본말에서도 목적격조사(を)와 관형격조사(の)가 있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즐겨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란 말(水を飮みたい人)에서 조사를 바꿔 ‘물의 마시고 싶은 사람’(水の飮みたい人)처럼 쓰자, 좀 배웠다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이것을 흉내내서 목적격조사 ‘을/를’ 대신 관형격조사 ‘의’를 쓴 기형문을 쏟아내어 국어의 특성을 죽이고 일본말투를 유행시켜 왔다. 따옴표(‘ ’)를 화살표(→) 쪽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군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의 척결이’ 시급하다.(耆신문 사설) → ~ 부조리를 척결하는 일이 ~/ ~ 부조리 척결이 ~.(국어에서 목적어에는 목적격조사를 붙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아예 그것을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국기의 게양 및 관리 요령.(교육청 문서) → 국기를 달고 관리하는 요령.

*한번 추락한 ‘신뢰의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 ~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

*이 책의 사용법.(고등국어 상, 일러두기) → 이 책을 사용하는 법/ 이 책 사용법.

*‘어구의 해석이’ 달라지면.(〃 상 38쪽) → 어구를 달리 해석하면/ 어구 해석이 달라지면.

*조선어학회는 사전 ‘편찬의 준비’ 단계로 맞춤법과 ‘표준어의 제정’이 필요하였다. → 표준어를 제정하는 일이 ~/ 표준어 제정이 ~.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희망의 상실’이다.(耗일보 문화마당) → ~ 희망을 잃는 것이다./ ~ 희망 상실이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40. ‘들르다’와 ‘들리다’-《한 겨 레》 2002-07-12 -

사람들이 보통 말을 할 때 홀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발음을 조금 틀리게 해도 상대가 뜻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소리내지 않는 버릇이 굳어져서 많이 이들이 틀리게 발음하는 말이 있다. ‘들르다’와 ‘들리다’가 그 보기다.

“퇴근하는 길에 슈퍼에 들러 반찬거리를 샀다”라고 말할 것을 ‘슈퍼에 들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들르다’와 ‘들리다’는 아주 다른 말이다. ‘들르다’는 잠깐 거침을 뜻하는 말이고, ‘들리다’는 ‘듣다’ 또는 ‘들다’의 피동으로 쓰는 동사다. 이들의 활용형도 다르다. ‘들르다’는 ‘들러, 들러서, 들렀다’처럼 변하고, ‘들리다’는 ‘들려, 들려서, 들렸다’처럼 바뀐다.

‘치르다’를 ‘치루다’로, ‘잠그다’를 ‘잠구다’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잦다. “우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훌륭하게 치렀다”처럼 써야 할 것을 ‘치뤘다’로 쓰는 때가 있다. “문을 잘 잠가라”를 ‘잠궈라’로 쓰기도 한다. ‘치르다’는 ‘치러, 치렀다’처럼 변하고, ‘잠그다’는 ‘잠가, 잠갔다’처럼 활용한다.

이밖에도 ‘으스스하다, 스라소니, 부스스, 부스럭, 복슬복슬, 즉각’ 같은 말들도 ‘으시시하다, 시라소니, 부시시, 부시럭, 복실복실, 직각’처럼 소리내는 경우를 보는데, 이렇게 본다면 ‘으’ 소리를 정확하게 내는 것이 교양인의 잣대가 될 듯 싶다. ‘금슬’을 ‘금실’로 쓰는 것을 관용으로 허용된 상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41. 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7-15 -

사람들이 즐기는 것에서, 사물의 이름을 지어주고 바꾸고 하는 일을 빼고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류가 생기고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물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또 이를 배우고 풀이하는 데 숱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일들이 생기고 이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는 일이 거듭된다.

이름 중 제일 흔한 것이 사람이름일 터인데, 이는 수없이 나서 살다가 사라지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특히 이를 중시한다. 물론, 이름을 빛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동식물은 낱낱의 이름이 따로 있는 경우는 드물고, 같은 종류를 뭉뚱그려 하나의 이름으로 통한다. 강, 바다, 땅에도. 마을과 길, 집, 하늘, 바람, 별, 저승에도 이름을 지어 붙인다. 크고 작고, 보이고 보이지 않고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 몸에도 살과 뼈 등 갖가지 조직을 일컫는 수천가지의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물건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사상, 감정, 주의·주장에도 이름을 붙인다. 대체로 사물의 이름을 적절히 지어 붙이고 이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사람이 많은 나라일수록 훌륭하고 앞선 나라, 곧 문명국이라 해도 그른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럴듯하고 정확하게, 부르기도 쓰기도 편하게 이름을 지어 퍼뜨리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하는 일의 출발점이자 장사와 학문의 바탕이 될 터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물 이름을 잘 지어 붙이는지 한번 되돌아 보자.

최인호/교열부장

42. 콘텐츠와 컨텐츠 -《한 겨 레》 2002-07-16 -

한국은 인터넷 강국으로 꼽히고 있는데, 인터넷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통신망이 전국 곳곳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통신망만 갖추었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통신그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내용물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각종 지식과 정보·오락 등 인터넷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다양하다. 이런 것들을 아울러 ‘콘텐츠’라고 한다.

콘텐츠는 영어(contents)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콘텐츠와 컨텐츠가 다 쓰이고 있으니 문제다. 외래어 표기법이 정한 바에 따라 쓰면 당연히 콘텐츠가 맞는데도 컨텐츠가 쓰이고 있다. 또다른 영어(concert)에서 온 말이 콘서트 외에 컨서트로도 쓰이는 것은 같은 현상이다. 콘크리트나 콘택트렌즈 같은 말은 그렇지 않은데, 콘텐츠·콘서트는 컨텐츠·컨서트 같은 변종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외래어는 원래 어형이 통일되지 않고 혼란을 보이기 쉬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을 두어 어형을 고정시키려고 한다. 콘텐츠를 컨텐츠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미국식 영어 발음을 따른다면 오히려 ‘칸텐츠’에 더 가깝다.

대신해 쓸 좋은 우리말을 찾지 못한 것도 마뜩찮은데, 표기마저 혼란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컨텐츠가 아니라 콘텐츠로 통일해 써야 하겠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43. 왜바람과 가녘 -《한 겨 레》 2002-07-17 -

말은 고장마다 고유한 정서를 토양으로 해서 나타나고 쓰인다.

평안도 우등불과 서울 화톳불 얘기도 있었지만, 바람 많은 제주도에 ‘왜바람’이란 말이 있다. 남북 국어사전에 모두 올랐으나 이 말의 고향은 제주도인 성싶다.

소설가 현기영은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 ‘왜놈 해적들이 아무데서나 쳐들어온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했더라. 제주도만이 가진 수난사가 아니고는 왜바람 뿌리 찾기가 어렵겠다 싶은데, 서울과 평양에 무슨 왜바람이 있어 사전에 올리겠는가.

이렇듯 고장마다 지닌 독특한 정서에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고장말을 내쳐서는 글월이 너무 싱겁게 되기 일쑤일 터다.

“딸년을 빈손으로 보낸 어미의 ‘아싸한’ 마음”이 “딸년을 빈손으로 보낸 어미의 후회스럽고 아쉬운 마음”처럼 말이다.

표준말 자격이 충분한 말도 온전한 말로 다루지 않았던 말이 또 있다. ‘가녘’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주변·가장자리’의 북한말 정도로 다루다가 최근에 와서야 남쪽 사전에서도 온전한 말로 대접하여 올리고 있는데, ‘남녘, 들녘, 밝아올녘, 북녘, 서녘, 아침녘, 점심녘, 해질녘’처럼 ‘무렵, 쪽’을 뜻하는 ‘녘’이 붙어 만들어진 우리말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가녘’은 주변이나 변두리의 사투리 정도로 다루었으니, 이 역시 한자문화에 기대어온 서울 표준말의 속성과 폭 좁음을 알 만하지 않은가.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44. 케이티 플라자(KT PLAZA)? -《한 겨 레》 2002-07-18 -

엊그제 명동의 중국대사관 앞 전화국 옆으로 걸어갈 기회가 있어서 보았는데, 난데없이 ‘KT PLAZA’라는 간판이 덩그렇게 붙어 있었다. 전화국이 이사갔나? 그런데 오늘 편지를 부치러 사무실에서 가까운 우체국에 갔다가 그 옆 건물에서 ‘KT PLAZA’라는 간판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연초에 내가 쓰던 인터넷망이 말썽을 부려서 한 번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건물에 이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국통신’이라는 회사가 이름을 ‘KT’로 바꾸고, 방문자를 위한 방을 ‘KT PLAZA’라 하여 모든 자사 건물에 이런 간판을 내붙인 것이라고 한다. 누가 이런 발상을 했는지 물었더니 엊그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된 분이 그 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 세금과 비용으로 성장한 기업이 이렇게 제 마음대로 이름을 바꾸고 절실하지 않은 간판까지 영어로 내걸어도 되는지 궁금하다.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에 의한 공기업 민영화에는 나는 절대 반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화와 통신에 관한 모든 일을 서울이건 시골이건 ‘KT PLAZA’에서 해야 한다. 거기서 일하는 분들에게 묻는다. 이렇게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해도 되는지?

정치인은 엉뚱한 정책으로, 경제인은 엉뚱한 이름으로 국민의 혼을 빼고 있다. 과연 이 나라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대~한민국’인지를 묻는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45. 어투 관형격 ‘~의’-《한 겨 레》 2002-07-19 -

요즘 말글에서 쓸데없이 ‘의’ 관형격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아래 글에서도 관형격조사 ‘의’를 써서 문법상으로 어긋난 것은 아니지만, 표현구조가 일어투여서,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할 수 없이 얻어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따옴표(‘ ’) 안의 말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써야 자연스럽다.

*문학 작품 ‘감상의 즐거움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과 상상한 내용을 가지고 말하기·듣기와 ‘쓰기의 학습을’ 해 본다.(고등국어 상 30쪽) → 문학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면서 깨달은 사실과 상상한 내용을 말하고 듣고 쓰는 학습을 해 보자.

*이러한 ‘추상화의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고등국어 상 87쪽) → 이렇게 추상하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

*말하기·듣기와 ‘쓰기에서의 문제’.(〃 300쪽) → 말하고 듣고 쓰는 문제.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 당나귀 한 필이었다.

*‘효과적인 읽기의 방법을’ 이야기해 보자.(〃 하 30쪽) →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을 ~.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국민교육헌장) →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인권의 획기적인 신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일관한 정치적 신념이다.(耆신문 논단) → 획기적인 인권 신장은.

*건전한 소비자는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좋아한다.(신문 광고문) →~ 디자인이 단순한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46. 사람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7-22 -

사람이름을 전문으로 짓는 사람이 있었다. 태어난 해 달 날 때, 한자의 획수·뜻으로 을러 작명채를 들고 찾는 이가 적잖았지만, 음양오행, 사주팔자를 믿는 이나 글자를 모르는 이가 적어진 탓인지 작명가를 찾아 이름을 짓는 이가 드물어졌다. 그가 하던 일은 점쟁이, 광고, 학자, 작가, 기자 따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한글 이름이 많아졌는데, 대체로 원래 있던 말을 가져다 쓰는 탓에 겹치는 경우가 잦다. 이를 비켜가려면 있던 말을 따서 새로 얽거나 두 자만으로 짓는 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을파소 연개소문 박혁거세 도미 온달 돌쇠 따위 옛이름도 본보기가 될 만하다. 돌이켜보면, 법명이나 세례명도 한자식이나 서양식 일색일 게 없지 않나 싶다.

부모 성씨를 아울러 ‘김이, 박정, 조한’처럼 쓰는 것은 거추장스런 만큼 틀을 깨는 새로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성씨를 류·리·, 이름을 ‘○로명, ○락원’처럼 두음법칙을 뭉개고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나아가서 재외동포 2, 3세로서 ‘빅토르 최, 리처드 박, 린다 김’처럼 성만 살린 서양식 이름은 이중국적 문제와 함께 이민사의 깊이와 슬픔이 드러나는 이름이다. 요즘 서명에서 로마자를 흉내낸 것이 많은 것은 외국어 교육과 미국바람 탓이다.

사람이름에서, 전날처럼 ‘자’와 ‘호’ 따위로 멋을 내지 않고 오로지 이름 하나만 고집한다면 낳기 전부터 아이 이름을 고민해 짓거나,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이름을 지어주는 직종이 개업을 할 만도 할 것이다.

최인호/교열부장

47. 잘못된 영어식 로마자 적기 -《한 겨 레》 2002-07-23 -

a, b, c …’를 흔히 영문자라 부른다. 그러나 이 글자는 독일어·프랑스어·에스파냐어·이탈리아어 등의 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애초에 이 문자를 만든 쪽을 따서 ‘로마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말을 로마자로 적을 때 흔히 영어식 철자를 의식한다. 예컨대 ‘우’를 oo로, ‘어’를 u로 적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연 영어에서는 ‘book, cook’을 ‘북, 쿡’, ‘cup, turn’을 ‘컵, 턴’이라 소리낸다. 이런 영어에 영향을 받아 ‘우’를 oo로, ‘어’를 u로 적는 것이 보통이다. 회사 이름 ‘Samsung, Hyundai’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어권 아닌 지역 사람들은 u를 ‘어’가 아니라 ‘우’로, oo를 ‘우’가 아니라 ‘오:’로 소리내기 마련이다. 더구나 영어권 사람들조차 ‘Samsung, Hyundai’처럼 외국의 고유명사는 ‘삼숭’ ‘휸다이’(하이운다이)처럼 소리내는 게 보통이다.

이는 ‘어’를 u, ‘우’를 oo로 적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준다. 비슷한 발음을 유도할 목적이라면 ‘어’는 차라리 o로 적는 게 가장 낫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오’와 같아져서 안 된다. 로마자 표기법은 ‘어’를 [eo]로 적도록 규정하고 있다. eo를 외국인들이 ‘어’로 읽겠느냐고 하겠지만 어차피 몇가지 특이한 철자는 있기 마련이다. ‘어’를 u로 적어서 엉뚱한 ‘우’라는 발음을 듣기보다 일관되게 eo로 적는 것이 낫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48. 경제특구와 영어 -《한 겨 레》 2002-07-24 -

참 집요한 사람들이다. 나라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고 이를 관리하는 일을 이처럼 집요하게 했더라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선진의 안정되고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영어 공용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집요하게 추진하려는가?

오늘날 외국어, 특히 영어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당장 학교 공부와 진학, 취업에서 필수이니 말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영어 교육에 돈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돈을 들여도 안 되니 그 말을 공용어로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는 생각도 하는 모양인데,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그래서 외국인을 빌미로 경제특구에서라도 영어를 공용하게 하자는 발상이 나왔던 것 같다.

경제특구를 두는 목적은 외국인이 거기서 편리하게 사업을 하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필요한 서류나 공문서는 영어를 잘하는 공무원을 두어 통역이나 번역 편의를 봐 주면 된다. 사업가는 그들의 사업을 위하여, 일반인들은 개인의 필요에 따라 알아서 외국인을 상대하면 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에게 거부감을 주면 실패한다. 경제특구에서 어떤 외국어를 공용어로 하더라도 국민이 그 말을 쓰지 않으면 그 정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자국인끼리 영어를 쓸 리 없기 때문에 외국인과 만날 때만 그것이 필요해진다. 그 정도의 필요성으로 영어를 제도적으로 대접하는 것은 도끼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 제 발을 찍어 보는 것처럼 무모한 짓이다. 정부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해서야 될 일인가.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49. 십분과 두리 -《한 겨 레》 2002-07-25 -

서울 사람들의 말버릇 가운데서도 고약하기는 고장말을 죽이는 간추려 쓰기 버릇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의 나라 말은 깍듯이 모셔 쓰기를 즐긴다. 그 중에는 평양말에도 같은 병폐로 쓰이는 말이 많다.

그런 말 중 신문·잡지들에서 특히 많이 쓰는 ‘십분’(十分·주분)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시간을 세는 이 말을 일본에서는 ‘넉넉히’ ‘충분히’의 뜻으로 바꿔 썼다. 일본말의 못남은 토박이말이 넉넉지 못해서 남의 말을 빌리거나 빗댄말을 즐겨쓰는 데서도 드러나는데, ‘십분’도 그 중 하나다. 말글살이 길을 앞장서서 닦고 이끌어가야 할 신문·잡지에서 힘줌말 ‘십이분’(十二分·주니분)까지 빌려다 쓰니 이보다 딱한 일이 또 어디 있을꼬?

간추려 쓰기 버릇은 고장말을 홀대함으로써 우리말을 가난하게 한다고 꼬집은 바 있는데, 남북 말씨를 견주어 보자.

북쪽에서 아낌받는 말 가운데 ‘두리’가 있다. 주로 ‘두리에’ 꼴로 ‘뭉치다’와 함께 쓰여, 하나로 뭉치게 되는 중심의 둘레란 뜻을 나타내는 이 말을 서울에서는 ‘둘레’ 한가지로만 쓰지만 ‘두리’만의 뜻이 있다. “그 분 두리에 하나로 뭉친 젊은이들” “그 분 둘레에 하나로 뭉친 젊은이들”을 견주어 보면 뒤(둘레)에는 없는 끈끈한 사랑이 앞(두리)에서 느껴진다. 이 ‘두리’는 변두리·테두리·옹두리 들에서 살아 있다. 우리말의 뜻 나타냄이 이렇듯 넉넉한데, 뭐가 답답해서 남의 나라 말까지 모셔다 쓰고 제 말은 버리는지 배운 사람들의 그 속내를 모르겠더라.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50. 일본어투 겹토씨 ‘마다의’-《한 겨 레》 2002-07-26 -

이 말투는 일본어에서 ‘무엇무엇마다’를 뜻하는 조사(ごと·每)에 관형격조사(の)를 겹친 말(ごとの)을 흉내낸 것으로서, 우리말의 본새를 망측하게 파괴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저마다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신문글)

‘저마다의’를 ‘저마다’로 고치야 국어다운 글이 된다.

*사람들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국민교육헌장)

따옴표 부분은 앞뒤 어절 자리가 뒤바뀌었으므로 ‘저마다 타고난’으로 고치면, 사람들이(주어)+저마다(수식어)+타고난 소질을 계발하고(서술어)로 자연스런 문장이 된다.

*사람은 ‘저마다의’ 처지와 목표가 다르므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다.(고등국어 하 2쪽)

‘저마다의’를 ‘저마다’로 고치면 뒤따르는 서술부를 한정하는 말이 되어 손색 없는 월을 이룬다.

*음운변동은 음운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각 어미가 붙을 때마다의 실제 발음을 알아 보고’, 그것이 어떤 환경에서 달라지는지 관찰해 본다.(고등국어 문법 36쪽)

‘때마다의’를 ‘때마다’로 고쳐 “한 단어의 어미가 달라질 때마다 소리가 변하는 것을 보고”로 고쳐야 자연스런 글이 된다.

*일본 동경의 궁성 앞 소나무들은 ‘나무마다의’ 관리비가 중류층 한 사람의 생활비와 맞먹는다고 한다.(耆 신문 기사) → ~나무마다 ~.

*날마다의 임무(엣센스 일한사전 예문 ‘ひごとのつと’의 번역문) →날마다 맡아서 하는 일, 날마다 할 일.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51. 사건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7-29 -

사건·사고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 언론에서 사건이름을 적절히 붙이는 것은 본령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다. 말 퍼뜨리는 범위가 넓고 신속하기 때문이다.

한때 ‘게이트’ 돌림자가 유행하다 잠잠해졌다.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따위가 그것이다. 30년 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올림말로 올린 국어사전도 있으니, 교과서도 아닌 신문·방송에서 미제 돌림자 이름 좀 쓴단들 무슨 대수랴만, 그보다는 추문·비리나 나아가 ‘돈질’ 따위가 나을 성싶다. 돈과 권력을 낀 사건들이다.

‘세풍, 북풍, 노풍, 병풍’ 따위도 권력과 맞닿아 있는데, 여기서 ‘바람’을 살린 말은 노풍뿐이다. ‘국세청 선거자금 모금, 대남도발 조작음모, 병역비리’를 일컫는데, 기자들이 물타기 반 게으름 반으로 만든 이름들이다.

햇볕정책·포용정책은 이솝 풍자도 있고, ‘퍼주기’란 말까지 낳았으나 국어사전에도 올릴 만한 말이 되었다. 증권시장에서 검은 월요일, 트리플 워칭데이 따위는 서양식 비유여서 아무리 써도 녹아들기 어렵다. 그나마 ‘팔자·사자’가 길이 막힐 때를 일컫는 ‘가다서다’와 함께 풀이말로서 드물게 굳어진 그럴듯한 이름들이다. ‘연평대첩’은 사실을 떠나 집단이 이성적·심정적으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흔히 일컫는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후보, 제왕적 총수 따위는 권력 집중을 꼬집는 말인데, 맞선 말은 ‘제왕적’ 대신 허수아비·식물을 쓰면 되지만 그 중간에 들 만한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최인호/교열부장

52. 학교이름 로마자 적기 -《한 겨 레》 2002-07-30 -

우리나라 대학 가운데 이름에 ‘경’자가 들어가는 학교가 여럿이다. 그런데 이들 학교의 이름을 로마자로 적은 것을 보면, Kyung, Kyong, Kyeong, Gyeong 등 네 가지나 된다. ‘영’은 Young, Yeung가 있다. ‘서’자가 들어가는 학교도 여럿인데, Seo로 하는 곳도 있고, So로 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같은 소리, 같은 글자를 로마자로 서로 다르게 쓰고 있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러한 로마자 표기의 혼란이 나타난 데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 정부 수립 후 세차례나 바뀐 탓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을 Kyung나 Kyeong로 적는 것이나 ‘영’을 Young나 Yeung로 적는 것은 어느 시기의 로마자 표기법과도 맞지 않았다. 이는 대학이 학교이름을 처음 로마자로 적을 때 당시의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현행 로마자 표기에서 ‘경’은 Gyeong, ‘서’는 Seo, ‘영’은 Yeong가 맞다.

이미 오래도록 굳어져서 바꾸기 어려운 이름이라면 몰라도 새로 학교를 만들 경우에는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 적어야 하겠다. 그래야만 쉽게 그 학교 이름의 로마자 표기를 알아보고 맞힐 수 있다.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제각기 달리 고유한 로마자 표기를 하면 그 표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애를 먹게 된다.

인터넷 등에서 검색을 하고자 해도 표기법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알고 찾을 것인가.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53. ‘되어’와 ‘돼’-《한 겨 레》 2002-07-31 -

‘되다’는 ‘되다, 되어, 되니, 되면’처럼 활용하고, 이것을 과거시제로 바꾸려면 ‘-었-’을 붙여 쓰면 된다. 그런데 가끔 ‘돼’라는 말을 써 ‘되다’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돼’는 ‘되어’의 준말이다.

“7월이 되어 방학에 들어갔다”를 “7월이 돼 방학에 들어갔다”처럼 쓸 수 있다. 같은 원리로 “여름이 되었다”를 “여름이 됐다”처럼 쓸 수도 있다. ‘되+어’의 구조가 아니면 ‘돼’가 나타날 수 없고, ‘되+었’의 구조가 아니면 ‘됐’이 나타날 수 없다. “일이 어떻게 됐니?”는 바른 표기지만 “일이 어떻게 돼니?”는 틀린 표기다.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도 맞는 말이다. ‘돼라’는 ‘되어라’의 준말이기 때문이다.

높임법에 비격식체로 ‘해체’가 있다. “저리 가자”, “코끼리는 과자도 먹어”, “그렇지도 않아”처럼 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어투로서 “그러면 나쁜 사람이 돼”가 있다. ‘돼’가 ‘되어’의 준말로 쓰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러면 나쁜 사람이 되”라고 쓰면 틀린다.

비슷한 경우가 ‘쇠다, 죄다, 뵈다’에서도 나타난다. “집에서 설을 쇄”와 “집에서 설을 쇠어”는 맞고 “집에서 설을 쇠”는 틀린다. “나사를 잘 좨”나 “나사를 잘 죄어”는 맞지만 “나사를 잘 죄”는 틀린다. 그러면 다음 문장은 어떨까? “내가 이래 뵈도 잘나가던 사람이야.” 물론 ‘뵈도’는 ‘봬도’로 써야 한다. “아버님을 ?을 적에 말씀드렸다”에서 ‘?을’은 ‘뵈었을’의 잘못이다. ‘뵀을’로 쓰면 괜찮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54. 발등의 불 -《한 겨 레》 2002-08-01 -

정부 사람이나 잘나가는 언론에서 팔구년 전부터 ‘세계화, 국제화’라는 말을 자주 썼다. 국제 시장에서 벌이는 어깨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했을 이 말이 이젠 온갖 사람의 입으로 옮아가서는 첩약에 감초 들어가듯 말버릇으로 굳어지기에 이르렀지만, 문득 이제 이 말은 덤덤히 들어 넘겨서는 안 될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난 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세계 소수민족 언어 가운데 90% 가까이가 머잖은 날에 없어질 것이라 했다던가. 방언의 분화와 교육 수준이 높아져 언어가 다양해져 갈 것이라는 학설도 바꿔야 할 때에 이른지도 모른다. 유네스코와 언어학자들이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컴퓨터의 발달과 미국 패권주의에 많이 빌미한다. 컴퓨터도 그쪽에서 먼저 만들어져 발달했고, 인터넷 따위를 부려쓰는 글과 정보가 영어로 많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몇 해 사이에 영어의 힘이 억세게 커졌다.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이던 이 말이 19세기 이전 우리 양반들의, 모르면 살길이 막히던 ‘한문’ 이상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듦으로써 서울 어버이들은 아이들이 젖떼기가 바쁘게 영어 가르치기에 눈에 쌍심지를 돋운다.

자, 이렇게 되면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영어가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말로 바꿔야 직성이 풀릴 이도 적잖을 성싶어진다. 그러니 죽느냐 사느냐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가 나랏말 찾기인 것을!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55. ~부터의, ~로부터의 -《한 겨 레》 2002-08-02 -

이런 말투 역시 일본어에서 일이 비롯하는 점을 나타내는 토씨(~から)에 속격(관형격)조사 の를 겹친 ~からの를 흉내낸 것으로서, 국어의 본새를 깨뜨리는 흉물이다.

*셰익스피어로부터의 인용문.(엣센스 영한사전) →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따온 글.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고등국어 하 294쪽) → ~ 오래 묵은 ~, ~ 오래 쌓인 ~.

*새 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외국어로부터의 차용어가 있다.’(고등국어 하 46쪽) → ~ 외국어에서 차용한 말이 있다.

*원하는 것을 얻게 하고 ‘외부로부터의’ 습격을 막아낼 수 있게 하였다.(고등국어 상 308쪽) → ~ 외부의 ~.

*분명한 것은 ‘해외로부터의 값비싼 장비구입 계획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耝신문 기사) → ~ 비싼 장비를 국외에서 구입할 계획을 ~.

*김대중 당선자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부터의’ 열의와 성의를 다해서 지혜를 보태 달라고 간청해야 한다.(耗신문 기사) →~ 진심에서 우러나는 ~.

*김일성이 친일파였던 김옥균을 옹호한 것은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원조를 얻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耆일보 기사) → ~ 일본에서 ~, ~ 일본의 ~

*진실의 복원은 거짓으로부터의 해방에서만 기약된다.(耝신문 기사) →~ 거짓을 버려야 진실을 복원할 수 있다.

*위로부터의 개혁에 착수하겠습니다.(耀 대통령 취임사) → 개혁을 위에서부터 하겠습니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56. 조직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8-05 -

사람 이름 이상으로 나고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말로 정부·국제 기구, 사회단체 이름이 있다. 공적인 것일수록 실제를 강조하여 멋없고 권위적일 때가 많다.

요즘 욕을 먹는 정부 부처 이름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있다. ‘자원’이 들어간 말로 ‘산업자원부’가 있는데, 사람까지 물건으로 쳐 ‘인적 자원’이라니, 도무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포스트 월드컵 대책’ 운운도 온갖 나랏일을 ‘월드컵 축구’에 싸잡아 몰아가는, 턱없고 속보이는 작명이자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근본과 가지, 바탕과 흐름을 분별할 게 있고, 우선순위도 다른 사안들을 범벅해 놓았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비즈니스’에 이어 ‘포스트’라니 다음엔 무슨 뚱딴지가 나올지 겁난다.

시민·사회단체에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우리 민족 서로돕기 운동,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처럼 구체적이고 긴 이름들이 많다. ‘민변’처럼 줄여 쓰기도 하지만 줄여 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줄여쓸 때도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한자말 준말에서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여연(여성단체연합), 선감연(선거감시 시민연대), 언개연(언론개혁 시민연대)이 아니라 ‘여련, 선감련, 언개련’이 맞다.

정부 관련 사업 중 ‘BK21, IMT-2000’ 등은 특히 문제다. ‘두뇌한국 21,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을 이처럼 로마자와 숫자로 적다 보니 무슨 암호처럼 읽힌다. 국민이 쉽고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이름을 짓고 정책을 펴야 할 정부는 물론, 기업, 학계, 언론 두루 이름짓기 공부부터 해야겠다.

최인호/교열부장

57. 국어의 두 모습 -《한 겨 레》 2002-08-06 -

미래의 우리말글 모습이 어떨지를 그려보려면 지금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인터넷 음악 사이트의 ‘톱 100’에 드는 노래들의 면면을 보니, 20위 안에 드는 노래 가운데 일곱 곡의 제목이 영어로 되어 있었다. 제목뿐만이 아니다. 노랫말에 영어와 우리말이 섞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어디 노래만인가. 최근엔 제호가 영어인 일간신문이 나타났다. 잡지에서 영어이름 쓰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한마디로 온 나라가 영어 열병에 휩싸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0년, 20년 전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러한 현상이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까닭은 무엇인가. 앞으로는 또 이런 바람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갈까?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문을 풀기에 앞서 또하나의 새로운 현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근래 들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의 두세 대학에서만 어학원을 열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것이 지금은 10여개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국내 대학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국어 관련 학과를 열어 이를 가르치는 대학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고, 이러한 경향은 더욱 번져가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쓰는데, 한국인들은 굳이 제 말을 제쳐두고 영어를 쓰려고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58. ‘었’과 ‘였’-《한 겨 레》 2002-08-07 -

‘-었-’은 과거시제를 나타내는 안맺음씨끝(선어말 어미)이다. ‘밥을 먹는다’는 현재, ‘밥을 먹었다’는 과거시제다. ‘끈을 잡았다’는 ‘았’을 쓴 경우다. 용언의 끝 모음이 양성이면 ‘았’을, 음성이면 ‘었’을 쓴다. 다만 용언의 어간이 받침 없이 끝나면 ‘耕’만 쓰는 경우가 있다. ‘기계가 섰다’ ‘학교에 갔다’의 ‘섰다, 갔다’는 ‘서다, 가다’의 어간에 ‘耕’만 붙여 과거시제를 만든 예다. 어간이 모음으로 끝나더라도 ‘보았다, 주었다’의 경우 ‘耕’이 쓰이지 않고, 음양에 따라 ‘았’이나 ‘었’을 써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였-’을 쓸 때가 있다. ‘그가 나 대신 일을 하였다’의 ‘하였다’는 ‘하다’의 과거형이다. 또 ‘강아지에게 밥을 먹였다’의 ‘먹였다’는 ‘먹이다’의 과거형이다. ‘잡히다, 잡혔다’, ‘씻기다, 씻겼다’도 마찬가지다. 곧, 어간의 끝 모음에 ‘이’가 들어 있으면 ‘었’과 합쳐 ‘였’으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조사 ‘이다’의 과거형으로 ‘였다’를 쓸 때다. 보통 국어사전에는 이런 경우의 ‘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그것은 나무다’를 과거형으로 쓸 때 ‘나무었다’로 써야 하는지 궁금하게 된다. 이런 때는 ‘그것은 나무였다’로 써야 한다. ‘이것은 집이다’는 ‘이것은 집이었다’로, ‘이것은 차다’는 ‘이것은 차였다’로 표현한다. 서술어 ‘차다’는 ‘차이다’의 ‘이’가 줄어든 것이고, ‘차였다’는 ‘차이었다’가 줄어든 형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59. 일어투 겹토씨 ‘에서의’-《한 겨 레》 2002-08-08 -

이 겹토씨는 일본어에서 행동하는 곳을 나타내는 조사 で에 속격(관형격) 조사 の를 겹친 での를 흉내낸 것으로, 국어를 극도로 몰골 사납게 타락시키는 독소다.

따옴표(‘’)는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겠다.

*‘우리의 월세계에서의 생활은’ 오늘날까지도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고등국어 상 5쪽) → 우리가 월세계에서 사는 일은 ~.

*‘산과 바다에서의 심리상태는’ 서로 다르다. →산에 있을 때나 바다에 있을 때의 심리상태는 ~.

*말소리의 변화는 통시적 관점에서의 변천과 공시적 관점에서의 변동으로 나뉜다.(고등국어 상 264쪽) → 말소리는 통시적으로 변하고 공시적으로도 변한다.

*물, 불의 끝소리 耈과 ‘바람에서의’ 모음 사이에 놓인 耈은 각각 다른 음성이다.(고등문법 21쪽) → ~ 바람의 ~.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해외에서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헌법 제60조 제2항) →~ 국군을 해외에 파견하거나 외국 군대를 대한민국 영역 안에 주류하게 하는 일에 대한 ~.

*‘대통령 선거에서의 압승을 통해’ 제2의 경제 도약을 이루자.(어느 당 선거구호) →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해 ~.

*‘남극에서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耝방송) →남극에서 사는 모습을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60. 진짜 버릴 것 -《한 겨 레》 2002-08-09 -

겨레는 겨레말을 어머니 몸으로 해서 태어나고 번져간다.

아무리 지구상의 언어 90%가 사라지고 영어 따위 몇몇 힘있는 말만 살아남는다 해도, 그 속에서 우리말글도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말글을 쓰는 인구가 7000만이나 되어 숫자로 꼽아도 열댓 손가락 안쪽이니 말이다. 이것 살리고 힘이 남으면 사라져갈 말글들도 챙겨주어야 할 일이다.

실제적으로 우리말글을 위협하는 장본은 우리 자신들이다. 결코 미국이나 일본, 중국 따위 외세가 아니다. 특히 들출 것은 우리들 속의 배운 사람들이 갖는 영어에 대한 사대노예 근성일 성싶다. 요즘처럼 내렸다 하면 큰비라 들마다 시위가 나서 붉은 벌물이 넘쳐나는데, 영어가 우리 생활 속으로 덮쳐드는 것이 큰비 온 뒤 벌물 보는 듯하다. 이 재난을 벗어나는 길은 겨레말 사랑밖에 없다. 겨레말을 갈고 다듬는 겨레말 사랑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길가에 선 나무를 가로수 아닌 길나무라 한다거나 얼음과자를 아이스크림이라 하지 않고 평양 사람들이 얼음보숭이라고 하는 것을 비웃는 마음으로는 겨레말을 지켜낼 수 없다.

안으로야 서울말이 어떻고 평양말이 어떻고를 따질 때도 있겠지만 크게 보아 겨레말이면 두루 안아주는 사랑이 아쉽고, 스스로 끌어들이고 얽매여 낭비를 조장하는 영어숭배 풍조로 겨레정신이 천길 낭 위에 선 꼴이니 이쯤 해서 진짜 버릴 것은 내것 업신여기는 버릇이리라.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61. 회사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8-12 -

나고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것으로 회사이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십년을 넘긴 기업이 드문데, 경방·두산·보해·삼양·삼성·삼일·조흥·한진·한화·현대 등이 쉽게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여기서 번져나간 기업들도 대체로 이 이름을 살려 짓고 있다. 그나마 우리 기업계의 자존심을 살려가는 이름들이다.

‘대한·한국’이 들어간 기업도 많다. 백제·신라·고려·조선·코리아 돌림들도 한묶음이다. 우선은 이름에서 전통과 국적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 수 접어줄 만하다. 국제·대동·태평양·동양·신세계 등은 좀더 범위를 넓혀 지은 이름들이다.

문제는 요즘 풍조가, 외국자본 영향 탓인지,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지, 내국인의 허영을 자극하려는 속셈인지 몰라도 대체로 로마자 또는 영어식 회사이름을 짓는다는 점이다. 파이낸셜·컨설팅이 그렇고, 로마자로 엘지·에스비에스·케이티를 비롯해, 하이닉스, 굿모닝, 알리안츠, 씨엔아이, 피시에이 따위 외국 것인지 한국 것인지, 다국적 기업인지 알 수 없는 얄궂은 이름들이 많다. 만약 내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회사들이라면, 한국인들을 썩 깔본 이름들이다. 이런 회사 상품을 안 사는 운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고유어로 이름을 지은 훌륭한 회사도 있다. 하나·한솔·한빛·서울·새한 들이 그것이다. 이름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기업에도 이름값이 수십억달러짜리가 있다잖은가. 아무리 돈벌이에 국경이 없다지만,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고서 돈은 벌어 무엇하리.

최인호/교열부장

62. 제대로 된 국어사전 -《한 겨 레》 2002-08-13 -

한 나라의 국어사전은 그 나라 사람들이 쓰는 낱말을 남김없이 다 모아 놓아야 한다. 단지 모아놓는 데 그치지 않고 뜻풀이도 정확히 해야 하고, 쓰임새도, 관련된 말도 일일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분명히 쓰이고 있는 제대로 된 낱말인데도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 적지 않다.

보기를 들어, ‘뜀박질, 달음박질’은 있어도 ‘싸움박질’이라는 말이 사전에 없다. ‘감탄스럽다’는 있어도 ‘감동스럽다’는 없다. ‘메모장’도 없다. 한 국어사전을 보면, ‘등굣길, 하굣길, 출셋길’은 있지만 ‘고향길, 귀성길, 귀경길, 귀국길, 성묫길, 휴갓길, 피섯길’은 없다. ‘귀양길’이란 어떤 사전에는 있고 어떤 사전에는 없다. ‘테러범’도 올림말로 올린 사전이 있는가 하면, 올리지 않은 사전도 있다.

이런 일이 빚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동안의 사전 편찬이 주로 기존 사전을 베끼거나 벼락치기로 참조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전은 한 언어의 모습을 충실히 기록해야 한다. 남부럽지 않은 훌륭한 국어사전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전 편찬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존 사전을 답습하는 데서 벗어나 언어현실을 철저하고 충실하게 조사하고 가다듬어 언어의 온전한 모습을 담아내야 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세계무대에서 이만큼 커졌다고 자부한다면 문화적으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63. ‘거르개’와 여과기 -《한 겨 레》 2002-08-14 -

‘겨레말이 아름답다’함은 사랑으로 말을 다듬고 정성으로 말을 가꾸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마음에서 솟아난다. 그러므로 겨레말은 아름답다.

닿소리 열넉자와 홀소리 열자를 만나 1만2천여 글자를 만들 듯 외뜻말끼리 짝지어 겹씨를 만들고, 있는 말에 앞뒷가지를 달아 새로운 말을 만든다.

뒷가지를 붙여서 만든 말의 보기로서, ‘-개’가 자연어를 만나 만들어진 말을 들어보자.

1)간단한 기구 이름:덮다+개=덮개, 걸다+개=걸개 2)사람이름:코 흘리다+개=코흘리개, 오줌 싸다+개=오줌싸개 3)음식 이름:찌다+개=찌개, 부치다+개=부침개 ….

이처럼 말 만드는 과정이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사랑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겨레말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겨레말을 아끼고 살려 쓰려는 정성이 있고 없음이 말다듬기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거르개’와 무척 어려운 한자말 ‘여과기’(濾過器)로 견주어 볼 수 있다. ‘거르다’에 뒷가지 ‘-개’가 붙어 만들어진 ‘거르개’는 서울에서는 그것을 쓰면 무식해 보이기라도 하는 양 꺼리고 한자말 ‘여과기’를 주로 쓴다. 남북에서 다듬은 말 가운데 일치하는 말이 많은데, ‘거르개’도 그 하나다. 남쪽에서는 일껏 잘 다듬어 놓고도 쓰지 않는 반면, 북쪽에서는 좀 어색한 말이라도 굳혀서 쓰고 있는 점이 다르다.

서울말과 평양말 속에 스민 겨레말 사랑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보면 서울말 열이 평양말 하나의 무게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64.‘데’와 ‘대’의 쓰임 -《한 겨 레》 2002-08-15 -

이 두 글자는 소리도 비슷하고 꼴도 비슷해서 잘못 쓰는 때가 잦다. “내가 학교에 가는데 그가 나를 불렀대”에서 앞에는 ‘데’를 썼고 뒤에는 ‘대’를 썼다. 왜 이렇게 구별해서 쓸까? ‘데’를 쓰는 경우를 검토해 보자.

(가)주인이 보는데 물건을 훔쳤다./ 여기에 두던데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나)주인이 보는 데서 물건을 훔쳤다./ 돈을 둔 데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가)의 두 월에 쓰인 ‘데’는 독립하여 쓰이지 않고 언제나 ‘는데’ ‘던데’처럼 다른 요소와 함께 씨끝(어미)을 이룬다. 곧, 한 씨끝의 부분이다. 그런데 (나)의 두 월에 쓰인 ‘데’는 장소를 나타내는 뜻을 지닌 온전한 낱말로 쓰였다.

그러면 ‘대’를 쓰는 경우를 보자.

(다)네가 훔치는 것을 주인이 보았대./ 네가 아무리 좋대도 나는 싫어.

(라)주인이 본 대로 말했어./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떠나자.

(다) 두 월에 나온 ‘대’는 ‘-다고 해’의 준말로 쓰인 것이다.

(라)의 두 월에 쓰인 ‘대’는 ‘대로’의 꼴로만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곧, ‘대로’라는 낱말의 한 부분인 셈이다. ‘대로’는 불완전 명사로도 쓰이고 토씨로도 쓰이는데, 이에 따라서 띄어쓰기가 달라짐을 위의 월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글자는 쓰임새도 소리도 다르다는 점을 알아 보았다. ‘데’는 ‘에’가, ‘대’는 ‘애’ 소리가 붙은 것이므로 분명히 다르게 발음해야 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65. 일어투 겹토씨 ‘-에의’-《한 겨 레》 2002-08-16 -

이 말은 임자씨에 붙어서 진행 방향을 보이는 위치토씨 ‘에’에 관형격토 ‘의’를 겹친 것으로, 일본말에서 동작의 방향을 나타내는 ‘へ’에 속격토 ‘の’를 더한 ‘への’를 모방한 것이다.

*새로운 도약에의 길(1994, 대전세계박람회 주제 표어)

이는 ‘새로운 도약의 길’이나 ‘새로운 도약으로 가는 길’이라고 고치면 말은 되지만 내용이 매우 치졸해진다. ‘도약’은 한층 높은 데 이르는 과정에서 하는 힘찬 행동인데, 그 행동을 궁극의 목표처럼 표현했다. 웅대한 목표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다른 말로 바꿔 써야 했다.

*이 단절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극히 피상적이어서 우리의 정체와 자아가 때로는 ‘전통에의 복귀’, 때로는 임기응변으로 표류하고 있다.(고등국어 하 327쪽) → ~ 전통으로 복귀하고 ~.

*세계화를 너무 경제주의적으로, ‘개방시대에의 대책쯤으로’ 인식하는 경향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耐일보 사설) → ~ 개방시대에 대비하는 시책쯤으로 ~.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25~35세에 결혼하지만 ‘부모에의 의존도가 높다.’(耆일보 사설) → ~ 부모에게 많이기댄다.

*하나는 싼 임금으로 ‘제삼국 수출에의’ 경쟁력을 찾은 것이다. → ~ 제삼국으로 수출할 ~.

*민족 수난의 굽이마다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구한 자랑스러운 선조들처럼, 우리도 오늘의 고난을 극복하고 ‘내일에의 도약을 실천하는 위대한 역사의 창조자가 됩시다.’(1998. 대통령 취임사) → ~ 내일로 도약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합시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66. 법률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8-19 -

사람을 얽어매는 약속 가운데 겁나는 것이 법률이다. 그 이름과 내용을 특히 쉽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만약 법률을 쉽고 재미있게 써서 읽히게 하면 소송비용도 줄이고, 범죄예방 효과도 거둘 성싶다.

법이름 몇몇을 들춰보자. 공공용지의취득및손실보상에관한특례법, 법정등의질서유지를위한재판에관한규칙,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 한글전용에관한법률 ….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에 관한’이 자주 나오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점이다. 실제 법이름에서 한글로 적은 말은 ‘-에 관한, 및, -을 위한, 어린이, 서울, 에너지’ 등 외래어나 고유어로서 한자로 적기 어려운 말뿐이다. 특히 거슬리는 것이 한자말이나 일본식 글투다. ‘手票法의適用에있어서銀行과同視되는사람또는施設의指定에관한規程’을 읽어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글 전용법이나 맞춤법을 깡그리 무시한 이름이다. 법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 누굴 보고 법을 지키라고 할 것인가.

법이름을 한번 다듬어 보자. 위엣것은 ‘수표법이 적용되는 은행·사람·시설 지정’,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은 ‘성폭력 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법’, ‘여성에대한모든형태의차별철폐에관한협약’은 ‘여성차별 철폐 협약’ 정도면 족하다.

자주 거론되는 법은 준말로 쓸 때도 있다.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특경가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특가법’ 식이 그것인데, 역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알아보기 어려운 말이다.

최인호/교열부장

67. 국어사전의 정보 -《한 겨 레》 2002-08-20 -

어떤 언어든지 표준어가 있고 사투리가 있다. 한 언어의 사전은 표준어의 글자, 발음, 뜻풀이, 쓰임새를 담아 놓은 것이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국어사전 전통이 있다. 일제 치하 때 이미 국어학자들은 우리말을 온전히 기록하고자 맞춤법을 만든 것을 비롯해 국어사전 편찬에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국어사전들이 우리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지 돌아볼 때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발음, 그 가운데서도 모음의 길고 짧음에 관해서는 의문점이 적지 않다.

단적인 보기로, ‘대학’과 ‘수학’의 발음을 보면 ‘대’와 ‘수’가 긴소리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과 ‘수학’을 길게 소리 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전의 발음정보가 언어 실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이 우리가 학교에서 발음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머릿속으로는 분별하나 실제 발음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사전이 사전다운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정확해야 한다.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담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실태에 대해 광범하면서도 정밀한 조사를 꾸준히 벌여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투자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말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록하는 데 노력을 아껴서는 우리가 문화민족이라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68. ‘안/않’의 구별 -《한 겨 레》 2002-08-21 -

어떤 이들은 ‘안’과 ‘않’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서 “나는 집에 않 간다”라고 쓰는가 하면 “나는 집에 가지 안는다”처럼 쓰기도 한다. 둘 다 잘못 쓴 것이다.

“나는 집에 안 간다/나는 집에 가지 않는다”처럼 써야 한다. 어떤 때 ‘안 간다’를 쓰고 ‘않는다’를 쓰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안’은 부사어로서 뒤에 오는 동사 ‘간다’를 부정하는 구실을 한다. ‘안’과 ‘간다’는 둘 다 독립한 낱말이므로 서로 떼어 써야 한다.

여행을 안 했다/ 그러면 안 돼/ 기분이 안 좋다/ 날이 별로 안 춥다.

띄어쓰기와 관련해서 아래의 예문을 조심해야 한다.

너 얼굴이 참 안되었구나/ 말씀드리기 안됐지만 …

이 경우의 ‘안되다’는 ‘형편이 나쁘다’는 뜻을 가진 말(형용사)이다. 띄어쓴 ‘안 되다’는 ‘되지 않다’(동사)의 뜻이다. “일이 예정대로 안 되다니 참 안됐군”처럼 쓰면 된다. 띄어 쓴 것과 붙여 쓴 것이 전혀 의미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않’은 독립한 낱말이 아니라 ‘아니하다’의 어간 ‘아니하’의 준말이다. 반드시 어미를 데리고 다니는 어간이기 때문에 ‘않 간다’처럼 부사로 쓸 수 없다. ‘않는다’는 앞의 용언인 ‘가다’를 부정하는 보조용언으로서 언제나 연결어미 ‘-지’ 뒤에 쓰인다. ‘-지 않는다’는 ‘-지 아니한다’의, ‘-지 않다’는 ‘-지 아니하다’의, ‘-지 않았다’는 ‘-지 아니했다’의, ‘-지 않을’은 ‘-지 아니할’의 준말임을 알아두자.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69. 표준말의 겨레사랑 -《한 겨 레》 2002-08-22 -

표준말 정의에서 일컫는 ‘교양 있는 사람’들은 말에서 너무 관대하고 그들이 쓰는 서울말은 그래서 너무 잡다하다. 국제주의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겨레 사랑’이 모자란다. 모자란다기보다 우리가 쓰는 서울말 속에서 우리말 사랑을 찾아내기란 차라리 높은 산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는 일과 다를 바 없음을, 다음에서 견주어 본 말에서도 알게 된다.

표준말, 다듬은 말, 평양말 차례다.

가로수/ 길나무/ 길가나무

상록교목/ 늘푸른큰키나무/ 늘푸른키나무

포유류/ 젖빨이동물/ 젖먹이류

해충/ 해론벌레/ 해로운벌레

코너킥/ 구석차기/ 구석차기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서 몇가지를 가려본 것이 이 지경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가운데 든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편찬)의 올림말들이다. 그것이 평양 쪽 말과 거의 같은 까닭은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우리말로 바꾸거나 다듬을 때 원리가 비슷할 수밖에 없고, 그 바탕에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무리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어도 자주 써 버릇하면 익숙해지게 된다. 국어사전이란 대체로 ‘표준’의 권위를 지니는 까닭에 주된 올림말 선정과 풀이가 썩 중요하다. 그런 판단의 근거들 가운데 ‘겨레 사랑’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다.

그래서 거듭 강조하는 것이 사랑이다. 겨레말 사랑을 발판으로 표준으로 삼을 말을 가려내고 사전을 엮는다면 딱딱하고 싸늘하고 섬뜩한 말들은 자취 없이 이 땅에서 사라지리라.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70. ‘에게의’와 ‘에 있어서의’-《한 겨 레》 2002-08-23 -

‘에게의’도 ‘에의’와 같이 일본어 겹토씨 ‘への’를 흉내낸 것이다.

‘에 있어서의’도 일본어 ‘にお(於)いての’를 직역한 고약한 말투다.

홑따옴표(‘ ’)가 붙은 말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야 우리말답다.

*‘자네에게의’ 편지(엣센스 일한사전) → 자네한테 온 편지.

*다가오는 ‘사회에 있어서의’ 민간기업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등국어 하 324) → ~ 사회에서 ~.

*희곡에 있어서의 성격묘사법.(교육방송 방통대 강좌) → 희곡의 성격 묘사법, 희곡에서 성격을 묘사하는 법.

*‘현재에 있어서의 문화창조와’ 관계없는 것을 우리는 문화적 전통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등국어 상 190쪽) → ~현재의 문화를 창조하는 일과 ~.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의’주의점(耖기업 업무지침) → 추진할 때 주의할 점.

*우리 현대 ‘정치사에 있어서의’ 기구한 삼김사(三金史) 30년은 지금이 절정이다.(耝일보 글) → ~ 정치사의 ~, ~ 정치사에서~.

*한문학 전체의 역사적 ‘발전 단계에 있어서의’ 태백과 두보의 시와 시인적 위치(정지용 ‘조선시의 반성’) → ~ 발전 단계에서 차지하는 ~.

*제3세계와 ‘소수 언어권에 있어서의’ 문학.(펜클럽대회 표어) → ~ 소수 언어권의 ~.

*급변하는 사회에 있어서의 문학의 영원성과 가변성(〃) → ~ 사회의 ~.

*‘정치에 있어서의’ 종교와 대중매체의 역할.(耗일보 논설) → ~ 정치에 끼치는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71. 상품이름 붙이기 -《한 겨 레》 2002-08-26 -

상품 이름처럼 나고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말은 없을 성싶다. 생산 주기가 대체로 급한 까닭이다. 상품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일일이 그 잘잘못을 초들기도 어렵다. 이름이든 품질이든 맘에 안 들면 사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나 여기서도 한두가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상품 이름을 제대로 지어서 손해볼 것은 없다는 점이다. 별난 이름을 지었다고 하여 장사가 크게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품질이 먼저일 테니까.

그런데, 길거리 가게에 널린 꿀꽈배기, 초코파이 따위도 흔한 먹을거리 상품 이름에 지나지 않지만 잘하면 과자나 빵의 대명사가 될수도 있을 터이니, 어찌 허투루 이름을 지을 일이겠는가?

요즘 상품이름 몇몇을 들춰보자.

1)허브블루, 래미안, 트레벨파크, 아일렛, 위브 센트로, 에클라트, 쉐르빌 ….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나 모르는 이가 더 많을 성싶다. 2)애니콜, 홈시키, 라모도, 오스테민, 헤븐리진생, 훼스탈, 락테올 …. 3)아벨라, 싼타페, 프라이드, 캐피탈, 포텐샤, 레간자, 엘란트라, 에쿠스, 마티즈 ….

이 정도에야 덤덤해할지 몰라도 그 뜻을 알고 대하는 한국인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1)은 요즘 분양 중인 집 이름, 2)는 약품 이름, 3)은 차 이름들이다.

비아그라나 아스피린 따위 다른 나라에서 개발해 유명해진 것을 베껴서 만든 물건이라면 몰라도 원체 우리 쪽에서 만든 것이라면 굳이 얄궂은 서양식 이름을 붙일 일은 아닐 것이다. 바깥 나라 외국인을 상대로 잘 팔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최인호/교열부장

72. ‘밝혀라’와 ‘밝히라’-《한 겨 레》 2002-08-27 -

우리말글의 명령문 씨끝에는 ‘-아라/-어라’와 ‘-(으)라’가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쓰임이 좀 다르다. ‘잡다’를 보기로 들면 ‘잡아라’와 ‘잡으라’는 둘 다 시킴꼴이지만 뜻이 같지 않다. ‘잡아라’는 ‘저 놈을 잡아라!’하고 외칠 때처럼 직접 사람이 사람한테 소리칠 때 쓰는 말이고, ‘잡으라’는 현수막에 쓰인 구호에서나 격언 같은 데서 쓰는 말이다. 그래서 앞엣것을 ‘직접 명령’, 뒤엣것을 ‘간접 명령’이라고 이름붙여 설명한다.

그런데 요즘 이 직접 명령과 간접 명령의 구분이나 쓰임이 일부 신문의 사설 같은 데서 흐려지고 있다. 신문의 사설은 직접 명령이 쓰일 자리가 아니다. 사설은 글을 쓴 이가 독자들을 모아놓고 바로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장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밝히다’의 경우, 간접 명령은 줄기에 그냥 ‘라’만 붙여야 하므로 ‘밝혀라’가 아니라 ‘밝히라’가 걸맞다.

‘밝혀라’라고 해야 좀더 생생한 느낌을 전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한다는 해명도 있는데, 그렇다면 ‘공개하다’ 같은 말도 ‘공개해라’로 해야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사설 따위에서 ‘○○하다’의 경우 ‘○○하라’라고 하지 ‘○○해라’라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밝혀라’라고 하면서 ‘공개하라’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조금만 더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혼란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73. 말썽꾼 ‘사이시옷’-《한 겨 레》 2002-08-28 -

소리와 형태가 어긋남으로 해서 생기는 어려움은 제아무리 발달된 소리글자라 해도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다. 남북 말씨의 골도 여기서 비롯된 몇몇 가지 탓에 더 깊어졌다. 사이시옷(耔)이 일으키는 말썽에 시달리는 현실은 남북이 엇비슷하지만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에게도 발목지뢰 구실을 마다지 않는 것 가운데는 이 사이시옷도 끼어 있다.

서울말에서는 한자말에서 ‘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 따위만 사이시옷을 적게 해 맞춤법의 격을 떨어뜨리고 사전들이 혼란을 일으킨 바 있듯이 국어 발전에 걸림돌이 될 정도다.

두 말이 붙어 새 뜻을 지니는 말을 만들 때 그 사이에 붙이는 사이시옷은 ‘고갯길/고개길, 담뱃대/담배대’처럼 맞서봐야 별 것 아닐 때도 있지만 ‘냇둑/내뚝’ 정도에 이르면 같은 뜻에 형태가 다른 말인 ‘둑’과 ‘뚝’으로 나뉘기까지 한다.

그뿐만 아니라 ‘새별’과 ‘샛별’을 가려 적는 평양 쪽 말은 그네들만의 속사정 때문에 이미 버린 사이시옷을 다시 챙기는 궁색한 처지에 빠져들기도 하니 좀 딱한가? 북쪽에서는 사이시옷을 버렸다지만 ‘조선말대사전’을 보면 ‘아래우’(아래위)에서 ‘우’가 앞가지로 쓰일 때는 ‘웃길·웃대·웃집·웃쪽 …’처럼 사이시옷을 붙이도록 했다.

이렇듯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사이시옷이기에 남북이 한자리에서 통일어법을 마련하는 날이 오면 맨 먼저 이것부터 다잡아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74. 함으로써/하므로써? -《한 겨 레》 2002-08-29 -

‘함으로’와 ‘하므로’의 차이는 누구나 잘 알 줄 안다.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다”와 “죽으므로 나라를 못 지킨다”의 차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써’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 다시 헷갈리는 이가 많은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함으로써’는 ‘함으로’를 강조하는 말로서 옳지만 ‘하므로써’는 틀린 말이다. 토씨 ‘로써’는 수단·조건 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쓰는 말이다. ‘로’만으로도 나타낼 수 있지만 ‘로써’를 쓰면 좀더 확실해진다. ‘-므로’는 원인을 나타내는 씨끝이다. 여기에 ‘써’를 붙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너를 볼 수 있음으로(써) 위안을 삼는다’나 ‘너를 볼 수 있으므로 행복하다’는 옳은 말이지만 ‘너를 볼 수 있으므로써 행복하다’는 틀린 말이다.

‘로써’와 ‘로서’의 쓰임은 오래 전부터 학생들을 괴롭혀 왔다. ‘로써’는 수단·조건 등을 나타내는 토씨고, ‘로서’는 신분이나 자격을 나타내는 토씨라고 가르치지만 실제 적용할 때는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로써’는 ‘그것을 이용하여’로, ‘로서’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은’ 등으로 풀 수 있는 경우에 쓰인다.

“믿음으로써 시련을 극복하자”는 ‘믿음을 이용하여 시련을 극복하자’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반면에 “그들은 훌륭한 시민으로서 칭찬을 받았다”는 ‘훌륭한 시민이라고 ~’의 뜻으로 풀 수 있다. “나로서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에서 ‘나로서’는 ‘나는’의 뜻이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75. ‘로서의/으로서의’-《한 겨 레》 2002-08-30 -

이 토씨는 일본어에서 자격격토씨 ‘として’에 속격토씨 ‘の’를 덧보태 쓰는 ‘としての’를 흉내내어 지위나 신분, 자격을 보이는 어찌자리토씨 ‘로서/으로서’에 매김자리토씨 ‘의’를 겹쳐놓은 얄궂은 말이다. 화살표(→) 쪽으로 고쳐 써야 우리말답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헌법 제69조) → 대통령의 ~.(대통령에 취임해서 하는 일은 모두 대통령 자격으로 하는 것이므로 굳이 그 자격을 보이는 토씨를 붙이는 것은 구차하다.)

*세계 상위권에 도전하는 ‘체육강국으로서의’ 긍지를 재확인하고, 성숙한 ‘문화국민으로서의’ 긍지도 살려나가야 한다.(耆일보 사설) → 체육강국의 ~, 문화국민의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인간 가치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위정자의 철학이나 이념에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에 밀착한 삶의 ‘지표로서의’ 일체감이 있어야 한다.(耗일보 耀씨 칼럼) → 지표가 될 ~.

*‘황조가’는 서정시와 민요와 민족 ‘고유요로서의’ 성격을 다 갖춘 노래다.(방송대 강좌) → 고유요의 ~.

*한자어 중에서 ‘접미사로서의 기능’이 분명한 것은 ‘-的’이다.(고등문법 60쪽) → 접미사 기능이 ~.

*명확하고 품위 있는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은 ‘교양인으로서의’ 중요한 자질이다.(〃 172쪽) → 교양인의 ~/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76. 재미나는 ‘-고 싶다’-《한 겨 레》 2002-09-02 -

사람이란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 다른 짐승과 구별된다. 말·글은 그런 재주를 베풀어 펴는 좋은 연장이다.

우리말에서 재미나는 쓰임 중에 주로 움직씨 뒤에 붙여서 말을 이끄는 도움그림씨 ‘싶다’가 있다. 온전한 말 이상으로 마음을 많이 싣는 말이다.

원체 모자라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족속이 사람이어서 이런 말이 생긴 성싶다. ‘어서 커서 어른이 되고 싶다,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보고 싶다.’ 아이나 어른이나 흔히 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이는 자신이 부자이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와 같다.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선언하고 있으면서 선언하고 싶다, 묻고 있으면서 묻고 싶다 … 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공안당국은 어떤 해명으로 답할 것인지 묻고 싶다”, “한나라당에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당원들 중에 전과자가 없는가?” “난 감히 단정하고 싶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건 도둑질이라고.”

이는 ‘묻는다, 단정한다’로 바꿔 써야 옳다. 적어도 매체에 발표한 글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묻고 싶다’고 했지 ‘실제로 물은 것은 아니다’라고 발뺌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하는 말투를 완곡투라 하는데, 이런 경우는 그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생각하는 것은 맘대로지만 표현에서는 책임이 따른다. 좀 과할지 모르지만 이런 표현을 두고 ‘치졸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최인호/교열부장

77. 외래어와 외국어 발음 -《한 겨 레》 2002-09-03 -

외국 땅, 사람이름 등을 한글로 적는 법을 규정한 것이 외래어 표기법이다. ‘캘리포니아, 런던, 파리’ 등이 다 이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영어권 사람과 만나 ‘캘리포니아’라고 했더니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며 외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달리 적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은 나라 안에서 한국어로 말하고 적기 위해 정한 것이지, 외국인들과 외국어로 말할 때 쓰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영어 자모와 일치하지 않아서 영어 발음 그대로를 적기는 어렵다. 그래서 ‘California’를 외국인에게 ‘캘리포니아, 캘리훠니아, 캘러포니아, 캘러훠니아, 캘리포녀’ 등 갖가지로 소리내 보이고 어느 게 가장 가까우냐고 물어서 표기를 정한다고 치자. 듣는 외국인에겐 다 도토리 키재기처럼 비슷할 뿐이며, 수많은 외래어를 그렇게 외국인에게 물어서 정하기도 어렵다. 결국 외래어 표기는 외국어의 특정 음운을 늘 한국어의 특정 음운에 대응시키는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방식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국어생활이 편안해진다.

그럼 미국인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글 표기 ‘워싱턴, 캘리포니아’는 잊어버리고 이를 영어식으로 소리를 내야 한다. 한국인이 영어발음을 원어민처럼 할 수는 없는 만큼 악센트라도 제대로 하는 편이 훨씬 낫다.

한국인이 영어발음을 잘못하는 것을 외래어 표기법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를 할 때 쓰라는 게 아니고 국어생활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78. 있음에와 있으매 -《한 겨 레》 2002-09-04 -

문인들의 글에서 연인들이 주고받는 편지에 이런 말을 등장시킨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네가 있음에 내가 행복하다.” 여기서 ‘있음에’는 ‘있으매’의 잘못이다. 국어의 연음현상 탓에 말을 글로 적을 때 사람들이 혼란을 겪게 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사람들이 흔히 틀리는 것이 ‘으로’와 ‘므로’일 것이다. “의사 소통을 잘함으로 인간관계를 원만히 했다”와 “의사 소통을 잘하므로 인간관계가 원만해졌다”에서 ‘함으로’와 ‘하므로’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모르면 이를 잘못 적기 쉽다.

‘있으매’는 ‘있으므로, 있기 때문에’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으)매’는 이음씨끝(연결어미)으로서 ‘네가 있다’와 ‘내가 행복하다’를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 ‘함으로’는 ‘어떻게 하기 때문에’의 뜻이다. ‘으로’는 체언 뒤에 붙어서 수단·방법을 나타내는 토씨이고, ‘므로’는 줄기(어간)에 붙어 앞뒤 문장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씨끝이다. ‘의사 소통을 잘한다’와 ‘인간관계를 원만히 했다’를 한 문장으로 만들자면 앞엣것을 명사절로 만들어 수단임을 나타내는 토씨 ‘으로’를 붙이는 게 최선이고, ‘의사 소통을 잘한다’와 ‘인간관계가 원만해졌다’를 한 문장으로 만들려면 ‘의사 소통을 잘한다’를 ‘인간관계가 원만해졌다’의 이유나 조건으로 만들어 주는 씨끝 ‘므로’를 쓰는 것이 최선이다.

이로써 토씨와 씨끝 쓰는 법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말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79. 겹토씨 ‘과의/와의’-《한 겨 레》 2002-09-05 -

‘과의/와의’는 일본말에서 접속조사 と와 속격조사 の를 합쳐서 쓰는 との를 본받아서, 둘 이상의 사물을 늘어놓을 때 쓰는 이음토 ‘과/와’에 매김자리토씨 ‘의’를 겹쳐 쓴 어색한 쓰임새다.

따옴표(‘ ’) 안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겠다.

*멕시코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耝방송 뉴스) → ~ 범죄에 대해 ~.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를 방송해드립니다(방송 3사) →~ 국민의 ~.(사물을 이을 때 이음토 ‘과/와’를 끝 사물에는 쓰지 말아야 한다. ‘철수와 영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철수와 영수의’ 관계다.)

*새 정부는 해외 ‘동포들과의’ 긴밀한 유대를 강화하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 ~ 동포들과 ~.

*전설은 ‘세계와의 대결에 의해’ 패배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비극성을 내용의 특징으로 한다.(고등 문학) → 세계와 대결해서 ~.

*조사는 체언 뒤에 결합해서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거나 특별한 뜻을 더해주기도 한다.(고등문법 45쪽) → ~ 다른 말과 이루는 ~.

*이○○ 의원도 경기지역 ‘의원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耝일보 기사) →~ 의원들과 ~.

*인격, 행동, ‘남과의 관계’, 책임과 의무 등을 다양하게 생각한다.(고등국어 상 214쪽) → ~대인 관계 ~.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중국과의’ 교섭이 잦아지면서.(고등국어 하 187쪽) → ~ 중국과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80. 정지·정짓간 -《한 겨 레》 2002-09-06 -

생활 속에서 쓰이는 자연어가 생활 용어로 꽃피어 열매 맺은 것이 ‘낱말’이다. 국어사전에서 고고학 용어로 처리한 낱말들을 살펴보면 석기시대의 생활이 살갗에 와닿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담긴 낱말에서 그 시대가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우리가 쓰는 표준어 규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서울말인 표준말말고는 모두 버리도록 한, 고장말 말살의 칼을 휘둘러 난도질하는 어리석음을 보다 못해서다. 민족이 언어 공동체라고 함도 말이 있고 난 다음에 민족이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겨레를 있게 한 말이 곧 겨레이며 겨레말을 아껴 쓸 때라야만 겨레가 살아남는 것이지 이를 표준말·사투리로 갈라놓고 이리저리 잘라버리는 짓은 겨레 공동체를 난도질하는 것과 같다는 거다.

서북지방 고장말에 ‘정지’가 있다. 우리는 ‘부엌’의 사투리라고 쓰지 못하게 했는데, 정지와 부엌이 다른데 어찌 부엌의 방언이 정지일 수 있겠나. 한자말 ‘정주’(鼎廚)와 ‘정지’의 관련성은 다른 문제다.

겨울이 혹독한 평안북도나 함경도에서 남쪽 주택구조로는 겨울을 날 수 없어 짓다보니 ‘정짓간’을 만들어낸 것인데, 이를 사투리라고 버리라는 것은 ‘서북지방은 우리 땅이 아니니 잘라서 갖다 버려야 한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민족 사랑은 국어 사랑으로, 국어 사랑은 고장말 사랑으로 실천해갈 수 있도록 어문 규정부터 손질해야 겨레문화가 꽃필 날을 기다려 볼 수 있으리라.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81. 붙이다와 부치다 -《한 겨 레》 2002-09-09 -

흔히 같은 데서 나온 말처럼 보이는데 달리 쓰는 말이 있다. 어원에서 멀어진 말로 보고 달리 쓰는 경우가 있고, ‘부치다’처럼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붙이다’와 ‘부치다’는 글은 다르지만 소리는 한가지여서 한글맞춤법에서도 구별하여 적는다(57항)며 여덟가지씩 보기를 들었다.

실제로는 한낱말로 쓰일 때도 문제다. ‘맞붙이다·생청붙이다·흥정붙이다·덧붙이다·불붙이다·걷어붙이다·몰아붙이다·밀어붙이다·갈라붙이다·다붙이다·메어붙이다’에서 쓰는 ‘붙이다’가 있고, ‘괘장부치다·원두부치다·벗어부치다’에서 쓰는 ‘부치다’가 있다. 앞은 두 물체를 달라붙게 하는 움직임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벗어부치다’는 ‘팔을 걷어붙이다, 소매를 걷어붙이다’와 견줘 보면 ‘옷을 벗어붙이다’처럼 쓰일 법한데, 여러 국어사전에서는 ‘벗어부치다’로 올렸다. ‘붙이다’라는 말뜻에서 멀어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부치다’가 따로 쓰일 때는 ‘숙식을 부치다, 편지를 부치다, 논밭을 부치다, 부채를 부치다, 빈대떡을 부치다’가 있고, ‘광복절에 부치는 글, 인쇄에 부치다, 회의에 부치다, 의안에 부치다, 표결에 부치다, 비밀에 부치다, 논의에 부치다, 불문에 부치다’처럼 ‘-에’ 뒤에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편지에 우표를 ○○○’에서는 ‘붙이다’를 쓴다.

그런데 ‘정이나 마음을 얘기할 때’는 ‘정을 붙이다, 정을 부치다’ ‘마음을 붙이다, 마음을 부치다’처럼 쓰일 때가 달라 표현하기 나름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쪽으로 가면 문법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인호/교열부장

82. 만들어낸 외래어 -《한 겨 레》 2002-09-10 -

우리가 익히 쓰는 외래어 중에는 외국어에서 쓰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토바이나 핸들, 텔레비 같은 것이 대표적인 보기인데, 오토바이를 영어에서는 모터사이클(motor cycle)이라 하고 핸들은 스티어링휠(steering wheel)이라 하며, 텔레비는 텔레비전을 줄여 쓰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영어를 재료로 해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제나름으로 만든 말이다. 이들은 외래어 중에서는 좀 특별한 것들이어서 단순히 외래어라 할 게 아니라 별도의 이름이 필요하다.

‘템플스테이’라는 말이 한국 방문의 해,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등을 계기로 최근 들어 비교적 널리 쓰이고 있다. 템플은 절을 가리키고 스테이는 머무르기, 묵기 정도의 뜻을 지닌다. 가정에서 묵는 것을 뜻하는 홈스테이란 말이 있으니 이에 유추해서 템플스테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홈스테이를 애초에 우리말로 만들어 쓰지 못하다 보니 절에서 묵으며 체험하는 것을 ‘절 체험’ 또는 ‘사찰 체험’이라 하지 않고 템플스테이라고 말을 만들고 만 것이다.

이런 경우는 자칫 날이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얼치기 영어 사용자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쓰지 않는 말을 우리가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템플스테이는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다. 우리말로 절 체험이나 사찰 체험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말은 자꾸 써야 생명력이 붙는다. 억지 외국어를 자꾸 만들 일이 아니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83. 히브리어와 한자 -《한 겨 레》 2002-09-11 -

며칠 전 방송사 성우 일을 하는 분이 한글전용을 반대한다며 그 까닭 세 가지를 담은 글을 보내 왔다.

첫째, ‘한글만 쓰면 역사가 말살된다’고 못을 박았다.

과연 그럴까? 초등학생도 역사를 배우고 있는데 어떻게 말살되나? 우리가 읽는 성경도 히브리어 원전이 아닌 한글판이다. 우리 역사 원전이 대부분 한자로 기록돼 있다면 이를 보존·승계·연구하도록 한자·한문을 전공한 역사학자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천주교 등에서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전공하듯 말이다.

둘째, ‘국회·관공서 등 사회 곳곳에서 한자를 쓰고 있는 현실 …’을 들었다.

1948년 공포된 한글전용법을 관공서에서 충실히 지키며 한글전용이 이뤄지도록 일관된 정책을 뒷받침해 왔더라면 오늘에 이르러 사무기기가 컴퓨터로 바뀐 환경에 좀더 효율적으로 적응해 갈 뿐 아니라 한글의 과학성을 더욱 드러내어 세계화를 이룰 기틀을 잡았을 것이다.

셋째, ‘한자로 된 동음이의어를 어떻게 구별할 것이냐’였다.

이런 문제가 어찌 한자말에 그치나. 어느 나라 말에도 동음이의어는 있고, 우리말에도 그런 말이 숱하지만 얼마든지 구별해 쓰고 있다. 우리말 동사 ‘가다’도 스물네가지의 뜻을 담고 있지만 쓰기나름 아니던가.

‘대가(貸家) →셋집, 화병(花柄) →꽃자루’처럼 우리말이 있는 것은 한자말을 버려야 하고, ‘소수(素數)→씨수’처럼 말다듬기를 부지런히 해나간다면 끈질기게 남아 끼치고 있는 한자말 굴레에서 벗어나 한글문화 꽃이 더욱 피어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분들이 겨레말을 갈고 다듬고 아껴쓸 때에 말이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84. 얼루기 -《한 겨 레》 2002-09-12 -

‘얼루기’는 얼룩얼룩한 무늬가 있는 짐승이나 사물을 일컫는 말이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동요에 나오는 얼룩송아지나 얼룩소는 모두 ‘얼루기’에 속한다. 이를 ‘얼룩이’처럼 쓰면 틀린다. 이는 뻐꾹뻐꾹 우는 새 이름을 ‘뻐꾸기’라고 쓰고, 개굴개굴 우는 동물을 ‘개구리’라고 쓰는 이치와 같다. 기러기, 귀뚜라미, 매미, 삽사리도 같은 원리로 된 표기다.

그런데 ‘오뚝이, 홀쭉이, 꿀꿀이’처럼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맞춤법 규정 때문이다. 규정은 ‘-하다, -거리다’가 붙을 수 있는 뿌리(어근)는 그 형태를 밝혀 적는다고 했다. ‘오뚝하다, 홀쭉하다, 꿀꿀거리다’가 인정되므로 이것들은 ‘오뚝이, 홀쭉이, 꿀꿀이’처럼 ‘어근을 밝혀’ 적는다. 반면에 ‘얼룩하다, 뻐꾹거리다, 개굴거리다’ 같은 말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것들은 그냥 ‘얼루기, 뻐꾸기, 개구리’처럼 적는다.

뿌리란 낱말에서 뜻을 나타내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글은 뿌리가 확실하면 반드시 이를 밝혀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위의 홀쭉이에서 ‘홀쭉’이 뿌리이고, ‘-이’는 뿌리에 붙어 명사가 되게 하는 뒷가지다. 홀쭉하다의 ‘-하다’는 뿌리 ‘홀쭉’에 붙어 형용사를 만들어 주는 뒷가지고, 꿀꿀거리다의 ‘-거리다’는 뿌리 ‘꿀꿀’에 붙어 동사를 만들어 주는 뒷가지다. 뿌리와 씨끝(접사)이 이처럼 명료하게 구별되는 경우에는 이를 반드시 구별되도록 적어야 한다. 그러나 그 구별이 명료하지 않은 것은 소리대로 적는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85. ~로의/~으로의 -《한 겨 레》 2002-09-13 -

이 말은 일본어에서 쓰는 ‘への’를 모방해 방향을 나타내는 어찌자리토씨 ‘-로/-으로’에 매김자리토씨 ‘-의’를 겹쳐 쓴 얄궂은 겹토씨다. 따옴표(‘’) 안엣것을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우리말답다.

*인쇄문화에서 정보사회의 비디오 문화 또는 ‘전자문화로의 전환은’ 또하나의 커다란 전환이다.(고등국어 하 150쪽)→~ 전자문화로 바뀐 것은 ~.

*국어의 계통을 더 분명하게 밝히는 일은 ‘앞으로의’ 과제다.(고등국어 하 184쪽) → ~ 앞으로(앞날에, 장차) 해결할 ~.

*탈북자 문제는 ‘앞으로의’ 통일에 대비하는 대국적 견지에서 처리해야 한다.(耐일보 사설) →~ 앞으로/장차 ~.

*국민회의가 ‘여당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습니다.(耝방송 뉴스) →~ 여당이 되려고/여당으로 변하기를 ~.

*모든 선거법 위반 행위를 선관위와 검찰이 발본색원하는 의지로 임할 때 ‘앞으로의’ 선거는 공명해질 것이다.(耗일보 사설) →~ 앞으로/앞날의/향후의 ~.

*독일인들은 ‘집시들의 독일로의 이주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耝방송 뉴스) →~ 집시들이 독일로 이주하는 것을 ~.

*최근 ‘일본으로의 밀항을 시도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耐방송 뉴스) →~ 일본으로 밀항하려는 ~.

*김○○ 민정수석은 ‘문화체육부 장관으로의 입각이 유력하다’(耗일보 기사) →~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입각할 듯하다.

*‘역사 속으로의 여행’(교육방송) →역사 속으로 가는 여행.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86. 세계속의 한국어 (1)한국어의 위상 -《한 겨 레》 2002-09-14 -

우리 눈으로 세계를 보고 개인과 민족의 주체·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특히 600만 재외동포 문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바람직한 삶을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말글(모국어)을 통하는 것이 개중 낫다고 한다. 이민·망명·취업·입양 등 오래 전에 국외에 나가 살아온 동포들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전통문화와 모국어를 지켜쓰거나 멀어져 있는지 세계속의 한국어 위상과 함께 살펴 전달하고자 한다.

편집자

◇ 무엇이 1위인가?

한국어가 세계 언어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어느 정도일까? 이 물음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아울러 우리 자신을 객관화해 살펴보는 데 주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어가 제자리를 잡으면, 이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높이고, 높은 문화 창조를 통하여 세계인들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은 글자의 됨됨이에서 세계 언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본 자음 14자와 모음 10자, 나아가 겹자음과 모음을 합쳐 모두 40자로 구성된 한글은 먼저 말(한국어)이 있고서 이를 바탕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글자라는 점에서 세계 언어에서 견줄 문자가 없고, 소리내는 사람의 기관과 하늘·땅·사람을 결합시켜 만든 과학·철학적인 글자라는 점에서 각 나라 언어학자들이 세계 언어를 얘기할 때 칭송하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본보기로 통한다.

아울러 그로써 나타내지 못할 소리가 없어 국어정보학회나 한글문화 세계화 운동본부 등에서는 국제 음성기호를 한글로 채택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세계화는 언어를 획일화하는 부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는데, 유네스코에서는 지난해 ‘바벨계획’을 제안하여 ‘언어 다양성과 정보 이용의 공평성’을 높이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말은 있되 이를 적을 글자가 없는 소수민족 언어 사용자들에게 그들의 말을 한글로 쓰도록 함으로써 소수언어의 사멸을 막는 것도 언어 다양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라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1989년에 ‘세종대왕상’(킹 세종 프라이스)을 만들어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공적을 끼친 단체나 개인을 뽑아 상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는 세계 언어에서 한국어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드러내주는 몇몇 사례들이다.

◇ 무엇이 12위인가?

한국어를 쓰는 사람 수나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아 쓰는 이의 수는 표준중국어, 에스파냐어, 벵갈어, 영어, 힌디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오어, 자바어 다음으로 프랑스말 앞인 12위에 해당한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 같은 이는 이를 일컬어 ‘다수가 쓰는 언어의 말석, 소수가 쓰는 언어의 선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로써 생산하고 있는 지식 정보의 양(인쇄물, 인터넷 보급률)은 이 순위를 앞지른다. 물자 교역량 역시 10위권을 넘나든다.(2001년 한국은 수출입 교역량 2915억달러로 세계 13위임. 세계무역기구 통계)

우리말글의 경쟁력을 연구하는 이들은 “한글과 한국어는 쓰는 인구와 글자의 과학성, 경제력, 컴퓨터 등의 활용을 바탕으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향력 면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등 동양언어뿐만 아니라 영어 등 로마자를 바탕으로 쓰는 언어들과 충분한 경쟁관계에 있게 될 것으로 본다.”(유재원 한양대 언어인지학과 교수) 물론, 이를 위한 교육과 연구, 제도화 등에서 민관 두루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개인과 국가 두루 거품이 지나친 영어투자 일변도의 의식도 많이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지적을 곁들인다.

◇ 한국어 쓰임의 실제 모습들

재외동포들과 외국인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재외동포들과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동기는 무엇일까? 재외동포들은 한국어가 모국어이니까 당연히 배우고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외국인과 다르며, 필요성은 그 다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동기는 필요성이나 호기심이 먼저다. 이웃을 알고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취직이나 사업, 학문상 필요하여 배우게 된다. 이런 것을 통틀어 언어의 ‘영향력’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북 통일이 되고, 나아가 경제대국, 군사대국이 되면 이런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옛소련이나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 패권국으로 가고자 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문화대국’으로 가자는 데 반대할 한국인들은 없을 것이다. 그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고, 한글과 한국어의 발전은 그런 ‘큰나라’로 가는 데 썩 중요한 몫을 할 것이다. 한글문화 세계화운동 본부 서정수 본부장은 “우리가 요즘 영어 배우는 데 쓰는 돈의 절반만 우리말글과 문화를 갈고닦고 펴는 데 쓰면, 영어를 잘해서 얻는 이득의 몇 배는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재외동포들 가운데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중국 쪽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부족하나마 고려말, 조선어를 지켜왔으며, 이로써 최소한의 정체성을 확인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조국과의 오랜 단절 끝에 3, 4세로 넘어갈수록 정체성의 의미도, 필요성도 멀어지게 되어 제2, 3의 동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목격되며, 이는 상당 부분 그들의 조국인 남북한의 책임으로 돌려야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좀더 잘산다는 미국 쪽은 다민족 국가로서 다중 언어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데, 1994년을 전후하여 동양 3국인 중국, 일본, 한국어를 외국어로 대접하여 대학 입학자격 시험의 하나인 ‘에스에이티2’ 시험과목에 올린다. 물론 그들의 세계경영 필요에 따라 국방언어교육원(DLI) 등 연방 차원에서 한국어 요원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들도 운영해 왔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60만 재일동포들이 피나는 노력에 더하여 교육부에서 설치한 한국 교육원만도 열네 곳에 이를 정도로 뿌리가 깊고 넓으며, 현재 170여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외국어로 채택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어 강좌나 한국 어문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200곳 안팎에 이른다. 그러나 재일동포 2, 3세들의 낮은 모국어 사용 수준에 견주어 볼 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동포 대상 교육·문화 투자가 보잘것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민사가 비교적 오래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쪽에도 모국어 교육 연한이 이민사와 비슷한데, 이중·삼중언어 사용 현상이 나타난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동남아시아 쪽도 대학에서 한국 어문학과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이로써 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가는 차례를 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학교(IB)가 있다. 이는 세계 곳곳에 세워져 국제학교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각국 국제고등학교에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

최인호 기자 goljal@hani.co.kr

■재외동포 교육기관은

현재 나라 안팎의 국민교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는 교육인적자원부다. 재외동포는 교육부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 아래 국제교류협력담당관실에서 주로 맡고 있다. 국제교육진흥원을 서울에 두고 있고, 9월1일 현재 재외 14개국 35곳에 한국교육원이, 15개국 24곳에 한국학교가 설치되어 해당 지역 동포·주민들에게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공사설 한글학교가 1688곳에 설치되어 주로 주말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국외 파견 공무원(교사~장학관)은 대사관·한국교육원·한국학교를 합쳐 1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쓰는 예산은 1999년 191억, 2000년 216억, 2001년 236억, 2002년 264억원 정도다. 이 정도는 한국의 작은 교육구청 한해 예산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어문정책을 담당하는 문화관광부 쪽에도 재외동포 또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문화원을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네 곳에 두고 있고, 국내에는 국어연구원, 한국어 세계화 재단 등을 두고 있다.

외교통상부에서는 국제교류진흥재단을 두어 외국 대학들의 한국학 연구를 지원하거나, 동포·외국인 교류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국외 봉사활동을 주로 한다.

민간단체로서 한국어 연구와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에 뚜렷한 활동을 벌이는 곳은 한글학회, 한글문화 세계화운동본부, 국제한국어교육학회, 국어정보학회 등이 있다. 연세대,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건국대 등에서 설치한 어학당·어학원에서는 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각국 교민회가 중심이 되어 유기적인 동포 공동체 형성과 동포 자녀 모국어 교육에 노력하고 있다.

그밖에 외국의 상당수 대학과 초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강좌 및 한국 어문학과를 두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지역에 따라 특징이 있어 일괄하여 집계하기 어렵다. 다만 대학에 한국 어문학과나 한국어 강좌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살펴보면, 2002년 3월 현재 미국(102), 일본(120), 유럽(47), 동남아(25), 옛소련(중앙아시아 포함 22), 오세아니아(10), 중국·대만(29/3), 중동(9), 캐나다·중남미(11), 기타(12) 등 모두 388대학으로 나와 있다.(문화관광부 ‘국어정책자료집’ 통계) 최근 현지 통계를 확인한 바로는 대학의 경우 일본은 200곳 안팎, 중국 36곳, 러시아·중앙아시아 44곳 등인 것으로 나타나 적어도 500곳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한국어 역시 다른 외국어처럼 △전공 △선택필수 △선택과목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또 새로 생기거나 폐강되는 곳도 있어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실정이다.

■인터뷰/ 교육부 국제교류협력담당관실 정만섭 연구관

재외동포 교육·지원 실무를 맡고 있는 교육부 국제교류협력담당관실 정만섭(사진) 연구관에게 재외동포 지원 현황을 들어 보았다.

-재외동포 수는 얼마나 되며, 재외동포의 성격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2001년 기준으로 565만 정도로 잡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재외동포에는 영주 동포와 주재원·유학생을 포함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동포로 나눈다.

영주 동포는 한국 국적을 지닌 사람과 국적을 버리고 2, 3세를 벗어나지 않은 한민족 개념의 동포가 있다. 이들은 현지 국가의 국민된 의무를 지키면서 또다른 나라와 민족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는 이른바 ‘제3국민’이라 일컫기도 한다.

-영주 동포들은 해당국 국민인데, 어떻게 지원하는가?

=거주국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음으로써 그 나라에서 유능한 일등 시민이 되도록 후원하고,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발전할 수 있도록 한국어, 역사, 문화 등 모국 이해교육을 지원하는 것이다.

-일시 체류자 교육은 어느 정도인가?

=현지에서 빠른 적응과 귀국한 뒤에도 우리 학교와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체류자가 많은 경우 한국학교를 두어 운영한다.

-현재 각 교육원에서 좀더 중점적으로 지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유학생을 활용한 자체 한국문화 교육이 필요하다. 민간 외교관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재외동포들에 대한 민족교육은 장차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동포들이 하나의 상담자(바이어) 구실도 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 기자 goljal@hani.co.kr

■용어풀이

한글:우리가 쓰는 글자 이름. 어떤이는 말까지 포함하여 ‘한말글’이라 쓰는 이도 있음.

국어:우리가 쓰는 말과 글.

한국어:한국인들이 쓰는 말과 글의 통칭.

모국어:자기 나라의 말.

조선말(어):북한 또는 재중동포들이 쓰는 말을 일컬음.

고려말:재러, 재중앙아시아 동포들이 쓰던 말을 일컬음.

우리말글:우리가 쓰는 말과 글을 통틀어 일컬음.

이중언어 사용:두 가지 말을 쓰는 일. 예컨대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와 한국어를 같이 쓰는 사람의 경우, 우리나라에 와 사는 외국인이 모국어와 우리말을 쓰는 경우 등. 다중언어 사용도 있을 수 있음.

*문제:한국어·조선어 등을 통틀어 일컬을 만한 이름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편의상 여기서는 ‘한국어’를 주로 씀.

87. 토씨 ‘의’ 소리는? -《한 겨 레》 2002-09-16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에서 ‘의’를 어떻게 소리내어야 하는가? 표준어를 잘 아는 한 독자의 질문이다.

표준어 규정 제5항을 보면, ‘蒡 蓁 蕡 薁 藁 藡 虡 蚡 蛁 蝁 螁는 이중모음으로 발음한다’고 해놓고서도 네 가지 ‘다만’ 조항을 두었다. ‘다만 4’에서 ‘단어의 첫음절 이외의 ‘의’는 [이]로, 조사 ‘의’는 [에]로 발음함도 허용한다’며 주의[주의/주이] 협의[혀?/혀비] 우리의[우리의/우리에] 강의의[강:이의/강:이에]를 보기로 들었다.

서울 사람들이 실제 발음에서 ‘의’를 [이]나 [에]로 꽤 소리낸다고 해서 이렇게 글자와 소리를 달리하는 걸 허용하다 보면 소리글자의 구실이 무색해지고 말 것이다. ‘우리에 소원은 통일’ ‘너에 침묵에 메마른 나에 입술’처럼 소리낸다는 얘기가 된다.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일본식 겹토씨 ‘행복에로의 초대’도 ‘행복에로에’ 초대가 될 것이며, ‘나에 집, 우리에 희망, 가을에 노래, 나에 아우, 하루살이에 인생, 이광수에 무정’ 따위처럼 모든 ‘의’는 ‘에’로 바꿔 소리내어도 되나? 이런 현실주의는 배우는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준다. 말이 변하는 것을 다잡아 이끌어야 할 어문규정이 이 정도로 엉성하다면, 우리말의 소리내기에서 엄정함이란 사라지게 되고 따라서 더욱 마음대로 소리내게 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말은 변한다. 그러나 토씨 하나라도 따지고 드는 이가 있어서 건전하게 변한다. ‘에’ 소리가 나더라도 ‘의’로 소리내려는 생각을 해야 그나마 덜 변할 것 아닌가?

최인호/교열부장

88. ‘가능한 한’과 ‘가능한’-《한 겨 레》 2002-09-17 -

‘가능한 빨리 와야 한다’, ‘가능한 많이 지원해 주기를 기대한다’ 등과 같이 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장은 문법적으로 옳지 않다. ‘가능한’은 형용사 ‘가능하다’의 매김꼴인데 매김꼴은 반드시 꾸밈을 받는 명사가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은 ‘가능한 일’, ‘가능한 사업’, ‘가능한 범위’, ‘가능한 경우’, ‘가능한 것’ 등과 같이 써야 한다.

그런데 ‘가능한 빨리 와야 한다’와 같은 문장에서 ‘가능한’이 꾸미는 명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법에 맞지 않다. 그렇다면 ‘가능한’ 뒤에 명사 ‘한’을 넣어 ‘가능한 한 빨리 와야 한다’로 고쳐야 문법적으로 바른 문장이 된다. 이는 같은 뜻의 문장인 ‘될 수 있는 한 빨리 와야 한다’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도 ‘될 수 있는 빨리 와야 한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데 ‘가능한 빨리 와야 한다’라고 쓴 문장은 마치 ‘될 수 있는 빨리 와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문법적으로나 뜻으로나 불완전하다.

‘가능한 한’에서 ‘한’이 연이어 나오다 보니 하나를 줄여서 말하게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에는 줄일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줄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능한 한’은 ‘가능한’으로 줄여서 말할 수 없다.

말에는 질서와 규칙이 있다. 편의를 위하여 질서와 규칙을 깨뜨리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무너질지 모른다. 말의 질서와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89. 골골에 묻힌 금싸라기 -《한 겨 레》 2002-09-18 -

우리나라 서북 고장에서 많이 쓰는 말 ‘말밥’은 구설수나 입방아, 입길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말과 밥이 지닌 여러 뜻 가운데서 한가지씩 어우러져 아주 구수한 말맛을 담아내고, 우리말과 한자말의 다른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말이다.

‘말’의 ‘사람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음성기호’ ‘일정한 내용의 이야기’라는 두 가지 뜻 중 뒤엣것에, ‘밥’의 말뜻 가운데 ‘이용되거나 희생되는 대상 따위’의 뜻이 만난 말로서 ‘일정한 내용의 이야깃거리로 이용되거나 희생되는 대상’으로 ‘구설수’와는 다른 말맛을 지닌다.

이렇듯 서울말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들이 겨레가 사는 골골에 살아 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겨레사랑의 눈씨를 가지고 나랏말을 찾아 나선다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옛 고구려 땅 중국 극동과 소련 연해주, 유민이 흩어져 사는 중앙아시아 골골에서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얼을 만날 수 있으리라.

서북 고장에서 많이 쓰는 말 ‘괴짚다’(팔을 바닥에 괴어 버티면서 짚다)와 ‘굼졸다’(구물거리며 졸다)는 시시콜콜한 몸짓을 하나의 낱말에 뭉뚱그려 담고도 한눈에 그 뜻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다듬어진 금싸라기이고, 극동 중국 고장말 ‘놀각질’(놀기를 일삼는 짓)과 ‘말새질’(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말을 하고 다니는 짓)은 사람의 언행태도가 압축된 보물같은 말이다.

북쪽 끝 외진 함북 고장말 ‘소라지’(솔+아지:소나무 어린 가지)에 이르면 우리 겨레말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90. ‘~오’와 ‘~요’-《한 겨 레》 2002-09-19 -

씨끝 ‘-오’와 토씨 ‘요’의 쓰임새가 좀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은행 문앞에 ‘어서 오십시요’라고 커다랗게 써 놓은 것이 보이는가 하면, 한 공공기관 출입문에는 ‘명찰을 달아 주십시요’라는 말이 버젓이 적혀 있다.

말이 끝남을 나타내는 씨끝은 ‘-오’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리 오시오, 이것은 책이오, 아니오’처럼 쓰인다. ‘-오’를 빼면 문장이 끝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오’가 문장을 끝맺는 씨끝이기 때문이다.

마침씨끝 뒤에 토씨 ‘요’를 붙이면 상대를 높이는 뜻이 보태진다. ‘여기 좀 보아요, 참 좋지요, 어디 가나요, 어찌 모르리요, 여기 보시어요, 잘 있습니다요, 참 예쁘군요’처럼 씨끝에 붙여 요긴하게 쓰인다. 이들 문장을 살펴보면 ‘요’를 빼더라도 말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 앞에 있는 씨끝 ‘-아, -지, -나, -리, -습니다, -군’ 따위가 마침씨끝이기 때문이다.

씨끝 ‘-오’를 써도 되고 토씨 ‘요’를 써도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가오’와 ‘나는 가요’가 모두 맞는 말이다. ‘나는 가오’는 하오체로서 ‘나는 갑니다’보다 낮고, ‘나는 간다’보다는 높은 말체다. ‘나는 가요’는 ‘나는 가’보다 높이는 말체다. ‘나는 가오’는 격식체의 하나이고, ‘나는 가요’는 비격식체의 하나다. ‘거기 서오’와 ‘거기 서요’도 다 쓸 수 있는 말이다.

씨끝으로 쓰이는 ‘-(이)요’는 낱말을 늘어놓을 경우에 쓰인다. ‘이것은 나무요, 저것은 돌이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처럼 쓰이는 경우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91. ‘나름대로의’-《한 겨 레》 2002-09-20 -

‘대로’는 그것이 이끄는 성분을 어찌말로만 되게 하는 매인이름씨와 토씨로 쓰는 말이므로 매김자리토씨 ‘의’를 붙여 쓰지 말아야 뒤따르는 글의 뜻을 한정하는 어찌말의 구실을 바르게 한다.

따옴표(‘ ’) 안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올바르다.

*우리말은 우리말 ‘나름대로의’ 특성과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등문법 163쪽) →나름의, 나름대로.

*실명제를 폐지하든 고수하든 각각의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耆일보 사설) → 나름대로.

*전엔 주정꾼이 주정꾼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주정꾼에게도 ‘나름대로의’ 애환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고등국어 하 287쪽) → 나름대로.

*컴퓨터 기술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상당히 수행하고 있으며 ….(고등국어 하 326쪽) → 그 특성으로/ 그 나름의 특성으로.

*독자 역시 그 ‘나름대로의’ 견해나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耗신문 기사) → 나름의 / 나름대로.

*정부가 최근에 결정한 각종 이권과 관련한 주요 경제정책 중에는 정부 ‘나름대로의’ 해명에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해도 한결같이 정치성이라는 음산한 냄새가 배어 있다.(耝신문 칼럼) → 나름의.

*당사자들에게도 노숙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있음을 인정하여(耔일보 칼럼) → 자기들 나름의.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92. ‘耑변칙’ 활용 준말들 -《한 겨 레》 2002-09-23 -

“‘부끄런/자랑스런’ 식의 말을 〈한겨레〉마저 쓰고 있다. ‘부끄러운’과 ‘자랑스러운’만이 맞지 않은가. ‘부끄럽+考, 자랑스럽+考’에서 ‘耑’이 ‘우’로 바뀐다. ‘곱다’를 ‘곤’으로, ‘아름다운’을 ‘아름단’으로 쓸 수 있는가?” 독자 김정 님의 지적이다.

맞는 말씀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 어문규정이나 국어사전에서 활용한 풀이말의 준말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耑변칙으로 활용된 말의 준말을 올린 경우는 여러 사전에서 볼 수 있다. ‘아쉰대로(아쉬운 대로), 싱건지·싱건이, 곤때(고운때)’ 등이 그것이다.

특히 耑변칙 용언에서 ‘-스럽다’ 씨끝이 붙어서 된 말들은 거의 ‘-스런’으로 줄여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컨대 ‘자랑스럽다’를 활용하면, ‘자랑스럽고, 자랑스러우니, 자랑스러워서, 자랑스러이, 자랑스레, 자랑스러운, 자랑스런’처럼 되는데, 이때 ‘-스런’은 ‘-스러이’보다 ‘-스레’로 줄여쓰는 경우가 많은 현상과 견줄 만하다. 매김꼴 ‘-스런’으로 줄여 써서 자연스런 말로는 ‘갑작스런, 사랑스런, 의뭉스런, 능청스런, 밉상스런, 근심스런, 복스런 …’ 등 ‘-스럽다’붙이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아울러 ‘-럽다’도 ‘러운’과 함께 ‘런’으로 줄여 쓰는 경향이 있다. ‘부끄런, 시끄런, 너그런, 더런, 어둔, 이론, 아쉰’들이 그것이다. ‘곱다’도 ‘고운’으로 활용되지만 ‘곤때’처럼 줄여쓸 수 있다.

그러나 ‘-스럽다’ ‘-롭다’ ‘-럽다’ 등에서 ‘스런, 론, 런’ 정도가 그렇지 다른 耑변칙 용언들은 ‘우’를 줄인 꼴이 잘 쓰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최인호/교열부장

93. 어떡해와 어떻해 -《한 겨 레》 2002-09-24 -

‘어떡해’라고 적어야 하는지 ‘어떻해’라고 적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어떡해’가 맞다. 그러나 ‘어떻해’라고 잘못 쓴 사례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어떡해’는 ‘어떻게 해’가 줄어든 말이다. ‘어떻게 하다’는 두 낱말로서 이은말(구)인데, 줄어들면 한 낱말이 된다.

곧, ‘어떻게 하다’에서 ‘게’의 ‘蕁’소리가 떨어져나간 뒤 ‘耀’이 ‘떠’에 붙어 ‘어떡하다’가 되는 것이다.

‘어떡하다’는 ‘어떻게 하다’가 줄어든 말이기 때문에 동사가 되는데, ‘어떡하다’는 ‘어떡하라고’, ‘어떡해?’, ‘어떡할까?’, ‘어떡하든지’ 등과 같이 활용한다.

한편, ‘어떻다’라는 말도 있다. ‘어떻다’는 ‘어떠하다’를 줄여 쓴 말로서 형용사다. ‘어떻다’는 ‘어때?’, ‘어떨까?’, ‘어떠하든지’, ‘어떻든지’ 등과 같이 활용한다.

‘어떻게 하다’가 ‘어떡하다’로 줄듯이 ‘그렇게 하다’가 줄면 ‘그럭하다’가 되고, ‘이렇게 하다’가 줄면 ‘이럭하다’가 되고, ‘저렇게 하다’가 줄면 ‘저럭하다’가 되고, ‘아무렇게 하다’가 줄면 ‘아무럭하다’가 된다.

‘어떻하면’, ‘그렇하면’, ‘이렇하면’, ‘저렇하면’, ‘아무렇하면’과 같은 말은 없고, ‘어떡하면’, ‘그럭하면’, ‘이럭하면’, ‘저럭하면’, ‘아무럭하면’과 같이 써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94. ‘국어사전’도 감사해 보라 -《한 겨 레》 2002-09-25 -

요즘 국정감사 철이라 감사하는 국회나 감사받는 기관이나 두루 바쁘다던데, 이런 소동이 해마다 되풀이되는데도 국고금 기백억원을 쓴 어느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구석이 있어 이상한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해도 놀랄 의원님이야 많지 않겠지만, 노태우 정권 때 시작해서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 완성한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만들어지던 과정이나 만들어지고 난 뒤 그 사업을 감사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다. 만약에 국정감사를 받았다면 어찌 ‘표준’이란 이름을 달고 버젓이 서점에 진열될 수 있겠는가.

국어문화란 민족문화의 흙이다. 그 흙이 중금속으로 오염되면 거기서 자양분을 얻어 발전해 가는 민족문화는 중금속 중독에 걸릴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지면을 빌려 남북 말을 견주어 보는 글을 쓰면서 한 번도 글 쓰는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던 것은, 글 쓸 때마다 턱없이 뒤틀려 있는, 우리 국어문화의 기형화된 풍토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라면 국민 모두 우러러 받들 ‘표준’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겠는데, 우리 ‘국어’에는 그렇듯 많은 낱말이 없다. 그러므로 국회는 국어연구원이 무엇으로 50만개(70만개라고도 한다)의 낱말을 ‘표준’이라고 내세웠는지 전문가를 시켜서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 사전을 한 번 살펴본다면 흉년 든 들에 나가 가을걷이를 하듯 산더미 같은 북데기 속에서 한 줌의 알곡을 찾는 꼴이 되어 힘 빠지고 맥 다해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지 싶어진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95.‘짚이, 젖이, 솥이’의 발음 -《한 겨 레》 2002-09-26 -

우리말의 발음은 다른 말에 비하면 무척 쉬운 편이다. 글자의 소리값대로 발음하면 대체로 맞기 때문이다. 물론 ‘곤란’을 [골란]으로, ‘굳이’를 [구지]로, ‘나뭇잎’을 [나문닙]으로 발음하는 것이 까다로울 수 있다. ‘불고기’와 ‘물고기’, ‘결과’와 ‘성과’처럼 같은 글자가 달리 소리나는 것도 그렇긴 하다. 그러나 국어 발음은 대체로 닿소리이어바뀜, 입천장소리되기, 된소리되기, 소리의 덧남 같은 몇 가지 현상만 알면 별 어려움이 없게 된다.

그런데 요즘 ‘꽃을’을 [꼬슬]로 , ‘부엌에’를 [부어게]로, ‘팥에다’를 [파세다]로 발음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받침이 있는 임자말 뒤에 홀소리로 시작하는 토씨가 붙을 경우에는 임자말의 받침이 뒷말 첫소리로 발음(연음)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꼬츨, 부어케, 파테다]처럼 소리 내야 한다. 임자말에 겹받침이 있으면 앞 받침은 임자말의 끝소리로, 뒤 받침은 연음시켜 소리 내면 된다. 곧, ‘닭이’는 [달기], ‘외곬으로’는 [외골쓰로], ‘삶을’은 [살믈]이 된다. 이는 줄기와 씨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곧, ‘좇아서’는 [조차서], ‘깊은’은 [기픈], ‘엷으오’는 [열브오], ‘없어요’는 [업써요]로 발음해야 한다.

그러므로 ‘짚이’와 ‘집이’, ‘잎에’와 ‘입에’, ‘젖이’와 ‘젓이’, ‘빛으로’와 ‘빚으로’와 ‘빗으로’, ‘솥이’와 ‘솟이’, ‘들녘에’와 ‘저녁에’ 등을 구별하여 발음해야 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 대표

96. ~임에 틀림없다 -《한 겨 레》 2002-09-27 -

‘틀림없다’는 불완전 형용사여서 문장에서 홀로 서술을 완성하지 못하므로 ‘그 물건은 새것임이 틀림없다’ ‘그 괴한이 도둑임이 틀림없다’처럼 그 모자람을 채워주는 기움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토씨가 ‘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리말의 본새를 모르고 일본말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일본말에서 비교나 대조의 표준을 보여 ‘그것은 거짓말임이 틀림없다(それはうそにちがいない)처럼 쓰는 ‘に’를 ‘에’로 옮겨 ‘그것은 거짓말임에 틀림없다’는 투로 쓰고 있다. 따옴표(‘ ’) 안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우리말답다.

*가정 속의 일상인을 그리는 데 명수인 염상섭이 끝내 뿌듯한 사랑과 정열을 다룬 작품을 쓰지 못하고 만 것은 한 시대의 살림살이와 그 습속을 그리는 작가로서는 치명적인 ‘불구 현상임에 틀림없다.’(고등 문학) → 불구 현상임이 틀림없다/ 불구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불구현상이다.

*김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명제를 내걸고, 지난 광복절에는 제2의 건국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냈다. 나름대로 철학이 담겨 있는 ‘고심의 역작임에 틀림없다.’(耗일보 칼럼) → 고심의 역작임이 틀림없다/ (틀림없이) 고심한 역작이다.

말은 겨레의 얼을 담는 그릇이다. 중국인은 중국말에 저희가 자랑하는 ‘중화사상’을, 일본인은 일본말에 저희가 자랑하는 ‘대화혼’을 담는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배달말의 본새를 깨고 남의 말을 닮아 일그러진 그릇에 배달의 얼을 담으랴!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97. 세계속의 한국어 (2)호주.동남아쪽 현실 -《한 겨 레》 2002-09-28 -

■ 제도적 조건 갖춘 오스트레일리아

지난 8월 하순 시드니 시내에서 차로 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린필드 한국학교(교장 김병욱)에서는 초등학교 합창반이 부르는 동요 ‘옹달샘’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이 학교는 1993년에 주재원들이 주도해 세웠는데, 주말인 토요일에 여는 학교다. 그동안 시내 학교에 세를 들어 꾸려오다 97년부터 현재의 투라무라고등학교로 옮겨 왔다. 유치·초등·중등반을 두고 있으며, 전체 학생은 250명 정도다.

99년 남편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로 이민 온 김영아(32·간호사)씨도 이 학교 유치반에 딸 가영이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한국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생기고, 부모의 영어실력이 짧다고 불평하다가 서로 대화가 끊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았던 김씨는 주말에라도 딸을 한국학교에 보내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한다. 린필드 한국학교는 무료로 가르치는 종교단체들에 비해 석 달에 130오스트레일리아달러(9만원)를 내야 하는데다 집에서 차로 2시간이나 되는 거리에 있지만 감내하고 있다.

변호사이자 린필드 한국학교 교장인 김병욱씨는 학부모 중 주재원 자녀의 비율이 전체 250여명 중 5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여기 보내는 학부모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은 편이죠. 우리 학교에서는 수학·사회 등도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90년대 초 다문화주의 정책에 따라 각 학교에 이민자들의 신청이 있으면 출신국 언어를 가르치는 ‘공동체 언어과정’(커뮤니티 랭귀지 코스)을 정규 과정으로 개설하도록 했고, 특히 6개 주요국 언어로 ‘일본어·중국어·인도네시아어·스페인어·러시아어’와 함께 ‘한국어’를 가르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국어 과정은 2년반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 시드니에 한국어 교육 과정이 개설된 초등학교가 네 군데 있다.

시드니의 한인촌으로 불리는 캠시의 캠시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혜경(43)씨는 그동안 한국인 학부모들의 한국어 과정 개설 요청이 적었던 이유로 학부모들의 ‘영어 집착’을 꼽는다.

여기에다 제도는 열려 있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한국어 과정을 개설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동포 자녀 수가 올해 100명을 넘어선 시드니 칼링포드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가 개설돼 있지 않아, 이 학교를 다니는 동포 학생들이 외국어 과목으로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 몇몇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한국어 과정 개설을 학교장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한국어 과정이 채택되면 일본어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교과목을 바꾸게 될 것을 우려한 일본어 교사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이유였다고 한다.

■ 한국어 대접과 문제점들

뉴사우스웨일스주에는 15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물론 수강생 중엔 다른 민족 학생들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체 초중등학교 중 한국어 과목을 개설해 가르치는 학교는 모두 41개교로, 동포 자녀와 현지인을 합쳐 약 2800여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한국 이민자와 교역량이 늚에 따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95년 대학입학시험 선택과목에 한국어를 포함시켰다. 뉴사우스웨일스주 교육부의 한국어컨설턴트인 김숙희씨는 처음에 한국어가 채택되자, 한국 유학생들이 이 시험을 많이 봤는데, 상대적으로 이민 자녀들은 유학생들과 모국어 경쟁을 해봐야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 선택하는 학생이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부터 평가기준과 시험 유형을 현지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바꿔가고 있다고 밝혔다.

■ 동남아시아 쪽 현실

동남아시아에서는 제일 큰 한국학교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국제학교(교장 나화정)로서 초중등 학생이 1600명에 가깝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참여 역사와 함께 올해로 한국과 수교 10돌을 맞았지만 아직 이렇다할 동포 사회가 형성돼 있지 않은 실정이었다. 상사 주재원이나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거나 소규모 노동집약 공장 등을 운영하며 사는 동포들이 호치민(옛 사이공) 인근에 약 7000여명, 하노이에 약 7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호치민 외곽에 있는 호치민 한국학교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동포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 정규 초중등 교과과정을 가르치는 곳이다. 호치민시 한인 부인회에서 동포들과 현지 한인 기업체를 대상으로 학교 설립 모금활동을 펼쳐, 98년 한국 교육부와 베트남 당국의 인가를 받아 정식 학교로 문을 열었다. 지난해 말에는 새 건물이 완공돼, 현재 유치원과 초·중·고 과정 12학년에 28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성장했다. 토요일에는 국제학교 등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 수는 50여명 정도다.

이 학교의 교육부 파견 교사인 신우균(41)씨는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기 어려운 형편의 동포 자녀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에 돌아갈 때를 대비해 한국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외교관이나 학비 보조를 받는 상사 주재원 등 조건이 좋은 이들은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다. 올해로 베트남에 온 지 2년이 돼 가는 한 이동통신회사 주재원 박아무개씨는 두 아들을 모두 현지 국제학교(수업료 한해 1만~1만5천달러, 한국돈 1200만~1600만원)에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임기가 끝날 때를 앞두고 걱정이 많아졌다. “이런 단기 체류가 얘들 교육에 혼돈만 주지 않았나 걱정이 됩니다. 귀국하면 걔들 또래에 유행하는 말이나 게임 같은 또래문화를 접하지 못했다 보니, 왕따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어 배우기 바람은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한류’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94년 사이공외국어대에 한국어강좌가 개설되고, 같은 해 베트남 국립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에 한국어학과(동방학과 안에 개설됨)가 설립되는 등 베트남에서 한국어의 위상은 남달랐다.

지난 8월20일 저녁 7시 늦은 시각인데도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 건물의 ‘한국어 학당’ 강의실 안엔 한국어를 배우는 현지인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수준별로 4개 반(모두 150여명)이 공부하는 이곳의 강사 닌트랑탄(26)은 학생들이 대개 한국과 관련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역시 이 대학 한국학과를 졸업해 베트남에 나가 있는 한국 이동통신업체에 다닌다고 했다. 한국 기업은 비교적 나은 보수와 근무 환경으로 현지인들이 선망하고 있었다.

■ 공통적인 문제점과 과제

오세아니아나 동남아의 한국어 교육이 두루 당면한 문제는 △한국어 교육 정착을 위해서는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한국학·문화 전반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져야 하고 △교수·교사진 수준을 높여야 하며 △현지 동포들의 자발성과 한국 정부와 기업체 등의 적극적이고 항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드니 대학교 박덕수 교수는 “한국어 교육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정부 지원이 끊어지면서 한국어 교육이 독자적 기반을 쌓지 못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한국교육원 성하창 원장이나 그리피스대학 정재훈 교수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주도의 정책 입안으로 아시아 나라들의 말글 교육 기틀은 마련했다. 이제는 한국어의 경우 특히 동포사회의 자발적인 운동, 한국 정부와 기업체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해진 시점”이라며, 한국어 교사 양성, 교자재 개발, 전공학생 유인책 시행 등을 강조했다.

호치민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조명숙씨는 “한류 열풍으로 지펴진 한국과 한국말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게 하려면 단순한 경제적 차원이 아닌 역사·문화적으로 한국을 이해하는 한국통 연구자를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스트레일리아·베트남/글·사진 김경은 기자 iruri74@hani.co.kr

■오스트레일리아 주정부 한국어 컨설턴트 김숙희씨

뉴사우스웨일스주 교육부에 전화로 한국어 담당자를 찾으면, 귀에 익은 말이 들려온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정부 교육부 한국어 컨설턴트인 김숙희(53)씨의 목소리다. 한국어 교육에 관한 일을 물으면, 많은 이들이 그를 첫손에 꼽으며 추천한다. 원래 교사였던 그는 1981년 오스트레일리아인 남편과 만나 이국땅으로 온 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 키우기와 현지 적응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93년 뉴사우스웨일스주 교육부에서 한국어 사용기술(KUT)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국어 교육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교육부로 찾아갔다.

“무작정 찾아가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교직 경험을 살리면 저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한국어 프로젝트는 ‘호주는 아시아의 일부로서, 아시아를 배워야 한다’는 당시 폴 키팅 교육부 장관의 정책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스주 교육부에서 70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93년 2월 시범적으로 두 고등학교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활용해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95년부터는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연수한, 80여명 가량의 호주 현지 교사들이 각 학교에 배치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96년 말 자금 지원이 끝났다. 99년에 김씨는 프로젝트 관리자가 아닌 한국어 컨설컨트로 직함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한국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독자적인 부서였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 언어 컨설턴트들과 합쳐진 셈이지요.”

그는 요즘 더욱 고민이 많아졌다. 지난 5월 오스트레일리아 교육부 장관인 브렌든 닐슨이 96년부터 시작된 오스트레일리아 학교에서의 아시아 언어교육에 대한 지원을 예정보다 3년 앞서 올해 말에 끝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날사스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이 지원 기금에서 저와 같은 아시아 언어 컨설턴트의 월급이 나왔는데, 이제 제 자리도 끝나는 셈이지요. 내년엔 1년짜리 한국어 컨설턴트를 모집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다시 신청해 봐야겠지요”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93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로 처음 한국어를 배우고 전공한 현지 학생들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할 때입니다. 제가 아는 한 학생도 한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지금 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9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한국어 교육의 싹을 뿌렸는데, 이제 그 싹이 자라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국 정부에서 나서서 도와줬으면 해요.”

김경은 기자

■“한국어 사용 하루에 다섯시간 이상” 70%

린필드 한국학교 학생 중 초등 5년에서 중학 1년생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동포학생들은 대체로 한민족으로서 긍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35명 70%)

한국어는 주로 집과 학교에서(38명, 13명) 쓰며, 하루에 한국어를 말하는 시간은 다섯시간 이상이 35명(한시간 이상 9, 한시간 안쪽 3)으로 나타났다.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는 모국어이니까 배운다는 대답이 34명으로 나타났다.

한편, 기본적인 한국어 수준을 재어본 결과 평균 50점 안팎이었다. 이는 국내 초등학교 고학년들의 평균 점수 70점 안팎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음은 한국어 관련 의식조사 부문 문답 내용이다.

△한국어로 된 책은 얼마나 읽는가?

일주일에 한 권 이상 38, 한달에 한 권 이상 4, 일년에 한 권 이상 5

△한국어로 된 영화나 비디오는 얼마나 봅니까?

일주일에 한 편 이상 37, 한 달에 한 편 이상 4, 거의 보지 않음 7

△한국어는 왜 배웁니까?

모국어니까 35, 한국을 알고 싶어서 12, 부모님이 권해서 10

△한국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배우기 쉽다 13, 배우기 어렵다 12, 재미있다 17, 더 깊이 알고 싶다 11, 그저 그렇다 14, 재미없다 2

△장차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까?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 21, 여기서 머물며 이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다 7, 기술을 배워서 기술자가 되고 싶다 10, 사업을 하고자 한다 5

△한민족 출신으로서 자신에 대한 생각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1,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14, 부끄럽게 생각한다 1

△다른 민족 출신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17,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12, 잘 모르겠다 15

△한국음식을 얼마나 자주 먹는가?

하루 한끼 이상 49, 일주일에 몇끼니 1

98. 씨끝 ‘아/어’의 쓰임 -《한 겨 레》 2002-09-30 -

우리가 흔히 말은 자연스럽게 하면서도 글을 쓸 때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쓰/써’의 쓰임도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쓰다’에서 ‘쓰/써’는 쓰임새가 좀 다르다. 씨끝 ‘어/아’는 풀이씨(용언)를 어찌씨로 만들거나 뒤의 도움말을 연결하는 기능을 지닌다. ‘써’는 ‘쓰다’의 줄기 ‘쓰’에 씨끝 ‘어’가 합쳐져서 된 말이다. ‘쓰+어’의 꼴인데, 여기서 ‘으’가 줄어든 채 ‘써먹다, 써놓다, 써대다, 써내다, 써라’처럼 보조동사나 씨끝과 함께 쓰인다.

‘못쓰겠다’로 쓰일 때가 있으며, ‘그렇게 하면 못써’에서 ‘못써’는 ‘못+쓰+어’가 줄어서 된 반말이다.

‘쓰다’의 줄기 ‘쓰’는 ‘쓰려고, 쓸 데, 쓸모, 쓴 글씨, 쓰이다(씌다) …’ 등에서 그 본디 꼴이 나타난다.

‘어/아’ 씨끝이 붙어서 비슷한 형식으로 쓰이는 말들로는 ‘기쁘다/기뻐하다, 가쁘다/가빠하다, 나쁘다/나빠하다, 예쁘다/예뻐하다, 담그다/담가, 잠그다/잠가, 꼬느다/꼬나잡다, 달뜨다/달떠, 애쓰다/애써, 힘쓰다/힘써, 모으다/모아, 트다/터, 크다/커서, 아프다/아파, 헤프다/헤퍼, 고프다/고파, 슬프다/슬퍼 …’ 들이 있고, ‘르변칙’으로 이르다/일러, 빠르다/빨라, 조르다/졸라 …’ 들이 있다.

‘어’는 끝소리마디의 홀소리 ‘蒁, 蓡, 蕁, 蕡, 虁, 蚁, 蛁, 蛡, 螡’인 줄기와 ‘았/었’ 따위에 붙어 베풂, 물음, 시킴, 꾐꼴로 쓰인다.

‘아’는 끝소리마디의 홀소리가 ‘葡, 蒡, 薡’로 끝나는 말에 붙어 쓰이는 이음끝이다.

최인호/교열부장

99.‘-시키다’ 제대로 쓰기 -《한 겨 레》 2002-10-01 -

‘시키다’라는 말은 ‘청소를 시키다, 안주를 시키다, 일을 시키다’에서처럼 본동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안심시키다, 실망시키다’에서처럼 뒷가지(접미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시키다’가 뒷가지로 쓰일 때는 시킴(사동)의 의미가 들어 있다. ‘안심하다’는 ‘아무개가 안심하다’로 쓰이지만 ‘안심시키다’는 ‘아무개가 다른 누구를 안심시키다’로 쓰여서 ‘다른 누구를 안심하게 하다’로 해석된다. 그런데 요즘 이 ‘-시키다’를 시킴(하게 하다, 하도록 하다)의 의미가 없이 쓰는 일이 매우 흔하다.

‘남편은 아이들을 설득시켰다’와 같은 문장이 그런 경우다. ‘남편은 아이들을 설득시켰다’와 같은 문장은 ‘남편은 아이들을 설득하게 했다’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남편이 직접 아이들을 설득했으면서 ‘남편은 아이들을 설득하게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남편은 아이들을 설득했다’라고 해야 맞다. 이렇게 ‘○○하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시키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구속시키다, 석방시키다, 주입시키다, 정당화시키다, 촉진시키다, 유발시키다’ 따위가 다 ‘-시키다’를 잘못 사용한 경우다. 흔히 주고받는 말에서 ‘거짓말하지 마라’를 ‘거짓말시키지 마라’라는 식으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물론 ‘취직시키다, 구경시키다, 망신시키다, 탄생시키다, 감흥시키다, 실망시키다’ 따위는 뒷가지 ‘-시키다’를 제대로 쓴 경우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00. ‘~에 다름아니다’-《한 겨 레》 2002-10-02 -

우리말에서 ‘견주어 보아 다른 점이 없음’을 뜻하는 그림씨에, 견줌토씨 ‘과/와’가 붙은 임자말에 맞추어 쓰는 ‘똑같다’와 ‘다름없다’가 있지만 ‘다름아니다’는 없다.

일본말 “そのこうい(行爲)はざいあく(罪惡)‘にほかならない’” 중에서 따옴표(‘ ’) 부분을 ‘~에 다름아니다’로 옮겨, 자연스런 우리말을 몰아내고 즐겨 쓰는 것이 마치 논에서 벼를 뽑아버리고 피를 가꾸는 꼴이다.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한다.

*올림픽 특수를 이용해 광고 수입이나 챙기고 시청률을 높여보겠다는 방송사들의 속셈은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티브이 방송의 추악한 ‘이기주의에 다름아니다.’(耆일보 사설) → 이기주의와 다름없다/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다/이기주의다.

*여야가 합의해서 실정법으로 정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일방적으로 깨버린 집권세력의 행위는 폭력으로 법을 ‘어긴 것에 다름아니다’(耆일보 기사) → 어긴 것과 다름없다/어긴 것이다.

*대통령이 밤마다 뉴스 첫 부분에 얼굴을 내보이는 것은 통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집권욕에 다름아닌’ 뻔한 행보를 연출하는 것이다.(耝일보 사설) → 집권욕에 지나지 않는/집권욕과 다름없는.

*보라매공원에서 수많은 군중이 공안정국 종식을 외친 것은 이런 정치 부재를 ‘질타한 것에 다름아니다’(한겨레 논단) → 질타한 것이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01. 사전을 무슨 국감? -《한 겨 레》 2002-10-03 -

국립기관인 국어연구원이 설립된 뒤 주된 사업 성과로 내놓은 것이 ‘표준국어대사전’인데, 햇수가 지나기는 했으나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이렇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며 꼼꼼히 뒤적여 보는 동안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새 맞춤법 적용을 빼고는 기존 민간 사전의 수준을 넘지 못한 채, ‘국립’과 ‘표준’이란 이름을 내건 것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이런 사전을 만들었으며, 관할 부처는 어째서 ‘표준’이란 이름을 달도록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더라. 부피가 놀랍도록 부풀었던 것은 온갖 말 잡동사니에다 인명·지명까지 올린 데 있음을 확인하고 나니 무슨 허깨비를 본 듯했다.

첫째, 고유어보다 한자말 중심으로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쓰이지도 않는 한자말을 찾아내어 올림말 수를 늘렸다. 둘째, 외래어와 외국어 찌끼를 모셔들여 올림말 수를 늘렸다. 셋째, 나라말의 주체성을 짓밟는 짓을 저질렀다. 우리 고유의 겨레말을 한자말로 많이 바꾸었다. 넷째,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일본말 찌꺼기까지 올렸다.

나라말이 맡는 구실과 지니는 위상이나 말의 쓰임에 따르는 법적인 문제점을 두고 보더라도 국고금으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을 국정감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된다. 국어사전은 한 나라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할 무거운 소임이 있고, 그 기준이 되므로 감사 결과 이런 지적사항이 사실로 드러나면 언어생활에 나타날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런 사전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사전을 만든 사람한테도 걸맞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102. 겹받침 소리 -《한 겨 레》 2002-10-04 -

‘여덟과, 읊고’를 어떻게 소리내는지 고민해 본 분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덥꽈, 을꼬’처럼 소리냈다면 ‘여덜과, 읍꼬’로 바로잡기 바란다. 또 ‘밟고, 얽고’는 ‘밥꼬, 얼꼬’로 해야 한다. 이는 표준발음법에서 겹받침 소리를 내는 방법을 따른 것이다.

‘닭·값·여덟·외곬’은 ‘닥·갑·여덜·외골’처럼 소리낸다. 겹받침 중 어느 하나만 발음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들 말 뒤에 닿소리로 시작하는 토씨가 오면 여전히 받침 하나만 발음하게 된다. ‘닭과, 값도, 여덟만, 외곬로’는 ‘닥꽈, 갑또, 여덜만, 외골로’처럼 소리낸다. 그러나 홀소리로 시작하는 토씨가 오면 두 받침이 다 소리난다. ‘닭은, 값이, 여덟을, 외곬으로’는 ‘달근, 갑씨, 여덜블, 외골쓰로’처럼 소리낸다.

그런데 풀이씨의 겹받침은 소리내기가 좀 까다롭다. ‘맑다, 늙지, 묽다’는 ‘막따, 늑찌, 묵따’처럼 나지만 ‘맑게, 늙거나, 묽고’는 모두 ‘말께, 늘꺼나, 물꼬’처럼 소리낸다. ‘핥다, 핥고, 핥지’는 ‘할따, 할꼬, 할찌’로 소리나지만 ‘읊다, 읊고, 읊지’는 ‘읍따, 읍꼬, 읍찌’로, ‘밟다’는 ‘밥따’로 소리나지만 ‘넓다’는 ‘널따’로 난다. ‘밟고, 밟게, 밟소, 밟는’은 ‘밥꼬, 밥께, 밥쏘, 밤는’으로 소리나고, ‘넓고, 넓게, 넓지, 넓죽하다, 넓둥글다’는 ‘널꼬, 널께, 널찌, 넙쭈카다, 넙뚱글다’로 난다.

비록 쉬운 것 같은 우리말의 발음도 살펴보면 만만찮음을 알게 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103. 세계속의 한국어 (3) 미주에 뿌리내리는 한국어 -《한 겨 레》 2002-10-05 -

◇ 이중언어 과정의 브라질·아르헨티나 한국학교

지난 8월23일 브라질 한국학교(교장 마리아 테레자) 부설 유치원에서는 레오, 데보라, 성범이 등 다섯명의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현정·권진아 교사가 한국말과 포르투갈말로 번갈아 축하한 뒤 아이들과 함께 한국말, 포르투갈말, 영어 차례로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파라벵스 파라 보체, 네스타 다타 케리다 ~” “…….” 현지 말과 모국어를 같이 쓰면서 살아가는 재외동포의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상파울루 한인촌인 봉헤치로에 자리잡은 브라질 한국학교는 1998년 정규 한국과정을 시작해서 지금은 오전 브라질 과정, 오후 한국과정(주당 25시간씩)을 병행한다. 학생 수는 유치원생 51명을 포함해 227명이다.

브라질(1억7천여만명)에 사는 동포 수는 4만6천여명이며, 상파울루 한국교육원(원장 신상수)이 관할하는 교회, 한인회 등 부설 한글학교가 전국에 21곳(교사 122명, 학생 1188명)이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마을 플로레스(백구촌)에 있는 아르헨티나 한국학교(교장 글라디스 바사)도 오후 한국과정(95년 개교)과 오전 현지과정을 병행하고 있다. 유치원생 53명에 7학년까지 초등학생 87명이 다니고 있다.

이 학교 2·6학년 국어, 1·2·3학년 수학 등을 가르치며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정정숙 교사는 “한국 교과서를 그대로 쓰지만 그때그때 이곳 사정과 다른 점을 설명해 가면서 인터넷이나 비디오 등으로 보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학교 아이들의 한국어·문화·역사 이해도가 한국 아이들보다는 처지지만 보통 교민 자녀들보다는 훨씬 높다”고 말했다. 글라디스 바사 교장은 “아르헨티나 공립학교들은 한 학급 정원이 30~45명에 이르는 게 보통인데, 우리 학교에서는 한 반이 15명 안팎으로, 교사가 개별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돌봐줄 수 있으므로 우리 학생들은 행운아”라고 말하면서도, 경제난 등으로 한국교민 수가 차츰 줄어드는 현실을 고려해서인지 “학생 수가 10명 아래로 떨어지면 사회적 상호작용 부족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학교 운영법인 ‘아르헨티나 한국교육문화원’의 신상현(61) 이사장이나 아르헨티나 한국교육원 주윤수 원장은 “동포 수가 줄고 있지만, 우리 유치원 학생 수는 오히려 늘어 학교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미 파라과이에도 한국교육원(원장 임동찬)과 한국학교(교장 박남금)가 있는데, 파라과이 한국학교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과는 달리 오전·오후 모두 한국과정(유치원 1학급 27명, 초등 학년별 2학급 112명)을 운영하고 있다.

◇ 한국어를 대하는 태도와 한국어의 변모

‘그 나라에 적응하려면 현지의 가치기준과 현지말을 익히는 게 우선이며, 한국말은 잊어야 한다’고 현지 동화를 중시하는 관점을 두고 아르헨티나 언론인 김영길씨는 “꼬레아노는 꼬레아노일 뿐이다.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면 한국을 알고 이 나라를 알아야 한다. 무국적이면 안 된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최대 일간지 〈클라린〉(부수 100만)에서 지난 6월 월드컵 축구대회 무렵 한국인을 채용하겠다고 해서 한 사람을 추천했는데, 일주일 만에 ‘한국인들은 왜 1.5세, 2세를 그렇게 키우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 정서를 잘 전해줄 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도 모르고 한국도 모르더라. 실망했다”고 했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 한국학교 부설 토요학교 교사 우한승(38)씨도 어린이·청소년 외에 직장에서 한국말을 할 필요가 있는 이도 배우러 온다며,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도 ‘진입 장벽’ 탓에 주로 한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90년대 초반 상파울루에서 배우리한글학교를 세운 김동순(46)씨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의 의식유형을 △다른 사람들이 보내니까 △모국어 교육이 필요하여 △자녀와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안 보낼 수 없으니까 등 넷으로 보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백구촌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박순심(42)씨는 주로 세번째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아들 최성공(4년)군, 딸 성실(2년)양을 한국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브라질 한인대학생연합회(ABUC)가 주관하는 성인 대상 주말한글학교 ‘한-브 언어학당’ 기초반에서 공부하는 브라질인 파비아(치과의사)는 손님이 주로 한국인이라서 의사소통에 필요해서 한국말을 배운다고 했다. 또 이곳에서 제갈명, 이동준, 권강철, 권강민씨와 함께 고급반 수업을 받던 김인선씨는 200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 한국회사에 취업했다. 그는 어릴 때 한글학교에 다녔지만 쓰기 등에 능숙하지 않아 더 잘하기 위해 다시 배우는 참이었는데, 한국말을 익히려고 1주일에 한국 드라마 녹화 비디오를 5편쯤 본다고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온세지역에서 의류업을 하는 주태섭씨 등 자녀에게 한국 방문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이나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유진(10·상파울루 두리서당한글학교)양 등은 한목소리로 모국 방문이 우리말을 익히고 모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면서, 모국 방문 기회를 많이 마련하는 게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어를 보존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어를 익혀야 할 15살 아래 어린이 중에서 20% 정도만 한국학교·한글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 교포를 위한 교과서-한글〉을 펴내기도 한 안경자 전 상파울루한국학교(주말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즐겁게 한글학교에 다니도록 하기 위한 전제로 △현지 사회와 문화에 어울리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회화 교재 개발 △현지어와 한국어의 특성을 두루 이해하는 교사 확보 △적절한 교과과정과 학습지도안 마련을 들었다.

튀기말도 생겨났다. 재아한인대학생회(AUCA) 회장 김선희(23·부에노스아이레스대 정치학과 4학년)씨는 “바모 아 저기 노소트로스”(우리 저기로 가자) “메 보이 아 미 가게”(난 가게에 간다), “이거 너 잡아(가져)” “엄마가 나 가지러(데리러) 안 온다”와 같은 말이 젊은이와 어린이 사이에 쓰인다고 말했다.

◇ 미국, 캐나다 쪽 현황

이민 역사 100년의 미국에는 200만의 동포가 살고 있는데, 그만큼 한국어도 뿌리와 가지를 뻗치고 있는 중이었다. 한글학교만 해도 96년 809곳, 2002년 3월 현재 999곳으로 증가해 왔다. 교원 수 8천여명, 학생 수는 5만7천여명에 이른다. 성당, 절 등 종교단체 부설 학교가 많고, 한인회 등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미국에서는 대학 수학능력 시험의 과목별 시험(SAT 2) 외국어 선택과목에 한국어가 95년에 채택돼 97년에 첫 시험을 치렀으며, 응시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에스에이티2 외국어는 한국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독일어, 현대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9개 언어다.

워싱턴주 타코마시 링컨고교의 주덕락 교사는 “워싱턴주의 공립고교에선 동포 학생보다 동양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 한국인의 친구, 입양·혼혈인 등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힘은 들지만 ‘민간 외교관’이라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 사회와 문화, 역사 등을 소개하는 구실도 아우른다는 얘기다.

원래 음악 전공인 한인선 교사(워싱턴주 페더럴웨이시 디케이터고교)는 음악을 이용한 우리말 가르치기를 많이 이용한다. 그는 현지 중고교용으로 알맞은 교재가 별로 없어 학습지도안 개발에 시간이 많이 드는데, 한국어 교재를 만들 때 현장 교사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어 읽고 쓰기를 못하는 한국인이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례도 있었다면서, 한국어를 모르고 크면 정체성 문제 때문에 부모와의 갈등뿐 아니라, 현지 사회 어느 조직에서도 인정받지 못해 방황하는 이가 많다고 털어놨다.

캐나다(동포 17만~18만명) 쪽 한글학교는 96곳에 교사 429명, 학생 6040명에 이른다. 서성진 캐나다 한국교육원 원장은 “캐나다에서는 미국과 달리 정부가 소수계 언어를 정규학교에서 방과후 과정으로 개설하게 해 지원하는데, 한국어도 중국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과 함께 90여 지원 대상 언어의 하나”라며 “온타리오주 토론토 교육청의 경우 32개 초·중등학교에 한국어 프로그램을 개설해 교사 인건비와 시설 사용료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체 한글학교 학생의 절반 가량이 교육청이 지원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주미대사관 김왕복 교육관은 “재미동포 학부모와 교사들은 뿌리교육과 민족교육 관점에서 한글교육을 강조하고 학생들에게 무조건 따라서 하라는 데서 벗어나 2, 3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문화를 배움으로써 장차 사회생활에서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게 만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국교육원 육계원 원장, 휴스턴 이종훈 원장, 뉴욕 이용성 원장 등은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보다 다른 외국어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은 점을 지적하며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 등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이중언어 구사자들에 대한 취업문호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동포들이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육원을 비롯한 현지 학교, 동포들의 과제로서 △다수 소규모 학교의 통합 △체계적으로 제작된 시청각 자료 확보 △우수 교사 확보, 교원자질 향상을 위한 연수기회 확충 등을 꼽았다.

한편, 지역 교육원별로 한글백일장, 합창대회, 합동 교사 연수회, 동화책 번역, 에스에이티2 한국어반 개설준비 모임 들을 활발히 벌이고 있었다.

상파울루 부에노스아이레스/글·사진 박정숙 기자pak25pr@hani.co.kr

■브라질·아르헨 한국학생 설문 /한국어 사용시간 하루 5시간이상

◇ 설문조사(브라질한국학교 49명, 아르헨한국학교 27명, 복수응답도 있음)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학교 학생들도 자신을 한민족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학생들이 절대 다수였다. 한국어 역시 모국어이자 한국을 알아야겠기에 배운다는 대답이 다수였다. 설문과 대답을 간추린다.(괄호 안은 아르헨 쪽)

△한국어는 어느 때 주로 씁니까?

집에서 39(아르헨 18), 학교에서 29(18), 친구와 26(6), 기타 3(4)

△하루에 한국어를 얼마나 듣고 말합니까?

다섯시간 이상 29(21), 한시간 이상 19(5), 한시간 안쪽 2(3)

△한국어로 된 책은 얼마나 읽습니까?

일주일에 한 권 이상 30(23), 기타 10(6), 한달에 한권 7(1)

△한국어로 된 영화·드라마 등은 얼마나 봅니까?

일주일에 한 편 이상(매일도 다수) 29(29), 한달에 한 편 7(2), 거의 보지 않음 15(2)

△한국어는 왜 배웁니까?

모국어니까 27(10), 한국을 알고 싶어서 27(15), 부모님이 권해서 13(3), 기타 1(2)

△한국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재미있다 21(17), 배우기 어렵다 18(3), 배우기 쉽다 13(8), 더 깊이 알고 싶다 8(10)

△한민족 출신으로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9(25),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11(2)

△다른 민족 출신들과 견줬을 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20(4),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14(11), 잘 모르겠다 12(5)

△한국음식은 얼마나 자주 먹습니까?

하루 한끼 이상 41(19), 일주일에 한끼 정도 3(6)

△장래 희망은?

의사 6(5), 음악가 4(5), 화가 (5), 축구선수 4, 과학자 2(3), 교사 1(5), 배우 2, 디자이너 (2), 요리사 (2), 목사 (2), 사업 기타(2), 판사 1

◇ 기본적인 한국어 상식을 물어본 결과, 브라질 쪽 평균 46점, 아르헨티나 쪽은 78점이 나왔다. 대상은 초등학교 상급반(4~6)이었는데, 설문조사 때의 분위기에 많이 좌우되므로 크게 뜻있는 수치는 아니다.

■미 수능시험 한국어 진흥재단 문애리 이사장“

에스에이티(SAT)2 한국어 진흥재단 문애리(45·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사진) 이사장은 “어떤 동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게 하면 그들의 주류사회 진출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코리안 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감을 높이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반을 개설한 곳은?

=1997년 1월에 19개교 55반 1471명이던 것이 올해 5월 41개교 150반 3326명으로 늘었습니다. 새학기 현황은 집계 중인데, 45개교에 약 4000명이 수강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미국 대학위원회(칼리지 보드)에서 95년 5월 우리나라 대학 수학능력 시험(SAT)의 제2외국어 등에 해당하는 에스에이티2 과목으로 한국어를 채택해 97년에 첫 시험을 치렀을 때 응시자 수는 2440여명이었으며, 지난해 11월 제5회 시험 응시자 수는 3366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비슷한 때 시작한 일본어·중국어 시험 응시자 수에 비하면 적지만 증가율은 훨씬 높습니다.

-재단은 어떤 일을 합니까?

=한국어반 신설·보존·증설을 위해 각 지역을 돌며 한인회·학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엽니다. 한국어 교사 연수회, 미국 중고교 교장·교육감 한국 연수회, 에스에이티2 한국어 모의고사 지원도 주요 활동입니다.

-한국어반을 개설·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방법·교재, 유능한 한국어 교사 부족이 큰 문제점이지요.

한편, 대학에 비해 초중등학교에 한국어·한국학을 보급·권장·지원하는 한국 정부기관·단체의 지원과 노력이 미흡한 점이 아쉽습니다.

박정숙 기자.

■한-브라질 교육협회 안정삼 회장 “

동포들 성금 힘입어 정규 한국학교 설립”

“흔히 ‘교육은 국력’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교육은 생명’이라고 봅니다.” 한-브 교육협회 안정삼(61·사진) 회장의 말이다. “우리 협회는 애초 브라질 한국학교 건립 모금활동을 벌였고, 이젠 학교설비와 운영자금 지원, 장학사업 들을 합니다. 이사가 80여명이며, 김철언씨에 이어 제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학교는 어떻게 세우게 되었습니까?

=주말 공부로는 한글을 깨치는 수준에서 그치고 한국어를 자유롭게 부려쓰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요. 그래서 83년 주말 한글학교인 상파울루한국학교를 세운 한백진흥회에서 88년부터 정규 한국학교 설립을 검토하기 시작해 92년 4월 협회를 꾸렸습니다. 한국 교육부와 브라질 현지 교육청의 인가를 받아 98년 3월 유치반과 초등 3학급의 한국과정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브라질 과정은 8학년, 한국 과정은 6학년까지 두고 있습니다.

-학교 설립 자금은 어떻게 모았나요?

=뜻있는 동포들과 현지 진출 한국 회사들의 참여로 350만달러를 모으고 한국 정부에서 300만달러를 지원받았습니다. 50레알 성금 운동을 펴기도 했는데, 지금에야 밝히지만, 막바지 공사 무렵 자금이 달려 애를 먹을 때 의류업을 하는 신동진씨가 이름을 숨기고 50만달러를 기탁해 큰 도움을 받기도 했지요.

-브라질 과정을 함께 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한국어와 포르투갈어 과정을 아울러,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현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사람을 길러내려는 것입니다.

안 회장은 현재 200여명인 학생을 50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 대강당·실내체육관을 짓고 교사 처우를 높이는 것이 꿈이자 교육협회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박정숙 기자

104. 막쓰는 ‘질곡’-《한 겨 레》 2002-10-07 -

말을 제대로 알고 쓰는 때도 있고 대충 맞추어 쓰는 때도 있다. ‘질곡’이란 말도 그렇다. ‘얽매임·속박’을 나타내는데, 글자는 ‘차꼬(桎)와 고랑(梏)’이다. 한자 자체도 이 말 아니고는 거의 쓰지 않는다. 차꼬는 발에, 고랑은 팔에 차는 형틀인데 쇠고랑, 족쇄·수갑 정도다. 이 말을 글쟁이들도 얼마나 부실하고 흐리멍텅하게 쓰고 있는지 살펴보자.

△질곡의 아프리카를 정치적으로 묶어둔/ 분단의 질곡/ 현대사의 어려운 질곡을 겪던 시기에/ 역사의 질곡이 서려 있다/ 질곡을 넘는 동안/ 발달상의 질곡/ 소유소득의 질곡/ 현실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 부상의 질곡에서 헤매다/ …. △짊어지고 가야 할 질곡의 세월/ 질곡의 청산/ 질곡의 연속/ 질곡의 압제/ …. △질곡에 빠뜨리고/ 연옥과 질곡으로 몰아넣고/ 질곡을 헤쳐나가는 모습/ 질곡을 박차고/ 질곡을 벗기 위해/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다우존스의 질곡을 넘어/ 희생과 질곡에 쌓여/ ….

여기서 ‘분단의 질곡, 역사의 질곡 …’들도 흐리멍텅한 비유다. 비유란 실체를 좀더 뚜렷이 보여주려는 데 목적이 있는데, 오히려 흐리는 구실을 한다면 쓰지 않으니만 못하다. 글멋과는 더욱 멀다.

‘질곡이 서려 있다, 질곡을 넘어’ 같은 표현도 우습고, ‘질곡을 헤매다, 질곡으로 몰아넣다, 질곡에 빠뜨리다, 질곡에 쌓이다, 질곡을 나누다, 질곡을 받다, 질곡되다’에 이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쓰지 않는 게 나을 때가 많고, 굴레·멍에·올가미로 쓰면 적확하고 말도 쉬워진다. 말은 우선 쉽고 정확해야 하고, 격식도 거기서 나온다.

최인호/교열부장

105.‘지’와 ‘耈지’ 구별 -《한 겨 레》 2002-10-08 -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도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갈지 말지 모르겠다’나 ‘언제 올지 모르겠다’ 따위를 ‘갈 지 말 지 모르겠다’, ‘언제 올 지 모르겠다’와 같이 적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잘못은 ‘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지 3년이 지났다’ 같은 예문에서는 ‘지’가 의존(불완전) 명사이고, 의존명사는 그 앞의 말과 띄어 써야 하기 때문에 ‘돌아온지’가 아니라 ‘돌아온 지’로 쓰는 것이 맞다. 마치 ‘고향에 있는 동안 농사를 지었다’에서 ‘동안’이 의존명사여서 ‘있는동안’이 아니라 ‘있는 동안’으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곧 ‘고향에 돌아온 지 3년’이라고 할 때의 ‘지’는 ‘어떤 일이 있은 얼마만큼의 시간’이란 뜻의 의존명사다.

그런데 ‘갈 지 말 지 모르겠다’처럼 적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갈지 말지 모르겠다’로 적어야 옳다. ‘갈지 말지’의 ‘갈지’는 줄기(어간) ‘가-’에 씨끝(어미) ‘-耈지’가 결합되었으므로 줄기와 씨끝은 붙여 적는다는 띄어쓰기의 큰 원칙에 따라 ‘갈지 말지’라 적어야 한다. 이 때 ‘갈지 말지’의 ‘지’는 의존명사가 아니라 ‘耈지’ 한덩이로 씨끝이다. 마치 ‘오는지’의 ‘-는지’가 씨끝인 것과 같다. ‘언제 올지 모르겠다’도 줄기 ‘오-’에 씨끝 ‘耈지’가 결합되었으므로 역시 ‘올 지’가 아니라 ‘올지’라 적어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06.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 겨 레》 2002-10-09 -

‘표준국어대사전’ 문제에 대해 지난주말 국정감사에서 거론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나마 반갑다.

그렇지만 ‘사전’의 일러두기에 뺄 것은 빼고 올렸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도 문화부는 국감장에서 여러 문헌에서 한번씩 쓰인 낱말은 다 올렸다고 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왕 지적했던 원앙계(鴛鴦契) 등이 어떤 문헌에 나왔는지 모르지만 이런 일본어 찌꺼기는 걸러내야 했다.

이 시대에 쓸모가 없는 낱말을 ‘사전’에 올리는 일을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기 어렵다. 국어사전이란 국민의 언어생활을 바로잡아 주는 데 ‘표준’ 구실을 하기에 국어사전의 잘못에서 오는 언어생활의 혼란 책임은 마땅히 사전을 만든 이들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전’이 나온 지 오래되어 여러 판이 팔리고 많은 이들이 이미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팔린 책을 위해서나 새 판을 짤 때를 위해서 잘못된 부분들을 밝히는 ‘바로잡기표’를 만들어 ‘사전’을 가진 분들께 주어야 한다. 이런 일에 게으르면 그 죄과가 더욱 무거워진다는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므로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든 국어연구원에 이렇게 요청한다.

첫째, 전문가들에게 맡겨 잘못된 낱말이나 부분, 체제들을 가려내도록 하라. 둘째, 가려낸 낱말들은 ‘바로잡기표’를 만들어 돌리고, 새 판을 만들 때는 이를 적용하라. 그렇게라도 해야 국고 낭비 없이 새 모습의 ‘사전’이 다듬어져 나오게 될 것 아닌가.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107. 긴소리 -《한 겨 레》 2002-10-10 -

같은 글자로 되어 있는 말이라도 소리의 길이에 따라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들이 있다. ‘발’은 짧은소리로 하면 다리의 아랫부분을, 긴소리로 하면 방이나 창문을 가리는 물건의 뜻으로 쓰인다. ‘눈, 밤, 감, 말, 돌’ 등도 소리의 길이에 따라서 다른 뜻이 낱말이 된다.

그런데 표준 발음법에서, 긴소리 낱말이라도 ‘첫눈, 알밤, 단감, 높임말, 맷돌’처럼 합성어의 뒤 음절에 오면 긴소리가 짧아진다.

풀이말은 짧은소리 말이라도 씨끝과 함께 줄어드는 경우에는 긴소리로 바뀐다. ‘보아’가 ‘봐’로, ‘하여’가 ‘해’로, ‘되어’가 ‘돼’로 줄어들면 긴소리가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긴소리라도 홀소리로 시작하는 씨끝이 붙으면 짧은소리로 바뀌는데, ‘감다’가 ‘감아, 감으니’처럼 짧아지는 것이 그 보기다. ‘밟다, 신다, 알다, 걷다, 젓다’ 따위도 활용에 따라서 짧은소리로 바뀐다. 다만, ‘끌다, 떨다, 썰다, 없다’ 따위는 어떻게 활용하더라도 긴소리로 난다.

긴소리라도 입음, 하임 뒷가지가 붙으면 짧은소리로 바뀐다. ‘꼬다’에 입음 뒷가지가 붙어 ‘꼬이다’로 바뀌면 소리가 짧아진다. ‘알다, 밟다, 불다, 울다, 웃다’ 따위도 ‘리, 히, 기’ 따위 입음 또는 하임 뒷가지가 붙으면 짧은소리로 난다. 다만, ‘끌다, 벌다, 없다’ 따위는 어떤 뒷가지가 오더라도 긴소리로 난다.

비록 글자로는 분간이 안 되지만 발음은 긴소리 짧은소리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내야 한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108. ‘~있으시기 바랍니다’-《한 겨 레》 2002-10-11 -

‘있다’의 높임말은 ‘계시다’지 ‘있으시다’가 아닌데, 백화점이나 상점 따위에서 “우수한 새 상품을 많이 들여 왔으니 많은 이용 있으시기 바랍니다”고 하고, 행정 당국이나 관공서에서 국민, 주민에게 정책 홍보를 할 때 “국민(주민) 여러분의 많은 협조 있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다.

‘있으시다’를 ‘계시다’로 바꾸어도 우스운 것은 이 말이 일본말 ‘あ(有)りた(度)くおね(願)がいします’를 서투르게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용 있으시기 바랍니다”는 “많이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이 이용해 주십시오”로, “많은 협조 있으시기 바랍니다”는 “많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이 도와 주십시오”로 고쳐야 한다.

“잘 부탁합니다”는 일본사람들이 무슨 일을 적절하게 처리해 주기를 당부하는 뜻으로 쓰는 말 ‘よろ(宜)しくねが(願)います’를 엉터리로 옮긴 것이다.

‘よろしく’는 ‘적당히, 적절히’를 뜻하는 어찌씨로, 그 속뜻이 자신의 당부를 받은 사람의 행동을 한정하는 월조각인데, 그것을 ‘잘’로 옮겨서 ‘잘 부탁한다’고 하면, 말하는 사람 자신이 부탁을 잘한다는 칭찬이 되어서 우스꽝스럽다.

그러므로 ‘부디 잘 돌보아 주십시오, 아무쪼록 잘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고쳐 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당한 이득을 노리는 악덕 기업인이 이권에 관계 있는 업무를 맡은 행정부서나 국회 등에서 청탁, 로비활동을 할 때나 씀직해서 아주 메스껍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09. 세계속의 한국어 (4)재유럽동포 언어 -《한 겨 레》 2002-10-12 -

외국에서 타국민이 자국의 문화생활권을 형성하려면 한 도시에 3만명 정도는 살아야 한다고 한다. 유럽에 사는 동포는 독일 3만, 영국 1만5천, 프랑스 1만, 이탈리아 5천 등 모두 합쳐 7만명 정도다. 이들이 유럽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적 문화권을 이뤄 살기는 지극히 어려워 보였다. 아이들 한국어 교육도 그렇다. 용수철처럼 일껏 당겨 놓아도 손을 놓는 순간 제자리로 되돌아가 버린다. “아이들은 한눈만 팔면, 틈만 있으면 불어를 한다.” 파리한글학교 김소희 교사의 말이다.

◇ 동포 1세대의 후회와 반성

한 독일 유학생은 “우리말로 얘기다운 얘기를 나눌 만한 동포 2세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용수철 같은 모국어의 끈을 먼저 부모가 잡아주어야 하지만 이민 초창기의 현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동포 1세대가 광부·간호사 등으로 독일에 정착하고, 일부가 스위스 등으로 이주할 당시 독일이나 스위스는 한국에 비해 까마득한 선진국이었고, 아이들을 독일인이나 스위스인과 닮도록 키우기에 바빴으며, 한국어는 현지어 습득을 위해 외면해야 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독일말과 한국말을 둘 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도 했고,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학교 다니면서부터는 형제들이나 우리들과도 독일말로 대화하려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이니까 한국말을 알아야 한다는 걸 강조했더라면 지금처럼 한국말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스위스 베른한글학교 김정주 교장)

그러나 1세대들의 이런 후회와 반성은 지금 유럽에서 한국어 교육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지 못한 내 잘못을 젊은 사람들에게 말해줌으로써 깨우칠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한글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는 김 교장의 말처럼 이들 1세대가 80년대 이후 변화한 한국어 교육의 새로운 토양 위에서 한국어의 새로운 수요자들을 위해 한국어 교육의 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 새로운 한국어 수요자들과 교육 토양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동포가 살고 있는 독일의 경우 한글학교 37곳에서 240여명의 교사가 1700여명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90년대 초를 정점으로 학생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1세대의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대부분 졸업한 상태이고(일부가 성인반에 나오기도 함), 이 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아 동포 유입이 적은 까닭이다. 대신 그 빈 자리를 한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늘고 있는 상사 주재원, 유학생 등 일시 거주자들의 자녀, 80년대 이후 주로 독일인과 결혼하여 정착한 영주동포 자녀, 그리고 드물지만 한국인 입양아들이 채우고 있다.

영주동포 자녀들이 부모와 모국어로 대화하기 위해, 한국의 문화·역사를 알기 위해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운다면, 주재원이나 유학생 자녀들은 장차 한국에 돌아간 뒤를 대비해 ‘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운다. 배우는 동기가 다른 아이들이 어울려 한글학교의 미래를 받치고 있었다. 여기에 곧 3세들이 합류할 참이었다.

요즘 유럽에서 만난 학부모와 교사들은 1세대와 비교하면 ‘극성’이라 할 만큼 한국어 교육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의식변화의 계기는 유럽과 한국 양쪽에서 찾아왔다. 현지 쪽에서의 변화 계기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잘해야 반쪽짜리 유럽인밖에 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동포 2세들은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한국어와 한국적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도 유럽 사회에서 온전한 유럽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고 한다.

“한 대학 친구는 김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말이라고는 ‘김치’밖에 모르는, 그야말로 독일인이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니 유학생도 섞여 있고 하니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었고, 지금껏 한번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도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게 따라다닌다고 말했다.”(베를린한글학교 김수련 교사)

동포 2세들이 유럽에서 이방인이란 걸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은 외모로 인한 이질감 때문만은 아니다. 김 교사 말로는 동포 학생들은 진로 문제에서도 독일인이면 하지 않을 고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역사학과에 가고 싶어하던 한 학생이 있었는데 인문사회과학 쪽에 외국인 교수가 드문 독일 학계의 보수성향 때문에 고민하더니 결국은 포기했고, 외교관이 꿈인 한 학생은 독일 정부가 독일을 대표할 외교관으로 자기를 써 주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고민하는 걸 보았다.” 소수민족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유럽의 호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서 그쪽 주류사회에 들어가기에는 장벽이 너무나 높다는 얘기다.

변화의 또다른 계기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높아진 국제적 위상이다. 한국·한글학교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 중 하나는 “외국에 사는 동포 자녀들이 한국을 위해서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유럽에서도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한 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인정받을 조건이 익은 만큼의 한국어 공부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 한글학교와 한국어 교육 현황

유럽에서도 한국어 배우기에 나선 동포 가정에는 휴식이나 여가를 위한 주말이 없다. 프랑크푸르트한국학교에 중2, 초등 6학년의 두 아이를 보내는 김선경씨는 “토요일에는 한국학교, 일요일에는 성당에 다니느라 쉴 날이 없어 불평하지만, 한국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기를 쓰고 데리고 온다”고 했다.

그러나 주말에만 가르치는 한글학교에서의 교육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베를린한글학교 김준시 교장의 “한글학교를 10년 이상 다녀도 내용파악 능력이 한국 초등학교 2~3학년 수준에 그친다”는 말은 주말학교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주독일 한국교육원(원장 심제택)에서 한글학교에 지원하는 돈은 학생 1인당 1년에 19유로(약 2만3000원)인데, 이 정도는 주말에만 교실을 빌려 쓰는 돈을 내는 데도 부족한 수준이다. 이런 현실은 학생 수 감소 경향과 맞물려 수준에 맞는 반편성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상사 주재원 자녀들이 많아 유럽에서 학생 수가 570여명이나 되는 프랑크푸르트한국학교조차 유치부와 초등부까지는 교민과 주재원 자녀의 반 구분이 없다고 한다. 이 학교는 95년 프랑크푸르트시로부터 무상으로 학교 지을 땅까지 받아놓았으나 아이엠에프를 겪으면서 기금 출연을 약속했던 한국 기업들이 돈을 못 내 건물 신축을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학교를 빌려쓰는 탓에 학교마다 나름대로 자체 건물 확보를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었다. 스웨덴한국학교 최현숙 교장도 “학교 세울 꿈을 가지고 해마다 ‘스웨덴한국학교 어린이날 행사’ 때 바자회나 음식판매, 복권판매, 찬조금 등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또 지금까지는 한글학교들이 홀로 힘겹게 한국어 교육을 담당해 온 것이 사실이었으나 최근 다른 제도적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국의 경우 현재 런던 근교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인 뉴몰든의 ‘쿰 여고’에서는 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하며, 스위스의 취리히한국학교는 취리히주 교육청으로부터 ‘모국언어문화학교’로 지정돼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유럽 입양아의 한국 배우기

유럽에는 동포 수에 맞먹는 5만여명의 한국인 입양아가 살고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글학교는 한국을 배우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스톡홀름대 한국학과를 졸업한 토비아스 후비네트(72년 생후 7개월에 입양)는 “95년 한글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또다른 조국인 한국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입양아에 대한 스웨덴인들의 차별을 겪으며 해외입양 한국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이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었다.

스위스에서 만난 수잔 수경 그로치(75년 5살 때 입양)는 한국어를 배우려고 여러 차례 시민강좌에 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인원이 모자라 강좌가 열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잘못으로 스위스로 오게 된 것도 아닌데 한국 갔을 때 한국말을 못하면 당장 배우라는 식의 거부반응을 보이면 우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러나 내 안에 한국적인 것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국말도 배우고 싶고 한국 음식도 해먹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양아들의 이런 개별적 관심을 하나의 흐름으로 담아내기에는 한글학교의 그릇이 부족해 보였다.

베를린한글학교의 경우 한국 아이를 입양한 독일인 부모가 “이 애는 한국 아이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한국어를 못하게 되면 안 좋다”며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데려온 경우가 있었지만 집에서 전혀 한국말을 쓰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중도에 포기한다고 한다.

◇ 한글학교의 미래는 유럽에서 한국어의 미래다

오늘날 유럽 한글학교의 사정은 한국어 교육의 새로운 토양에서 자라고 있는 새로운 한국어 수요자들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담당하기에는 힘이 부쳐 보였다.

한글학교의 존립과 발전은 머잖아 유치부에 들어오기 시작할 동포 3세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글학교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한국어 교육의 맥이 유지된 것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부모가 한국어 교육의 상당한 몫을 가정에서 담당했기 때문이었는데,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동포 2세들에게 이런 몫을 기대할 수는 없다.

“독일도 장차 미국 상태가 된다. 그곳의 2~3세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는 프랑크푸르트한국학교 김연한 교장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한글학교가 교재, 교사, 재정 등 여러 면에서 체계적으로 곧 밀어닥칠 새내기들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준비는 현지인들과 한글학교만이 아닌 우리 정부의 몫이기도 하며, 여기에 유럽에 주재원을 많이 파견하고 있는 기업들도 힘을 보태야 할 듯싶다.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파리 취리히 베른/글·사진 김인숙 기자 prisk@hani.co.kr

■“ 자율운영 학교 한국정부 지원외면”/베를린 세종학교 교직원들

“엄마들의 극성에서 온 건지 몰라도 아이들이 태풍이 불건 비행기가 추락하건 한국 얘기가 나오면 얼른 텔레비전 앞에 가 앉을 만큼 한국이라면 굉장히 좋아합니다.”(세종학교 김영옥 교감)

“세종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부모들, 특히 한국인과 독일인이 결혼하여 이룬 집안의 어머니들이 운영하는 학교라는 점입니다. 독일인 남편과의 갈등도 있을 터인데, 그런 어려움을 안고 한국어 교육을 할 정도로 어머니들의 열정이 깊습니다.”(나숙희 세종학교 부이사장)

“1992년 9월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베를린 한인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영사관에서 교민들을 들쑤셔 당시 교장으로 있던 김종한 교장(현 세종학교 교장)을 친북인사라고 몰아붙여 쫓아내는 바람에 아들도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 뒤 영사관에서 간섭받지 않는 마당을 마련해 참된 교육을 해보자는 학부모와 뜻있는 이들이 모여 93년 4월에 세종학교 문을 열었습니다.” 김 교감의 말은 계속된다. “영사관에서 한인회 주소록을 주지 않아 독일 전화번호부를 밤새 뒤져 한국 사람 이름을 찾아내 일일이 편지를 보내 학교를 소개했습니다.”

아이들이 정체성을 찾아 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어뿐만 아니라 장구, 무용, 붓글씨 등도 가르쳐 흥미를 이끌어내 이제는 성인반을 포함해 학생 수 50명이 넘는 학교로 자리잡았다. 아직도 한국 정부로부터는 지원 한푼 못 받고 있는데, 한 도시당 한 학교만 지원할 수 있다는 방침 때문이라고 한다.

김종한 교장은 “학교를 합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인학교 쪽 사람들을 만나 관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학교를 운영하자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나 부이사장은 “한국말을 배우는 것은 한인학교나 세종학교나 다 똑같지 않습니까. 70년대에 간호사로 일하러 나와 자식 낳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2세들을 위해 정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당연히 보조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꼬집었다.

베를린/김인숙 기자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한국어문화과 김영자 교수

“독일에서 정교수가 되려면 독일 국적 소지자로서 박사학위를 딴 뒤 6년이란 교수자격 취득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함부르크대 한국학과 석좌교수이자 유럽한국학회 회장으로 있는 자세(61·향가 전공) 교수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가 정년 퇴임을 하면 학과가 존속하기 어렵고, 튀빙겐대학의 아이케마이어 교수도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있어 역시 존속이 의문스럽습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레겐스부르크대 한국어문화과 김영자(63) 교수의 말은 명료하고 단호했다.

“훔볼트대에서 한국학과를 폐지하는 대신 베를린자유대에 설치하기로 하고 2년째 교수를 공모하고 있으나 적임자를 못 찾은 상태입니다. 유일하게 자격을 갖춘 송두율 교수는 우리 정부에서 반대해 채용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한국학과에는 반드시 한국인이 들어가야 합니다.”

영국, 프랑스의 한국학과 책임자가 대부분 한국인인 것과 달리, 독일에서는 현지인 교수의 책임 아래 한국인 강사들이 강의를 맡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학생 수는 번역·통역인 자격 이수과정 형태로 운영되는 본대 한국어과에 120명, 함부르크대 40명, 보훔대 30명이 수강하고 있으며, 학과장인 아이케마이어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해 주정부에서 한국학과를 폐쇄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튀빙겐대의 경우 지난 10여년간 석사학위자를 두셋 배출했을 뿐 현재 수강생은 10명 미만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서양중세사를 전공했지만 1986년 레겐스부르크대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한 뒤 99년 한국어문화과로 발전시켜 현재 책임교수로 있다. “한국어에 대한 수요는 꾸준합니다. 한국어 강좌를 들으러 오는 학생들 가운데는 순수 독일인이 많고, 미국·일본에서 유학 온 학생들도 있으며, 3년 전부터는 재독동포 2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독일어로 된 교재 〈기초한국어〉(96년)를 비롯해 〈한국의 문화유산〉(99) 등 우리 문화와 역사 소개서도 여럿 냈으며, 지금은 〈삼국유사〉 독역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556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발전 유공자’로 뽑혀 표창을 받았다.

김인숙 기자

■한국어 상식 국내학생 수준 맞먹어/ 프랑크푸르트 한국학생 설문

프랑크푸르트한국학교에는 주말에만 현지 동포와 주재원 자녀들이 한국어 등 초중등 과정을 배우러 다니고 있다.

설문에 응한 학생은 모두 61명이었는데, 초등생 14명, 중고등생 40명, 성인 7명이었다. 초중등생들은 대체로 체류기간 5년 안팎의 학생들로서 주재원 자녀들이 절반이 넘었다.

한국어는 주로 ‘집’에서 쓴다고 대답했고, 쓰는 시간은 하루 5시간 이상이 절대다수였다. 한국어를 배우는 까닭도 역시 ‘모국어’니까 배운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초중등생들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긍정적 대답이 대다수였으며, 성인은 자랑스럽다 3,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가 4명으로 나왔다.

19~27살의 성인 7명은 대부분 한-독 가정 자녀였다. 이들 모두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모국어’ 대신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라고 썼다. 이들의 한국어 상식 점수는 거의 100점에 가까워 국내 중학생급 수준을 넘고 있었다. ‘어머니’들의 뿌리의식과 교육열을 짐작하게 했다.

초등생은 한국어 상식 점수가 평균 82.5점, 중등생은 평균 87.9점이 나왔는데, 이 역시 국내 동급 학생들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점수다.

110. 안팎과 내외 -《한 겨 레》 2002-10-14 -

얼마 전 재외국민의 모국어 사용·교육 현황을 살피면서 설문지를 만든 적이 있었다. 몇몇 나라 동포 학생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의 답변을 받아보고 얄궂은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말 상식을 묻는 물음에서 ‘안과 밖’을 합쳐 한 낱말로 만들어 보라는 게 있었다. 주로 초등 상급반(5~6년)과 중학생들이 대상자들었는데, 응답 가운데 ‘내외’라고 쓴 것이 여럿 나왔다. 그 대답 수치는 정답으로 삼은 ‘안팎’과 비슷하였다. 나머지는 ‘안팍’ ‘안밖’ 차례였다.

사람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옮기는 일과 같다. 옮기는 과정이 복잡해지면 시간도 걸리고 잡생각도 많이 해야 한다. ‘내외’라는 답을 내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아야 하고, 바로 ‘안팎’을 대는 것보다 한번의 과정을 더 거쳐야 나온다. 그 과정이 번역이다. 이중언어에 훈련된 이는 사고력이 높다는 얘기도 있지만, 여기서도 시간과 노력 등 경제성을 고려해야 올바른 결론이 나온다.

눈물겹지만 차라리 ‘안밖’이 많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안과 밖’을 한 낱말로 줄이면 ‘안밖’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안팎’은 소리를 내어본 다음에 나오는 것이다. ‘안밖’과 ‘내외’ 가운데 어느 쪽에 점수를 많이 줄 것인가? 아마 많은 분들이 ‘내외’에 점수를 더 줄지 모르겠다.

같은 물음을 비슷한 수준의 국내 학생들에게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까? 모르긴 해도 답이 비슷한 수치로 나올 성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어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우리말의 기본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직도 ‘하늘 천 따 지’의 ‘천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최인호/교열부장

111. ‘대로’와 ‘데로’-《한 겨 레》 2002-10-15 -

‘이 글을 읽는 대로 내게 연락해라’와 같은 문장에서 ‘읽는 대로’라 써야 할지 ‘읽는 데로’라 써야 할지 망설이는 이를 보았다. 물론 ‘읽는 대로’가 맞다. ‘대로’는 의존명사(매인이름씨)로서 ‘어떤 일을 한 즉시’와 같은 뜻이 있다.

‘대로’는 그 전체가 한덩어리로 의존명사이지만 ‘데로’는 의존명사 ‘데’에 방향을 나타내는 토씨 ‘로’가 결합된 형태다. ‘네가 있는 데로 갈게’가 그런 보기인데, ‘데’에는 ‘하는 데까지 해 봐라’처럼 ‘데서, 데에, 데까지’ 등 다른 토씨가 결합될 수도 있다. 물론 ‘집을 짓는 데 큰 돈이 들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와 같은 보기에서처럼 토씨가 붙지 않고 쓰이는 경우도 흔하다. 의존명사 ‘데’는 ‘장소, 일, 상황’ 등의 뜻을 담고 있다.

한편, 씨끝 ‘-는데’가 있다. ‘-는데’는 다양한 뜻이 있는데, ‘예전에는 잘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같은 문장에서 앞절의 ‘-는데’는 뒷절의 내용을 말하기 위한 배경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는데’는 그 자체가 씨끝이므로 띄어 써서는 안 되는데, 의존명사 ‘데’와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집 앞에서 노는데 친구가 찾아왔다’에서는 ‘-는데’가 씨끝이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에서는 ‘데’가 의존명사다. 씨끝과 줄기는 붙여 써야 하고, 의존명사는 그 앞의 말과 띄어 써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12. ‘온·돌·방’-《한 겨 레》 2002-10-16 -

우리 국어 사전들에 ‘온돌’(溫突, 溫 )이라는 말이 올라 있다. 마치 ‘온돌’을 한자말인 양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온돌’은 우리 고유의 생활 양식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에는 그런 말도 없다. 만주 쪽에 그런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은 그 땅이 본디 고구려 때까지는 우리 땅이었기 때문이다.

‘온돌’은 ‘방구들’을 말한다. ‘방구들’은 온통 ‘돌’로 깐다. ‘온(全) 돌(石)’로 깔기 때문에 ‘온돌’인 셈이다. 이 장치는 ‘溫’이나 ‘突, ’ 따위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도, 그런 것들과는 상관 없이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방’(房)도 잘못되어 있다. ‘방’과 ‘房’은 다르다. 우리말 ‘방’은 ‘온돌방’이 원형이다. ‘각시방, 갓방, 건넌방, 건넛방, 골방, 구둣방, 구들방, 구슬방, 글방, 김치방, 꼬까방, 꽃방, 노래방, 놀이방, 다락방, 도배방, 도장방, 뒷방, 떴다방, 마룻방, 머슴방, 모아방, 바깥방 …’ 어림쳐서 쉰남은 가지 ‘방’이 있다. 참고로, 우리말 ‘방’에는 ‘건설방, 만무방, 심방, 짐방, 창방’처럼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중국 ‘房’에는 사람 성씨와 ‘거실, 침실, 아내·시앗, 집, 뒷간, 별이름, …’ 들 잡다한 뜻이 스무남은 가지가 있다. 중국에는 ‘방’도 없다.

한자 ‘房’은 진시황 때 아방궁(阿房宮), 조선 때 육방(六房), 그 밖의 한자말(房星 房宿 官房 宮房 閨房 煖房 茶房 獨房 山房 僧房 尼房 廚房 寢房 …) 들에나 쓰인다.

한글이 없을 때 치사하고 부끄럽게도 ‘溫突房’으로 적은 것에 가려 ‘온돌방’을 몰랐던 것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13. ‘~에 가름한다, ~에 값한다 -《한 겨 레》 2002-10-17 -

‘~에 다름 아니다’와 비슷하게 쓰는 일본말투로 젠체하기 좋아하는 인물이 취임인사를 할 때, 목에 힘을 주어 이말 저말 지루하게 늘어놓고는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인사에 가름한다’고 한다. 민중서림에서 낸 국어대사전에는 ‘가름한다’를 타동사로 규정해 ‘구별한다, 분별한다’고 풀고,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에는 이름씨 ‘가름’의 뜻을 ‘가르는 일’이라고 하고는 ‘가름한다’를 남움직씨로 규정하고, 예문으로 ‘승패를 가름한다’를 보였다.

한편, 일본말에는 ‘~을 ~으로 대신한다’는 뜻으로 쓰는 ‘か(代)える’가 있어서 ‘서면으로 인사를 대신한다’-しょめん(書面)をもってあいさつにかえる-처럼 쓴다. 이것으로 보면 ‘~에 가름한다’는 우리말본에 없는 일본말꼴이므로 위에 보인 인사말은 ‘인사를 대신한다’고 끝맺어야 한다. 우리의 말글살이에서 ‘값한다’는 어떤 사람의 행동을 비웃는 투로 ‘꼴값한다, 생긴 값한다’고 하는 것말고는 용례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일본말에서 ‘~にあたいする’(~에 상당하다, ~耈 만하다, ~할 가치가 있다)처럼 쓰는 비교격 조사 ‘に’를 ‘에’로 옮겨서 ‘~에 값한다’고 하는 표현이 고등 지식인들의 글에서 판을 친다.

*규모가 방대한 이 책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노동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하는 것이다’(耝신문) →주목할 만하다.

*민족의 현실과 김수영 문학의 소시민적 한계도 ‘주목에 값한다’(耝신문) →눈여겨볼 만하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14. 국어기본법 -《한 겨 레》 2002-10-18 -

지난 10월9일 문화관광부 장관은 우리말글 발전을 위한 종합 계획을 세워 이를 펴겠다고 발표했다. 오랜만에 정부가 국어 발전을 화두로 삼았다는 점에서 반가웠고, 종합 계획을 세워 집행하겠다는 말에서도 믿음이 느껴졌다. 특히 국어 정책을 연구자 중심에서 사용자, 이론 중심에서 활용 중심으로 추진하고, 이를 뒷받침할 ‘국어기본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은 큰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한 신문 보도를 보면,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군대에 가기 위해서 불완전한 몸을 바로잡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전날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갖은 불법과 편법을 부렸던 것과 견주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한층 건전하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법의 강제와 범법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지속됨으로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말을 두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국어를 잘못 쓰는 정치인이나 지도자를 직접 나무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고치도록 강제할 힘이 있어야 한다. 말글을 강제하는 것은 비문화적이라고 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국어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이므로 국가는 국어 사용에 대한 최소한의 지도와 규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건전한 언어 의식을 기대하기가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국어를 바르고 품위 있게 쓰도록 하는 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국어기본법을 제정하는 일은 시대적으로 매우 필요한 일이다. 부디 우리말글 발전에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 주기 바란다.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115. 세계속의 한국어(5) 재일동포 말글살이 -《한 겨 레》 2002-10-19 -

■ 동포들의 현실

일본에는 동포 수도 많고 한국과도 가깝기 때문에 동포들이 한글도 많이 쓰고 우리말 실력도 다른 동포들에 비해 뛰어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60만명을 헤아리는 재일동포들의 우리말 사용 현실은 딴판이다. 도쿄의 ‘코리안타운’으로 불리는 신주쿠구의 쇼쿠안 거리에 처음으로 한글 간판이 등장한 것이 불과 7년 전이다. 이것도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새로 일본에 건너온 이른바 신참자(뉴커머)로 불리는 ‘간 큰’ 동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식민지 시대에 징병·징용으로 끌려와 본토로 가지 못하고 눌러앉은 전통적인 재일동포들은 최근 월드컵 공동 개최와 양국 사이의 활발한 인적 교류로 인해 상황이 많이 호전됐지만 아직도 뿌리깊은 일본 사회의 차별과 억압적인 분위기에 압도돼 한글 간판은커녕 많은 이들이 제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전통적인 동포들이 전체 구민 14만3천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3만6천명이나 사는 오사카시의 이쿠노구에서는 도쿄 신주쿠구의 쇼쿠안 거리에서 보는 만큼도 한글 간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동포들의 한글이나 한국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한국계 재일동포들의 조직인 재일본 대한민국민단(민단) 중앙본부 간부들이 공식회의나 행사, 기자회견 등을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하는 데서 그대로 드러난다. 50년 초 결성 당시부터 민족교육에 힘쓴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경우는 모든 행사나 회의에서 한글과 조선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도 일상생활에서는 대체로 일본 이름과 일본말을 쓰는 것이 실상이다.

■ 민족학교(한국학교, 조선학교)

민단계의 민족학교는 도쿄의 도쿄 한국학교, 오사카의 금강학교와 건국학교, 교토의 교토 한국학교 등 네 곳뿐이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 한국 정부에서 설치한 한국교육원이 도쿄, 지바, 니가타, 기후, 나가노, 오사카, 교토, 고베, 후쿠오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등 14곳과 분원 5곳이 있다. 반면, 총련계의 민족학교는 유치반에서 초·중·고교 및 대학까지 합쳐 150여개를 헤아린다.

양쪽에 이렇게 차이가 많은 것은 해방 이후 귀국을 대비해 동포들이 합심해 지은 민족학교들을, 민단과 총련으로 나뉘면서 다수계인 총련 쪽이 대다수 차지한데다, 북한 쪽이 남한보다 민족교육에 공을 많이 들인 결과다.

10월 초 찾아간 오사카시 스미요시구에 있는 민단계 민족학교인 건국학교는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건물도 제대로 보수를 하지 않아 낡은데다 학생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존폐 문제가 제기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관계자들은 탄식을 쏟아냈다. 이 학교 출신인 강구석 교장은 “초·중·고생을 합쳐 1970년대에는 1200여명이나 됐는데 지금은 420명에 불과하다”며 “〈민단신문〉 등에 광고도 내고 선생님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학생 모집이 점점 어렵다”고 말했다. 3, 4세로 내려오면서 민족의식이 옅어지고 소가족(소자화) 현상도 진행되고 있는데다 최근의 불경기가 동포 사회에 영향을 끼쳐 학비가 안 드는 일본의 공립학교를 택하는 동포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일본의 정규학교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글과 한국어로 하는 수업은 국어와 역사 등 일주일에 3~4시간 정도였다.

10월2일 방문한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는 총련계의 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는 전교 학생이 운동회를 앞두고 운동장에서 마지막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423명의 학생이 다니는 이 학교에는 조선적(북한계) 학생이 70%로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한국계 학생과 일본 국적의 학생도 각각 25%와 5% 정도 된다. 이 학교는 모든 수업을 한글과 우리말로 하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영차, 영차!” “하나, 둘, 셋!” 등 우리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총련계 학교 중에서도 사정이 가장 좋은 학교로 꼽히는 이 학교는 분위기도 건국학교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그러나 이 학교도 학생 수 감소와 재정난 등에서 오는 어려움은 민단계 민족학교와 다름 없었다. 더구나 총련계 학교의 경우, 그동안의 이념위주 교육의 영향으로 총련계 동포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대학 교수 출신의 한 동포는 “초창기 조선학교는 순순한 민족교육을 하는 등 동포교육에 큰 공헌을 했지만, 6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의 유일사상 강화와 함께 사상교육으로 치달으면서 교육 내용도 현실과 동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 민족학급

일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방과후에 모아 한글과 한국어, 역사·문화 등을 가르쳐주는 민족학급은 일본에서도 오사카 지역의 독특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방 후 재일동포들이 대거 민족학교를 건립했으나 48년 일본 교육당국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 폐쇄에 나서고 동포들이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타협의 산물로 생긴 것이다. 당시 오사카 지역 동포들과 오사카 교육위원회 쪽이 일본 공립학교에 다니는 동포 자녀들이 과외시간에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각서를 교환했는데, 이것이 현재 운영되는 민족학급 설치의 근거다. 따라서 민족학급은 일본 학교 안에 설치돼 운영되며, 강사료도 일본 당국에서 대고 있다. 민족학급 강사들의 모임인 민족교육촉진협의회(민촉협) 조사 결과, 현재 오사카시를 포함한 오사카부의 일본 초·중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 수는 160여군데이고, 대략 2800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실태는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였다. 우선 민족학급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신분이 불안하다. 일반 교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 상근강사는 11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생계유지도 어려운 강사료를 받는 강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강사의 신분 보장 외에도 학교 안 일본 교사들의 비협조와 견제, 한국인임을 숨기고 싶어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심리 극복, 현장에 맞는 교재의 개발 등 개선해야 할 숙제를 많이 안고 있었다.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에 있는 기타나카미치 초등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은 70명의 동포학생이 참여하고, 상근교사도 둔 모범 사례에 속한다. 이 학교에 다니는 동포학생 90%가 민족학급에 참여하고 있다. 10월 초에 찾아간 이 학교의 민족학급에서는 4학년 학생 16명이 모여 ‘김치의 역사’와 관련한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한국어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일본어로 된 대본으로 연습을 하면서 “맛있다” “맵다” 등 맛을 나타내는 말과 배추, 김치, 파, 생강 등의 김치 재료와 관련한 낱말을 그런대로 익히고 있었다. 학생들도 장난기에 더하여,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이 학교의 후루하야시 시게루 교장은 “민족학급이 학교에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일례로 최근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관련해 재일동포 학생들이 따돌림(이지메)을 당한다는 보도가 있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는 것은 이런 교육의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토요학교, 한글학교

민족학교가 오사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토요학교는 도쿄 등 간토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족학교는 독립적으로, 민족학급이 일본 학교 안에서 민족교육을 하는 장치라면, 토요학교는 주말에 한국학교 등의 시설을 이용해 민족교육을 하는 방식이다. 교육 투쟁이 미약했던 이 지역의 한계가 엿보이는 대목이지만, 최근의 월드컵 열기와 한-일 인적교류의 급격한 확대 등을 배경으로 민단계 동포 자녀와 뉴커머 자녀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총련계에 비해 민족교육 시설이 압도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민족교육에도 힘을 쏟지 않는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민단은 지난 8월 중순에 열린 교육자연구대회를 계기로 ‘동포 어린이를 위한 토요학교의 전국화’를 민단의 중점 사업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현재 토요학교는 민단의 지방본부가 교실을 마련하고 한국 정부가 파견한 일본 지역 한국교육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본 전국 21개 지방에서 25개 토요학교가 한국어 교육을 벌이고 있고, 9월 현재 학생수는 700여명이다. 아울러 사설을 합쳐 모두 49곳의 한글학교가 있다.

간토지역의 유일한 민단계 민족학교인 도쿄 한국학교(교장 김용만)는 토요학교가 가장 잘되는 학교다. 이 학교에는 동포 자녀뿐 아니라 일시 체류자, 귀화 한국인 자녀, 일본인 등 330여명이 토요일마다 이 학교 초등부 교사들로부터 한글과 한국 문화 등을 배운다. 최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한글교실과 컴퓨터교실, 민족음악 교실 등도 열었다. 이 학교가 토요학교를 처음 개설한 것은 93년으로, 첫해 90명이 등록해 47명이 졸업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200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300명을 돌파했다. 김 교장은 “현재 학생 중에는 도쿄만이 아니고 학교까지 1~2시간 걸리는 가나가와현, 도치기현, 사이타마현 등에서 오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토요학교의 강사료가 워낙 낮고 교재도 현실사정에 맞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 일본인의 한글 교육

재일동포들의 한글교육 등 민족교육이 위기 또는 재정립 상황을 맞고 있는 데 비해 일본 사람들의 한글 배우기는 최근에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이런 한글 붐을 타고 월드컵 직전에는 언어서적 전문 출판사인 아루쿠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학습 계간지 〈한글저널〉을 창간하기도 했다. 현재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한글·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학교만도 170여 학교에 수강생이 5천명 정도가 되고, 대학교에 한국어 관련 학과가 설치된 곳도 500여 학교나 된다. 97년부터 실시된 한국어능력시험도 첫해는 1529명의 응시로 시작했으나, 올해는 372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일본 고등학교 한국어교육 네트워크’(또는 한국·조선어교육네트워크) 사무국의 오구리 아키라는 “70년대 말 내가 한글을 배울 때만 해도 전차에서 한글신문을 읽고 있으면 주위의 곱지 않은 눈길을 느꼈으나, 최근은 젊은이들이 한국 영화나 대중음악이 좋아 배우는 시절이 됐다”며 “한글을 배우는 일본인의 인구가 급증한 것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인적 교류가 크게 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 문제점과 대책

재일동포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조국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는 주요 통로는 민족학교, 민족학급, 토요학교의 세 갈래다. 그러나 일본 안의 차별과 억압에 대한 동포들의 피해의식은 최근 한-일 우호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치유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일본 경제의 악화와 소자화, 사상·정치교육 위주의 총련계 학교에 대한 불신이 겹쳐 민족교육의 근간인 민족학교는 쇠퇴의 길을 맞고 있다. 정규학교 외에 민족학급과 토요학교가 있지만 이들 학교는 일주일에 한두 시간이라는 시간상의 제약으로 인해 보조적인 구실 이상을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동포 사회에서는 최근 사상교육에서 민족교육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총련계 학교를 범재일동포 차원의 민족교육 거점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민단의 한 간부는 “총련계 학교와 민단계 학교를 모두 합쳐 전국에 10개 정도로 재편한 뒤 취학연령 동포 16만명의 10%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된 민족교육을 시키면 재일동포의 명맥과 말글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이럴 경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동포의 90%가 일본 학교를 다니는 현실을 고려해 민족학급과 토요학교의 제도화와 확충에도 정부와 동포 단체들이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또 동포사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가까이 있고 재일동포는 식민시대의 피해자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병역문제 해결과 함께 자유롭게 18살 이전에도 고국유학을 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현재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국전문 위성방송인 〈KNTV〉를 정부가 인수해 재일동포 교육용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도쿄 오사카/글·사진오태규 특파원 ohtak@hani.co.kr

■총련계 최대규모 조선중급학교 부영욱 교장

“우리 학교 학생은 한국이나 조선(북한)에 가면 좀 시일이 걸리겠지만 완벽하게 한글과 모국어를 부려쓸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 안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쪽 중학교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의 부영욱(55) 교장은 “학생들의 제1언어가 일본말이기 때문에 발음이 일본식으로 되는 경향이 있지만, 교육을 통해 우리말로 사고를 하기 때문에 우리말 구사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사카에 있는 한국계 학교인 ‘금강학교’와 ‘건국학교’는 일본의 정규학교이기도 하기 때문에 법령상 일주일에 3~4시간 정도밖에 한국어 수업이 없지만, 조선학교는 정규학교가 아닌 관계로 모든 수업을 한글과 한국어로 진행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런 이점이 있지만 조선학교 입학생은 최근 급속하게 주는 추세에 있다. 부 교장은 “이런 식으로 가면 틀림없이 10년 뒤에는 학교의 절반이 없어질 것”이라고 조선학교가 처한 위기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는 감소 원인에 대해 어린이 수가 줄어드는 일반적 경향에 더해, 학교를 졸업해도 자격이 인정되지 않고, 교과 과정에 사상교육이 많다는 동포들의 비판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학교를 살리려면 광폭의 민족교육, 동포 전체를 위한 대중적인 학교로 가야 한다”며 “최근 초·중급학교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내리기로 한 것도 이런 뜻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정부로부터 특례적으로 정식학교 인정을 받음으로써 학무보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조-일 회담이 진행되면 논의될 재일동포 지위문제에서 조선학교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제기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오사카/오태규 특파원

■오사카 민족교육촉진협 김광민 사무국장

오사카지역에서 재일동포를 상대로 민족교육을 하는 강사들의 모임인 민족교육촉진협의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광민(31)씨의 삶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또 재일동포 3세인 그의 30년 인생은 일본에 사는 동포의 고난이 오늘날도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년기까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너무 가난한 생활에 진저리가 나 중학교만 졸업하면 가출해 조선 사람인 것을 완전히 지우고 일본 사람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학교에서 배운 조국에 관한 지식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임나일본부설’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근대의 일제침략사 등 일본에 대한 조국의 열등감만을 안겨주는 것뿐이었다. 더구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받는 한국 사람에 대한 차별은 어린 김씨를 자포자기, 희망 상실에다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길로 몰고 갔다. 그는 학교에서도 ‘김광민’이라는 본명이 아닌 ‘가네야마 아키토시’라는 일본 이름을 썼다.

이런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중학교 때의 민족학급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하활동처럼 이뤄지던 민족학급에 나가면서 조국의 역사가 굴욕의 역사만이 아닌 것도 알게 됐고, 본명이 ‘김광민’이고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기르게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생활을 본명으로 했지만, 사회생활에서까지 본이름을 쓰게 된 것은 한국 유학을 할 당시인 20살 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5년간 유학한 그는 지금 거의 완벽한 한글과 한국어를 부려쓰고 있다. 그에 그치지 않고 현재는 동포 학생을 대상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일본학교에 민족교육의 제도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재일동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일본은 전후 보상 차원에서 이곳에 사는 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보장해야 합니다.

오사카/오태규 특파원

116. ‘강도짓’은 ‘강도질’이 -《한 겨 레》 2002-10-21 -

신문과 방송 또는 일반 사람들이 강도가 하는 일을 흔히 ‘강도짓’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표현에 토를 달기도 한다. ‘강도짓’이 아니고 ‘강도질’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자, 어떤 표현이 옳을까?

‘짓’이라는 말은 생물이 몸을 놀려 움직이는 일, 곧 동작을 뜻하는 말인데, 주로 좋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쓰인다. 보기를 들면, “그런 짓, 나쁜 짓, 못난 짓, 상스러운 짓, 어리석은 짓, 짐승만도 못한 짓, 해로운 짓, 보기 좋은 짓은 아니다” 들과 같다.

한편, ‘-질’은 홀로 쓰이지 않고 어떤 말에 붙어서만 쓰이는 말조각이다. 다시 말하면 ‘-질’이 ‘연장, 몸의 일부, 일, 소리’ 따위를 나타내는 말에 붙어서 “가위질, 손가락질, 주먹질, 담금질, 도둑질”처럼 쓰인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알아 둘 것이 있다.

말에는 서로 통하여 쓰이는 것도 있지마는, 어떤 것은 기름과 물처럼 서로 섞여 쓰이지 않는 것도 있다.

‘짓’과 ‘-질’이 뜻으로는 통하는 예가 있지마는 쓰임으로는 섞여 쓰이지 않고 따로 쓰이는 경우 말이다.

“그런 질, 나쁜 질, 못난 질, …”처럼은 쓰이지 않고 ‘-질’이 쓰이는 자리에는 ‘짓’이 쓰이지 않아 “가위짓, 부채짓, 삿대짓 …”은 말이 안 된다. 남의 것을 억지로 뺏는 일은 ‘강도질’이다. ‘도둑질’을 ‘도둑짓’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17. '한글'은 글자다 -《한 겨 레》 2002-10-22 -

한글 반포 556돌이 지났다. 한글날을 맞아 신문과 방송에 한글에 관한 여러 가지 보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한글’이란 말을 너무 폭넓게 쓰는 사례가 많았다.

‘한글 이름을 지어 달라’는 말을 흔히 한다. ‘보람’이니 ‘예슬’이니 하는 이름을 지어 달라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말하는 ‘한글 이름’은 ‘한글로만 적을 수 있는 이름’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한글 이름’보다 ‘순우리말 이름’이라고 하거나 ‘고유어 이름’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외국에는 으레 ‘한글학교’가 있다. 한글학교란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한글과 함께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국어를 가르치자면 기본적으로 한글부터 가르쳐야 하니까 한글학교라고 부르기 시작했겠지만 한글학교에서 실제로 가르치는 것은 한국어이므로 ‘한국어 학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한글날을 전후해 ‘한글 파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국어 속에 외래어와 상스럽고 속된말 등을 마구 쓰는 것은 ‘한글 파괴’가 아니라 ‘국어 파괴’, ‘우리말 파괴’에 가깝다. 한글 파괴는 ‘아’처럼 있을 수 없는 글자를 만들어 적거나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고 적는 것들만 해당된다.

우리는 흔히 글자와 말을 혼동하기 쉽다. 글자와 말은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혼동하기가 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구별할 것은 해야 한다. 한글은 언어가 아니라 글자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18. ‘그대로’의 올바른 쓰임 -《한 겨 레》 2002-10-23 -

이 말은 ‘어떤 사물의 모양을 고치거나 부풀리거나 줄이는 일이 없이 있는 대로’란 뜻을 지닌 어찌씨(부사)일 뿐, 사람·동물·식물·꽃 …처럼 그 말이 가리키는 실체가 없을뿐더러, 정의·평화·사랑·자비 … 같은 추상 개념도 아니기 때문에, 문장의 주성분(임자, 풀이, 부림, 기움말)이 될 수 없다. 오로지 풀이말의 뜻을 한정하는 종속 성분으로만 써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바탕 쓰임을 모르는 지식인들이 이 말을 주성분으로 쓴 졸문을 쏟아낸다. 다음 예문들에서 따옴표(‘ ’)는 화살표(→) 쪽으로 고쳐 써야 한다.

*문학이 ㉠‘실생활 그대로의 모사(模寫)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제시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도 구도라는 것이 있다.(고등문학)

㉠ → 실생활을 그대로 모사할 뿐이라면.

㉡ → 있는 것을 그대로.

*이들 동물이 사용하는 것들은 이미 만들어졌거나 자연물 그대로의 것이므로 인간의 그것과는 구별된다.(고등국어 상) → 이런 동물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자연물을 그대로 쓰는 것이므로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

*‘초가 지붕을 인 옛 그대로의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기억 속에 되살아 났다.(고등국어 상) → 초가 지붕이 옛모습 그대로 어슴푸레하게.

*‘느낀 그대로를’ 말하세요 → 느낀 점을 그대로.

*그때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내가 ‘말한 그대로’ 전해라(표준국어대사전) → ~ 말한 것을 그대로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19. 한글발전 유공자 대우 -《한 겨 레》 2002-10-24 -

지난 556돌 한글날에 한글 발전 유공자로 훈장·표창을 받은 분들은 거의가 나라 밖에 사시는 나이 많은 분들이던데, 그 끝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으로서, 이런 분들을 서울까지 불러 상을 준다면 구리쪽 하나 가슴에 달아주는 것으로 때우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나라가 무슨 돈으로?” 할지 모르지만, 숱한 개인 출판사가 문학상 하나를 만들어 상을 줄 때도 받는 사람이 서운해하지 않게 예우를 갖추는 터에 먼 이역땅 우즈베키스탄에서 독일에서 대만에서 일본에서 한글과 모국어 펴기에 한누리를 바친 분들을 모신 한글날 행사인데, 빈손만 턴대서야 어찌되노?

우리말과 한글 연구를 도우라면 예산 타령만 하는 정부, 그러면서도 외국어 교육에는 아낌 없이 돈을 쓰는 나라, 나라 안이 이런 꼴인데도 지금 세계 도처에는 ‘한류’ 열풍이 분다고 좋아한다. 우리 정부가 손가락 한 번 꼼지락하지 않은 먼나라에서 컴퓨터와 기계화 시대에 적합한 글자로서 한글이 터전을 잡아가며 그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도 그분들 덕분 아니겠는가.

정부 부처 중에서도 문화관광부에서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 것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다른 부처와 경제단체들 서슬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니나다를까, 국경일로 삼아 기리고 다져도 모자랄 한글날과 그 의미를 노는 날이 많다며 언젠가는 그 격을 낯추더니 이젠 주5일 근무제를 내세워 어린이날, 식목일 등 공휴일을 없앤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제단체들과 정부 관련 부처들의 정책 판단 기준이 이처럼 짝짜꿍이 수전노 식이니 언제 이 나라가 문화 선진국이 될꼬?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120. ‘문자풀이’ 말투 -《한 겨 레》 2002-10-25 -

애써 힘줄 일이 아니라면 같은 말을 거듭하지 않아야 말과 글이 깨끗해진다. 그러나 보통은 같은 말을 거듭하여 새끼줄처럼 글줄을 꼬는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날부터 신분을 가리지 않고 ‘문자’(한자로 된 익은말) 쓰기를 즐겼다. 문제는 문자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자거나 유식을 자랑하려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자주 쓰다 보니, 쉽게 떨치지 못할 버릇으로 굳어졌다는 점이고, 이젠 서양말 중에서도 영어를 이 ‘문자’ 자리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어나 방송말, 신문기사, 논문, 문학글을 가리지 않는다. 우선 전날의 ‘문자투’ 되풀이를 살펴보자.

△교사와 학부모 사이는 불가근 불가원이라 한다. 가까워서도 멀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남아 일언이 중천금이라, 남자의 한마디는 천금처럼 무겁다는데 …. △일락서산에 해는 지고, 월출동령에 달 돋는다. △너는 불구대천의 원수라, 어찌 같이 하늘을 이고 살쏘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부모에게 받은 몸을 어찌 터럭 하나라도 함부로 할쏘냐. △만산홍엽이라더니 온산에 붉은 불이 붙었네. △인간 도처에 유청산이라더니, 오늘 이 자리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네 그려.

외래어가 우리말을 풍부하게 한다며 아량을 베풀어 말하는 이가 많다. 또 같은 말 되풀이가 문장의 변화를 주는 맛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쓰임이 한자말을 주로 삼고 우리말을 보조로 삼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쓸수록 우리말의 구조를 깨뜨리고, 외래어·외국어를 조장하는 말버릇이라는 점을 무겁게 새겨서 쓸 일이다.

최인호/교열부장

121. 세계속의 한국어(6)조선·고려말과 중국·러시아 -《한 겨 레》 2002-10-26 -

■ 연해주에 부는 한국어 바람

지난 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우수리스크 군인극장에서 금발에 눈이 파란 러시아인 5명이 〈고향의 봄〉을 합창하자 극장을 메운 500여 관중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곳에서 열린 제3회 ‘한국어 올림피아드’에 참가한 50여 팀은 한국말 노래, 시 낭송, 연극에다 사물놀이, 부채춤을 공연하는 등 평소 갈고 닦았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국교육원(원장 박희수)이 2000년에 처음 열어 세번째를 맞은 이 대회에는 한국말을 배우는 초·중·고생과 대학·일반인이 참가하고 있었다. 참가자 중 동포가 30%, 러시아인 70%였다.

연해주 쪽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서울 올림픽, 한-러 수교로 높아지기 시작하여 90년대 중반 한국 기업이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진출하면서 한국어 배우기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었다. 10월 현재 19개 초·중·고 통합학교(슈콜라)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고 있고, 7개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돼 있으며, 극동대학교에는 한국학대학을 두고 있다. 한국교육원, 선교원 등이 운영하는 한글학교도 14곳에 이르는데, 학생수는 모두 합쳐 2100여명이다.

‘한국어 올림피아드’에서 사물놀이를 공연한 러시아인 올랴(20·경제대 동양학과 한국어 전공)는 “한국말을 배워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이곳 한국 기업체나 직접 한국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하바로프스크 제4동양어전문학교 교실에서는 9명의 8학년 학생들이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시’를 주제로 “부산의 새는 갈매기입니다” 등의 문장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었다. 2명이 동포 학생이었고, 나머지는 러시아인이었다. 안복자(45) 교사는 “전날엔 중국 총영사관의 지원으로 중국어를 가르치다가 97년부터 한국 교육원의 지원을 얻어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다”며 “지금은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 수가 일본어 선택자 수를 넘어섰으며, 중국어 선택 학생 수와 비슷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하바로프스크 한국교육원(원장 양형렬)은 이 지역에서 32개 초·중·고 통합학교, 대학, 한글학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양 원장은 “교육원이 직접 운영하는 한글학교에 등록한 270여명의 학생 가운데 60%가 러시아인”이라며 “6단계를 마치고 졸업한 뒤에도 한국말을 더 배우겠다며 계속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을 위한 저녁반이 있고, 6~10살 유아반 설치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한글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는 학생 율리아(20)는 “한국말을 지난 2000년부터 이곳에서만 배웠는데, 이제는 제법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전공을 살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돼 한국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5만여 동포들이 살고 있는 사할린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우리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동포들이 함께 모여 사는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이민 3, 4세에 이르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지난 7일 유주노사할린스크에 있는 제9동양어문학교 교실에서는 15명의 학생들이 한국 초등학교 2학년 ‘읽기’ 교과서로 한국말을 배우고 있었다. 4명의 동포들을 포함한 이들은 ‘가을’에 관한 짧은 문장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었다. 동포 학생과 러시아인 학생 사이의 실력차는 거의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사할린 종합대학 한국어과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포라도 집안에서 한국말 사용이 적어 3, 4세에 이르면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탓이다.

사할린 한국교육원(원장 류종균)은 사할린주의 19개 초·중·고 통합학교, 3개 대학, 4개 한글학교, 4개 유치원 등의 한국말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원에서 운영하는 강좌에도 3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닌다. 사할린에서 모두 2200여명의 학생들이 한국말을 배우고 있으며, 그 중 70%가 동포인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2세대 부모들이 학교에서라도 자녀들이 한국말을 배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류종균 원장은 이 지역에서 한국말이 비교적 잘 보존된 데는 55년부터 매일 25분씩 방송된 한국말 라디오 프로그램과 49년부터 발행된 〈새고려신문〉 등 언론의 몫도 크다며 “한국 위성방송이 들어오면 동포 3, 4세의 한국어 교육에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쪽의 세 갈래 우리말 교육

중국에서 한국어(조선어)의 위치는 비교적 뚜렷하다. 우선 소수민족의 언어를 권장하고 있고, ‘조선족’ 동포는 지리적으로 본토와 가까우며, 소수민족으로서도 문화의 ‘앞자리’에 드는 까닭이다. 현재 중국 쪽의 한국어 교육 현황은 세 갈래로 간추릴 수 있다.

조선족자치주 등의 제도적 민족어 교육이 그 첫째다. 한국에서 최근 진출한 상사, 외교관 자녀와 유학생들을 위한 ‘한국학교’ 교육 유형이 두번째 갈래이고, 세번째는 대학 등에서 중국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한국어 교육이 그것인데, 셋이 서로 얽혀 한국어의 위상을 형성해가고 있다.

연변 쪽은 일제 때부터 민족학교가 많았고, 이에 더하여 중국 헌법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언어공작 조례’ ‘교육조례’ 등의 민족어 보장 정책에 따라 조선어(한국어) 교육을 활발히 이끌어 왔다. 동북삼성, 베이징, 네이멍구 등에도 조선족학교가 있어 2000년 현재 초등 984, 중학 211, 고교 3, 중등전문대학 9개 등 전체 1207개 학교가 있고, 학생 25만5524, 교직원 2만9362명으로 집계된다. (표 참조)

그러나 현지 동포들의 대도시 이동, 남한 유입 등에 따른 공동체 붕괴, 출생률과 학령 어린이 감소, 한족학교 진학 등으로 학교 폐쇄가 잇따르고, 일상언어의 중국화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베이징·상하이·연변·홍콩·톈진·옌타이에 정규 한국학교가 있다. 주재원과 현지 체류 한국인 자녀들이 다니는데, 언어교육 과정은 한국어·중국어에 영어를 더하여 삼중언어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 중국 전체 186개 대학 중 36개 대학에서 한국어 과정을 설치하고 있다.

조선족 사회의 언어혼란 현실을 두고 연변대 리영자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조선어의 언어, 지리적 환경은 다른 소수민족들이 가질 수 없는 특징이 있다”며 중-한, 중-조, 중-러 우의 관계를 통하여 조선족 사회의 교류에 유리한 조건을 가져다 줄 것이며, 다소의 언어혼란과 침체는 경제력 향상에 따라 조선어를 통일·발전시키고, 그 자산을 풍부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상하이외대 한국어과 교수 김충실(46)씨는 중국에서 조선족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모국어를 보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음을 자신의 성장 과정을 빗대어 말한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중국인 거주지역에 직장을 두고 있어서 집에서 부모님한테서만 배우다가 점차 우리말을 잊어가자 부모님의 고집으로 옆에 학교를 두고 멀리 있는 시골 조선족 학교로 도시락을 싸서 다녔습니다. 그래도 안 되자 조선족들이 집거한 동네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옮겨 정식으로 조선족 학교에 다니면서 조선글을 익혔지요. 대학도 아버지 뜻대로 연변대학에 지망했고요. 그러나 아버지의 노력은 저한테까지였으며, 지금 저의 사촌이나 조카들 모두 우리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글은 더 모릅니다. 아버지를 많이 원망도 했지만 당신께서는 아이들이 민족을 잊어가는 것이 한이 되셨던가 봅니다. …”

맹자와 그 어머니 이야기(맹모 삼천지교)가 한국 교과서에 실릴 일이 아님을 일깨운다.

현재 중국에는 어문단체로 중국조선어학회(이사장 전학석)가 있고, 동북 방면 각 성의 조선어학회 활동도 활발한 편인데, 한-중 이중언어 사용이란 독특한 언어환경에서 빚어지는 문제와 표준말·문화어를 아우른 ‘조선어’ 발전 연구에 애쓰고 있다.

■ 중앙아시아에서 되살아나는 한국어

러시아, 중앙아시아 쪽 동포들은 구한말과 일제에 걸쳐 주로 타의에 의해 떠난 이민들이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소련 스탈린 정권의 이민족 분리정책과 식량정책에 따라 연해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집단으로 이주시켜 형성된 동포사회가 현재 카자흐, 우즈베크, 키르기스, 타지크, 카프카스의 돈 강변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약 40만명 추정)

이곳 동포들은 북한에서 50년대 후반에 카자흐에 설치했던 ‘조선어 학교’가 65년께 소련 정권에 의해 폐쇄되면서 90년대 초반까지 거의 버려진 상태였으며, 〈고려일보〉, 〈레닌기치〉 등의 한글신문과 조선극장, 고려인협회, 집단농장 등이 그나마 ‘고려말’을 보전하는 구실을 해 왔다.

늦었지만 러시아에서 독립한 뒤 91년부터 한국 정부가 설치한 한국 교육원의 활동이 세계 전체 교육원(35곳)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자흐 알마티 한국교육원(원장 정금배), 우즈베크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원장 강태휘)은 자체 건물을 세워 학교를 열고 있으며, 2001년 생긴 키르기스 비슈케크 한국교육원(원장 심상도)과 함께 현지 슈콜라(정규 초중고등학교)에 설치한 한국어 과정에 교재와 인건비 등을 보조하고 있고, 기타 교회 등의 주말 한글학교 지원도 활발한 편이다. (표 참조)

국제교육진흥원, 연세·서울대 등에서 낸 외국인용 한국어 교재들을 쓰고 있으나 러시아어권에 알맞은 교재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며, 현지 교사 수준도 낮은 실정이다.

교육원 설치가 10년 안팎이 된 우즈베크, 카자흐의 경우 연로한 동포 1세는 대개 우리말(고려말)을 알고 있으나, 2, 3세로 가면 대강 알아듣는 수준이 30%이며, 초중등학교와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4세(약 10%, 10~20대)들은 어느 정도 한국어를 부려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강태휘, 정금배 원장은 “현지 고려인 동포들로 하여금 다민족 국가에서 소수민족으로서의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주류 사회로 진입하여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현지어 연관 교육과 영어, 컴퓨터 교육 등도 중요하므로 이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연해주 쪽과 마찬가지로 각종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 현지인들이 60%를 넘는 점이다. 이는 한국,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체 등에 취업하는 데 필요성을 느낀 때문으로 확인된다. 한편, 고려인은 원주민에 비해 한국 기업체 취직이 상대적으로 어려운데, 원주민을 고용해야 세제혜택 등을 받기에 유리하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좀 떨어진 러시아 남서부 돈 강변의 로스토프(로스토프 나 도누)에도 2001년 한국교육원(원장 천행엽)이 섰다. 북카프카스 지역을 관할하는데, 주변국에서 동포들이 모여드는 추세로서, 10월 현재 23개 한글학교에서 90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 두루 안은 문제점들과 대책

첫째 교사 수급문제였다.

한국어 전문학교인 하바로프스크 제8학교 차나리사(56) 교장은 “한국어 교사 1명이 학생 500여명을 모두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에서 지급하는 급료가 적다보니 한국어 전공자들이 교사보다 통역이나 다른 일을 하려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양질의 교사를 파견하는 것이 대안이지만 현지 교사와의 ‘급료 차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앙아시아·러시아 쪽에 걸맞은 단계별 표준화 교재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 영어권 위주의 교재만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관계자들은 “영어권 국가보다는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에서 더 많은 한국어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익힌 사람들을 한국에서 활용하는 문제, 그들의 진로에도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재외동포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현지동포, 유학생, 선교사, 중소 자영업자 자녀 등)이 수업료 부담 없이 모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무상교육 지원을 할 것도 강조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사할린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러 우수리스크 사범대 박지형 교수

“왜 좋은 길을 놔두고 굳이 힘든 길을 택했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지요.”

우수리스크 사범대학 박지형(41·한국어과·사진) 교수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장래를 촉망받는 예비 목회자였다. 한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유학까지 마쳤다. 1993년 미국에 부임지를 받고 떠날 채비를 하던 그를 러시아로 부른 이는 당시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버지 박민수 목사였다. 92년 우수리스크 사범대학에 한국어과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 박 목사가 학교를 도와달라며 아들을 부른 것이었다.

처음에 박 교수는 3년만 머물 생각으로 이곳에 왔지만, 기틀도 채 잡히지 않은데다, 교수도 부족한 학교를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이 졸업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는 그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곳 생활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 200달러밖에 안 되는 급료도 그러려니와, 생필품마저 부족한 당시 상황이 큰 고역이었다. 그나마 그를 버티게 했던 힘은 학생들이 보여준 한국어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동안 다른 한국인 교수들을 10여명 데리고 왔지만, 모두들 2년을 못 버티고 떠나더군요. 지금은 저를 포함해 둘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러시아인 교수입니다.”

학과 발전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닌 덕분에 96년부터 입시 경쟁률이 2 대 1을 넘어섰고, 2000년에는 3.5 대 1을 넘었으며, 정원도 학년당 20명에서 3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어과가 인기를 얻게 된 데는 95년 에 성사시킨 한국 대전대학교와의 교류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결혼도 미룬 채 한국어과 발전에 온힘을 쏟고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말을 가르칠 교원 양성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범대학에서조차 교수와 교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와 독지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합니다.”

서정민 기자

■사할린 동포 3대가 모였더니

사할린 종합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성의(60·사진) 교수는 이민 2세다. 일제 때 이곳으로 징용당해 온 뒤 2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충남 금산에서 나 열여덟에 결혼한 뒤 남편 따라 이곳으로 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직 고향 뒷산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는 어머니 강순예(80)씨는 정확한 발음으로 얘기했다. 이민 1세대들은 러시아말보다는 한국말이 훨씬 편한 ‘토박이’ 한국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한국말을 배운 박 교수는 조선어 학교에 들어가 우리말을 한층 깊이 배울 수 있었다. 1963년 소련 정부가 민족학교를 폐지하기 전까지 북한 출신자들이 운영하던 조선어 학교는 이민 2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주요 교육기관이었다. 그 뒤 러시아 학교로 진학하면서 박 교수는 점차 러시아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할린 동포 1세대들의 90%는 충청, 경상, 전라도 등 남한 출신입니다. 그러나 조선어 학교에서 말을 배운 2세대들은 남북한말이 섞이고, 여기에다 러시아말과 일본말까지 뒤섞인 독특한 말을 쓰게 됩니다. 이른바 ‘사할린 사투리’지요.”

박 교수도 ‘일없다’, ‘골 좋다’(머리 좋다), ‘일칸’(직장) 등과 같은 말도 섞어 쓴다.

변형된 말이긴 하나 모국어로도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2세와는 달리 3세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박 교수의 아들 명화(33)씨는 우리말을 거의 못한다. 어릴 때 할머니의 가르침으로 조금 했으나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그나마 모두 잊었다고 한다. 지금은 듣고 읽는 것만 약간 하는 정도다. 학교에서 한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은 3세대 동포들 가운데 우리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이는 10% 미만이다.

그래서 3대가 함께 모이면, 어김없이 러시아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때로는 1세는 한국말로, 2세대는 러시아말을 섞어서, 3세대는 러시아말로만 얘기를 하는 ‘이상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서정민 기자

122. ‘부실하다’와 불실(不實) -《한 겨 레》 2002-10-28 -

북한 〈조선말대사전〉(1992)에 ‘부실하다’의 뜻풀이와 보기말을 보자.

①다부지지 못하다.(몸이 부실하다) ②정신이나 행동이 모자라는 데가 있다.(부실한 사람) ③실속이 없다.(일을 부실하게 하다) ④충분하지 못하다.(부실한 음식) ⑤넉넉지 못하다.(부실한 살림) ⑥미덥지 못하다.(부실한 생각) 들처럼 해놓았는데, 아무 데도 ‘不實’이라는 한자가 없다. ‘부실하다’가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옳다.

남한 국어사전들에는 올림말을 ‘부실(不實)’ 또는 ‘부실하다(不實 -)처럼 ‘不實’이라는 한자를 또박또박 박아 놓았다. ‘부실하다’가 우리말이 아니고 한자말 ‘不實’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이다. 그런 한편, “불실(不實):실답지 못함.” “불실과(不實果):열매 맺지 않는 씨방”도 올라 있다. 이것은 옳다.

한자 ‘不[불]’의 ‘耈’은 ‘부득불실(不得不失), 부지불식(不知不識)’처럼 ‘耆, 耗’ 소리 앞에서는 줄지만 다른 소리 앞에서는 줄지 않는다. 물론 ‘耔’소리 앞에서도 줄지 않는다.

민중서관 〈국어대사전〉(1961)에 뚱딴지같이 헛것(부산처(不山處):숲이나 산이 없는 곳)이 실리자 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동아 〈한한대사전〉(1982)에 한국 한자말이라고 표시하여 실었지만, 정작 단국대학교 〈한국한자어사전〉(1992)에는 그런 것이 없다. ‘부산처’(不山處)는 말이 아닌 것이다.

우리말 ‘부실하다’는 한자말 불실(不實)과는 상관이 없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23. 한글과 외국어 적기 -《한 겨 레》 2002-10-29 -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한다. 우리는 한글이라는 훌륭한 글자를 쓰고 있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한글이 우수한 것은 우리말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적을 수 있어서이며 모든 언어의 발음을 그대로 적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요즘 한글을 외국어 발음 교육에 쓰자는 주장도 있고,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자는 운동도 있다. 우선 한글을 외국어 발음 교육에 쓰자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예컨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발음을 가르칠 때 한글로써 가르치자는 것인데, 어느 외국어든 우리말과 일치하지 않는 자음과 모음이 있으므로 외국어를 제대로 적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글 자모 40 글자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 새 기호를 만들어야 하는데, 몇 개나 더 만들어야 하는지는 언어마다 다르다.

그럼 외국어 발음 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외국어를 배울 때는 각 언어의 모음과 자음의 소리를 직접 해당 언어의 소리를 듣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야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 한글에 기대어 배울 수도 있겠지만 자칫 해당 외국어의 소리를 한국어의 소리로 바꾸어 발음할 우려가 있다.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할 때도 말에 따라 한글 자모로 모자랄 수도 넘칠 수도 있다. 모자란다면 새 기호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자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노력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한글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 연구를 해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24. 서로 -《한 겨 레》 2002-10-30 -

‘서로’는 너와 나, 남녀, 노소 등 쌍방이 베풀거나 주고받는 관계를 보일 뿐, 이 말이 지시하는 실체가 없고, 정의·평화·자비 같은 추상 개념도 아니므로 문장의 주체 성분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어떤 자리토(격조사)도 붙이지 말고 뒤따르는 풀이말의 뜻을 한정하는 어찌씨로만 써야 한다. 다음에서 따옴표(‘ ’)는 화살표(→)대로 고쳐 써야 한다.

*학습활동을 중심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고등국어 상 218쪽) →~ 의견을 서로 ~.

*모든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서로가 서로의 길을’ 방해하게 될 것이고 ….(고등국어 상 316쪽) →~ 서로 ~.

*눈앞의 상대편과 논의할 때도 ‘서로가’ 예의를 잘 차려야만 잘 되어 갈 것이다.(〃440쪽) →~ 서로 ~.

*‘우리 서로가’ 힘을 합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표준국어대사전) → 우리가 서로 ~.

*우리는 이 지구를, 땅을 얼마나 생각했을까? 진실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생태계를 얼마나 생각했을까?(耆신문 기고글) →~ 서로 필요한 ~.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남북한 응원단이 ‘서로를’ 응원하기로 했다.(耝신문) →~ 서로 ~.

*남북 쌍방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만나 대화를 해야 한다.(耆신문) →~ 서로 ~, ~ 상대를 ~.

*우리 사회의 현존하는 교육 시스템은 ‘서로가’ 단절되어 있고 연계성이 취약하다.(고등국어 하 324) →~ 서로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25. ‘표현’의 맏아들 -《한 겨 레》 2002-10-31 -

‘표기는 표현의 아들’이다. 그 아들이 힘으로는 위다. 표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내 약혼녀인 순이의 여동생”은 신부가 바뀔 판이요, ‘연3회’는 모두(延)와 연(年)으로 헷갈려 앞뒤 재기를 해야 안다. ‘산 넘어 산’을 고치라고 했더니, 웬걸 ‘자정 넘어’로 둔갑시키고, ‘이것과 다른 것’은 두 물건인지 한 물건인지 아리송한 채 내동댕이친다.

현대 문장의 첫째 조건은 ‘정확’이다. ①내용을 정확히 ②표현을 정확히 ③표기를 정확히 해야 한다. 정확하지 않고는 헛정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전적으로 부정하는 바는 아니다.” 글꼬리에 의존명사나 보조용언을 넣는 것은 자살행위다. 강의실의 입말체가 그냥 지면으로 옮겨진다. 문장은 선택과 압축이다. 글꾼들이시여! 밥그릇의 구멍을 부지런히 때우시라. “문장이란, 표현이라는 원시림을 지며리 더듬는 수업”이라.

“-이다, -이겠다, -전면 부정치는 않는다”처럼 다좇치고 죄어치는 단정법을 쓰라. 한국어의 글꼬리는 필자 태도의 사북임과 함께 그의 문장력의 저울대다.

문장을 디자인하라. ‘읽는 글’에서 ‘보는 글’로 탈바꿈하라. “문장이란 육성의 회화라고 볼테르는 말했다”보다 “문장이란 육성의 회화다(볼테르)”가 더 빨리 묻어갈 게다.

아무리 양분이 많은 음식이라도 보기가 안 좋으면 손을 내밀지 않음을 알라. 눈이 먼저 시식한다. 글은 언어로 된 그림이다. 그래서 문장을 디자인하자는 거다. 문장부호, 그는 디자이너 제1호다.

장하늘/문장학연구가

126. ‘외국어 풀이’ 말투 -《한 겨 레》 2002-11-01 -

전날 유행하던 한문 ‘문자 풀이’ 말투를 대체하는 것이 외국어 또는 영어풀이 말투다. 조선 땐 소수 양반들이나 그 자녀들만 ‘한문’을 배웠고, 서민·상놈이 다수였던 탓에 그들이 그나마 우리말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온 국민이 의무교육을 거쳐 고교, 대학까지 가며 영어나 외국어를 배우고 써대니 순우리말이 성하게 남아날 여가가 없다.

△온라인을 통해서는 가슴 적시는 감동 이벤트를 제공하고, 오프라인에서는 타깃 고객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실질적인 혜택을 내놓는 (투 웨이 마케팅)이 … △하루에 수천 명이 이민을 떠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관계를 세계 평화 구축으로 확대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 △지금이야말로 도덕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가 …. △우수 인재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데려다 쓰는 인력 (글로벌 소싱)과 …. △철판 등으로 만들어져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돼 있는 (터닝)장은 신발 등을 …. △전체의 40%는 음주 후 기억이 끊어지는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했다고 …. △몸 전체에 사용할 수 있는 (바디케어) 제품을 잇달아 …. △고통 분담을 회피하며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다 ….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의 설립은 수용자 맞춤형 서비스, (즉 온디맨드 저널리즘) 구현의 계기가 될 것이다.

괄호 안의 말은 없어도 된다. ‘곧, 즉’을 써서 되풀이하거나, 이미 꾸밈말들을 앞에 두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투는, 상품이나 물건에 사람을 종속시키는 물신주의를 조장할 뿐더러 외국어나 외래어에 자신을 얽어매는 구실도 한다.

최인호/교열부장

127. 세계속의 한국어(7)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한 겨 레》 2002-11-02 -

‘세계속의 한국어’를 살피면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모국어를 지키고 가르치려는 한민족의 각별한 의지와 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화·확대·조정을 거듭하는 우리말 교육 현실과 아울러 한국의 정치·경제·문화력을 실감할 수도 있었다. 이와는 상반되게 그들의 삶의 방식과 언어 역시 상당히 헝클어져 있음이 확인된다.

“언어가 한 민족의 총체를 나타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사, 지역, 학문적 맥락에서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표상이다.”(조슈아 피슈맨·언어학) 이런 말이 아니라도 특히 20세기 식민지를 경험하고, 50년 넘게 미국과의 혈맹(?) 과정을 거치면서도 한국어를 뺀 한국인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한민족은 말글을 그 정체성의 표상으로 삼아왔다.

그런데도 “모국어 능력을 넘어선 한민족의 정체성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흩어져 살아도 정체성을 지키는 유대인이 있고, 어느 민족이나 이민 3, 4세가 되면 모국어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번역과 문화연구 등 현지어를 통해 민족교육을 하는 길도 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결론은 민족교육을 줄기차게 해나가면서 외국인 또는 이민 3, 4세들을 위한 한국학 프로그램을 병행해나가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현상태의 재외 한국어 교육 제도의 취약성, 낮은 지원 속에서 동포들의 자발성과 열성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어, 여기에 국가적 지원이 더하면 그 발전 여지는 넓어 보인다.

■동포·외국인 교육 아울러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란 말은 한국어를 외국인이 배울 때나 그들을 가르칠 때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주된 대상을 한국계로 삼느냐, 순외국인으로 삼느냐는 점도 논란거리다. 동포일 경우 한국어는 ‘외국어이자 모국어’이기에 순외국인에 비해 쉽게 고급 한국어를 익힐 수 있으며, 그들이 해당국에서 필요로 하는 한국어 능력자 수요를 대체할 수 있다는 관점이 동포 위주 교육론이다. 한글·한국어의 세계화는 동포를 넘어서 외국인에게 퍼뜨려야 세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 뒤의 주장이다.

■국내 외국인 교육 현황

국내 각 대학 부설 ‘국제교육원’(통칭)들의 외국어 분야가 흥청거린 지는 오래지만, 특히 몇몇 대학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분야가 새롭게 번창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서울 쪽의 경희, 고려, 연세, 성균관, 서강, 서울, 건국, 이화, 선문대 등의 ‘한국어 학당’(통칭)이 활발한 편이다. 경희대의 경우 일대일 학생 도우미 제도가 특징이고, 연세대는 규모(900여명)와 오랜 역사가 특징이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전임 오미남씨는 문법과 기초를 중시하고, 교수의 자율성, 학생-교수 친화가 서울대 쪽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1급에서 6급까지의 급수를 두어 봄·여름·가을·겨울학기로 짠 정규과정과, 여름·겨울의 특별 연수도 있어서 각 과정에 100명 이상 수백명까지 다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국제교육진흥원에서는 재외동포 학생들을 주로 가르치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등에서도 외국인 특수교육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외국인용으로 펴낸 교재들로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한국어 1~6〉, 서울대 언어교육원의 〈한국어 1~6〉,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의 〈말이 트이는 한국어 1~4〉 등이 있다. 재외동포용 교재는 국제교육진흥원의 〈한국어〉(1~5)가 있으며, 99년 이후 교재개발 업무가 한국교과과정평가원으로 넘어간 뒤 통합·범용으로 된 한국어, 교사용 지도서 등을 펴낸 바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요구하는 언어권별 교재는 미미한 상태다. 시청각 교재로 삼을 만한 것으로 〈아리랑 티브이〉에서 엮은 ‘레츠 코리안’(김형곤 연출)이 있고, 인터넷 학습 사이트들도 다수 있다.

언어권별로는 미국 쪽에서 개발한 〈통합 한국어〉(21권, 하와이대)가 있고, 러시아 쪽에서도 몇가지 교재가 나온 바 있다고 한다. 교재는 교수나 교사가 개발하여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나 걸맞은 수준·조건이 아니라면 등급·세분화한 표준 교재가 필요하다.

■제도·환경 갖추기

외국에서 제도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라는 현재 미국, 호주, 일본 정도다.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도 이를 제도적 외국어로 삼게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교사 질도 문제다. 미국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사범대학원에 한국어교사 양성과정이 있고, 우즈베크·카자흐 등에도 교사자격을 갖춘 이 중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사람을 가려 한국교육원에서 강습을 통해 양성하는 제도가 있다. 국내에는 서울, 연세, 경희대 등의 교육대학원에 한국어 교육 전공과정이 있고, 교사자격을 갖춘 이를 위한 단기연수 과정도 몇몇 대학에 설치되어 있다. 사범대 등 관련 학과와의 제도적인 교류가 필요한 실정이다.

■국제 한글 음성기호

최근 주목되는 것으로 한글 세계화와 관련하여 국제음성기호의 한글화와 ‘정음한글’ 개발론이 있다. ‘국제 한글 음성기호’는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의 온전한 표기를 목표로 개발했다. 한글자모와 그 변형을 합쳐 45자로 짰으며, 모두 컴퓨터 자판 글쇠로 입력할 수 있는 풀어쓰기 반각글자 체계다.(표 참조) 진용옥 교수(경희대)의 ‘정음한글’은 사이버 세계의 숙제인 언어와 문자를 통합할 유일한 대안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반적 한글의 세계화가 아닌 사이버 세계에서 이를 통해 컴퓨터, 자판, 휴대전화 기타 정보기기 통합에 유용한 중간언어로 개발하고 있는데, 12월께 발표할 예정이다.

최인호 기자 gojal@hani.co.kr

■전문가 의견

▶고급과정 이수자 배출 노력할때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정치적 관심으로 극소수 대학에서 시작되었던 한국학 과정이 1980년대 중반부터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인 이민 증가, 문화·인종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계의 방향 전환에 힘입어 이제 미국의 크고작은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두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정식 어학 프로그램만 120군데가 넘는다.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학의 경우 한국 관련 강좌 열여덟 과목에 수강생이 1년에 400여명에 이른다. 미국 한국어교수모임(AATK)이 생긴 지도 6년째다.

이제 한국어 교육에서 역점을 둘 부분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을 어떻게 준모국어 화자 수준으로 올리느냐는 점이다. 나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언어 훈련을 통해 한국학 전공자를 길러내고, 한국어 구사자를 배출하는 만큼, 얼마나 많은 학생이 초급 한국어를 듣느냐보다 몇 명의 학생이 고급 한국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하느냐에 중심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외국어는 수단일 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목적으로 삼는 느낌을 준다. 온 국민이 영어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것은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교수법이 나빠서 영어를 못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어 사용자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시간의 다섯 배를 들여야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 이는 거꾸로 한국어 사용자가 영어를 배우는 게 그만큼 힘든다는 얘기다.

우리말글의 정체성을 찾는 데 천년 넘게 걸렸다. 〈독립신문〉이 나와 언문일치 자각을 일으켜 20세기의 근대문학을 이룬 공이 큰데, 100년 가까이 지나서야 한글전용 〈한겨레〉 신문이 나온 것은 결코 빠른 진전이 아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 볼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한글창제라고 보는데, 이를 기념하는 일을 소홀히하는 것은 조상제사 지내기보다 하찮게 여기는 결과다. 몇 해 전 미국 쪽 언어학자들이 한국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낸 일이 있다. 사회운동으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삼아 기려야 한다고 본다.

유영미 /미국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 교수 yucho@rci.rutgers.edu

▶한글 알리기 민·관 적극 나서야

동유럽 쪽은 최근 기술정보 혁명과 각종 ‘민주화’ 개혁시대에 들어섬으로써 마음에 평화를 줄 만한 문화를 많이 잃었다. 그래서 전통 지혜에다 경제 수준이 높은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고 그 전통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언어에 관심이 깊다.

지난 여름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양학부에 신입생들을 뽑았다. 한국학과 인기는 일본, 중국보다 낮았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높았다. 이는 한국 문화가 아직도 러시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한국어를 펴기 위해서는 한국 민·관 쪽에서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러시아 제정 때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일본·중국은 영사관과 문화센터를 두고 있지만 한국은 명예영사밖에 없다. 취업면에서도 한국어를 택하게 할 조건들이 허약하다. 예컨대 중국, 일본인 여행자들은 현지인 가이드를 찾는데, 한국인들은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자국 유학생들을 찾는 까닭에 러시아인 안내인을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어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몇 해 전 페테르부르크에서 사설 ‘한민족 한글학교’가 설립되었다. 초등학생부터 연세가 많은 분들까지 70여명이 공부한다. 페테르부르크대학에도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몇 배 정도 늘었다. 모스크바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고, 최근에 러시아에서 각종 한국어 교재들이 5가지 정도 나왔다.

러시아에서는 적어도 10년 이상 한국 관련 학과가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과 교류관계가 튼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거의 한글을 ‘한자’로 알고 있으며, 한글의 ‘우수성’은커녕 한국인들이 몇백년 전에 독특한 글을 개발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이런 빈틈을 채우려면 한국 정부, 그리고 국외에 나가는 한국인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 kourban@mail.wplus.net

▶‘국제학교’ 한국대학서 인정해야

한국어를 정식으로 가르치게 하는 학교로 ‘국제고등학교’가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학교본부(IBO)에서 만든 과정이다. 각국 국제학교에서는 여기서 만든 교과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모국어 능력을 장려할 뿐더러, 학생들이 귀국해서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편성했다. 제2외국어 학습에도 도움을 주고 개인·문화적 자신감을 높여주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2001년 현재 48개국 1333개 대학에서 국제학교 자격을 입시에 반영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주독일 한국교육원 심제택 원장 등은 국제학교 교육과정의 장점을 들추어 한국 대입제도에서도 이를 인정할 것을 건의한 바 있다.

본인은 2000년 8월부터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에서 ‘코리안 A1’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본 국제학교, 뮌헨 바바리아 국제고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 남아공,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 국제고에서 학생들의 신청에 따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과정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더 많은 국제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것이며, 이로써 국제어로서의 한국어 위상을 높일 것이란 점이다.

국제학교 졸업생이 유럽에 있는 대학을 가려면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성적이 좋으면 장학금과 함께 대학 1학년 과정을 면제해준다. 외교관, 주재상사 자녀들 상당수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한국의 대학에 가려고 갖은 고초를 겪고 있고, 비싼 학비(1년에 1만5000달러)를 내고도 입시 탓에 모처럼 국제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부할 기회를 못 살리는 형편임을 헤아려 정책판단을 해주기 바란다.

김진숙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 한국어 담당 kim-maintal@hanmail.net

▶교육차원 넘어 국가이익 유용

외국인에 대한 체계적 한국어 교육은 1959년 연세대에 한국어학당이 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선교사·기자·군인·주재원 등 직무상 한국어가 꼭 필요한 이들이 주류였다. 이후 한국의 경제 발전과 올림픽 개최를 통하여 국제적 지위가 오르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었다. 여기에 60~70년대에 이민 간 동포들의 자녀들이 가세하고, 옛 공산권 쪽과 수교하면서 빠르게 확대되었다. 올해는 10월 현재 국내 외국인 학습자 수가 5천명을 헤아린다.

휴학하고 언어연수를 온 사람, 한국계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 한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한국을 좀더 알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한국어가 외국인에게 필요성과 흥미를 일으키는 언어로 자리잡았다면 한국어는 이제 국제어로 도약할 요건을 갖춘 셈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면 그 나라 사회·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정향을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어 교육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국가 이미지를 높일 우호적인 다수 인사를 확보한 셈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상당수가 한국 관련 분야에서 일한다고 볼 때 이제 한국어 교육은 국가이익 제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영역이 되었다.

최근 각 교육기관은 늘어나는 학생에 대처하여 교육 환경 개선, 교재 개발, 교사 훈련 등 기반 구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어 교육학이 학술진흥재단이 분류하는 연구 분야에 정식 교과 교육학으로 설정되는 등 학문적 정체성도 빠르게 확보되어 가고 있다.

국가 차원의 한국어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 수립, 수준 높은 교사 양성을 위한 제도적 보완, 외국인 산업 연수생 등 한국어 교육 사각 지대에 있는 외국인에 대한 교육 공급 등은 정부와 민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논의해야 할 일들이다.

조항록 /연세대 한국어학당 교수 hrcho@yonsei.ac.kr

▶예산 늘려 교육환경 개선해야

국내의 한국어 교육은 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순수 외국인 대상이다. 몇 해 전까지는 일본 학생 비율이 50%에 이르렀으나 최근에는 중국 학생이 이를 앞지르고 있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이 1만명 정도라는데, 한국에도 비슷한 인원이 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국어 교사만도 2000명 이상이 필요하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서도 한국 열기가 높아 이 지역의 경제 발전에 따라 한국 유학생 수가 급속히 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바탕에서 한국어가 주요 국제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에 따른 교육환경 개선과 질높은 교사 양성 등이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한국어 교육을 독립 전공으로 둔 대학은 거의 없고, 국어국문과에 그 과정이 설치된 경우도 많지 않다. 몇몇 대학원에 한국어 교육 전공을 두고 있으나, 박사과정을 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조건에서 전문가를 길러내기란 어렵다.

정부에서도 한국어 교육을 위한 예산을 늘려야 할 것이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능력시험의 확대 시행도 필요 과제다. 세계 각 나라에서 한국어가 주요 언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외교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연구는 국제한국어교육학회, 이중언어학회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98년부터 치르는 한국어능력시험(KPT)에다 한국어세계화재단 등이 벌이는 각종 사업을 통해 한국어 교육과 관련된 전문가들의 결속력도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한국어 교수 국외 파견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언어권별 특성에 맞는 교사 양성, 사전 및 교수법 개발 등도 과제다. 한국어 교육과 관련된 정부 각 부처의 업무 조율과 정보 공유도 필요하다.

김중섭 /경희대 국제교육원 한국어교육부장

128. ‘鎗’과 ‘닝’ -《한 겨 레》 2002-11-04 -

우리 국어사전들에 ‘늴리리, 鎗큼, 무늬, 보늬, 오늬, 하늬’가 나와 있다. ‘니’를 ‘늬’로 적는 것은 ‘니’의 소리를 ‘어머니’의 [니] 소리로 낼까 보아 그런단다. 그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늬’는 [니]가 아니라 [느이]이기 때문이다. ‘늬’로 적는 것은 낡은 버릇이다. 18세기 중엽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이익이 지은 백과사전 〈성호사설〉 천지문 ‘팔방풍’에 ‘西風謂之寒意’가 보인다. 서풍을 ‘한의’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늬’를 의식한 적기다.

비슷한 보기를 들어보자. ‘디’를 어떻게 읽었는가 하면, 그때는 ‘다댜더뎌도됴두듀드디’를 [다쟈더져도죠두쥬드지]라고 읽었기 때문에 [지]라고 읽었다. 그래서 ‘어디’를 [어지]라고 소리 내므로 ‘어듸’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어디’를 ‘어듸’라고 적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디귿, 디글디글, 디디다, 디딤돌, 딩딩’과 ‘디디티, 디렉트, 디스크, 디자인, 디젤, 디지털, 딜레마, 히딩크’로 적는데 아무런 불편도 문제도 없다. 시대가 바뀌어도 왕창 바뀌었다. ‘鎗큼’도 옛날에는 그런 적기가 없었다. 〈훈몽자회〉(1527)에 ‘檎 님금 금’이 있다. ‘님금’은 ‘능금’의 옛말이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니나노’가 있고, 근래에는 ‘니글니글, 니기미, 니얼니얼’ 들과 같은 적기가 보인다.

인제 ‘닐슨·닝포·머니·소니·커닝·허니문’을 ‘늴슨·닝포·머늬·소늬·커닝·허늬문’으로 적지 않는다. ‘뱅글·빙글’처럼 ‘냉큼·닝큼’으로 되는 것이지, 냉큼·닝큼’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닐리리 닝큼 무니 보니 오니 하니’로 바로잡고, ‘어머니’의 ‘니’는 따로 가르치자.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29. 베트남말 적기 -《한 겨 레》 2002-11-05 -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성이 구엔(Nguyen)이라고 한다. 베트남의 과거 대통령이었던 ‘구엔 반 티우’도 바로 이 성(Nguyen)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를 ‘구엔’으로 적어 왔다. 10년쯤 전부터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베트남말의 발음을 쉽게 접하게 되었는데 이 말의 현지 발음이 ‘구엔’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최근에는 ‘구엔’이 아니라 현지 발음에 가깝게 ‘응엔’ 따위로 적는 신문도 나타났다.

베트남말 [Nguyen]은 사실 한글로 정확히 적기가 어렵다. ‘응엔·응웬·응우엔·응우웬·웬’ 따위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아무리 들어 보아도 어느 것과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호치민시의 공항(Tan Son Nhat)도 ‘탄손누트’로 적어 왔지만 베트남말 소리는 사뭇 다르다. ‘딴손?·딴손늣·딴손?’의 어느 것도 현지 발음과는 거리가 있다.

어떻게 적더라도 현지 발음과 완벽하게 같을 수 없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곧, 현지 발음과 최대한 가깝게 적는다는 원칙과 함께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으며 한국사람이 발음하기 편해야 한다는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Nguyen]을 ‘응엔·응웬·응우엔·응우웬·웬’ 들에서 어느 쪽으로 적게 될지, 탄손누트(Tan Son Nhat)의 ‘Tan’을 ‘탄’이 아니라 ‘딴’으로 적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곧 만들어질 베트남말, 타이말, 말레이인도네시아말의 표기법 제정 작업 결과를 지켜 볼 일이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30. 하이 서울? -《한 겨 레》 2002-11-06 -

10월27일은 서울시민의 날이라고 해서, 오후 6시에 시청 앞 특설무대에서 연 ‘서울 사랑 축제’를 한 방송이 생중계했다. 현란한 무대 위에 늘어선 유명 인사들 한가운데 선 이명박 시장이 서울의 슬로건을 공표하겠다고 하고는, 자신이 입은 티셔츠에 수놓은(?) ‘Hi Seoul, We are Seoulite’를 오른손으로 짚더니 느닷없이 ‘하이 서울, 위아~ 서울라이트!’라고 외치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고, 최근 북한 당국이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하고 중국인 부호 ‘양빈’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보도가 떠올라, 이씨가 혹시 서울시장에 임명받은 미국인 아니냐는 생각에 쓴웃음을 참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정부에서 어디 어디를 관광특구로, 경제특구로 삼아 영어를 공용한다고 발표해 극심한 반대여론에 부닥치더니, 이 시장은 자기 독단으로 서울을 영어공용 지구로 결정해서 시민의 날을 맞아 공표한 것인가?

철없는 어린이들이 장난삼아 지껄여도 말려야 할 일이거늘, 이 무슨 망발인가? 우리말은 배달겨레의 혼이자 상징이며, 서울은 우리나라의 심장이다. 염통이 굳어지면 사람이 죽듯이, 서울을 언어 식민지화해 겨레넋이 마비하면 나라가 망한다.

서울시장이 행사 마당에서 앞장서 영어로 구호를 외치면 그 추종자들이 부화뇌동하고 미국 사대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려 우리나라를 언어 식민지로 몰아간다. 이 시장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의식하고 크게 각성해 그 잘못을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마음을 돌려 시장다운 시장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31. 짧은 문장의 힘 -《한 겨 레》 2002-11-07 -

짧게 쓰라. 수다쟁이 말엔 알맹이가 없는 법! “간결은 지혜의 정신”(셰익스피어), “짧은 말에 많은 뜻을 곁들이라”(소포클레스) 했다.

한국의 이름난 칼럼들의 월 길이 평균은 22자다. 40~50자설은 옛말이다. 문체가 크게 변하는 것을 읽는다. 짧아야 힘있다. 잔가지를 쳐낸, 큰 줄기만 그리고 형용사·부사를 살짝 곁들인 간결체 말이다.

문장이 길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말수가 많으면 대상의 속살은 숨어버리거나 빠져버리기 일쑤다. 문장은 비석글의 숙명을 지닌다. 쪼갬질·깎음질·쪼크림질로 공글린 옥돌일까?

△설악산에 갔더니 공기가 어찌나 맑던지, 시린 공기가 내 혈관을 마구 들쑤시며 달리는 듯했다. → 설악산에 갔다. 맑은 공기가 내 혈관에 마구 자맥질했다.(37→22자, 60%)

△가을이 깊으니 깊은 산길엔 낙엽만 쌓이는데, 인적 드문 오솔길에 스님 한 분이 가고 있었다. → 늦가을이었다. 낙엽만 쌓이는 오솔길이었다. 거기 스님이 한 분 가고 있었다.(87%)

‘한 월에 한 이야기’다. 짤라뱅이월(토막)이 안 될 정도로 쪼개라.

△나비는 예쁘게 접은 러브레터일까, 꽃밭을 찾아 헤매고 있다 → 둘로 접은 러브레터가 꽃밭의 번지를 찾고 있다.(66%)

분명한 주술 짜임으로, 함축으로 강한 인상을 …. 개성적인 비유는 최고의 매력이다.

어느 문장학자의 말을 되뇌어 보자. “짧게 쓰라, 그러면 즐겨 읽으리라. 쉽게 쓰라, 그러면 이해하리라. 그리듯이 쓰라, 그러면 기억하리라.”

장하늘/문장연구가

132. 독직과 방조? -《한 겨 레》 2002-11-08 -

사람은 사람이나 동물·사물을 몸과 함께 말이나 다른 연장을 써서 다스린다. 그 중 말글이 최고급이고, 다음이 매, 주먹·발길질 차례인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은, 사람도 짐승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로 해서 안 될 때 ‘회초리’를 든다. 이를 보면 상대가 겁을 내려니와 부려쓰는 이도 조심하며 쓰게 된다. ‘매질하며 캐묻는 것’이 고문(拷問)이다. 전날에도 ‘평문’(平問)이라고 사대부나 귀한집 족속을 조사할 때 점잖게 잘못을 캐묻는 방식을 썼는데, 요즘의 기본인권 존중 방식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못된 짓을 하고서도 감추고, 조사자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둘러대는데야 어디 매든 주먹이든 가만 있겠는가. 법 안에도 주먹이 있다는 얘기다.

최근 법조 우두머리들 목이 날아간 것도 혐의자 조사과정의 ‘모진 매질’ 때문이었다. 그 책임자의 잘못은 ‘고문 방조, 독직 폭행 치사 혐의’라고 한다. 말이 어렵다.

우리는 여기서 말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을 세워보자. 지금까지의 법률, 용어, 관행 등의 연장으로는 범죄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거나 순화하지 못했다는 전제로 말이다.

‘독직’(瀆職)이란 ‘직책을 더럽힘’이니 주로 함부로 힘을 부려쓴 잘못을 가리킨다. ‘구타, 폭행, 고문’ 따위는 ‘매질’일 뿐이고, ‘추달·취조’는 조사, 치사는 ‘죽게 함, 죽임’이다. 방조(幇助)는 ‘거듦’이다. 여기선 ‘매질을 거들었다’는 말인데, 말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이 나라 누구한테 써먹겠는가. 말이 순순해지고 쉽게 전달될 때 범죄도, 언론도, 정치도 순순해진다면, 그 노력도 괜찮지 않겠는가?

최인호/교열부장

133. ‘으악새’는 풀이 아니다 -《한 겨 레》 2002-11-11 -

1980년대까지의 사전들에

“으악새:‘억새’의 방언.”

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으악새’가 ‘억새’인 줄로 알고들 있다.

김능인이 노랫말을 짓고, 손목인이 곡을 붙이고, 고복수가 노래를 부른 ‘짝사랑’ 첫절에

“아 ~ 으악새 슬피 우니 … 여울에 아롱 젖은 … 강물도 출렁출렁 …”이라고 나온다. 그러고 보니 ‘으악새’가 물과 관계가 있음을 알겠다.

‘억새’는 산에나 들에 나서 자라는 풀이라 물과 관계가 없고, 울지도 않는다. ‘억새’의 사투리는 사전마다 ‘웍새’라고 되어 있다.

한편, 사전마다 ‘왁새’가 ‘왜가리’의 사투리로 되어 있다. ‘왁새’는 남쪽에서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논이나 강, 호숫가 물에서 살다가 가을에 돌아가며 슬피 우는 철새다.

소리도 이 ‘왁새’가 ‘웍새’보다 ‘으악새’와 가깝다.

1990년대에 들어서 〈우리말 큰사전〉에 둘 다 살려서

“으악새1: → 억새”

“으악새2: → 왜가리”

라고 했는데, 앞엣것은 잘못이다. 〈국어대사전〉 3판에 덩달아서 “으악새:①억새(경기) ②왜가리(평안)”라고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이라면 마땅히

“으악새:‘왜가리’의 사투리”

라고 바로잡아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였다.

‘한겨레’ 독자들은 ‘으악새’가 ‘풀’이 아니라 ‘새’라는 점을 새겨두자.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34. 외래어 적기와 규칙성 -《한 겨 레》 2002-11-12 -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는 서양 외래어에는 영어에서 들어온 것이 많다. 그런데 영어에서 온 외래어를 살펴보면 규칙을 찾기가 무척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원어의 자음을 적을 때 받침으로 적을 것이냐 ‘으’를 넣어 적을 것이냐 하는 점이 특히 그렇다.

백(bag)은 ‘배그’로 쓰지 않고, 개그(gag)는 ‘객’으로 쓰지 않는다. 또 지그재그(zigzag)로 쓰지 ‘직잭’으로 쓰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 이름 멕 라이언(Meg Ryan)에서는 ‘메그’가 아니라 ‘멕’으로 적는다. 낱말 끝이 g로 끝나는 말은 ‘으’를 받쳐 적는 쪽이 많아 보이지만, b로 끝나는 말은 ‘耑’ 받침으로 적는 경우가 더 많다. 잽(jab), 랩(lab)이 그렇다. 그러나 허브(hub) 같은 말은 ‘헙’으로 적지 않는다.

끝이 t로 끝나는 ‘set, mat, net, jet, bit, nut’ 등은 ‘세트, 매트, 네트, 제트, 비트, 너트’로 쓰인다. 그러나 커트(cut)의 경우 탁구나 테니스에서는 ‘커트’로, 인쇄 용어에서는 ‘컷’으로 적는다. 그리고 ‘핫도그, 닷컴’ 따위에서는 받침 ‘耔’으로 적는다. t도 여러 음절로 된 말에서는 ‘으’를 붙여 적지 않는다. 마그넷, 코코넛 등이 그렇다. ‘초콜릿’이지 ‘초콜리트’라고 하지 않는다. 로켓(rocket) 역시 ‘로케트’가 아니다.

외래어는 적기는 대체로 일정한 법칙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들어와 쓰임을 알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굳어진 말은 관용을 인정하되, 용례와 범위는 따로 정한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35. 스스로 -《한 겨 레》 2002-11-13 -

‘스스로’는 본디 ‘저절로, 몸소, 자진하여, 제힘으로’와 같은 뜻으로 쓰는 어찌씨다. 그런데도 국어사전들이 일반에서 많이 쓴다며 ‘자기 자신을 뜻하는 이름씨’로 규정하여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스스로를 생각해 보았다’처럼 된 치졸한 문장을 보기글로 싣고, 언론·정치인은 논설문이나 연설문에, 학자들은 교과서에 실을 글에 생각 없이 마구 써서 학생들을 헷갈리게 하고, 국어 품위도 떨어뜨리고 있다.

다음 보기에서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 써야 한다.

*그렇다고 남의 향락을 위하여 ‘스스로는’ 고난의 길을 일부러 걷는 것이 학자도 아니다.(고등국어 상 138쪽) →~ 자신은 ~.

*시집 출판을 단념한 윤동주는 1941년 12월29일에 〈간〉을 썼다. …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고등국어 상 129쪽) →~ 자신을 스스로 ~.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고등국어 하 294쪽) →자신을 ~/자기를 ~.

*우리 국민은 국제사회와 공존하기보다 ‘스스로를’ 단단한 표피 속에 가둬 두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耗일보 칼럼) → ~ 자신을 ~.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든지, 경제 구출을 위해 새 구실을 한다든지 해서 ‘재벌기업 스스로의 변화를’ 국민은 기대한다.(耆일보 사설) →~ 재벌기업이 스스로 변하기를 ~.

*‘주민들 스스로도 자구노력 필요(耆일보 제목) →주민들도 제 살 노력해야.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36. 쉬운 글 -《한 겨 레》 2002-11-14 -

아무리 명문일지라도 읽히지 않으면 무엇에 쓰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인쇄물은 기계와 속도의 사생아? 사생아는 천덕꾸러기는 될지언정 만수받이는 못 되는 존재것다.

‘읽혀야 문장!’ 그 전략 없는 싸움 끝에, 또는 한 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 패잔병들의 주검이 책방에 도서관에 줄느런하구나.

쉽게 쓰라. 모든 글은 의사 소통을 하는 연장일 뿐이다. 이해한 다음 납득(실용문)이든 감명(예술문)이든 있다. ‘이해’는 총각이나 아가씨를 꼬셔 맞앉히는 것이다. 앉힌 다음에라야 푸념이든 넋두리든 ….

△이실직고로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 저지른 온 죄를 곧은불림했다.

△내 허파의 빈 동공에 허무의 돌풍이 몰아쳤다 → 마음이 더없이 허전했다.

△환희에 고동치는 소년의 심장의 맥박 같은 문장 → 기쁨에 설레는 꼬마 가슴의 뛰놂이 들리는 문장.

전문어·외래어, 엄부럭을 멀리하고, 쉬운말로, 쉬운 짜임새로, 직선적 문체로 ….

1978년 3월23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령 제12044호에 서명했다. ‘쉬운글령’이다. 큰소리 말라. 우리는 그 30년 전에 ‘한글 전용법’이 있었다. 이젠 ‘한글 문장법’이다. 세계 제일인 한글로 된 순 국산품 문장, 레이건이나, 카터의 그 쉬운 명문을 넘어설 우리 문장말이다.

“문장을 쉽게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헤밍웨이)

글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 꿈길에서도 놓치지 못할 과제다.

장하늘/문장연구가

137. 21세기의 국어 -《한 겨 레》 2002-11-15 -

지난 2일과 7일 뜻깊은 두 행사가 있었다. 7일에는 국립국어연구원 강당에서 문화부와 국어연구원이 엮은 ‘국어 발전 종합 계획’ 시안을 두고 공청회가 열렸다. 나라 안팎의 어려운 국어 쓰기 환경을 절감하고, 민족문화의 바탕인 국어 발전을 위해 만든 방안들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2일에는 한글학회와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21세기 언어 교육·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문명·문화의 획일화라는 세계화의 부정적인 면을 딛고서 어떻게 하면 국어를 중심으로 한 21세기의 바람직한 언어 교육·정책을 세울지를 얘기하는 자리였다. 둘 다 그 고갱이는 ‘안을 다져 밖으로 끼쳐 나가자’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식민상태를 거치고 광복 뒤 분단된 채로나마 50여년 만에 우리말글을 다듬고 일구어 제법 꽃을 피운 오늘에 이르러 이런 모임들이 잇대어 열리는 까닭이 무언가? 영어 열풍 등 그만큼 나라 안팎의 형편이 심상찮다는 얘기다. 현실과 앞날을 진단하는 데서 민·관 두루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어 다행이다.

법과 제도를 간추리고 철학을 세우며, 이를 제대로 펴는 길밖에 없겠지만, 문제는 우리말글의 위기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챙기고 자녀를 가르치는 데 나라와 겨레 형편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학교, 정치인, 행정 부처, 언론 역시 입시제도나 언어 교육·정책 처방에서 근본을 떠나 노 잃은 돛배 꼴인 모습이 대부분이다.

돈을 벌고 외교를 하며, 군대를 기르고, 정치를 하여 마침내 둘러빠지고 허물어질 나라를 남겨서 무엇하리요.

최인호/교열부장

138. ‘취음’ 이야기 -《한 겨 레》 2002-11-18 -

한글이 없을 때 우리 조상들은 한자로 우리말을 적으려고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해냈다. ‘이두, 향찰, 군두목’들이 있었는데, 한자의 소리(음)와 새김(훈)으로 우리말을 적던 방식이다.

근래에는 주로 한자의 음만 따서 적는 ‘취음’이란 방식이 쓰였다.“사당(舍堂·寺黨·社黨·沙 當)”에서 묶음표(괄호) 안의 적기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조선 때 무리지어 떠돌면서 노래춤을 팔던 ‘사당’은 우리말이다.

그런데 1980년대까지의 사전들에는

‘남사당패(男寺黨牌)’를 한자말로 다루었다.

그러나 묶음표 안의 남(男)과 패(牌)도 취음이다. ‘남’과 ‘패’도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우리말 ‘남’에는 남진(사내)이라는 뜻이 있어서, 조선 때 노래 모음책 〈시용향악보〉(1540)에 있는 ‘남종’은 ‘남진종’의 준말로 ‘사내종’(奴)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패’에는 사람이란 뜻이 있어서 ‘패거리, 놀이패, 싸움패’ 들에 쓰이는데, 한자말 패(牌)에는 ‘나무나 종이’ 조각 따위 뜻은 있으나 ‘사람’이란 뜻은 없다. 우리말 패를 중국에서는 패(牌)라 하지 않고 파(派)나 훠(□)라고 한다.(보통 취음 앞에는 〈표를 친다.)

다음과 같은 말들은 지금까지 한자말로 알고 있었으나 우리말이고, 묶음표 안의 한자는 취음이다.

기별(〈寄別·寄別), 도배(〈塗褙), 마리산(〈麻利山·摩璃山·摩利山·摩離山·摩尼山), 불한당(〈不汗黨), 인절미(〈仁切味·引切味·引切味), 임실(〈任實), 족두리(〈簇頭里·簇兜里), 천장(〈天障), 타령(〈打令·打鈴)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39. 미주 한국어 -《한 겨 레》 2002-11-19 -

한국어는 한반도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 살고 있는 한인 동포들은 한국어를 잊지 않고 산다. 특히 미국에서는 많은 한국어 신문과 방송이 한인들의 눈귀가 되고 있다. 그들은 현지에서 발행되는 한국어 신문과 방송을 통해 현지 소식뿐 아니라 고국 소식도 쉽게 접하며 산다.

다른 데도 그렇겠지만, 미국 쪽의 한국어 신문에는 국내 신문들과 특히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무엇보다 현지 땅이름이 매우 자주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동포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그쪽이다 보니 지역 소식에는 반드시 현지 지명이 포함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외래어 표기’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현지 땅이름 표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같은 지명이라도 여러 가지로 적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가장 밀집해서 살고 있는 도시가 로스앤젤레스인데,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버몬트 거리는 거리 간판은 물론이고 현지 신문에서조차 ‘버몬, 벌몬, 버몬트, 벌몬트’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왔다. 그 결과 어떤 한인은 ‘버몬’과 ‘벌몬’이 다른 곳인 줄 알고 있기조차 하다.

최근 들어 로스앤젤레스의 신문사들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이런 외래어 표기의 혼란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현지 땅이름을 모아 용례집을 발간하여 무료로 나눠주는 등 땅이름 표기 통일을 위한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한국어가 한층 성숙해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징조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40. 모두 -《한 겨 레》 2002-11-20 -

‘모두’는 본디 ‘온통·전부’를 뜻하는 어찌씨인데, 일부 국어사전이 이름씨로 올리고, 문법의식이 부족한 지식인들이 ‘모두가, 모두의, 모두에게’ 따위로 자리토씨를 붙여 쓴 졸문을 쏟아내어 우리말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다음 보기들에서,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야 한다.

*‘식구 모두가’ 여행을 떠났다.(표준국어대사전) → 식구가 모두 ~.

*㉠‘삶도 사랑도 모두가’ 하늘의 은총과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삶과 사랑이 고되고 힘겹게 느껴지더라도 ‘그 모두가’ 하늘의 은총이며 …(고등국어 하 71쪽) ㉠ → 삶과 사랑이 모두. ㉡ → 그것이 모두.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두의 정보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는 사회라도 또다른 차원의 의미가 부가된다.(고등국어 하 157쪽) →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

*이제 ‘우리 모두는’ 원칙과 상식에 따라 정상적으로 살 생각을 해야 한다.(耆일보 사설) → 우리는 모두.

*이 난국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것은 정부, 기업집단, ‘개인 모두가’ 고통을 균등하게 분담한다는 인식이다.(耗일보 사설) → 개인이 모두.

*경제위기에서 빨리 탈출하기 위해 시급한 일은 정부와 정치권, 기업, ‘국민 모두가’ 어려움을 나누는 자세다.(耗일보 칼럼) → 국민이 모두.

*○○○ 교수는 학문과 교수직, 사제관계와 ‘학문 공동체 모두의’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뜨렸다.(耗일보 사설) → 모든 학문 공동체의.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41. 간결체는 감초다 -《한 겨 레》 2002-11-21 -

간결체를 이루게 하는 주된 방법은 ①짧게 ②이음말은 적게 ③군더더기 깎기 ④이름붙이기 등이다.

“여자의 매력은 태반이 속임수다. (왜냐면) 우선은 끌고 봐야 수지가 맞기 때문이다”에서 ‘왜냐면’을 빼어 보라.

“사랑엔 계산서가 필요없다. (그러니) 영수증도 필요없다. (곧) 완전 신용거래다.” 여기서 이음말을 빼고 읽으면 가슴팍으로 바투 다가온다. 이음말을 넣으면 논리적 문장이 되어 딱딱하다.

△여당·야당이 제시한 액수가 엄청나게 차이진다 → 여·야가 보인 액수가 팔팔결이다.

이름붙이기의 보람이다.

간결체 소설가는 오영수·황순원씨 들이요, 칼럼가는 오소백·석지명·이상헌·이시형씨 들이요, 수필가는 윤오영·김소운·피천득씨 들이다. 냉혹함(하드보일드, 헤밍웨이·카뮈)만이 능사는 아니나, 때로는 잔정을 깎은 그 너머의, 눈물도 메말라버리는 절벽 앞에 심장을 칼질하는 작자의 곡성이 행간에 일렁이는 표현도 배울 일이다.

이호철씨가 황순원 선생한테서 추천을 받을 때, 일곱번이나 고쳐 썼다. ‘노인과 바다’(헤밍웨이)는 400번, ‘대동여지도’(김정호)는 30년 발로 뛰며 고쳐썼다.

체호프의 말이다. “쓰는 기술, 그것은 줄임질하는 깜냥이다.” 글꾼들이여! 붓을 두 자루 가지고 쓰라. 하나는 쓰기 위한 것, 하나는 깎기 위한 것이다. 고전이란, 세월의 파도에 할퀴이다 남은 옥돌이고, 간결은 그 옥돌의 무게일까?

장하늘/문장연구가

142. 배달말꽃 -《한 겨 레》 2002-11-22 -

얘기꽃 웃음꽃 너머 ‘말꽃’이 있었던가? ‘배달’은 옛조선에서 비롯하니 수천년 묵은 말이다.

‘배달말꽃’에는 놀이말꽃, 노래말꽃, 이야기말꽃 갈래가 있고, 더 들어가면 굿놀이말꽃, 삶놀이말꽃, 굿노래말꽃, 삶노래말꽃, 굿이야기말꽃, 삶이야기말꽃이다. 그 속에는 서낭굿놀이, 조상굿놀이, 일놀이, 놀음놀이, 서낭굿노래, 조상굿노래, 일노래, 놀음노래, 서낭굿이야기, 조상굿이야기, 일이야기, 놀음이야기 말꽃이 들어 있다.

이 말은 이미 굳어졌지만 왠지 어설프고 맞갖잖은 채로 써오던 ‘문학’이란 말 대신 진주 사는 학자 김수업(경상대 국어교육과) 님이 최근 낸 책 〈배달말꽃〉(지식산업사)에서 쓴 말이다. 한국문학, 국문학, 고전문학 따위는 여기 ‘배달말꽃’ 한마디에 녹아든다.

배달은 한겨레·한민족·조선민족·한족 들을 싸안은 말이니, 여기서 배달글자·배달겨레·배달나라·배달문화·배달과학·배달철학·배달종교 들로 가지를 펼 수 있다. 〈배달글자〉(한국학술정보) 역시 진주 사는 학자 여증동(경상대 명예교수) 님이 쓴 말이자 책이름이다.

이제 이 분야도 고리타분하고 읽히지 않는 학문 세계를 벗어나 배달사람이 두루 즐길 몸을 갖추게 된 성싶다. ‘배달말꽃’ 한마디에 수천년 우리 말꽃의 갈래를 고구마 줄기처럼 한눈에 잡아 꿸 수 있으니, 쉽고 적절한 말의 힘이 무엇인지 알겠다. 우리 학문을 하면서 남의 말로 찧고 까부르니 제대로 추스르고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가 어떤 것임을 ‘말꽃’ 하나로 실감하게 된다.

최인호/교열부장

143. 불한당 -《한 겨 레》 2002-11-25 -

우리 사전장이들은 별난 짓을 다 한다.

‘불경기, 불규칙’처럼 ‘불’(不)이 붙으면 ‘경기, 규칙’이 아니거나 반대되는 뜻의 말이 된다. 그런데 사전에는 ‘한당’(汗黨)이 ‘불한당’(不汗黨)의 준말이라거나 같은 뜻의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불’(不)이 수수께끼다.

‘불한당’에서 ‘불’이 빠지면 ‘한당’이 아닌데, 같은 말이라고 하니 이 ‘불’은 ‘불’(不)이 아니어야 한다.

‘불상놈, 불호령’의 ‘불-’은 ‘몹시 거친, 막가는’이란 뜻의 우리말 조각이다. 이 ‘불상놈’의 ‘불-’과 ‘불한당’의 ‘불-’이 같은 우리말 조각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야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리고 ‘상놈’과 ‘불상놈’의 뜻이 같듯이 ‘한당’과 ‘불한당’의 뜻이 같아진다.

‘한당’도 한자말이 아니다. 그 말밑을 근거도 없는 한자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말 ‘한데, 한둔’의 ‘한’과 ‘남사당, 무당, 주당(뒷간 지킴이)’의 ‘당’에서 찾아야 한다.

한자말 ‘불한당’은 국산이지만 따로 있다. 조선 영조 때 남인 김한구(金漢耉) 무리를 남한당(南漢黨), 북인 홍봉한(洪鳳漢) 무리를 북한당(北漢黨)이라 했는데, 이도저도 아닌 중도파를 ‘불한당’(不漢黨)이라 했던 것이다. 이 ‘불한당’은 ‘불’이 빠지면 한당(漢黨)이 아니(不)니까 이치에 맞다.

도둑 무리인 ‘한당’에 ‘불-’이 붙어 ‘불한당’인 것을, 불한당(不漢黨)처럼 엉뚱한 한자를 붙여 그것을 한자말로 꾸미고, 더구나 한당(汗黨)을 그 준말이라고 했으니, 눈 감고 아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44. 문장부호 -《한 겨 레》 2002-11-26 -

맞춤법은 낱말 적는 법을 규정한 것인데, 글자 생활에서는 문장을 적을 때 필요한 것도 있다. 문장부호가 대표적인 것으로서, 현재 한글 맞춤법의 부록에 들어 있다.

규범이 대체로 그렇듯이 현행 문장부호 규정도 완벽하지는 않다. 현실과 맞지 않은 것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술문 끝에 넣는 ‘.’은 일반적으로 ‘마침표’로 알고 있지만 문장부호 규정에서는 ‘. , ? !’를 묶어서 마침표라고 하고, ‘.’은 그냥 ‘온점’이라 한다. ‘,’은 일반적으로 ‘쉼표’로 쓰고 있지만 규정에서는 ‘반점’이라고 썼다. 이런 사례들은 규정과 일반인의 관용이 현저히 다른 경우인데, 이럴 때는 규정을 고쳐서 관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는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을 마침표가 아니라 온점이라 배우고 있으니 ‘.’의 이름을 ‘마침표’로 바꿀 것인지는 쉽게 결정할 것이 아니고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문장부호 이름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 현재의 문장부호 규정에는 명확히 정한 바가 없다. 그래서 사람마다 알아서 쓰는 실정이다. 쌍점(:)이나 괄호 같은 문장부호의 앞뒤를 띌 것인지 붙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가운뎃점은 불편하므로 쓰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규정이란 될 수 있는 대로 고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엉성하여 언어 생활에 불편이 따른다면 마냥 그냥 둘 것이 아니라 고치고 기울 필요가 있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45. ‘보다’와 ‘더’ -《한 겨 레》 2002-11-27 -

보다’는 ‘이것보다 저것이 낫다, 남성보다 여성이 섬세하다’처럼 두 가지를 서로 견주는 데 쓰는 토씨이고, ‘더’는 ‘돈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성공하려면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처럼 쓰는 어찌씨인데, 이렇게 쉽고 분명한 우리말의 본새를 모르고 일본말을 섣부르게 배운 사람들이 ‘일본보다 큰 나라’(日本より 大きな國)의 토씨 ‘より’가 ‘더 나은 생활’(よりよい 生活)의 어찌씨 ‘より’와 형태가 같은 것을 보고, ‘더 좋은 것’을 ‘보다 더 좋은 것’ ‘더 부지런히’를 ‘보다 부지런히’ 따위로 말하는 현상이 번지자 국어사전들이 덩달아 ‘보다’를 어찌씨로 규정해 ‘어떤 수준에 비하여 한층 더’라고 풀이하고, ‘보다 나은 내일, 보다 높게, 보다 빠르게’ 따위를 예문으로 실었다.

뜻과 구실이 아주 다른 말을 서로 다른 꼴로 쓰는 우리말의 장점을 외면하고, 구별없이 같은 꼴로 쓰는 궁색한 말을 따라 쓰는, 이런 못난 짓은 버리자.

*우리가 말과 글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긍정적인 목적은 자신의 삶을 ‘보다’ 낫게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고등국어 하 144쪽) → 더.

*구소련의 외교관 비신스키는 ‘보다 옳게’, ‘보다 아름답게’ 생각하려는 심성이 결여했다.(고등국어 하 287쪽) → 더 옳게, 더 아름답게.

*현재 우리는 국가의 위기를 생각해서 ‘보다’ 인내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耆신문) → 더.

*정부는 아이엠에프와 주요7국 등 당사국들과 ‘보다’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耗일보) → 더.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46. 논술 출제 -《한 겨 레》 2002-11-28 -

대학입학 논술시험이 도둑고양이처럼 다가온다. 논술은 표현술·문장술을 재자는 거다. 국어의 네 방향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서 ‘쓰기’ 쪽을 주로 평가해 보자는 거다.

그동안 나온 문제를 보면, 분석·과학적이지 못하다. 쓰기는 ‘적기’(표기)와 ‘표현’으로 갈린다. 적기는 객관식으로 하고, 표현만 준주관식으로 하면, 채점도 편하고 평가도 비교적 공정해지련만 ….

적기로는, 맞춤법·띄어쓰기·문장부호·원고지 사용법·교정부호·단락 표기법을 살피라. 표현으로는, 주제·소재·구성·표현론 중 구성과 표현론에 중점을 두라.

문장 구성은 구성형(4단식·5단식의 여러 형)과 단락이 맞물리는즉 단락 배열(큰 얼개)이 노림수이겠고, 표현은 △주제 강조의 깜냥 △타당한 문맥 전개 △낱말 사용 수준 △설득술·글꼬리 기법 등을 재면 되리라.

4단 구성(단서→고찰→비교→동의) 글을 씌우되, 어느 한 단락을 완성토록 하라. 그리스 변론술형(도입→진술→증명→반론→결어)의 논설문을 씌우되 ‘결어’ 단락을 완성하도록 하라. 집짓기식(패러그래프 빌딩 시스템)보다 틀맞추기식(아우트라인 시스템)이 시험엔 제격이다.

전송글에서, 발신글을 보이고 답신글을 씌우라. 거창한 논설보다 생활에 닿는 실용문장을 지향하라. 잘못된 글씨나 원고지 정서법은 감점감일 수 있고, 운치로운 격언·속담, 첫·끝 단락의 깔끔한 갈무리는 점수를 더할 수 있다. 출제 형태는 교육 방향을 가리킨다. 논술을 계기로 표현교육이 강화됐으면 한다.

장하늘/문장연구가

147. 숫자 적기와 읽기 -《한 겨 레》 2002-11-29 -

아라비아숫자는 뛰어난 시각성과 편의성으로 세계인들이 즐겨 쓰는 글자이지만 말과 글이 어긋나게 쓰인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는 아라비아숫자를 써놓고도 한자에서 온 말로 읽는 때가 많다. 하나(한), 둘(두), 셋(세, 석, 서), 넷(네, 넉),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온, 즈믄, 골, 잘 들이 있지만,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백·천·만·억으로 주로 쓴다는 말이다.

하지만 말을 할 때나 일반 문장에서는 간단한 숫자말을 우리식으로 쓰거나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예컨대 ‘19살’을 ‘열아홉살’ 아닌 ‘십구살’로 읽어서는 못쓴다. △3김씨→세 김씨 △여중생 2명→여중생 둘 △3달·3개월→석달 △지난 1년→지난 한해 △3곳→세 곳 △4거리→네거리 등을 보라. 대체로 우리말 단위가 뒤에 오면 우리말로, 한자말 단위가 오면 한자말로 읽히는데, ‘한 개, 두 번’처럼 자주 쓰는 단위는 오히려 우리 숫자말과 잘 어울린다. 숫자가 들어간 기사를 한 번 읽어 보자. 별표(*) 식으로 읽는 이가 생겨서 탈이다.

△엘지는 9회 볼넷 2개(둘, 두 개, *이개)로 만든 2사 1·3루(이사 일삼루)에서 진갑용의 3루(삼루) 악송구를 틈타 1점(한 점, *일점)을 보태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소렌스탐은 3번홀(삼번홀, 세번째홀)에서 이글을 잡고, 버디 4개(넷, 네 개, *사개)와 보기 1개(하나, 한 개, *일개)를 기록한 끝에 박세리와 동타를 이뤘다.

최인호/교열부장

148. ‘가구’는 안 맞아 -《한 겨 레》 2002-12-02 -

‘가구’(家口)라는 말은 1955년, 내무부 통계국에서 간이 인구조사를 할 때 썼던 말인데, 지금껏 없어지지 않고 있다.

본디 ‘가구’는 대만 〈중문대사전〉에 “집 안의 사람 수효를 말한다’(謂家中人口也)라고 되어 있고, 우리네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에 “집 안 사람 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한글학회 〈큰사전〉에는 ‘가구’가 “한 대문이나 한 골목 안에서 각살림하는 집의 수효”라고 (‘사람’이 ‘집’으로) 변했고, 요즘 사전에는 “①식구 ② 집안 사람 수효 ③[법] 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④[법] ‘한 집 안 사람들’을 세는 단위”라고 되어 있다. 공무원들이 멋도 모르고 ‘가구’를 법률용어로 채택한 모양인데, ‘가구’가 ‘사람’에서 ‘집’으로, ‘집’에서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가구’를 일본의 ‘세대’(世帶), 중국의 ‘주호’(住戶), 우리 ‘가호’(家戶)와 같은 뜻으로 쓴다.

우리 사전들에 우리 ‘가호’를 “ⓛ호적상의 집 ②집 수를 세는 말”이라고 확실히 해 놓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일본의 ‘세대’를 좋아하고, 우리 ‘가호’는 알지도 못하며, 더구나 ‘집’은 쓰지 않?f다.

‘세대’가 일본 것이어서 쓰지 말자면, ‘집’이나 ‘가호’로 바꾸면 되는데, 순리대로 옳은 것은 싫어서, 굳이 맞지도 않는 ‘가구’에다 법률용어라는 굴레까지 씌워 쓰고 있다.

‘가구’는 ‘사람’이니까, ‘세대’ 대신으로는 ‘집’이나 ‘가호’로 옳게 써 보자.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49. 세계화와 기업이름 -《한 겨 레》 2002-12-03 -

요즘 기업들은 세계를 상대로 경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것이 대기업이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세계를 상대로 경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상 널리 통용되는 글자로 쓰지 않을 수 없다. 기업체 이름부터 그런 이름이 있어야 편리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예 로마자나 영어 이름만 있고 우리 이름이 없을 수는 없다. 특히 우리 국민이 주요 이용자인 회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난 몇 해 동안 여러 기업이 우리말 이름을 아예 버리고 로마자·영어 이름만 쓰는 조처를 감행했다. 이제 ‘선경’이나 ‘금성’ 같은 상호를 더는 듣고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례는 최근 은행, 일간 신문 이름에까지 번졌다. 세계화를 위해서라면 내 이름마저 없어도 된다는 잘못된 의식이 생겨난 게 아닌가 한다.

이는 캐나다 퀘벡주의 언어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캐나다는 미국과 붙어 있고 영어 사용자가 프랑스말 사용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영어권에 포위되어 영어의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퀘벡주에서는 프랑스말을 지키고 가꾸려는 노력이 치열하고, 그 결과 본거지의 프랑스인들이 쓰는 말에까지 새로운 프랑스어 낱말을 물려주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캐나다 퀘벡주의 성공적인 본보기를 떠나서라도 우리는 세계화 구호에 떠밀려 우리말, 우리글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성급함과 어리석음을 이제 그만 범해야 하리라고 본다. 세계화는 우리 것을 지키는 바탕 아래서 행해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50. ‘더 이상’은 말이 아니다 -《한 겨 레》 2002-12-04 -

‘반수 이상’이나 ‘3분의 1 이상’처럼 쓰는 ‘이상’을 ‘그 위에 더하여’를 뜻하는 어찌씨 ‘더’에 덧붙여 쓰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언어 상식에도 어긋나는데, 얼마 전까지는 저질 방송인들이 자주 쓰더니, 요즘에는 말 많은 정치인들과 교수사회, 언론에서도 판을 친다. ‘더 이상’이 말이 아닌 것은 ‘덜 이하’가 말이 아닌 것과 같다. 보통 ‘더는’ ‘더’로 충분하다. 따옴표(‘ ’)는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한다.

*‘성북동 비둘기는 더 이상’ 성북동 사람들도 시인 자신도 아니다.(고등국어 상 445쪽) → 성북동 비둘기가 더는 ~/ 성북동 비둘기는 이미 ~.

*주인도 이젠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깊이 끄덕여 보였다.(고등국어 하 94쪽) →~ 더 ~.

*타관 사람을 붙이려 하지 않는 윤씨의 성미도 성미려니와, ‘더이상 일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고등국어 하 242쪽) → ~ 일손이 더 ~, ~ 더는 일손이 ~.

*피아노는 의미를 지닌 채 ‘더이상 작은 조각으로 나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하나의 형태소다.(고등문법 62쪽) → ~ 더 작은 조각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

*무한 경쟁의 세계무역기구 체제하에서 ‘더이상’ 피할 수 없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耗일보) → ~ 더는 ~.

*‘수도권은 더이상’ 비대해져서는 안 된다.(耝일보) → ~ 수도권이(은) 더 ~.

*장애인 잇단 죽음 ‘더이상’ 방치하지 말라.(耝신문) → ~ 더 ~, ~ 더는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51. 글꼭지 -《한 겨 레》 2002-12-05 -

“나는 미인이다. 자신이 봐도 미인임이 분명하다./ 미인 선발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영낙없다. 나를 낙선시키는 심사위원은 장님이거나 팔푼이다./ 그러나 나는 남자다. 남자 미인대회는 아직 없다./ 병원엘 가자. 성 전환수술을 받아야지.”

꼭지 넷인데, 기승전결에서 ‘전’의 꺾임이 재미있다. 그래서 ‘기승전결의 명수가 되라’고 한다.

“담배는 암의 주범. 저승 가려면 담배를 피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천당 가고파 자살했다는 사람 보았나?/ 금연은 장수의 왕도다. 두 번 못 살 인생, 100살까지 살다 가자./ 젊은 몸에는 독성물질이 잘 퍼진다. 14살 전에 피우면 사망률 두 배다. 담배 한 개비에 목숨 5분30초가 단축된다./ 담배는 악마가 빚은 잡초다. 코를 굴뚝으로 개조하고, 폐를 질식시키는 ‘저승사자’다. 365일을 금연일로 ….”

글꼭지는 다섯이다. ‘주의→필요→해결→구체화→행동화’, 동기유발 5단계다. 그리스 변론술형 등 얼개 예닐곱을 알아 두면 편리하다. 형식은 내용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글꼭지는 문장의 마술사다. 죽은 문장을 화들짝 살리기도 한다. ①화제 변화 ②상황 변화 ③태도 변화 …. 변화는 권태의 치료제다. 작은꼭지(형식단락) 큰꼭지(의미단락)의 꺾임목에 마술사의 쉼터가 있다. 으뜸꼭지·딸림꼭지, 맞선꼭지·나란히꼭지, 풀이꼭지·보탬꼭지 …, 일렁이는 문맥의 여울목이다.

교실을 창조하는 공장으로 만들라. 댓장의 꼭지카드를 벌여 짜맞추는 문장건축 경연장을 펴라. 재미있고 신나는 장난방을 꾸며주자.

장하늘/문장연구가

152. 숫자 읽기 -《한 겨 레》 2002-12-06 -

숫자와 단위가 합쳐진 말도 그렇지만 요즘 로마자나 영어와 숫자가 얽힌 말을 많이 지어내는데, 이를 읽고 쓰는 방식이 맞갖잖다. 숫자를 우리말을 두고 한자말로 읽는 경향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요즘엔 영어식으로 읽는 사람이 많아 탈이다.

D-20, 4H, M-16, M-25, MP3, 빅3, BK-21, 컴팩21, 파5, 보잉747, 3D 따위는 대체로 디 이십일(앞으로 이십일), 사에이치, 엠 십육, 미그 이십오, 엠피삼(*스리), 빅삼(*스리), 두뇌한국 이십일·비케이 이십일, 컴팩 이십일, 기준타 다섯(*파 파이브), 보잉 칠사칠, 삼디 따위로 읽는다. 문제는 괄호 안 *표처럼 읽는 경향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토씨를 붙이는 것을 보면 바로 드러난다. ‘~3는·~3가·~3를/~3은·~3이·~3을, ~6는·~6가·~6를/~6은·~6이·~6을, ~9이·~9은·~9을/~9가·~9는·~9를’처럼 영어식(스리·식스·나인)으로 읽을 때와 우리식(삼·육·구)으로 읽을 때 받침이 있고 없고에 따라 토씨가 달라진다.

알파벳이나 영어와 어울렸다고 하여 아라비아숫자까지 영어식으로 읽어 적을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말 문장 안에서는 우리식으로 읽어 적어야 이치나 관습에 맞다. 예컨대 ‘빅3은, 빅3이’로 쓰고 ‘빅3는, 빅3가’로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도 ‘3대·삼대’ 정도로 바꿔 써야 걸맞다.

우리말 셈씨들이 힘을 못쓰는 것은 한자말 탓이었는데, 그마저 이젠 로마자에 억눌린다. 그냥 내버려 둘 일이겠는가.

최인호/교열부장

153. ‘임실’도 우리말 -《한 겨 레》 2002-12-09 -

임실(任實)도 취음이라고 한 데 대해 둘레에서 말이 많다. 당연하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 세 나라 첫 무렵까지의 우리 땅이름도 모두 우리말이었다. 옛조선 때 지금의 ‘인천’을 미추홀(彌鄒忽)이라고 했다고, 한자가 들어온 세 나라 때 이후에 그렇게 적었다. 그 한자가 취음이다.

‘미’는 지금의 물, ‘추’는 ‘耙’으로 사이시옷, ‘홀’은 골(마을)이다. ‘미추홀’은 ‘미耙홀’ 곧, ‘미耔홀’을 적은 한자의 음이고, 지금 말로는 ‘물耔골’이다. 물을 ‘미’라고 하는 것은 일본에 지금도 ‘미기와(水際), 미쿠사(水草), 미토(水戶) …’처럼 많이 남아 있다.

‘미추홀’이 고구려 때는 ‘매소홀’(買召忽)로 바뀌었다. ‘매’는 ‘미’와 같은 물, ‘소’는 ‘추’와 같이 사이시옷, ‘홀’은 ‘골’이므로 ‘매耔홀’로 역시 ‘물耔골’이다.

그러나 세 나라 이후에는 우리말 땅이름도 없어져 버렸다. 신라 때의 소성(邵城), 고려 때의 경원(慶源)·인주(仁州), 조선 때의 인천(仁川)은 취음이 아니고 한자말이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임실’(任實)은 세 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말이다. ‘임’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실’은 실(谷:마을)로 ‘한실(大谷) 다라실(月谷) 버드실(柳谷)’들에 쓰이는 말이다.

전라북도 ‘임실’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그리운 임이 사는 마을(主谷)’에서 살고 있다. ‘서울’처럼 한글로 ‘임실’로만 적을 지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54. ‘아킝킝’에 대하여 -《한 겨 레》 2002-12-10 -

청소년들에게는 그들만의 말이 있다. 그런 말들은 자기들끼리만 쓰고 마는 것이고, 그 시절을 지나면 절로 쓰지 않게 되는 것이어서 그리 걱정할 건 없다. 요즈음 청소년들이라고 그들만의 말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그들이 쓰는 말은 예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은 엄청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그 무엇이든 급속하게 퍼뜨릴 수 있다. 또 전날의 청소년 언어가 ‘입말’로만 쓰인 데 반해, 요즘 인터넷 언어는 ‘글자’로 적히어 유통되는 점이 다르다.

‘아킝킝’이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킝킝’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말뜻은 제쳐두고라도 이 말의 표기가 문제다. 국어에서 ‘耝’ 받침은 제한된 경우에만 쓰인다. ‘하얗다, 낳다, 놓다’처럼 풀이말의 줄기(어간)에 쓰이고, 이름씨로는 닿소리 마지막 글자 이름을 가리키는 ‘히읗’만이 유일하다. ‘아킝킝’은 어떤 경우인가? ‘킝’은 그 어떤 경우에도 들지 않는다.

‘아킝킝’은 어떻게 소리 내는가? [해], [킈], [행] 등 아무렇게나 소리낼 뿐이다. 발음이 혼란스러운 건 표기 자체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아킝킝'과 같은 표기는 국어 질서를 무너뜨리고 실제 쓸모도 없는 사례다.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 일부러 즐기는 듯 보인다. 말을 가지고 놀 때라도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말 질서를 갖추고, 생산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킝킝’은 그래서 걱정스럽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55. 크게 -《한 겨 레》 2002-12-11 -

‘크게’는 그림씨 ‘크다’의 어찌꼴로 ‘어린애가 크게 자랐다’, ‘미세한 물건도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크게 보인다’, ‘풍선이 크게 부풀었다’처럼, 일몬(사물)이 커다랗게 된 모습을 꾸미는 말인데, 대다수 지식인들이 이런 관계를 무시한 채 생각없이 써서 우리말의 됨됨이를 죽인다.

크다/작다, 많다/적다, 높다/낮다, 많이/조금 등의 구별이 있고, 정도를 나타내는 말도 훨씬, 아주, 매우, 몹시, 썩 등 문맥과 말맛을 살려 쓸 말이 많다.

*수은주가 ‘크게’ 떨어졌습니다.(耝방송) → 뚝.

*한국 관광수입이 너무 낮다. 타이, 인도네시아보다도 ‘크게’ 뒤져 관광산업의 낙후성 입증.(耆매일) → 훨씬.

*농산물값이 ‘크게’ 떨어졌습니다.(耝방송) → 많이, 큰 폭으로.

*북한 식량 배급이 최저 필요량의 절반으로 ‘크게’ 줄어(제목·耝신문) → 아예 없는 게 낫다.

*수혜대상 ‘크게’ 줄어 기금 남아돈다(제목·耗일보) → 많이.

*이번 연휴에는 교통사고가 ‘크게’ 줄었습니다.(耐방송) → 많이.

*마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耝방송) → 많이.

*양호교사 ‘크게’ 부족/ 광주 전남 지역엔 57%만 배치(제목·耐일보)→터무니없이.

*남녀공학 대학 합격선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耝방송) → 훨씬.

*단일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耝신문) → 높아졌다, 많아졌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56. 글꼬리 -《한 겨 레》 2002-12-12 -

글꼬리들이 휘뚜루 ‘~다’다. 판박이에 식상해진다. ‘풀이말 끝내기, 임자말 끝내기, 뒤바꿈 끝내기, 따옴 끝내기’는 수사적인 것이고, ‘평서·물음·하임·꾀임·느낌·허락’은 문법적인 것이다.

“끝이 좋으면 전체가 산다”는 따옴 끝내기, “비다듬은 옥돌 같은 글, 그 게 간결체”는 생략을 곁들인 임자말 끝내기다. “술 취한 문장을 거두시라”는 하임이고, “문장지능이 발바닥이군”은 느낌꼴이다. “~어라, ~자, ~려무나” 등 다양한 글꼬리로 변화를 꾀하라. 풀이말 끝바꿈에 우리말의 묘미가 있고, 전달의 일고동도 깃들였다.

그런데 글끝이 느슨하고 헐거워 글심(문세)을 약하게 하거나, 글쓴이의 뜻을 가늠하기 어렵게 할 때가 많다. 긴지 아닌지 안갯속이다. 죄어치는 단정법을 쓰라. 에둘러 늘이는 것은 문장술이 덜 익은 탓이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해야 할 판국이다/ 더한층 두드러지게 드러날 것이다→한결 두드러지리라/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때문이겠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해야 한다 …”

도움말을 자주 쓰는 것도, 왜짠지나 버터냄새가 나는 글꼬리도 문제다. 귀추가 주목된다→끝이 궁금하다, 끝이 어찌될까, 결과는 가늠거리다/ 단호한 대처가 요망된다→딱잘라 아퀴지으라/ 분노를 금치 못하다→분이 솟구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어려운 벗을 돕고 싶었다./ 예견된 결과의 소산이었다→짐작했던 대로다./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다→새 틀을 보인다.

장하늘/문장연구가

157. 한글 기계화 -《한 겨 레》 2002-12-16 -

50년 전만 해도 꿈이었다. 다행히 공병우 같은 분이 한글 자판과 타자기를 개발·보급하면서 이를 현실로 앞당겼고, 뒤이어 컴퓨터 문서 작성기가 나오고 조합형 코드까지 채택하게 하는 바탕을 만들었다. 컴퓨터 발달로 자판 논란이 많이 식기는 했지만, 연모는 과학성과 원리, 편의성에 따라 발달하기 마련이다.

이제 초중학생들도 글틀로 공부하니, ‘글씨 쓰는 법’을 잊어버릴까 걱정스럽고, 그런 점에서 글쓰기의 기계화는 100%에 가깝다.

한글 기계화와 관련해 우리가 누릴 몫은 어느 정도이며, 할일은 무엇인가? 글자 쓰기의 기계화는 한글 기계화의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말글로 된 쓸모있는 자료를 모조리 전산화해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정보화라고 하는데, 그러자면 온갖 자료를 벼리 따라 갈래짓고 벌이고 모으는 손작업을 거쳐야 한다. 문화부의 ‘세종계획’은 이런 바탕작업의 한가지다. 그 다음은 한글만으로도 모든 언어로 된 정보를 손쉽게 보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여 외국어를 배우는 낭비를 덜어야 하니까. 이쪽도 기초적 연모들이 나왔지만, 개발 여지와 영역이 무척 많은 것으로 안다.

다음은 소리와 글자를 아울러 우리말글로 컴퓨터와 관련도구들을 쉽게 부려쓰게 하는 일이다. 컴퓨터 언어의 한글화다. 이런 일은 쉬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뜻있는 연구자들이 나와야 하고, 또 그들이 맘놓고 일하도록 도와야 한다. 국가나 재단, 기업에서도 당장의 돈벌이가 아닌, 나라 힘을 기른다는 굳센 생각으로 소리 없이 지원하고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최인호/교열부장

158. 권커니 잣거니? -《한 겨 레》 2002-12-17 -

술잔을 서로 주면서 받으면서 계속 마신다. 그 꼴을 나타내는 말이 1938년에 나온 문세영 〈조선어사전〉에 ‘권커니 작커니’로 되어 있었다. ‘작커니’의 ‘작’은 ‘爵·酌’을 의식한 것이지만, 그런대도 ‘작하다’라는 말이 없으니 말밑(어원)이 될 수도 없다. 그러니 ‘소리대로’도 아니고 말밑을 밝힌 것도 아니다. 이것을 1957년에 나온 한글학회 〈큰사전〉에 ‘권耝거니 잡거니’라고 했다. ‘술잔을 권하거니 술잔을 잡거니’라고 말밑을 만들어 본 것이다.

그러나 ‘잡거니’는 억지인 것 같다. 1961년에 낸 민중서관 〈국어대사전〉부터 ‘권커니 잣거니’로 바꿔 지금도 통하고 있다. 이도 안 맞기는 마찬가지다. ‘잣거니’의 ‘잣’이 수수께끼인 것이다. 맞춤법에 말밑이 확실하지 않거나 원뜻에서 멀어졌을 경우에는 소리대로 적는다고 되어 있다.

‘권커니’는 ‘권하거니→권耝거니’를 한글 맞춤법에 ‘권커니’로 돼 있으니까 그렇게 적는다.

‘잣거니’는 소리가 ‘자꺼니’와 같다. 그렇게 소리가 난다면 그대로 적는다.

‘작커니’는 소리가 ‘자커니’와 같다. 그렇게 소리가 난다면 적기도 그렇게 적는다. ‘소리대로’라나마 근거가 있는 것은 ‘자꺼니’와 ‘자커니’인데, ‘자꺼니’보다는 ‘자커니’가 현실과 가깝다.

‘자커니’는 “마시자고 자! 하거니”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는 근거가 있다. ‘자하거니’는 ‘자耝거니→자커니’로 된다.

‘권커니 잣거니’보다는 근거가 있는 ‘권커니 자커니’가 낫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59. 전셋값·전세금 -《한 겨 레》 2002-12-18 -

‘전셋값’이란 말은 옳지 않으니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과연 여러 국어사전에 ‘전세금, 전셋돈’은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전셋값’은 올라 있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면 결과는 정반대다. ‘전셋값, 전세값’은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는 데 반해서 이보다 적확하고 오래된 말인 ‘전셋돈, 전세금’은 훨씬 적다. 사전에 올라 있는 말보다 사전에 없는 말이 오히려 더 널리 쓰이고 있는 셈이다.

‘전셋값’이 잘못된 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세는 집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집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일 뿐이므로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인 ‘값’을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법은 일방적이고 지나친 것이다. 한 보기로 사전에 ‘방값’이란 말이 올라 있고 실제로 이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방을 사고파는 값이 아니라 방을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만일 전셋값이 옳지 않은 말이라면 ‘방값’ 역시 옳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방값’은 사전에도 올라 있고 널리 쓰이고 있다. 이는 ‘값’이 반드시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만이 아님을 보여 준다.

사실은 ‘얼굴값, 이름값’ 같은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값’은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 이상의 뜻이 있다. 따라서 ‘값’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여 ‘전셋값’ 같은 말의 사용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널리 쓰이는 말이라면 사전에 올리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60. 굉장히 -《한 겨 레》 2002-12-19 -

이 말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큼’을 뜻하는 굉(宏)과 ‘크고 훌륭함’을 뜻하는 장(壯)이 모여서 된 그림씨 ‘굉장하다’에서 나온 어찌씨로, “남산탑 꼭대기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의 규모가 굉장히 넓고 크다” “굉장히 넓고 아름다운 금강산”처럼 쓰기에 알맞은 말인데, 요즘 많은 이들이 입 안에 녹음해 둔 듯이, 과장할 데나 아닐 데나 막 내뱉어서 국어의 품위를 몹시 떨어뜨린다.

다음 보깃글들은 어느날 〈한국방송〉 ‘6시 내 고향’과 〈교육방송〉에 나온 아나운서와 교사들이 한 말인데, 화살표 쪽과 같이 고쳐 써야 한다.

*‘굉장히’㉠ 단 복숭아를 출하하게 돼서 ‘굉장히’㉡ 기쁘다고 하십니다 → ㉠매우, 무척, 아주. ㉡몹시, 대단히.

*닭요리는 ‘굉장히’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주.

*할아버님, ‘굉장히 건강하시네요’→ 참 건강하시군요.

*이 실험기구 ‘굉장히’ 간단합니다→ 아주.

*치어(稚魚)가 ‘굉장히’ 작군요→ 참, 무척, 아주.

이 밖에도 ‘따뜻하다, 덥다, 시원하다, 춥다, 부럽다, 자유롭다, 인자하다, 신기하다, 예쁘다, 밉다’ 들처럼 ‘굉장히’와 어울릴 수 없는 온갖 그림씨에 얹어 쓰는데, 이런 현상이 젊은 아나운서나 교사들만이 아니고, 방송에 나오는 배움이 높다는 이들도 마찬가지여서 국어를 걷잡을 수 없이 저질화하고, 사람들의 논리성과 비판력을 죽인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61. 얼개는 설계도다 -《한 겨 레》 2002-12-20 -

얼개(틀·구성)는 문장의 설계도다. 자재만 풍부하면 설계 없이도 집을 짓는다. 그러나 설계도가 있으면 안전하고 빠르게 짓는다.

‘대학 작문’에는 기껏 ‘서·본·결’이거나 ‘기승전결’뿐이다. 그리스 변론술형(도입→진술→증명→반론→결어)도, 중국의 산문형(기→승→포→서→결)도, 마음끌기형(에이드마, 주의→흥미→욕구→기억→행동)도 없고, 칼럼·리포트에 알맞다는 4단형(4C, 단서→고찰→비교→동의)도 없다. 이런 것은 ‘고교 국어’에도 언급이 없다. 모두 “서툰 의사 침통 흔들기”다. 환자들(학생들)만 골탕이다.

벗의 아들이 미국에 갔다. 지도교수는 논문을 써오면 한국에서 받은 석사과정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어설픈 서론·본론·결론밖에 못 배운 그는 논문을 포기하고 이태나 손해를 봐야 했다. “도둑질도 하노라면 는다.” 4단·5단 얼개의 익숙꾼을 만들어 외국에 보내자. 중고등학교에서 ‘표현술’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칼럼들의 얼개가 너무 평탄하다. 평지만 걸리는 권태로운 글줄들! 때론 산도 오르게 하고, 물도 건너게 하라. 노루막이 두 군데를 반드시 마련하라. 본전(기댓값)도 못 찾고 돌아서는 독자들의 표독스런 눈매를 떠올리시라. ‘기’는 15%, 승·전은 38%씩, 결은 10%의 길이로 짜라. 앞뒤만 읽고서 팽개치는 독자가 80%임을 명심하시라.

긴 끝단락을 손질하라. 계획·구상이 없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은 생각만을 글자로 쏟으시라. 그것이 잘 전달될 얼개를 찾으시라.

장하늘/문장연구가

162. 울·화·통 -《한 겨 레》 2002-12-23 -

“울화통 터진다”는 “몹시 울화가 치민다”는 뜻이다.

이 ‘울화’라는 말을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1920)에 ‘울홧병’, 문세영 〈조선어사전〉(1938)에 ‘울화·울홧병’, 민중서관 〈국어대사전〉(1961)의 ‘울화, 울화병, 울화증, 울화통’에다, 삼성출판사 〈새우리말 큰사전〉(1974)에는 ‘울화술’이 하나 더 올라 있다.

그런데 그 사전들이 이 ‘울화’에다 ‘鬱火’라는 한자를 달아 놓았다. 그야말로 울화통 터질 일이다.

그런 한자말은 〈한국한자어사전〉에도 없고, 다른 나라에도 없는데 우리 사전에만 있는 것이다. ‘울화’를 중국에서는 ‘위먼’(郁悶), 일본에서는 ‘이키도오리’(憤), ‘간샤쿠다마’(癎 玉)라 한다.

‘울·화·통’은 다 우리말이다. ‘몹시 성난 기운’을 ‘울기’라 한다. 울기의 ‘기’가 ‘기운’이라면 ‘울’은 ‘몹시 난 성’ 아니겠는가. ‘울걱, 울끈, 울커덕, 울컥’ 들이 ‘갑자기 성이 나는 꼴’을 나타내는 말이다. ‘울’은 ‘성’과 통한다.

‘화’도 ‘성’과 비슷한 말이다. ‘화’를 중국에서는 ‘피치’(脾氣), 일본에서는 ‘이카리’(怒)라 한다. 우리 사전들은 ‘화’에도 ‘火’를 달아 놓았으나 ‘火’에는 ‘화’라는 뜻은 없다. ‘통’은 ‘사람의 도량’이란 뜻으로 ‘통이 크다’처럼 쓰이지만, ‘울화통’에서는 ‘울화’의 힘줌말이 되게 하는 구실도 한다.

한자 ‘鬱火’가 없으면 우리는 ‘울화’도 안 난다고 생각하면 소도 웃을 일이다. 중국에 ‘울화’라는 말은 없어도 ‘열불 난다’고 할 때의 ‘열불’에 해당하는 신훠(心火)라는 말은 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63. 표기와 발음 -《한 겨 레》 2002-12-24 -

한글은 소리글자다.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을 적는 로마자 역시 소리글자다. 그런데 소리글자라 해서 꼭 소리 그대로 적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신라’는 [실라]로 소리낸다. ‘평가’나 ‘성과’도 [평까], [성꽈]로, ‘털실’은 [털씰]로 소리내니 표기와 발음이 다르다. 표기를 발음과 다르게 하는 것은 표기를 고정함으로써 독해 능률을 높이고자 함이다.

외래어 표기법도 외래어의 표기를 통일함으로써 독해 능률을 높이려는 게 중요한 존재 이유다. ‘센터·쎈터·센타·쎈타’처럼 달리 적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표기를 통일하려면 일관성이 필요하다. ‘city’는 ‘씨티’로 적고 ‘cylinder’는 ‘실린더’로 적는다면 낱말마다 ‘耕’인지, ‘耔’인지를 정해 주어야 하니 여간 복잡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표기 혼란을 막기 위해서 로마자 ‘s’는 한글로 적을 때 ‘耕’이 아니라 ‘耔’으로 통일해서 적는다고 규정하였다. 그래서 ‘센터·시티·실린더’로 적게 돼 있다.

최근 상품·회사·잡지 이름 등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표기가 자주 나타난다. ‘쏘나타’, ‘씨티은행’, ‘씨네21’ 등에 이어 ‘싸이버대학’이 나타났다. 표기는 발음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그렇게 적어야만 했는지 아쉽다. 이런 ‘耕’ 표기의 확산은 ‘s’는 ‘스’으로 적는다는 외래어 표기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일이다. 상품·상호 이름을 지을 때 표기법을 따르도록 의무화하거나 아니면 아예 표기법을 고쳐 된소리 표기를 허용해야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64. 너무 -《한 겨 레》 2002-12-25 -

‘너무’는 일몬(사물)이 알맞은 정도나 표준을 넘거나 거기에 못 미친 정도를 보이는 어찌씨로서, ‘책상이 너무 높다’ ‘신이 너무 작다’처럼 쓰는 말인데, 지식수준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마구 쓴다. 다음 보기에서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야 한다.

*지리산 감은 너무 고와요.(한국방송 2)→참, 매우, 무척, 아주.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너무’ 잘해 주셨어요→(한국방송 2)→참, 정말, 무척.

*장기 이식 문제에 관한 한 ㉠‘너무나’ 다양한 생각이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현시점에서 하고 싶은 충고는 이 문제만큼은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耗일보)→ ㉠매우, ㉡성급하게.

*젖소의 눙이 ‘너무너무 맑고,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耝방송)→ 아주 맑고 무척 예뻐요.

*끝까지 시청해 주신 여러분께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방송 두루)→ ㉠진심으로 감사하고. ㉡ 이 방송을(순서를)마칩니다.

우리말에서 정도를 보이는 어찌씨는 ‘눈이 곧 많이 내린다’, ‘집이 곧 크다’, 처럼 쓰는 ‘곧’과 ‘산이 꽤 높다’처럼 쓰이는 ‘꽤’를 비롯해서 대단히, 매우, 몹시, 무척, 상당히, 사뭇, 아주, 어지간히, 엄청, 정말, 제법 들처럼 다양한데, 지식인들이 이것들을 하나도 모르는 듯이 아무 때나 ‘굉장히’와 ‘너무’, ‘머무너무’만 입에 올리니 한 노릇이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65. 논술지도 길잡이 -《한 겨 레》 2002-12-26 -

①나무는 커서는 못 구부린다. 크기 전에 잡아 주라. ②표현은 내용의 아들, 내용을 앞세우라. ③“논술은 손글씨로!” 모든 국가시험엔 글씨를 본다. ④맞춤법·띄어쓰기 틀렸다고 구박 말라. 쓰노라면 자연히 바뤄진다. ⑤잘된 글을 골라 소리내 외도록 하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⑥3·4·5단식의 각 구성들을 능력에 맞게 익혀 주라. 틀에 익숙해지면 짓기가 쉬워지고 신이 난다. ⑦“못한다”면 움츠리고, “잘한다”면 신바람난다. ‘좋은 점’을 찾아내 추켜 주라. “나도 쓸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 ⑧꼭지(단락) 짓기로 재미를 붙여 주라. ⑨문장술은 정신적 재산목록 제1호다. ‘창조하는 기쁨’으로 새삶을 열게 하라. ⑩일기, 편지, 조각글 모음으로 자신의 역사를 책으로 꾸미게 하라. 표현 없는 삶은 원시로 가는 삶이다.

제대로 된 글짓기, 글고치기 사전이 없다. 무얼 대중삼아 글꼲으기를 하고들 있을까? 글고치기꾼들을 대학에서 길러내라. ‘대학작문’들이 모두 잡동사니통임을 본다. 맞춤법과 한자로 얼러방치지 말라. 그렇게 가르쳤으매 고교 논술시간이 겉도는 것일까? 알짬(주제)·글감(소재)·얼개(구성)·부림새(표현), 그 잔가지들을 다시 쪼갈라 벌이고, 글고치기(퇴고)에서 대판으로 뜯어고치는 실제 지도의 깜냥을 대학 때 익히게 하라.

“글쓰기 지도 못하는 교사 물러가라”는 아우성이 저만치에서 들린다. 상투만의 권위주의, 그 쇠살문이 허물리는 소리가 들린다.

장하늘/문장연구가

166. ‘잇달아’와 ‘잇따라’ -《한 겨 레》 2002-12-27 -

쓰임과 뜻이 겹치는 말은 편의상 그 갈래를 구별해 쓸 필요가 있다. 예컨대 흔히 섞갈려 쓰이는 ‘잇달다·잇따르다’의 경우 자동사적 쓰임은 ‘잇따르다’에, 타동사적 쓰임은 ‘잇달다’에 몰아 쓰는 것이다. 어찌씨 ‘잇따라·잇달아’도 앞은 자동사적으로 뒤는 타동사적으로 몰아쓰면 그런대로 통한다. 다만 매김꼴 ‘잇단’과 ‘잇따른’을 두루 쓴다.

이런 섞갈림은 타동사인 ‘잇달다’에 자동사적 쓰임이 있다고 풀이한 사전과 표준어규정(연달다·잇달다) 탓이기도 한데, 이에는 ‘잇달리다’라는 입음(피동)이 있으므로 ‘이어 달리다’로 쓰이는 쪽은 그쪽으로 미루고, 그 밖의 자동사적 쓰임은 ‘잇따르다’로 넘겨도 무방하며, 섞갈림도 막을 수 있다. 쓰임들의 보기를 보인다.

△객차에 화물칸을 잇달았다/ 훈장을 주렁주렁 잇달았다(잇달다) △혼란이 잇따르다/ 분노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성금이 잇따르고 있다(잇따르다) △감시장치를 잇달아 제거한 것은/ 잇달아 간담회를 열고/ 고치에서 실을 잇달아 뽑아내니/ 대사들을 잇달아 면담하고(잇달아) △총리서리 잇따라 인준 부결/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잇따라 벌어진 촛불시위/ 잇따라 터져나오는 의혹(잇따라) △잇따른(잇단) 핵무기 개발시도/ 핵봉인 잇단(이따른) 해체/ 잇따른(잇단) 의혹/ 잇따른(잇단) 태풍 피해.

‘잇달아·잇따라’는 [이따라]로 소리 나 꼴과 쓰임새 변동 가능성이 있고, ‘잇단’은 글자수가 적은 반면, 발음이 ‘이따위(이딴), 이까짓(이깐)’을 연상시켜 상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최인호/교열부장

167. 또, 또는, 또한 -《한 겨 레》 2002-12-30 -

다들 잘 아는 ‘또’는 ①거듭(또 왔다), 다시(또 봐), 더(또 있어야), 뿐 아니라(학생이고 또 선생이다), 혹시(누가 또 알아?) 따위로, ②말을 잇는 구실(하루 또 하루 잘도 간다)로, ②놀라거나 안도감을 나타낼 때(일은 또 무슨 일) 들에 쓰인다.

‘또는’은 ‘그렇지 않으면’이란 뜻으로 “내일 또는 모레, 비 또는 눈이 오겠다”처럼 쓰인다. ‘또는’은 ‘내지’(乃至)와 관계가 있다. 중국 전국 때 기록 〈전국책〉 ‘조나라 편’에 “재상·신하(卿相人臣) 내지 서민(布衣之士)”이란 말이 있다. ‘내지’는 ①‘얼마(무엇)에서 얼마(무엇)까지’의 뜻으로 ‘수효·계급·갈래’를 나타낼 때 ‘세 사람 내지 다섯 사람’처럼 쓰인다. ②‘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란 뜻으로 “돈 내지 명예”라고 하는데, 이 경우의 ‘내지’가 ‘또는’이다.

그런데 우리말 토 ‘(이)나’가 “둘 이상에서 ①하나만(너나 나), ②다(돈이나 쌀), ③어느 것(산이나 들)을 취함”처럼 쓰인다. 그 중 ①이 ‘내지’의 ②와 통하지만, 쓰이는 자리가 ‘또는’과 다르다.

‘또한’은 ‘마찬가지로’란 뜻인데, “꽃만이 아니라 잎 또한 곱다. 돈도 좋지만 도덕 또한 귀하다”처럼 쓰인다. 〈논어〉 ‘학이 편’에 “또한 기쁘지 않으랴(不亦說乎), 또한 즐겁지 않으랴(不亦乎), 또한 군자가 아니랴(不亦君子乎)”가 있다. 그 중 ‘亦’이 ‘또한’이다.

다른 나라 말투는 싫지마는, 우리에게 없고, 우리말을 해치지 않는다면, 중국 말투라도 써도 된다. 일본도 쓰고 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68. 베이징과 북경 -《한 겨 레》 2002-12-31 -

우리말로 글을 쓸 때 외국 땅이름, 사람이름을 한글로 적어야 함은 두루 잘 안다. 곧 ‘Los Angeles’나 ‘Putin’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푸틴’으로 적어야 한다. 어떤 낯선 외국 고유명사도 한글로 적어야 하고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국·일본의 경우는 인명·지명을 한자로 적기에 좀 특별한 점이 있다. 그 발음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북경’은 한자로 ‘북녘 북, 서울 경’을 쓰는데 중국어에서는 ‘베이징’으로, 한국어에서는 ‘북경’이라 읽는다.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은 고유명사는 그 나라 말 발음에 따라 적도록 했다. 곧, ‘북경’이 아니라 ‘베이징’식으로 적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처에 반대하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그런데 ‘베이징’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북경’에 익은 세대에만 나타난다. 새 세대는 ‘베이징’이든 ‘북경’이든 상관이 없다. 오히려 중국어 발음이 ‘베이징’과 비슷한데 왜 ‘북경’이라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중국에 ‘장쩌민’의 뒤를 잇는 지도자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후진타오’로 우리 귀에 익어졌기 때문에 언어 대중은 ‘후진타오’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호금도’가 듣기에 어색하다.

‘북경·상해’ 등과 같은, 기성세대의 귀에 익은 말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더구나 ‘북경·동경’처럼 몇 가지 귀에 익은 지명은 ‘베이징·도쿄’와 함께 쓸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69. 새해와 단기 -《한 겨 레》 2003-01-01 -

양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면 신문·방송의 허튼버릇을 만나게 된다. 띠(열두 짐승)와 사주(난 해·달·날·때)를 엮어 만든 기사들로 말이다. 전날 육갑을 짚어 운수를 보던 버릇에서 나온 것인데, 태음력에 맞춰 얘기할 일을 달포 넘게 앞당겨 우려먹는다. 아직은 ‘임오’해다.

양력 또는 서기와 함께 바뀌는 말이 있다. ‘단군기원’이다. ‘단기’는 음력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양력과 맞춰 바꾸게 돼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뒤 단기를 택하여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61년까지 잘 쓰던 것을 다음해부터 ‘서기’로 바꾼다. 서양문물로 획일화한 요즘 사회에서 새해 첫머리만이라도 자신과 겨레를 되돌아볼 마음이 있다면 ‘단기’를 떠올릴 법하다. 올해는 단기 4336년이다.

지금, 고유 기원으로 쓰이는 것은 ‘헤지라’(사우디 등), 불기(타이 등), 굽타 등이 있는 것으로 안다. 기원과는 다르지만 ‘연호’를 쓰는 나라가 있다. 일본 ‘헤이세이’(평성), 북한 ‘주체’ 들이 그것인데, 이를 두고 못 말릴 족속들의 고집이라 해야 할까? 그런 전통은 중국이 앞선 것으로 알지만, 금석문 등을 통해 알려진바, 고구려·신라·발해·고려 등에서도 썼던 적이 있고(중양·영락·연수·명치, 건원·개국·대창, 천수, 천통 등), 갑오개혁, 대한제국(광무·융희) 때도 썼던 것으로 안다.

새삼스럽기도 하고 공적으로 돌이키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민간에서나 교육 현장들에서는 ‘단기’를 되새길 여지가 많을 것이다. 자신의 내림과 난데를 돌이켜볼 여유가 없다면 정처나 나아갈 길인들 제대로 찾겠는가.

최인호/교열부장

170. ‘고구려’는 ‘크크리’다 -《한 겨 레》 2003-01-06 -

우리나라는 1897년부터 1910년까지 ‘大한帝國’이었다. 45년에 나라를 되찾고 48년부터는 ‘大한民國’이라고 한다. 그 ‘大한’은 ‘한한’(크고 큰)이다.

무엇이 그리 크다고 ‘큰큰 나라’란 말인가? 아니다. 참으로 컸다.

‘高句麗’를 중국 전한 역사책 〈한서〉에는 ‘高駒麗’라고 적었는데, 〈한국한자어사전〉(1992)을 보면, “高麗(구당서·신당서), 高離· 離·豪離(삼국지), 句高麗(고려사), 句麗(삼국사기·대동운부군옥)”라고도 적었다고 돼 있다. ‘高· ·句·豪·高句·高駒·句高’가 똑같다는 것이다. 어째서 ‘고·구·호·고구·구고’가 똑같을까? 한자의 뜻으로는 같지 않다. 그럼 무얼까? 소리다. 그 소리는 ‘크’(大)라야 설득력이 있다.

〈일본외래어사전〉(1915)에도 “고오리[ko-pur〉ko-eul〉kol] 郡. … ko는 오늘날 조선말 khu와 통하며, 大의 뜻이다”라고 되어있다. ‘고’가 ‘khu’와 통한다고 한 것은 ‘고’가 ‘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와 같은 ‘구, 호’들도 ‘크’의 취음이다. 그렇다면 ‘고구’와 ‘구고’는 ‘크크’가 된다. 한편, 〈신자전〉(1915)에 ‘麗[리]:… 高麗:우리 나라 이름. 고리 나라. …”라 했다. ‘麗’가 나라이름 뜻으로는 음이 [리]라는 것이다. 이 음은 일본에 살아 있다. 일본에서는 우리가 ‘고구려’라 하는 것을 제대로 ‘고쿠리’라고 한다. ‘離’는 뜻과는 상관없이 음으로 [리]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고리·호리’는 ‘크리’고, ‘고구리·구고리’는 ‘크크리’(큰큰 나라)로 ‘한한國’과 같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71. 외국어 표기 -《한 겨 레》 2003-01-07 -

쓰지 않으면 좋겠지만 전혀 안 쓸 수 없는 것이 외래어다. 외래어를 쓸 때 문제가 되는 것이 표기 혼란과 무질서인데, 이를 통일해 적도록 만든 것이 외래어 표기법이다. 이 표기법은 외래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는 번역해 써야 마땅하지만 굳이 소리를 한글로 적고자 할 때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

최근에 나온 ‘007 어나더데이’라는 영화가 있다. ‘어나더데이’는 영어(another day)를 한글로 옮긴 것인데, 그 발음은 [ □□□ ]이다. 여기서 [^]는 그 글자는 ‘o’이지만 발음이 [^]이다. 이 [^]는 한글로 옮길 때에 ‘어’로 하도록 표기법에 규정돼 있다. 그런데 [^]가 ‘어’와 꼭 같지는 않다. ‘아·어’ 중간께 있는 소리다. 그래서 ‘아’처럼 들리기 쉽다. ‘007 어나더데이’도 영어 발음이 ‘어나더’처럼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나더’라 적는다면 외래어 표기법은 있으나마나가 된다. 외래어에 ‘버스, 정글, 너트, 커트, 점프’ 같은 말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원어에 [^] 소리가 들어 있어서 표기법에 따라 ‘어’로 적는다. ‘another’도 같은 [^] 소리가 들어 있으니 ‘어너더’로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콤퓨터’는 ‘컴퓨터’로 정착되어 가는 듯한데, 최근 ‘컴퓨러’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면 언어 혼란은 막을 수 없다. 법이란 지키면 다수가 편하기에 존재한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굳이 한글로 적고자 한다면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72. 및 -《한 겨 레》 2003-01-08 -

‘및’은 한문에서 이음말로 쓰는 ‘及’의 뜻 ‘미치다’의 줄기 ‘미치’를 억지로 줄여 놓은 꼴인데, 국어사전들이 월조각을 연결하는 어찌씨라며 ㉠“문학에는 시·소설 및 희곡 등이 있다.”, ㉡“현상, 인화 및 확대”, ㉢“원서 교부 및 접수” 따위를 보기로 들고 있다. 그러나 그 구실이 이음토씨 ‘과/와’와 똑같으므로 어찌씨라고 할 수 없고, 앞말과 띄어쓰는 것이,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쓴다’고 한 맞춤법에도 어긋나므로 토씨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씨에도 들지 못하니, 말 자격이 없는 소리마디일 뿐이므로, 위의 예문 ㉠은 ‘문학에는 시와 소설, 희곡 등이 있다’, ㉡은 ‘현상, 인화와 확대’, ㉢은 ‘원서 교부와 접수’라고 고쳐야 말다운 말, 글다운 글이 된다.

많은 글에 쓴 ‘및’은 덜 마른 벼를 찧은 쌀에 섞인 뉘와 같다. 밥을 지으려면 쌀에 섞인 뉘를 골라내듯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말이 아닌 소리를 섞어 쓰지 말아야 한다.

*대입 무시험 전형, 새 학교문화 창조, 교사 ‘수습제 및’ 수당 차등화 방안 등이 모두 쉽지 않은 개혁안들이다.(耗일보) → 수습제와 ~.

*언어의 ‘체계와 구조 및 기능에 대하여’ 이해한다.(고등국어 상 81쪽) → 체계와 구조, 기능을 ~./ 체계, 구조와 기능을 ~.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헌법 61조②) → 국정감사와 ~.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며 ….(헌법 69조) → 복리를 증진하고 ~.

*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헌법 79조③) → 감형과 복권에 관한 ~.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73. ‘표현’이란? -《한 겨 레》 2003-01-09 -

㉠비가 오지만 바람이 세어 나뭇잎이 흩날린다. ㉡비도 바람도 불어 나뭇잎이 흩날린다. ㉢비가 온다. 바람도 분다. 나뭇잎이 흩날린다.

㉠은 생각을 가다듬지 않은, 초점 없는 지껄임 ㉡은 문장법이 냉장고에서 동사한 날림공사 ㉢은 한 화제, 한 문장으로 가락 있는 글말체다. ㉠은 문법의식 여린 꼬마의 글에, ㉡은 문장술 서툰 학생들의 글에 많이 보인다. 단문이 능사는 아니나, ㉢처럼 하되 가끔 긴 문장을 섞을 일이다. ‘간결’과 ‘과잉’의 절충 …. ㉣ “철수와는 수남의 친구인 욱이의 소개로 사귀기 시작했다”는 “수남의 친구인 욱이의 소개로 철수와 사귀기 시작했다”가 더 산뜻하다. 말의 붙임성은 ‘자연’ 그것임을 말해준다.

㉤ “이 물건은 절대로 보증합니다.” ㉥ “좋은 물건입니다. 다른 것과 비교가 안 됩니다.” ㉦ “이 상품이 가장 잘 팔리고 있습니다.” 손님은 ㉦편의 권유를 따를 것이다. 그래서 “객관을 빌려서 주관을 나타내라”고 한다. ㉤의 ‘절대로’는 허풍임을 의심케 한다.

문장은 틀짓기(조형)다. 생각을 틀로 짜서 남에게 보이는 것이다. 글꼭지 틀→ 낱월 틀→ 말차례 틀 …. 문장이란, 들떼놓고 하는 잠꼬대가 아니다. 치밀한 설계도에 따른 건축물이다. 글을 어렵게 쓰라. 그래야 쉽게 읽히리라.

쓴다는 것은 인생 이해의 방법이다. 글꾼들이여! 표현술의 노예가 되라. 그래야 자신의 유전자가 독자들의 핏줄에 옮겨지리라. 빈 물병에선 물이 안 나온다. 가득 담겨야 콸콸 소리 내며 쏟아진다. ‘콸콸’, 그 리듬에 따라 명문의 급수가 매겨지리니.

장하늘/문장연구가

174. 풀어쓰기 -《한 겨 레》 2003-01-10 -

한글 가로쓰기가 제대로 자리잡은 지도 20년 가깝다. 이제 한글을 읽고 쓰는 방식에서 숙제가 남았다면 ‘풀어쓰기’라 할 것이다. 기계·정보화를 앞당기고, 어문규범과도 관련이 깊은 사안이다.

흔히 한글 세계화를 이야기하는데, 예컨대 한글 국제음성기호화도 풀어쓰기를 통해야 가능해진다. 지금의 ‘모아쓰기’는 자모를 네모 안에 모아 써서 사용자들이 눈에 익어 있고, 음절 단위로 구별이 돼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꼭 풀어쓰기를 못할 만큼 굳어진 것은 아니다.

한글맞춤법이 나온 뒤 한글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를 1만1172자로 잡고 있는데, 풀어쓰기를 함으로써 이런 제약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여러 나라 알파벳처럼 한글을 풀어씀으로써 좀더 자연스럽게 익히고 다가갈 수 있게 할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풀어쓰기의 장점을 ‘소리나는 이치와 일치하고, 쓰기와 박기(인쇄)와 읽기가 쉽고, 맞춤법을 매우 간편하게 줄이며, 온 세계 수백종 글자가 풀어쓰기로 된 점’을 든다. 글자를 비스듬히 눕혀 쓴 ‘기울여 풀어쓰기’ 글씨체를 만든 바 있는 김정수 교수(한양대) 같은 이는 “모아쓰기의 굴레에서 한국 사람들의 언어의식을 해방하고 소리마디 이하의 언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며, 한국어의 자율적 발달, 효과적 전산기 활용, 우리말의 정밀한 연구·분석, 다양한 글씨체 개발 등을 위해 풀어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 쪽의 21세기 세종계획, 국어발전 종합계획 들에서 풀어쓰기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최인호/교열부장

175. ‘표’와 ‘標’는 달라 -《한 겨 레》 2003-01-13 -

“가새표, 나눔표, 따옴표, 묶음표, 쌀미표, 이음표, 줄표 …” 들에 쓰이는 ‘표’의 자리가 편안하지 못하다.

우리는 ‘증거가 될 만한 자취’라는 뜻으로 “표를 한다”, 또 ‘다른 사물과 분간할 수 있는 보람’이란 뜻으로 “표가 난다, 표를 낸다”처럼 ‘표’를 쓴다. 그런데 우리 사전들의 올림말 ‘표’에는 어김없이 한자 ‘標’가 붙어 있다. 마치 우리말 ‘표’의 말밑이 한자 ‘標’인 것처럼.

큰일날 짓이다. 한자가 없을 때 우리는 ‘표’를 하고 살았다. 원시 시대 의사 표시로 점을 찍고, 줄을 긋고, 끈을 맺고 한 것들이 모두 ‘표’를 한 것인데, 그때는 한자가 없었다. 5천년 전 메소포타미아 ‘쐐기글짜’의 꼴도 쐐기 ‘표’다.

‘한자’가 없을 때에도 ‘표’를 했으니 한자 ‘標’가 우리말 ‘표’의 말밑이 될 수 없다.

한자 ‘標’에는 “우듬지, 높은 가지, 끝, 꼭대기, 기둥, 과녁, 세움, 깃발, 모습, 칭찬함, 드러냄, 적음(기록), 별이름, 투창, …” 따위 뜻과 그 밖에 자질구레한 뜻들이 있는데, 그 속에 ‘표’와 ‘표함’ 들의 뜻도 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말 ‘표’와 통한다. 여기에 한자 벌레들이 빌붙는다. ‘標’에 ‘표’와 통하는 뜻도 있으니까 말밑이란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 한자를 몰랐을 때 우리는 ‘표’도 못 하는 하등 동물이었을까? 고구려 때만 해도 수 양제, 당 태종 같은 오랑캐들을 물리쳤다.

한때 불행하게 한자를 빌려 썼으면, 인제 한글로 갚자.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76. ‘초등학교’냐 ‘초등 학교’냐 -《한 겨 레》 2003-01-14 -

띄어쓰기의 큰 원칙은 낱말별로 띄어 쓴다는 것이다. 곧, 낱말과 낱말은 띄어 쓴다는 얘긴데, 이 말에는 한 낱말은 붙여 써야 한다는 게 전제되어 있다. 예컨대 ‘비바람, 공중전화’ 같은 말은 ‘비’와 ‘바람’, ‘공중’과 ‘전화’가 합쳐진 말이지만 그 자체가 한 낱말이어서 붙여 쓴다.

‘비바람, 공중전화’ 같은 말은 두 낱말로 볼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한 낱말인지 두 낱말인지 판단이 간단치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리 교과서에서는 오래 전부터 ‘초등 학교’, ‘고등 학교’ 식으로 띄어 써 왔다. ‘초등 학교’를 띄어 써 온 것은 ‘초등’과 ‘학교’가 각각 낱말이어서 ‘초등 학교’는 한 낱말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학교’도 ‘중 학교’로 띄어 써야 한다. 왜냐하면 ‘중’도 낱말(명사)로 사전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띄어 쓰는 사람은 없다. ‘중학교’를 붙여 쓰는 것은 이를 한 낱말로 보기 때문일 테고 ‘중학교’가 한 낱말이라면 ‘초등학교’, ‘고등학교’도 한 낱말이 아닐 까닭이 없을 것이다.

어떤 말이 한 낱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데는 명쾌한 객관적 기준이 없고 직관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마다 직관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어서 문제가 된다. 모든 이들의 직관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해도 어느 정도는 수렴한다고 할 것이다. 그 직관에 따라 띄어쓰기를 해야 할 것이다.

맞춤법에서 인명의 성과 이름을 붙여 쓰게 한 것처럼 ○○초등학교로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고 본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77. 내지 -《한 겨 레》 2003-01-15 -

‘내지’(乃至)는 원래 차등이 있는 수량을 나타내는 말 사이에 써서 ‘얼마에서 얼마까지’를 뜻하는 말인데, 사람들이 사물을 대등하게 늘어놓는 낱말 사이에 마구 쓰고, 국어사전들에서도 이런 어설픈 쓰임을 덧보태어 놓아 국어의 논리성과 세련미를 허물어뜨린다.

다음 보기들 가운데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 써야 자연스럽다.

*우리는 문화적 ‘전통의 확립 내지는 새로운 한국 문화의 창조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등국어 하 162쪽) → 전통을 확립하고 새로운 한국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

*그리고 여기에는 명백히 ‘원관념 내지는 주지가’ 생략돼 있다.(고등국어 하 310쪽) → 원관념과 주지가 ~.

*특히 정치와 과학의 개념이나 쟁점을 해설할 때에는 청중이 ‘주장 내지’ 설득하는 말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耔일보) → 주장하거나 ~.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고 문화를 세련하는 것은 다양한 ‘욕망의 충족 내지 확장이기도 하다’.(耗일보) → 욕망을 충족하고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포츠 내지’ 스포츠 저널리즘을 오염시키는 금전주의는 어느새 대학 스포츠까지 전염시킨다.(耐일보) → 스포츠와 ~.

*인간사에서 창조란 ‘습관의 이탈 내지 금기의 파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耆일보) → 습관을 이탈하고 금기를 파괴하는 데서 ~.

*달에 대한 그리움도 ‘무주물에 대한 소유 내지는 점유욕의 표현이다’.(고등국어 하 286쪽) → 무주물을 소유하거나 점유하려는 욕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78. 재미로운 칼럼을 -《한 겨 레》 2003-01-16 -

글의 두 기둥은 ‘재미’와 ‘유익’이다. 재미는 소설이, 유익은 여행 안내문이 그 대표일까? 오락과 실용 사이를 오가는 게 문장일게다.

칼럼들이 별로다. 주제의 해작질도, 화제의 거름질도, 구성·표현의 멋도 그만저만이다. 뭇닭 속에서 두루미를 찾기는 하나, 그것도 어쩌다일 뿐, 오만한 칼럼이 거의다. 독자들을 불리려 의식하지 않는 글은 오만하다. 문장은 전략이다. 오만한 글은 전략 없는 글이다. 낚시질이 낚시꾼과 고기의 대결이라면, 문장은 필자와 독자의 신경전, 그 겨루기에서 이길 글의 세 요소는 비유, 구체적 보기, 인용 ──.

△검사장 중심의 점심모임은 아마추어 감독이 찍어내는 삼류영화처럼 부드러웠다 △역사의 기차가 탈냉전의 구빗길을 돌 때 퉁겨져 나간 세력이, 아직도 마지막 객차에 매달려 그게 앞이라고 우긴다 △폭력과 기아로 사지가 찢어지거나 아사하거나 노예로 팔려버린 아프간의 효순이와 미선이 △교육부를 걱정하는 소리가 초여름 논바닥의 개구리처럼 시끄럽다. 황야에서 금바늘을 줍는다. 너스레 칼럼들을 훑다가 화들짝 글맛을 느낀다.

글꾼, 특히 칼럼쟁이는 시민들에게 충실한 속씻김(카타르시스) 대행업자가 아닐까? 부실한 업자가 많아 탈이다. 때로는 사정없이 내리치는 죽비도 들라. 때로는 읽다 말고 짜드라웃게도 하라. 언어엔 세금이 없다.

“문장에 성공하려거든 말부림새의 대표선수가 되라”했다. 부림새란 ‘단락 배열’과 ‘표현’이다. ‘재미’는 수사법의 일번지다.

장하늘/문장연구가

179. 온·전 -《한 겨 레》 2003-01-17 -

‘온 세계, 전 세계’와 ‘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짐승들은 강조하고자 할 때 소리를 높이거나 으르렁거리거나 하지만 사람들은 빗대고 꾸미고 바꾸고 부풀리고 견주는 방식을 쓴다.

‘온’도 부풀릴 때 써먹는 말의 하나다. 주로 매김씨로 쓰이는데, 자주 쓰다 보니 한 낱말로 굳어진 말들도 많다. 온갖, 온몸, 온방, 온음, 온잠, 온장, 온전, 온종일, 온채, 온통, 온판, 온품, 온필 … 들이다. 한 낱말은 아니지만 자주 쓰는 말로, 온 마을, 온 집안, 온 나라, 온 세상, 온 세계 … 들이 있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 한자말로 전(全)이 있는데, ‘온’처럼 매김씨로도 쓰인다. 전 세계, 전 지구, 전 사적, 전 부처적, 전 학교, 전 국민, 전 인류 … 따위가 그것이다. ‘전 태양계, 전 은하, 전 우주 …’들도 나올 수 있겠다. 말하자면 넓은 공간이나 많은 사물을 싸잡아 강조하려는 속셈인데, 과연 ‘세계’와 ‘전 세계’ 어느쪽이 큰가?

세계나 세상, 지구라면 우리가 사는 공간을 싸잡아 하는 말이다. 그것도 부족하다고 ‘온, 전’을 앞에 두어 쓰는 말버릇을 나무랄 수는 없다. 말글살이에서 사람들은 반드시 경제성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들출 수는 있다. 역전앞이나 처갓집, 길거리들도 그렇다. ‘지구촌’처럼 공간개념을 좁히는 말이 생기는 반면, 전 지구, 전 세계처럼 공간개념을 넓히려는 방식이 병존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전’을 기계적으로 붙여 강조하는 말투는 거칠기도 하거니와 거품만 가득할 때가 대부분이다.

최인호/교열부장

180. ‘글짜’가 옳다 -《한 겨 레》 2003-01-20 -

말을 글로 적는 표를 우리말로 ‘글자’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순우리말이 아니고 ‘글+字’로 이루어진 ‘글字’라고도 한다.

우리 사전들을 보면, 문제영 〈조선어사전〉(1938), 이윤재 〈표준조선말사전〉(1947), 한글학회 〈큰사전〉(1957)·〈우리말큰사전〉(1992), 북한 〈조선말대사전〉(1992) 들에는 ‘글자’를 우리말로 다루었고,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1920), 민중서관 〈국어대사전〉(1961), 삼성출판사 〈우리말큰사전〉(1974), 민중서림 〈국어대사전〉(1982), 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1999) 들에는 ‘글字’라고 다루었다.

‘글字’식 적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한자밖에 모르는 이들이 ‘글자’를 그대로 놓아둘 리가 없다. 〈금강경삼가해〉 5권 8쪽에 “구름 가운데 기러기는 두어 줄 글字를 스고(쓰고)”라는 것이 있다. 원문의 ‘字’를 ‘글字’로 옮긴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字’를 새겨 읽을 때 ‘글자 자’라고 하는데, 그때 그것이 ‘글자 字’일까, ‘글字 字’일까? ‘능금 檎’일까, ‘능檎 檎’일까? 옛말로 〈훈몽자회’에 “닝금 檎”이라고 했다.

사전들의 ‘글자’에 [-짜]라는 소리 표시가 붙어 있다. 아니다, 소리만이 아니라 낱말 자체가 ‘글짜’인 것이다. ‘글짜’의 ‘글’은 ‘글발·글씨·글월’의 글이고 ‘-짜’는 ‘가짜·공짜·날짜·대짜·말짜·민짜·별짜·뻥짜·생짜·알짜·얼짜·정짜·조짜·통짜·퇴짜’ 들의 ‘-짜’다.

‘-짜’는 ‘것’이나 ‘물건’ 또는 ‘일’ 따위 뜻의 말조각이다. ‘글짜’는 “글을 적는 것(표)”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81. 대중가요 말 -《한 겨 레》 2003-01-21 -

요즘 청소년이나 젊은층에서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는 1980년대나 70년대 또는 그 이전 시기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선 요즘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외국 가수들의 노래를 덜 찾는 편이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외국 가수들에 열광하지만 예전에 비해 우리 가수들 층이 두터워진 게 사실 아닌가 한다. 이 점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 가수들의 노래 자체가 달라졌다. 첫째, 가수 이름이 영어거나 외국어를 변형해서 만든 이름이 많다. 둘째, 제목이 영어로 된 노래가 아주 많아졌다. 셋째, 노랫말에 영어가 많이 섞여 있다. 후렴이 영어인 노래도 많다. 이런 경향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풍조는 세계화 바람 속에서 영어에 대한 지나친 숭상 분위기와 함께 생겨났다. 또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이 엷어진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는 사회 각 부문에서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데 다른 분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침투한 분야가 대중가요다. 한국어는 한국어이고 영어는 영어인데 많은 노래에서 한국어와 영어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노래는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 그 노래가 외국어로 뒤범벅이 되어 가고 있음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속에 한국어는 거의 남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대중가요의 현실에 대한 관계자들과 청소년들의 반성·자각이 필요하고, 사회적 관심도 절실해졌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82. 인하여 -《한 겨 레》 2003-01-22 -

국어 사전들이 ‘인하다’(因-)를 올림말로 싣고 ‘인하여’ 꼴로 여러 예문을 늘어놓아 사람들이 쓸 만한 말인 줄 알고 즐겨 쓰지만 열에 아홉은 군더더기일 때가 많다.

병으로 ‘인하여’ 결석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은 사퇴했다.(국어대사전)

‘으로’가 까닭을 보이는 어찌자리토씨이므로 ‘병으로’ ‘사건으로’도 ‘병 때문에’ ‘사건으로 말미암아’의 뜻을 온전하게 보여주므로 여기서 ‘인하여’는 아예 필요가 없다.

다음 글들에서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야 한다.

*소유권은 ㉠‘선점에 인하며’, 혹은 ㉡‘노동에 인하며’, 또는 ㉢‘상속에 인하여’ 성립한다.(우리말 큰사전)

㉠→선점으로 ㉡→노동으로 ㉢→상속으로

*㉣부주의로 ‘인한’ 사고. ㉤뜻하지 않은 ‘불로 인하여’ 굶어 죽게 되었다. ㉥1940년, 1941년의 검거로 ‘인하여’ 당원들이 더러는 옥중으로, 더러는 지하실로 잠적하여, 공산주의 운동은 명맥이 끊겼다.(이병주 지리산, 표준국어대사전)

㉣ →생긴(일어난) ㉤→불 때문에, 불이 나서 ㉥ →(없앤다)

*㉦‘태풍으로 인해서’ 남부지방에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耝방송) → 태풍으로, 태풍이 불어서.

국어사전 만드는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본새에 어긋나는 말을 사전에 올리고 치졸한 예문들을 늘어 놓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그랬노라”고 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노릇인가? 국어 사전의 구실이 치졸하고 잘못 쓰는 말을 많이 모아 널리 퍼뜨려서 나랏말이 오르는 것을 가로막는 것인가?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83. 첫문장 -《한 겨 레》 2003-01-23 -

“첫사위가 오면 장모는 신을 거꾸로 신고 나간다.” “최초의 일격은 그 전투의 절반이다.” 모두 처음이 소중함을 말한다.

비행기 조종사에겐 ‘마의 13분’이 있다. 이륙 5분, 착륙 8분, 사고의 고빗사위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첫·끝 문장은 그 글의 살생부다. 짧은 문장일수록 처음이 중요하다.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는 첫문장으로 결판난다. 결혼 첫날밤에 어찌 애낳기를 바라랴만, 처음의 ‘새로움’에 거는 인간심리를 어이하랴.

이 땅의 수필·칼럼들에선 첫문장에서 보배 줍기가 어렵다. ①단문 ②자극 ③체험 등 갖출 세 가지를 무시하기 때문이리라. 설명조는 역겹다. 묘사체로 하라. 과거→현재, 명사→동사·형용사, 추상어→구체어, 해설→사실 …. 형용사는 묘사의 최대 무기다. 하지만 보배일수록 아끼는 법!

△파도소리가 베개를 때린다.(이범선) △그에게서는 늘 비누냄새가 난다.(강신재) △어둠속에 밤이 고여 있었다.(유현종) △해걷이바람이 깊은 산섶으로 땅거미를 몰고 온다.(정연희) △눈을 떴다. 붉었다. 묵지루루했다.(백시종) △아내를 죽이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었다.(추식) 두루 언어의 잔속을 발라내느라 고심한 대목이리라.

“남편하고의 잠자리가 그리도 싫더란다”(어느 여승)로 수필 첫월을 삼아 학보사에 넘겼더니, 인쇄소 직원 전원이 읽었고, “저승보다 어두운 밤이었다”를 넌픽션 첫월로 했더니 최우수 당선이었다.

‘읽혀야 문장!’, 이 냉혹한 절벽 앞에 글자 하나하나를 쪼아 새기는 피말리는 싸움! 첫·끝 문장만은 잉크로 쓰지 말고 금으로 아로새기시라.

장하늘/문장연구가

184. ‘것’의 구실 -《한 겨 레》 2003-01-24 -

최근 국어연구원이 우리가 쓰는 낱말에서 ‘것, 하다, 의, 다 …’가 제일 자주 쓰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몇 해 전엔 고려대 강범모 교수팀이 조사한 바 ‘사람, 하다, 없다 …’ 들이 자주 쓰인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중 ‘것’은 제뜻은 따로 없지만 그 쓰임이 약방의 감초 구실을 넘어선다. 관련된 말로는 거(그것), 게(것이), 걸(것을), 거시기 … 들이 있고, 이것저것, 잡것, 물것처럼 딴 말과 어울려 낱말을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는, 꾸미거나 매기는 말(관형어)을 앞세우고 자리잡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무 것, 모든 것, 본 것, 어떤 것, 궁금한 것, 아파하는 것, 할 것, 있는 것, -考다는 것이다, -는 것이다, -耈 것이다, -考 것 같다 ….

‘것’은 말의 자릿수를 늘리는 데도 한몫 한다. 예컨대, ‘삶’은 ‘산다는 것’으로, ‘남북 통일이 돼야 한다’는 ‘남북 통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로, 이는 다시 ‘남북 통일이 돼야 한다는 것(말)은 그 길이 바로 한겨레가 살길이기 때문이다’로 늘리고, 베풀어갈 수 있다.

‘것’을 마디삼아 아래 빗금(//) 이후처럼 심하게 늘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극히 자신없음을 드러낸다. “법관들도 정년까지 사법부에 남아 소신껏 일하게 한다면 신뢰받는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에서 ‘있다’를 ‘~ 있을 것이다/ ~ 있을 것으로 본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고 할 것이다. ….

최인호/교열부장

185. 우리나라는 ‘한’ -《한 겨 레》 2003-01-27 -

〈서경〉 11째 권에 “… 〈한서〉에 ‘고구려, 부여, 韓’이 있는데, ‘汗’은 없으나, ‘汗’이 곧 저 韓이라, 음은 같고 글자가 다를 뿐”이라는 대목이 있다고 했다.

‘汗’이 ‘韓’과 같다. ‘한’은 ‘韓’이 아니고 ‘汗’이어도 된다. 뒤집어 말하면 ‘한’은 ‘韓’도 ‘汗’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은 한자말이 아니다.

‘한’은 세계 공통말이다. 옛적에 높은 관리(고관)의 뜻으로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에서 쓰이다가, 중세에 몽골·터키·타타르·위구르에서 임금의 뜻으로 쓰이는 ‘khan’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러시아에서는 ‘아스트라칸’이라는 털가죽이 ‘아스트라한’이라는 지방에서 나는데, ‘Astrakhan’을 털가죽 이름(칸)과 땅이름(한)의 두 가지로 다르게 읽는다. 몽골제국 태조 이름을 서양에서는 ‘젱기스칸·징기스칸’이라 하고, 동양에서는 ‘청지스한·성길사한’이라고 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오고타이한, 차카타이한, 킵차크한, 부라하한, 시비르한’ 들 나라이름으로도 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이 ‘세 한(말한·고깔한·새한), 한國’ 들에 나라이름으로도 쓴다.

‘한’이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많이 쓰이는데, 그 중심 뜻은 ‘크다’다. 옛날 우리나라는 만주지방을 중심으로 몽골, 중국, 시베리아, 일본 들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이름은 ‘한나라’다. ‘한國’은 말이 되어도 ‘韓國’이나 ‘汗國’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韓은 서기전 403년에 생겨나 서기전 230년에 진(秦)에 망한, 중국 전국 때 있었던 나라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86. 나라이름 적기 -《한 겨 레》 2003-01-28 -

지구상에는 190여 나라가 있다. 이 모든 나라에 대해 한글 표기가 정해져 있다. 만일 한글 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우질랜드·뉴질란드·뉴우질란드·뉴질랜드’처럼 여러가지로 적을 것이 예상되는데, 얼마나 어지러운가. 다행히 ‘뉴질랜드’로 정해져 있고 거의 그렇게 쓰고 있다.

이렇게 모든 나라이름의 한글 표기가 정해져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나라가 몇몇이 있다. 이는 외래어 표기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겠고, 표기법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도 있을 것이며, 언어 규범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외래어 표기가 아직 통일되어 적히지 않는 나라이름들을 살펴보자.

캐나다를 카나다로, 에티오피아를 이디오피아로, 말레이시아를 말레이지아로 쓰는 경우가 잦고, 싱가포르라 해야 하는데 싱가폴이라 하는 사람도 흔히 보인다.

이탈리아를 이태리라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태리는 별칭으로 볼 수는 있어도 표준은 이탈리아다.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로 쓰는 경우도 많지만 역시 오스트레일리아가 대표형이다.

나라이름 중에서 두 가지 표기를 다 인정한 유일한 보기가 스페인과 에스파냐인데, 실제로 에스파냐는 잘 쓰이고 있지 않고 스페인이 훨씬 많이 쓰인다. 또 타이로 정해져 있지만 태국도 더 널리 쓰인다. 이런 경우는 타이와 태국을 다 인정하든지, 훨씬 많이 쓰이는 쪽으로 통일하든지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다수의 관용은 규범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87. 여부 -《한 겨 레》 2003-01-29 -

여부(與否)란 말은 ‘그렇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함’이나, ‘그러하거나 그러하지 아니함’의 뜻으로, ①사회 정화의 성공 여부는 나를 버리느냐, 남을 버리느냐에 있다(우리말 큰사전) ②그 일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국어대사전) ③사실 여부를 확인하다(표준국어대사전)와 같이 쓰고, ‘틀리거나 의심할 여지’의 뜻으로 “자네 말이 틀림없지?” “그럼, 여부가 있나”처럼 쓰면 그럼직하지만, 이 말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경우에 맞지 않게 아무렇게나 쓴다. 다음 보기에서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 써야 한다.

*야당이 대결할 것인지 타협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집권이라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다’.(耗일보) → 되느냐, 안 되느냐다/ 도움이 되느냐에 달렸다.

*대통령 정책기획위 위원장 아무개씨가 그런 ‘수정주의자인지의 여부를’ 우리가 여기서 단정할 생각은 없다.(耗일보) → 수정주의자인지를 ~/ 수정주의자인지 아닌지를 ~.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를’ 가려야(耝신문) → 했는지를 가려야/ 했는지 안 했는지를 가려야.

*문제의 하모씨는 계좌만 역추적해도 비자금 ‘조성설의 진위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耗일보) → 조성설의 진위가 ~/ 조성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

여기서 ‘진위 여부’를 풀면, ‘참이거나 거짓, 그러하거나 그러하지 않음’이 되므로 뜻과 말이 겹쳐서 ‘여부’는 필요없다. 앞 낱말이 맞서는 뜻으로 짜인 당락 여부, 성패 여부, 가부 여부, 생사 여부, 찬반 여부 따위의 쓰임도 마찬가지다.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88. 오만은 금물 -《한 겨 레》 2003-01-30 -

“다듬을 시간도 없고 글 쓸 기분도 나지 않는 가운데 억지로 이말 저말 쓰고 지우고 하다가 ….” 얼마 전 耗신문의 한 교수가 쓴 칼럼에 나오는 말이다.

독자들을 바지부대로 만들긴가? 오만이 지나치다. 문장엔 네가지(분명·정확·간결·정중) 갖출 것이 있다. 이름난 교수라고 갸기를 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을 가르치고 이끄는 이라면 겸허하고 성실해야 할 게다. 매사가 본보기가 되니까.

아무렇게나 내던진 신문글에 ‘격렬한 분노와 뜨거운 감사’ 반응이 있었다니 문장 실력이 높음을 알겠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뻗글(악문)이 여러 군데 도사렸다.

“나는 그 순간 우리나라에서 …”의 ‘그 순간’이 꾸미는 말은? 한 월이 114자나 되는 난맥상! “많이 놀랍기”란 어거지 말법, 무질서한 쉼표 ….

“기분도 내키지 않는” 글이라 아무렇게나 내던졌어도, 이름난 대학 교수가 쓴 신문 칼럼은 교실로 직수입되어 학생들에게 모범문으로 군림함을 아시는지?

제목마저 비웃음과 풍자로 ‘당선자’를 비아냥대는 몰지성은 지성인이 보일 본은 아니지 않을까.

문장법 밑절미 약한 것으로 소문난 쪽이 바로 존경해 마지않는 상당수 대학교수들이다. 영문학도 외국문학도 좋지만 그 이전에 우리 문장 공부 좀 제대로 하고 글을 쓰시라. 영어에서 철자 하나 쉼표 하나에 철저를 기하듯이 ….

글꾼들이여, 겸허한 글을 쓰시라. 안하무인의 글은 두고두고 뉘우치리라. 신이 아니고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던 나폴레옹, 세인트헬레나섬의 황혼을 기억하시라.

장하늘/문장연구가

189. 설 얘기 -《한 겨 레》 2003-01-31 -

설에 ‘설절’을 하지 왜 ‘세배’를 할까? 설이란 해(年)와 관계가 있고, 달(月)이나 날(日)과도 통한다. 전날엔 섣달(설달, 음력 12월)의 첫날이었고, 요즘은 정월(1월)의 첫날이 설날이다. ‘설’을 넘기면 ‘살’(나이, 옛말은 설)을 먹는데, 설이나 살이나 뿌리가 같다. ‘살’은 왠지 세(歲)라는 한자말로 바뀌어 선거나이 18세니 19세니 하지만 엄연히 열여덟, 열아홉살이 살아 있다.

날·달·해가 들어간 말은 얼마나 될까? 대충 ‘새해’처럼 ‘해’가 뒤에 들어가 된 말이 스무 개라면 ‘달’은 예순 개, ‘날’이 들어간 말은 일백스무 개 정도다. 이는 ‘한 해’에 ‘열두 달’, ‘삼백예순다섯 날’이 있으니 이에 딸린 말도 비슷할 수밖에.

설은 쇠는가 쉬는가? ‘설쇠기’는 설을 맞고 지낸다(過歲)는 뜻인데, ‘설쉬기’도 있을 수 있다. 요즘은 설 앞뒷날 합쳐 사흘밖에 안 쉬지만 전날엔 보름 내지 스무 날 가까이 쉬었으므로(歲休) 쉬기 위한 준비도 엄청났을 터이다.

요즘 ‘연봉’이 얼마냐며 한 해 품삯을 얘기하는데, 전날 머슴 ‘새경’도 설밑에 정했다. 온갖 빚도 설밑에 갚고 홀가분하게 한 해를 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일월부터 십이월을 부르는 토박이말이 ‘섣달’밖에 없는 것은 아쉽다. 얄궂게도 나머지는 정월달, 이월달, 삼월달 … 동짓달 식인데, 다행히 철이름은 봄·여름·가을·겨울로 살아 있다.

설처럼 새로움을 나타내는 말로는 처음(첫), 새, 맏, 머리, 아침, 해(햇, 햅) … 들이 있다.

최인호/교열부장

190. 노발대발 -《한 겨 레》 2003-02-03 -

‘펄펄 뛰며 몹시 성내는 꼴’을 ‘노발대발한다’고 한다. 〈한국한자어사전〉에도 없는 ‘노발대발’이란 말에다 우리 국어사전들은 ‘怒發大發’이라고 한자 말밑(어원)을 붙여 놓았다.

한자말로는 ‘노발’은 아무데도 없고, 대발(大發)만 있다. 그 ‘대발’은 ‘크게 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런 한자말이 있다고 해서 헤아려 보지도 않고 덜커덕 갖다 붙일 것이 아니라, 그 말밑을 우리말에서 찾아야 한다.

‘대’는 ‘마음 씀씀이’로 ‘대가 세다, 대가 약하다, 줏대’처럼 쓰인다. 또 ‘대견하다, 대낮, 대단하다, 대돈변(돈 한 냥에 한 달에 한 돈씩 내는 길미), 대마루(가장 높은 마루), 대매(단 한 번의 매), 대보름, 대살(단단야무진 살), 대수(대단한 일), 대접(국·물 그릇), 대중(눈대중), 대판싸움, 대포(큰 술잔) 들의 ‘대’에 이미 ‘大’자가 붙어 있는 것도 있고, 안 붙은 것도 있는데, 붙이고 싶겠지만 ‘大’와는 상관 없는 우리말이다.

‘발’의 말밑도 ‘글발(문맥), 깃발, 끗발(끗수 나오는 기세), 눈발(눈이 내리는 기세, 쏘아보는 눈길), 땀발(땀이 흐르는 줄기), 마당발(폭넓게 활동하는 이), 말발(말의 힘), 빗발(내리는 빗줄기), 서릿발(삐죽삐죽 엉긴 서리기운), 핏발(몸에 생긴 핏결)’ 들에서처럼 우리말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경상북도 영덕의 큰 게도 우리 국어사전에는 ‘대게’(大-)로 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다리마디가 대(竹)처럼 생겼다고 그냥 우리말로 ‘대게’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91. 사전과 띄어쓰기 -《한 겨 레》 2003-02-04 -

많은 이들이 낱말의 띄어쓰기에 대해 궁금해한다. 일반적인 답변은 사전에 낱말로 올라 있으면 붙여 쓰고 그렇지 않으면 띄어 쓰라는 것이다. 물론 국어사전이 한 낱말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가장 믿을 만한 판단 근거가 되겠지만 덮어놓고 사전만 따를 일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뛰어다니다, 날아다니다’는 올림말로 올라 있는데 ‘걸어다니다, 기어다니다’는 없다. 그렇다고 ‘뛰어다니다, 날아다니다’는 붙여 쓰고 사전에 아직 오르지 않은 ‘걸어 다니다, 기어 다니다’는 띄어 써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사전에 미처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사전에 없으니 띄어 쓰라고 할 일이 아니다.

또 사전에 ‘귀성길, 고향길, 귀국길, 귀경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귀성 길, 고향 길, 귀국 길, 귀경 길’처럼 띄어 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사전에 오른 ‘귀향길, 등굣길, 하굣길’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이유로 국어사전에서 낱말, 곧 붙여 써야 할 말들을 다 올림말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사윗감, 며느릿감’은 올려 놓았지만, ‘반장감, 동장감’ 따위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데, 자리나 직위를 뜻하는 말 뒤에는 거의 ‘감’이 붙을 수 있어서 이런 말들을 죄다 사전에 올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귀성길, 고향길’ 같은 말은 두루 찾아서 사전에 올려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전을 믿고 따르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지만 그렇다고 너무 경직되게 해석하는 것은 피해야겠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92. 불이익 -《한 겨 레》 2003-02-05 -

아니 불(不)자는 일몬의 상태를 보이는 한자에 얹혀서 부정하다(不正-), 불미하다(不美-), 불량하다(不良-) 들의 그림씨를 이루고, 움직임을 나타내는 한자에 얹혀서 불문한다(不問-), 불발했다(不發-), 불신한다(不信-), 불응했다(不應-) 들의 움직씨를 이루지만, 이름을 뜻하는 글자에 얹어서 불근(不根)·불력(不力)·불심(不心)·불주(不主)라고 하면 말이 안 되므로, 없을 무(無)를 얹어서 무근(無根), 무력(無力), 무심(無心), 무주(無主) 들처럼 써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 불이익(不利益)이 공인들의 말·글에 독버슷처럼 퍼졌다. 말만들기 법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상식과도 동떨어진 말버릇이다. 다음에서 따옴표(‘ ’) 부분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 써야 한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39조 ②) → 불리한.

*우리가 자유를 제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할 경우에 생기게 마련인 혼란과 ‘일반적 불이익에 있다.’(고등국어 상 316쪽) → 일반인에게 끼치는 불편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의 군사적 팽창을 경계할 대목은 제3국을 통해서 받게 될 각종 경제적인 ‘불이익에’ 대한 것이다.(耝신문) → 손실에/ 피해에.

*검찰이 법리를 잘못 해석해 소재자가 ‘불이익을 당했을 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耆일보) → 불리한 처분을 받았을 때.

*육군본부는 일자회 회원 중 12명을 ‘인사상 불이익 조치하기로’ 했다.(耝신문)→인사에 불리하게 조처하기로.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93. 끝문장 -《한 겨 레》 2003-02-06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장면이 선하다. 불타는 황혼이 화면 가득한데 대지를 딛고 재생을 다짐하는 비비안 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니. …” 〈애수〉의 끝 장면엔 마스코트가 돋보인다. 이제는 창녀가 되어버린 그는 교통사고로 숨지고, 옛사랑의 상징인 마스코트만이 그 길바닥에 덩그마니 …. 이런 영화 기법을 문장에 가져왔으면 싶다. 끝이 좋으면 전체가 살기 때문이다.

△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피천득) △낙화가 눈이 되고 눈이 낙화가 되어 펄펄 날리는 밤길을 밟으며 나는 집으로 오고 있었다.(노천명) △인간들끼리, 약한 인간들끼리 최후의 만찬을 차려놓고 헤어지자. 모두들 헤어지자.(이어령) △눈물처럼 고이는 간절한 생각 속 -- 지금 멍멍히 인경소리가 울려 들어온다.(이영도) △겨자씨 한 알로도 요기가 되는 이 마음의 주림.(김소운)

문장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맺음들이다. ‘인상적일 것’, 이게 큰 원칙이다. 그러려면 ①짧게 ②강하게 ③여운지게 할 일이다. 긴꼬리닭 같은 맺음은 위반이다. 다좆치고 매조지라.

△미국이 한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헤아린다면 한-미 사이의 온갖 현안들에 대한 답은 절로 나온다→미국은 한국의 처지에 서라. 한-미 현안들은 절로 풀리리라.(59%) △희생양이 없는 동반자 시대를 양의 해에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니기를 빌어본다→양의 해다. 희생양 없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동반자 양떼를 바라보고 싶다.(86%)

독자들의 가슴엔 이 마지막 것만이 남음을 기억하자.

장하늘/문장연구가

194. 말본 말 -《한 겨 레》 2003-02-07 -

문법이나 명사·동사·부사에는 익었지만 말본이나 이름씨·움직씨·어찌씨는 낯설어하는 이가 많아졌다. 이런 사정은 말본에서 쓰는 말을 문법용어라 하고, ‘학교문법’에서 그에 딸린 말들을 죄다 한자말로 통일하여 책을 만들고 학교에서 가르쳐 온 데서 연유한다.

씨(품사)를 일컬어, 이름을 나타내는 말(이름씨·명사), 이름을 대신하는 말(대이름씨·대명사), 세는 말(셈씨·수사),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움직씨·동사), 그리는 말(그림씨·형용사), 매기는 말(매김씨·관형사), 어찌·어떻게에 해당하는 말(어찌씨·부사), 느낌을 나타내는 말(느낌씨·감탄사), 잇는 말(이음씨·접속사)에서, 이름씨·그림씨 … 들은 굳이 따로 뜻을 풀이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낱말 뜻을 따로 익힐 품을 덜게 하고, 월(문장) 나누기와 짜기, 글 됨됨이도 쉽게 살필 수 있다. 명사·동사 들은 여벌로 알아두면 된다.

사동, 피동, 접두 파생법, 선어말어미, 성상부사, 청유문, 어간, 어근 …. 말본의 바탕 말들이 이렇다 보니 국어학자들의 논문에 가면 보통 사람들은 알아보기 힘드는 ‘용어’들로 발전한다.

누가·무엇이(임자말)-누구를·무엇을(부림말)-언제·어디에(위치말)-무엇으로(방편말)-무엇과·누구하고(견줌말)-어떻게·어찌(어찌말)-어찌한다·어떠하다·무엇이다(풀이말)

국어학자 허웅은 월조각 이름을 이렇게 쉽게 나눈 바 있다. 보통 신문기사를 쓰면서 여섯종자(육하원칙)를 들추는데, 이는 사실 보통 말과 글에 담기는 기본 조각(성분)들임을 여기서 알 수 있게 된다.

최인호/교열부장

195. ‘공부’ -《한 겨 레》 2003-02-10 -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는 뜻의 우리말 ‘공부’에 우리 국어사전에는 ‘공부(工夫)’처럼 하나같이 ‘工夫’라는 한자가 딸려 있다. ‘공부’와 ‘工夫’가 같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할까?

우리말 ‘공부’를 중국에서는 쉐시(學習), 두수(讀書), 녠수(念書), 융쿵(用功)이라 하고, 일본에서도 ‘공부’를 ‘벤쿄’(勉强)라고 한다.

두 나라 다 ‘工夫’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말 ‘공부’와 다르다는 것을 환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자말 ‘工夫’를 여러 가지 사전에서 찾아서 종합해 보면, ‘功夫’와 함께 쓰이는데, “일, 방법, 수단, 일꾼, 생각을 굴림, 마음의 수양, 한가한 시간, 공사판 막일꾼, 의지 단련에 마음씀, 무술 이름 …” 들 별의별 뜻이 있으나, 우리말 ‘공부’와 같은 뜻은 없다.

우리말 ‘공부’는 ‘공부꾼, 공부놀이, 공붓방, 글공부, 말공부’ 들에 쓰인다.

한자말 ‘工夫’는 쿵푸차(工夫茶)에나 쓰이는데, 그것은 푸젠성 장저우(장주)와 취안저우(천주), 광둥성 차오저우(조주)에서 베풀어지는 찻법으로,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에 있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구후’(工夫)라고 하여 주로 “여러 가지로 생각하여 좋은 방법을 얻으려고 함”이란 뜻으로 쓰인다.

국어사전에는 또 “공부승(工夫僧):불경을 공부하는 중”이라는 것을 올려 놓았다. 그것은 ‘不實’을 ‘부실하다’의 말밑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우리 국어사전 특유의 억지다. 그런 중이 있다면 ‘공부僧’이라고 해야 한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196. 원어와 적기 -《한 겨 레》 2003-02-11 -

외국인의 이름을 한글로 적을 때 누구나 그 외국인의 발음에 가깝게 적고 싶어할 것이다. 실제로 외래어 표기법도 외래어는 원어 발음에 가깝게 적는다는 정신에 따라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할 것은, 외국어의 발음은 외국어와 우리말의 음운 구조 차이 탓에 똑같이 적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외국어를 들어보아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호한 소리가 적지 않다. 예컨대 [ ]와 같은 소리는 외래어 표기법에는 ‘어’로 정해져 있는데 ‘어’라고 생각하면 ‘어’ 같고 ‘아’라고 생각하면 ‘아 같다. 또 사람에 따라 ‘어’나 ‘아’로 달리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외국어 발음이라는 것도 말하는 외국인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사투리 쓰는 사람도 있고, 표준어 사용자라도 개인적 특징이 있다.

외국인 발음의 다양성과 그 말을 듣는 한국인들의 다양한 인식을 생각하면 우리가 외국어 발음을 직접 듣고 한글 표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외래어 표기를 통일하려면 직접 외국인의 말을 들어보고 정할 게 아니라 외국어 발음을 표기해 놓은 사전에 근거하는 것이 합당하다. 사전이란 한 언어를 가장 잘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적접 말을 들어보고 한글 표기를 정한다면 발음을 쉽게 들어볼 수 없는 외국 인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통일성 있고 체계적으로 외국어를 적기 위해서는 정해진 어문규범인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의 실제 발음은 참고는 될지언정 절대적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김세중/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197. 비단 -《한 겨 레》 2003-02-12 -

이 말의 뜻을 〈동아한한대사전〉은 ‘다만 …뿐만 아니라 또’의 뜻으로, 첨가하는 문장 앞에 쓰는 부정어라고 풀었다. 보기 문장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非但昆 季亦孝子’(맏이뿐 아니라 막내도 효자)라고 써놓고 보면, 다음에 보이는 국어사전들의 뜻풀이와 보기말들은 몹시 치졸하다.

*부정의 뜻을 가진 문맥 속에서 ‘다만, 오직’의 뜻을 나타냄. ①이런 일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②비단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우리말 큰사전)

*부정하는 말 앞에서 ‘다만, 오직’의 뜻으로 쓰는 말. =비독(非獨) ③잠을 깬 사람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표준국어대사전)

사전들이 하나같이 비단(非但)에서 ‘단’(但)의 뜻만 ‘다만, 오직’으로 풀고 ‘비’(非)는 아예 무시해, 무식을 드러내면서 유식한 양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보기말로 내세웠다. 보기말 넷에 두루 쓴 ‘비단’은 ①의 ‘만의 일이 아니다.’ ②의 ‘뿐만 아니라’, ③의 ‘만이 아니었다’와 뜻이 같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말이므로 모두 없애는 게 낫다.

*고촉동 총리의 야심은 싱가포르를 ‘비단’ 상업의 중심뿐만 아니라, 인력, 지식, 정보,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비전이다.(耗일보) → ‘비단’은 빼어버려야.

우리 말글 발전에 걸림돌 노릇을 하는 한문투를 내세워 유식한 체하는 것은 중국의 어느 냇가나 산기슭에서 주어온 막돌을 옥돌인 줄 알고 품고 다니면서 제멋에 겨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198. 표현·수사 -《한 겨 레》 2003-02-13 -

“문장이란 꾸미는 거다. 그러니 꾸밈법에 익숙해지면 된다.”(아리스토텔레스) ‘꾸밈’이 문제다. 지나치게 꾸미면 천해지고, 맨얼굴은 시골티가 난다. 판소리가 아니라도 말에는 너름새가 끼기 마련인데, 그 너름새가 수사법이다.

말부림새는 네 가지다. ①뜻 바꾸기(은유·직유·상징 …) ②꼴 바꾸기(반복·생략·도치 …) ③틀 바꾸기(점층·인용·흉내 …) ④재미 붙이기(풍자·풍유·과장 …)

“고전을 삼년간 공부하라”보다 “고전이란 항아리에 대가리를 삼년쯤 푹 박아 장아찌처럼 되라”(김용옥)는 풍자·비웃음·직유가 뒤섞인 표현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시집을 갔다 돌아와 우는 딸에게 “장미를 꺾으러 갔다가 앙상한 낙엽만 그러안고 돌아와 흐느끼는 이 얼간아!” 하고 욕하는 어미는 상징·억양·비웃음으로 비사쳤다.

“병든 조개가 진주를 품었다고, 주위의 눈총이 내 피부에 구멍을 뚫을 지경입니다”는, 임신했다고 비난받는 꼬맹이가 대유·과장·풍자를 빌려 비정한 사회를 왜장쳤다.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던 시인 육사. 어느 항구에서 나부끼는 치마를 보내었던가? 아니다. 조국을 찾아 헤매던 고난의 상징일게다. “쇠대가리도 깬다는 함경도 바람살”이 행간에 내리치는 그의 시다. 두고 온 대륙, 민족의 ‘광야’를 못내 외치다 베이징 감옥 맨바닥에서 증발한 그의 시혼! 겨레 이름으로 화신한 그였기에 수사법이 못 미칠 높다란 ‘절정’으로 피신했을라.

우리말 거센소리와 울림소리에 묻어 오는 웅숭깊은 수사법은 다른 잣대로 재어야 할 과제일까?

장하늘/문장연구가

199. 적 -《한 겨 레》 2003-02-14 -

우리말에는 매김자리토씨 ‘의’말고도 움직씨, 그림씨, 잡음씨의 매김꼴과 어찌씨끝이 다양하고, 임자씨에 붙어서 그런 모습이나 성질 따위를 보이는 뒷가지 ‘-답다’, ‘-스럽다’도 있어서 이것들을 잘 돌려 쓰면 아쉬울 것이 없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와 같은 구실을 하는 ‘-적’(-的)이 지식인들의 말글에서 유식의 상징처럼 판을 치는 모습이 마치 멀쩡한 손발을 잘라버리고 의수족을 붙인 꼴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란 ‘직접적,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적 요인이다.(고등국어 상 254쪽) → 직간접으로 작용하는 상황 요인이다.

*전통사회는 사회문화의 정도가 낮아서 사회의 기본단위도 ㉠소규모적이고 ㉡자급자족적이며 ㉢폐쇄적이고 ㉣정체적인 사회다.(고등국어 158쪽)

㉠→규모가 작아. ㉡→자급자족하며 ㉢→닫히고. ㉣정체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헌법 69조 대통령 취임선서)→평화 통일/ 평화스러운 통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습니다.(기상정보) → 전국에/ 전국에 걸쳐.

일상적 생활 → 일상생활, 신체적 고통 → 몸의 ~, 개성적인 글 → 개성이 있는 글, 전문적인 교육 → 전문 ~, 차별적 대우 → 차별 ~, 연속적인 사건 → 잇따르는 ~, 가시적인 현상 → 보이는/ 볼 수 있는, 인공적으로 만든 물건 → 인공물, 조정적 역할 → 조정 기능,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 압축해서/ 줄여서, 갈등적 관계 → 갈등/ 갈등하는, 마음적으로 돕는다 → 마음으로.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200. 사이시옷 적기 -《한 겨 레》 2003-02-17 -

고친 것이 오히려 더 나쁘게 되었다면 그것은 개악이다.

1988년에 고쳐 나온 ‘한글 맞춤법’의 사이시옷 적기 규정이 그렇다.

토박이말이든 한자말이든 사이시옷을 두루 적어 오던 것을 새로 고친 맞춤법에서는 순한자말의 경우 묘하게도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 여섯 낱말 외에는 적지 않기로 하였다. 그 결과 ‘댓가’는 ‘대가’로 ‘홋수’는 ‘호수’로, ‘솟장’은 ‘소장’으로 적어야 하고, ‘장밋빛’은 사이시옷을 받쳐 적되 ‘장미과’는 耔을 받쳐 적으면 틀리게 되었다.

사이시옷 적기는 남북이 또한 많이 다르다. 북에서는 1966년 이후로는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냇가, 빗발, 훗날’을 북에서는 ‘내가, 비발, 후날’로 적고, 발음은 된소리로 한다.

그런데 1988년에 나온 북의 규범집에서는 소리가 같은 말 가운데 혼동을 피하기 위해, ‘비바람’과 ‘빗바람’, ‘새별’과 ‘샛별’로 구분하여 적고, ‘아랫집’, ‘뒷일’ 따위의 몇몇 낱말에 예외적으로 耔을 받치어 적기로 하였다. 또 바다나 물가에서 자라는 ‘갯-고사리, 갯-도요, 갯-두루미, 갯-버들, 갯-장어, 갯-지렁이’ 같은 동식물 이름에도 적고 있다. 그러니 북에서도 사이시옷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사이시옷 적기는 남북이 모두 뒤죽박죽이다. 그 통일안으로는 분단 이전의 적기 규정을 살려서 토박이말이든 한자말이든 또 외래어와의 합성어든 두루 적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재수/사전편찬인